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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던 학부생 한 명이, 우연히 기가 막힌 논문을 만들어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수업 시간에 배운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스물여덟 개의 유명한 수학 논문을 학습시킨게 전부였다. 그런 다음 인공지능에게 명령했다. “이것들을 학습해서 새로운 논문을 만들어 봐.”
인공지능은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입력된 논문들의 규칙성을 파악해내서, 자기 나름대로 그럴싸한 논문을 만들어냈다. 답을 내놓는데는 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학부생이 말했다. “음, 완벽해.” 내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복잡한 수식이 나열된 새 논문은 입력한 스물여덟 논문과 비슷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는 마치 자기가 쓴 것처럼 기뻐서, 담당 교수에게 달려가 자랑했다.
교수는 흥분한 학생이 쏟아붓는 말을 겨우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하고 싶다고?” 그 교수는 수학 전공이 아니었기에 논문을 읽어 보는 시늉만 했다. ‘수업 때 알려준 알고리즘은 규칙성을 찾아내는데 효과적이지만, 데이터가 적으면 잘못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 하물며 가장 엄격한 규칙이 요구되는 수학 논문? 보나마나 아무 가치도 없어. 알고리즘은 대충 짜집기해서 붙여넣은게 고작이겠지. 앞뒤도 안맞고 완전 엉터리일거야.’ 하지만 학생의 열정을 생각해서 논문 투고 방법을 알려주기는 했다. 어쨌든 공부는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교수가 엉터리일거라 생각한 논문은 진짜배기였다.
인공지능은 입력된 여덟 논문들 사이에서, 컴퓨터 특유의 차갑고 유연한 방식으로, 사람이라면 수학자도 피할 수 없는 편견들을 비켜가, 아주 우연하게도 단순하지만 자명한 진리를 발굴해낸 것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수학자가 한참을 해석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수준이긴 했지만.
학부생은 어찌어찌 학술지 몇 군데에 논문을 투고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빠르게 거절당했다. [본 학술지의 연구범위에 만족하지 않음], [편향되었고 결함이 있음], [연구가 중복됨], 그리고 아무런 답장이 없는 경우들.
사실 논문 심사위원들은 매일 연구로 바빠서, 겉보기에 문법부터 허접한 애송이의 논문을 자세히 볼 시간이 없었다. 그것도 프로그래밍쪽 학부생이라고? 그런데 왜 수학 저널에 보내? 아웃.
학생은 거절당할건 예상했어도 예상보다 약이 많이 올랐다. “이 논문의 가치를 몰라보다니(나도 모르지만)! 기어코 게재하고 말겠어!” 그는 한참을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결국 최후의 방법을 쓰고야 말았다. 돈만 입금하면 아무나 받아주는, 가짜 학술지에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논문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통과되었고, 그제서야 학생은 맘이 놓였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논문과 인공지능과 관련되었던 파일들을 싹 삭제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과제하고 연애하고 알바하고. 어쨌든 좋은 추억이었어.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학생은 졸업해서 수학이나 인공지능과는 관계없는 어딘가에 취업했고, 그의 인공지능이 쓴 수학 논문은 학술지 세계 근처를 떠돌아 다녔다. 연구자들은 가끔 이 논문을 발견했지만 게재된 곳이 엉터리인걸 알고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한 미숙한 수학과 대학원생이 이 논문을 덥썩 물었다.
초짜 대학원생은 좋은 논문을 고르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아무런 편견 없이 자기가 고른 논문을 진지하게 읽었지만, 해석해낼 실력이 없었다. 그는 한참을 낑낑대다가 논문을 잠시 책상에 두고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그 사이에 커피를 마시던 지도교수가 들어왔고, 논문을 발견했다.
수학계에 나름 명망있는 교수는, 논문 표지에 나온 가짜 학술지 이름에서 피식 웃었지만, 제자가 왜 이런걸 골랐을지 관심 분야가 궁금해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대충 훑어보았다. 잠시 뒤에 잔을 내려놓고 다시 읽었고, 커피가 완전히 식은 다음에야 벌떡 일어났다. “이건 말도 안돼!” 마침 밥을 먹고 돌아온 대학원생을 밀치고, 교수는 사과도 없이 뛰쳐나갔다. 곧장 자기 방으로 가서, 동료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기 괴물 같은 논문이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공지능의 논문은 수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어째서 이런 자명한 논리를 아무도 몰랐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군데군데 생략된 증명이 많다는 사실이죠. 하지만 너무 직관적이라 믿을 수밖에 없어요.”
“이걸 쓴 인공지능에게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줘야 합니다!”
“지금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장 해야할 게 보이지 않아요?”
수학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수학계를 한차원 진화시킬 새로운 이론이 발견되었도다, 수학의 황금기가 찾아왔다!
인공지능의 논문이 말하는 바는 중요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해석하고 보완하고 개량하고 응용하고… 매주 새롭고 혁신적인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살짝 문제가 있긴 했다. 겉보기에 쉬워보였던 증명이 끔찍하게 어려워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틀린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 논문을 기초로 한 모든 학문이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증명이 되지는 않았어도 현실에 대입해보면 틀린 점 없이 잘 맞았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증명해 내겠지, 라고 생각했다.
수학계의 발전은 빠르게 물리학계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무려 중력을 제어할만한 이론이 발견된 것이다. 이론이 맞다면, 로켓을 뛰어넘어 빛의 속도까지 쉽게 가속해내는, 우리가 UFO라고 부르던 수준의 우주선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나라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 이론을 응용한 반중력 장치가 핵무기보다 쉽고 강력한 무기가 될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빠르게 신무기의 연구에 돌입했다.
“한 가지 결함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중력 제어 이론의 기초적인 부분의 증명이 덜 됐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될게 있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릅니다.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물며 이런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는데…”
“부작용이 있다고 확실한건 아니지 않소?”
“그렇습니다.”
“그럼 계속 진행하시오. 다른 나라는 그런걸 따지지 않고 만들어낼게 틀림없으니까.”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실험 중 불행한 사고였다. 사실 인공지능의 논문은 결국 틀린 것이었고, 이건 거시적인 부분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부분이었으며, 학자들은 제 때에 알아내지 못했다. 반중력 장치는 닿은 물질의 중력을 연쇄적으로 제거했다. 그게 지구였고, 순식간에 지구의 중력은 0이 되었으며, 중력을 잃자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지구는 곧 가루가 되었고, 우주로 흩어져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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