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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년 1월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던 두 위태로운 동맹은 깨지고 말았다
어차피 언젠간 패권을 두고 다퉈야할 사이였다
삶에 대한 사상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삶에 대한 적응성은 공국의 조상들이 예전부터 살아오던 땅들을 다시 되찾아 오는데 유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상의 발전은 신분이 낮은 이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급진적인 행정 사상의 발전은 하층민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공작에게는 그저 부작용의 일부일 뿐이었다
전쟁으로 땅을 잃고 끝나리라 생각했던 백년전쟁을 패배로 마무리한 프랑스는 사보이와 다시 동맹을 채결한다
외교적 고립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발부림이었다
공작은 이를 수락하지만 프랑스는 예전같지 않았고 주변엔 큰 적들이 많았다
프랑스는 열강들에게 패배해 프로방스지방을 독립시킨다
공작은 프랑스가 통치했었던 프로방스 지방의 완전한 정복을 원했다
밀라노에 이은 공작의 다음목표는 아비뇽 이었다
공작은 바로 필요한 행동을 취한다
프랑스에게 통행권을 요청하고 상비군을 새로 모집하며 요새에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조건은 모두 갖추어졌다
남은것은 사보이의 승리뿐
1485년 7월 30일
드라기냥에 이은 아비뇽 정복전쟁이 발발한다
변방의 소수의 방위군으론 사보이군을 이길 수 없었다
공작은 프랑스의 호의를 사기 위해 프로방스의 메인 주에 대한 권리를 박탈했으며
도핀느와 아비뇽을 할양 받았다
1488년 8월 1일
전쟁은 손쉽게 끝났으며 대승리였다
하지만 정복 지향적인 공작의 행보는 주변국들의 분노를 샀다
안그래도 몬페라토를 합병했던 사보이 공국의 행보로 제국 내 평판은 추락하고 있었다
1488년 8월 28일
위대한 정복자 아메데오 9세는 운동도중 입었던 상처가 덧나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정복활동과 행정 이념의 발전은 잊혀지지 않고 후세에 빛나리라
아메데오 9세의 뒤를 이어 그의 장남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1세가 공국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고
후계자로 장남 필립포 에마누엘 디 사보이아가 임명되었다
주변 열강에게 있어 프랑스땅은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은 곳 이었다
부르고뉴는 자신이 진정한 프랑스라고 외치며 영국과 전쟁에 나선다
그와 별개로 공국은 영광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선대 두 공작의 현명한 통치가 나라의 영광과 즉결되고 있었다
사보이 재무부는 발전한 행정적 제도를 토대로 전쟁세금을 개선하는데 성공한다
하루하루가 사보이의 영광스런 나날이었다
제국은 이탈리아를 제국의 영향력 안에 두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교황은 여전히 중부 이탈리아를 다스리고 있었고 베네치아는 북 이탈리아의 패권을 노리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통제하지 못하는 제국에 공작은 더 이상 충성할 이유가 없었다
공작은 제국에서 탈퇴를 결심한다 이에 브란덴부르크 황제국은 매우 진노한다
제국의 영향력을 벗어난 이상 공국의 정복욕을 막을 나라는 없었다
그 정복욕은 프로방스에서 밀라노로 옮겨갔다
공작은 밀라노 정복을 위해 밀라노에 첩보를 보내고 모든 도시의 지도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 사보이의 부족한 인력을 해결하고자 공작은 용병과 원활한 거래를 위한 지원제도를 마련한다
사보이에 고용된 용병은 더 이상 돈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용병에게만 의존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공작은 지원제도와 별개로 공국 내 집단 징병제도를 마련한다
이로써 사보이에 산다면 귀천에 관계없이 위대한 전쟁에 참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꽃봉오리를 피우기도 전 공작이 사망함으로 전쟁에 대한 정책들은 잠시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공작의 배우자는 이미 전에 죽었었기에 귀족들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섭정에 들어선 귀족의회는 원활한 물자운반 및 교역을 위한 대형조선소 건설방안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
다행히 후계자 필립포의 성장은 원만했다
1494년 8월 27일
필립포 에마누엘 1세는 후계자 교육을 마치고 공작이 승하한지 2년만에 공작이 된다
공작이 즉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1495년 2월 5일
공작은 아버지가 정비했던 군사개혁을 통해 밀라노 정벌을 개시한다
사보이의 공작, 스위스의 통치자 그리고 피에몬테 대공작 필립포 에마누엘 디 사보이아 1세는 전쟁에 나서며 선대 공작의 야망에 따라 밀라노를 정벌하고 베네치아를 무찔러 북 이탈리아의 당당한 맹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위대한 사보이 공국의 염원, 그리고 야망과도 직결된 연설이었다
이로써 사보이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영광을 얻어내리!
사보이는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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