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대배치 후 맞고참과 8개월 차이가 났던 나는 소위 '풀린군번' 이라고 불리며 고참들의 갈굼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내가 똑바로 해야 내 밑으로 들어올 후임들이 줄줄이 개념이 똑바로 박힌다고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나갈 날이 한달 남짓 남은 고참들이 세명이나 있는 걸 보고 "아, 곧 내 밑으로 후임이 들어오겠구나!"하는 생각에 모진 갈굼을 견뎌냈지만, 우리 부대에 들어온 신병은 다른 부대에서 전출온 내 두달 위 고참(이하 A)이었다.
A는 고참에게 구타를 당하고 전출을 온 케이스였다.
처음에는 고참이 신병으로 왔다는 사실에 공황상태가 되어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힘없는 이병답게 현실에 순응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 의문이 생겼다. '왜 때린 사람이 아니고 맞은 사람이 이 격오지까지 전출을 왔을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A는 말 그대로 진성 고문관이었다.
청각에 문제가 있는지 고참이 말을 해도 어디서 개가짖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지도 않는가 하면 잠버릇이 고약해 잘 자고 있던 옆자리 고참의 안면을 가격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잘못을 추궁당하면 거짓말을 해서 상황을 모면하려는 위기대처능력이었는데, 원체 머리가 나쁜지라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나서 몇배로 심하게 갈굼당하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엄청난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었다. 비교대상이 워낙 고문관이다보니 자연스레 나는 특A급 신병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A가 나보다 늦게 들어오긴 했지만 계급상으로는 나보다 선임이기 때문에 후임관리를 못한다고 내리갈굼당할 일도 없었다. 덕분에 A의 군생활은 더욱 피로해졌다. 툭하면 나와 비교당하며 "너는 어째 니 후임보다 못하냐"라는 소리를 수도없이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A가 일병휴가를 나가는 날이 다가왔다. 보통은 9박10일짜리 휴가를 좀 아껴놓기 마련인데 A는 욕설을 모닝콜삼아 하루를 시작하며 갈굼을 자장가삼아 하루를 마감했기 때문에 군대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일병을 단 바로 그 달 첫째주에 휴가를 썼을까.
A는 휴가나가는 바로 전날까지 온갖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명목상으로는 "어차피 곧 나가서 푹 쉬다 올건데 좀 고생해라" 라는 거였지만 내가 봤을땐 단지 A가 편안하게 휴가나가는 모습이 꼴보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았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막사 페인트칠과 제초작업이 겹쳐서 결국 불쌍한 A는 휴가 전날까지 오전엔 제초작업, 오후엔 페인트칠을 하다가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문제는 그가 휴가를 나가고 나서 벌어졌다.
우리 부대는 섬에 있었고, 휴가를 나가려면 당연히 배를 타야 하기에 휴가자는 배 시간을 맞추려고 새벽 다섯시정도에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를 깨달았을 시점에 그는 이미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간 상태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A가 빨리 집에 도착하길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우리는 온갖 욕설과 저주로 범벅된 격한 언어행위로 그의 만행을 성토하기에 바빴다.
A는... 작업창고 열쇠를 열쇠보관함에 돌려놓지 않고 나가버린 것이다. 열쇠가 없다는 것을 안 우리는 황급히 그의 관물대를 뒤졌지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짱박아뒀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양말과 속옷, 그리고 잘 접혀서 수양록 사이에 끼워둔 찢어진 맥심 다섯페이지가 전부였다. 작업창고 열쇠가 사라졌다고 했을때도 어차피 자기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태평한 모습이던 말년병장마저도 A의 관물대에서 발견된 찢어진 맥심화보를 발견하고는 "이새끼가 범인이었구나!!" 라며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남쪽에 위치한 부대 특성상, 일년의 절반 이상을 제초작업으로 보내야 하는 우리에게 작업창고는 총기보관함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다. 거기엔 예초기와, 낫과, 목장갑 등 제초작업에 필요한 모든 도구가 들어있었고, 결정적으로 자물쇠를 자를 수 있는 절단기마저도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절망하던 우리는 이내 '이 핑계로 작업을 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작업창고가 잠겨서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우리에 말에 곤란해하는 하사의 얼굴을 보고 그 기대는 점점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군생활을 삼십년가량 한 관록의 원사는 역시 달랐다.
"손으로 뽑아."
그 한마디에 하사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고 우리는 다시한번 A를 저주하며 손톱에 녹색 물이 들도록 풀을 뽑아내야 했다. 그리고 저녁, A가 지금쯤이면 집에 있겠지 싶어 간부가 여러번 전화를 해봤으나 핸드폰은 정지되어 있고 자택 전화는 없는번호라고 나왔다. 그나마 A가 전출와서 여러모로 힘들테니 잘 대해주라며 쉴드를 쳐주던 간부마저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고참들은 고문관의 의미를 고문+관 이라는걸로 생각했는지 그가 돌아오면 어떤 고문을 사용해서 어떤 목재의 관에 집어넣을지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우리는 모두... 아니, 말년병장 한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작업창고 열쇠를 내놓으라며 닥달했지만 그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자기는 작업창고 열쇠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참지못한 최상병이 A에게 달려들어 녹색 물이 든 손으로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욕을 A에게 들려주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격한 음성에 담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고참들도 말릴 생각은 하지않고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주며 A를 갈궜다.
결국 간부가 그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야 상병의 욕설은 끝이 났다. 그리고 간부에게 가서 억울하다며 자신에게 욕설을 한 최상병을 영창에 보내버릴 기세로 열심히 고자질을 하던 A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 고참들은, 그 날 이후 A를 아예 아예 없는사람 취급하기 시작했고, 싸늘한 따돌림을 견디지 못한 A가 다른곳으로 전출을 가게 되며 부대는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막내였지만 A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던 탓인지 나에게 쏟아지는 갈굼은 예전보다 훨씩 약했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군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몇달 뒤, 창고 외벽을 도색하라는 작업지시가 떨어졌고 궁시렁대며 페인트작업할때 입는 너덜너덜한 폐급 활동복을 입었을 때, 주머니에서 느껴진 낯선 이물감...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왜 여기 들어있는가-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작업 뒷처리를 하고 창고 문을 잠근 뒤 담배를 한대 태우다가 페인트작업하고 근처에서 담배핀다고 개념없단 소리를 들으며 갈굼받고...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털린 뒤 활동복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열쇠를 보관함에 가져다놓는 것을 잊은...
그 기억이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배웅해주지 않는 쓸쓸한 마지막 모습. 축 처진 어깨, 힘없이 터벅터벅 걷던 그 발걸음, 다려주지 않아서 후줄근했던 군복..
그날 저녁, 경계근무를 끝내고 사수에게 "담배 하나 태우고 들어가겠습니다." 라고 한 뒤 바다와 제일 가까운 철조망 근처로 가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혹여 짤그랑거리는 소리라도 날까 두려워 휴지로 곱게 싸매둔 그것을 꺼내어 힘껏 바다로 집어던졌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니, 바람결에 희미하게 '퐁당'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열쇠가 빠지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달빛에 홀린 물고기 한마리가 수면위로 잠시 올라왔다가 돌아가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내 가슴 속 호수에 던져진 양심이란 이름의 돌멩이가 일으킨 울렁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