갑자기 뜬금없지만 저희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저는 할머니와 함께 삽니다. 외할머니세요.
요즘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경우가 드물지만 어릴 때부터 쭉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25살 지금까지 할머니 옆에서 함께 잤습니다.
할머니가 외로워하신다는 생각도 했고, 제가 이제 다 컸다고 할머니에게 어리광(?)을 안 부리면 내심 서운해하실까봐 그럽니다.
또 할머니께서 자격지심으로 제가 이제 할머니가 나이 드신 노인이라서 같이 옆에서 자는 걸 피한다고 생각할까봐 그런 것도 있습니다.
전 참 할머니가 좋습니다.
주름진 손도 꼭 잡으면 힘 있게 맞잡아 주십니다. 그 온기가 참 좋습니다.
부모님이 다 일하시니까 어릴 때부터 쭉 키워주셨습니다.
제게는 어머니같은 분이십니다.
저희 할머니가 얼마나 좋고, 귀여우신 분인지 말씀해드릴게요.
아침 일 나가기 전에 저는 옷을 허물 벗듯이 벗고, 이불도 접지 않고 허둥지둥 출근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옆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가 출근한 뒤 할머니께서는 제 옷과 이불을 접어서 옆에 두시고, 제 옷을 이불 밑에 둡니다.
일 갖다 와서 갈아 입을 때 따뜻하라고 그럽니다.
일 갖다 돌아오면 제 옷이 언제나 이불 속에 따뜻하게 있습니다.
할머니는 전기장판 위에 앉아 tv를 보십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시고 마르셔서 저는 따뜻하다고 느끼는 정도의 온도도 뜨겁게 느끼셔서 잘 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 갖다가 오면 따뜻하라고 5시쯤부터 틀어놓고 계십니다.
매달 월급날 조금의 용돈을 드리면 쓸 일이 없다고 안 쓰십니다.
그런데 할머니들과 놀고 오시는 날에는 나가서 제가 주신 용돈으로 다같이 사먹고 손녀가 용돈줬다며 자랑한다고 제게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하십니다.
할머니는 돈을 줘도 안 쓰시고 오빠랑 저랑 저녁에 뭐 시켜먹으라고 오히려 할머니께서 용돈을 주십니다.
그 말을 하니 할머니께서는 단 것을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저 어릴 때 어르신들은 다 단 거 별로 안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양갱이나 여러가지 단 과자 많이 좋아하시더라구요.
본론으로 와서 할머니는 먹을 게 생기면 저 주시려고 챙겨옵니다.
보건소에서 할머니들 모여서 노시는 곳이 있는데요.
가셔서 먹을 거 주면 할머니께서 안 드시고, 저 먹으라고 챙겨 오십니다. 다른 할머니들께서 주라고 하셔도 굴하지 않습니다.
가끔 친구 분이 안 먹으면 제가 좋아할 것 같아 그것도 달라고 해서 챙겨 오십니다.
정작 할머니는 안 드시구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가져오신 게 제가 별로 취향이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께서 쳐다보니 안 먹으면 서운해하실까봐 맛있다며 꾸역꾸역 먹습니다.
가끔은 몰래 조금만 먹습니다.
그래도 제가 먹는 걸 보면서 할머니가 행복해하시는 것 같으니까 저도 행복합니다.
전 귀 파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다른 가족도 파달라고 하지만 할머니 귀 파드리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할머니는 귀가 커서 속이 잘 보여 파기 쉽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저를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밥 먹기 싫다고 칭얼거리면 다 떠다 먹이고, 밥 한 숟갈에 김치 잘라 먹이고, 라면도 반 개 잘라서 끓여주시고,
생선 뼈도 발라 주시고 매일 밥을 차려 주셨습니다.
비빔밥 좋아하니까 매일 비벼 주셨습니다.
운동회나 행사 때 바쁘신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께서 언제나 와주셨습니다.
아플 때는 옆에서 제 배를 쓰다듬어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어주셨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계란볶음밥을 해주셨는데 그게 맛있다고 했더니 일주일 내내 계란밥을 제게 먹였습니다.
전 그 뒤로 계란밥을 잘 안 먹습니다.
한 번은 친구가 준 짜장소스가 생겼는데, 그걸로 짜장면을 해 먹으려고 할머니께 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저 맛있게 먹으라고 설탕을 쳐주셨습니다.
전 짜장소스가 아까워 조금 슬펐습니다.
이제는 기운도 없으시고, 반대로 제가 차려드리는데 그 때만큼 할머니를 잘 챙겨 못드려 죄송합니다.
할머니 식사를 차려드리면 저나 엄마가 귀찮아할까봐 반찬은 한 가지만 달라고 하십니다.
그게 저는 참 서운합니다. 맛있는 반찬 다양하게 먹으시면 좋은데, 그냥 반찬 하나만 차리라고 하십니다.
여러 개 차려도 반찬 하나만 드십니다.
요즘 일도 많고 잔업도 많고 집에 와서도 두세시간 자고 일해서 할머니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토, 일요일도 일에 대한 반동으로 놀러 가거나 또 컴퓨터로 작업을 하다보니 할머니와 잘 때 겨우 옆에서 함께 잠들 때만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많이 신경을 못 쓴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저희 할머니는 쓴 소리 잘 안하시고 항상 인자하십니다.
천사같으신 분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보건소도 문을 닫고 할머니들 모여서 노시던 곳에 사시던 할머니가 이사를 가셔서 갈 곳이 없다며 집에 있을 때가 참 많았습니다.
심심해하시고 그러시더니 어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모든 분들께서 저희 할머니 행복하시라고, 댓글은 과분하고 그냥 마음 속으로 한 번만 오래오래 천국가서 행복하게 사시라고 한 번만 말씀해주세요.
악플은 안 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가 할머니께 많이 못 해드린 것이 참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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