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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 등이 피고로 선 1심 판결에서 법원은 국정원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공직선거법위반 혐의에 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김기덕 감독은 '일대 일'이 "최근 몇 년 내 있었던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건을 두고" 만든 영화라고 밝혔다. 그 사건의 용의자 7인을 염두하고 영화를 만들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치는 고백이자 자백"이라며, 그가 남긴 교훈을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 김기덕 감독의 스무 번째 작품, '일대 일'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자행된 국가기관의 부정한 개입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리고 그림자 조직의 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해소하고자 했던 참여정부의 노력과 한계를 담아냈다. 아울러, 그림자 리더인 마동석은 민주주의를 위해 서민을 설득하고 기득권과 투쟁하다 서거한 비주류 리더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삼았다. 거기에 현재 자본과 권력 앞에 나약한 서민들을 그림자로 그려내, 그들 중 '나는 누구인가' 관객이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영화는 오민주라는 이름의 여고생이 검은 정장의 용의자들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검정색 테이프로 민주의 눈과 귀와 입을 칭칭 감아 질식사시킨다. 국민의 보고 듣고 말할 권리이자 법칙인 민주주의가 누군가에게 참담히 훼손돼 상실됐음을 말한다. 직접 살인을 자행한 용의자들은 그 사실을 윗선으로 보고한다. 지시를 받은 이들까지 모두 7명의 용의자가 구성된다.
대사와 정황을 종합해보았을 때, 지시에 따른 행동요원 3인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과 활동내용을 숨기면서도 국가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을 은근히 내비치곤 한다. 실제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활동한 국정원 직원임을 암시한다. 이들은 상부의 지시에 반성 없이 따르기도 하며(오현), 죄책감을 느끼지만 끝내 가담하기도 했고(정이세), 능동적인 태도로 알아서 갖다 바치기도 했다(오지하). 그들에게 직접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오정택은 호칭을 통해 팀장임이 드러나며, 변오구가 "진호성이 밑에 있는 애들이냐"라며 오현을 다그친 대목으로 미루어 진호성의 직책이 해당 집단의 수장인 국정원장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7명 중 5명의 정체는 국정원으로 밝혀졌다. 여섯 번째 용의자는 군 장성이다. 대선개입사건의 또 다른 주체인 국군사이버사령관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용의자는 어항 속의 가물치를 자처하는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이자는 대선정국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거짓 졸속 수사 결과를 발표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판으로 볼 수도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7인회 멤버이자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많은 문제의 원흉이랄 수 있는김기춘 비서실장으로 보아도 좋겠다. 어찌됐든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가기관의 수장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무리 없으리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7명의 용의자는 동수인 7명의 그림자들로부터 응징 당한다. 그 면면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서민이다. 그림자1(이이경)은 카페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손님에게 모욕을 당하지만 치즈에 침을 뱉는 수준의 소심한 저항을 시도하고 그마저 사장의 제지로 실패한다. 갈피잡지 못한 분노라고 하자. 그림자4(안지혜)는 데이트폭력에 노출된 여성이다. 연인의 폭력에 시달리며 그를 증오하면서도 자립의 의지가 없고, 제공되는 육체적 쾌락과 돈에 만족한다. 노예근성라고 하자. 그림자3(테오 유)은 형의 지원과 강요에 인해 평생 공부만 해왔고 그 과거가 원망스럽지만 현재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형의 식당에 얹혀산다. 메모리 로봇이라 하자. 그림자2(조동인)는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며 사장에게 구박 당한다. 자존심을 자극하면 쉽게 발끈하지만 분별력이 없는 인물이다. 열등감이라고 하자. 그림자6(김중기)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탕진했다. 치매에 걸린 노모와 재개발 부지에서 노숙을 하며 지낸다. 순진함이라고 하자. 그림자5(조재룡)는 아픈 아내를 간호하느라 사채 빚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책망하며 복권을 긁는다. 사행심이라고 하자. 임의로 부여한 그림자들의 여섯 가지 별명은 그들로 대표되는 우리 시민들이 권력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하겠다. 마지막 그림자 조직의 리더는 광기어린 분노를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죽은 오민주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길러온 민주를 권력자들에게 잃어버린 그림자 리더는 말했듯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인터넷 공간에서 불평하던 사람들을 모아서 용의자 7인을 응징한다. 이들은 5.18 당시의 군인, 조직폭력배, 경찰특공대, 미군, 보안사, 국정원의 행색을 하며 용의자들을 폭행하고 취조하며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도록 요구한다. 이들 활동의 좁은 의미는 현대사의 독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림자들에겐 치유의 사이코드라마이다. 그래서 영화는 용의자를 취조하고 그림자의 현실을 들춰내는 과정이 반복되는 구성이다. 이 연극은 매듭지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디렉터인 리더는 죽음을 맞는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과거사위원회 활동을 떠올릴 수 있다.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해왔던 과거사 청산 활동은 국가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일이었다. 국가폭력을 재현하며 국가기관의 용의자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고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려는 과정은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과 궤를 같이한다. 알다시피 다음 정권에 의해 14개 과거사위원회는 통폐합되고 활동기간이 종료됐다. 리더는 우리사회 비주류인 서민을 설득하지만 그들이 등을 돌린 가운데, 바위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우리에게 분노하고 증오하고 복수하고 그리고 실패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 말한다.
정리하자면, '일대 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과거사위원회 활동 그리고 대선개입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우리 현대사의 국가폭력을 상기하며, 그것으로 말미암은 사회와 개인의 병폐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구체적으론 권력과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그림자들을 통해 피지배계급의 나약한 마음새를 지적하고, 진정한 반성이야말로 모든 병폐를 치유할 단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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