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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우리나라는 절대빈곤률과 실업률이 30프로를 넘는 나라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루하루 끼니를 먹고 자신의 직업을 가질 인권이 부족한 나라였습니다
그러한 나라에서 쿠테타를 이르킨것이 박정희입니다
그당시 국민들은 젊은 군인이였던 박정희에게 나라의 미래를 맏겼던 것입니다
그당시 국민들은 민주주의보다
하루하루 끼니를 먹고 자신의 직업을 가질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는것을 우선시했습니다
저는 그당시 절대빈곤률과 실업률이30프로가 넘는 가난한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독재정권아래서
경제발전을 선택했던 국민들과 정부의 선택에 공감합니다
자신들이 누릴수 있는 민주주의의 자유보다 하루하루 끼니를 먹고 자신의 직업을 가질 인권과 후대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신념을위해서 말이죠
그러한 국민들의 선택으로 박정희는 대통령선거에서 모두승리하고 유신헌법도 국민들의90프로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박정희정권은 취임하고 경제발전을 이루죠
여기서
프레이저보고서라는 한쪽에 편향된 동영상을 반박하자면
http://www.youtube.com/watch?v=nYTHF4HuRt8
http://blog.naver.com/kuksism?Redirect=Log&logNo=70153606817
이두가지에 압축되어 있을것입니다
미국의 관점에서만 한국을 평가하고 한국의 가능성을 평가한 프레이저 보고서를 또한 각색하고 짜집기한것에 불과하죠
또한 박정희정권에 수출전략이 토끼 돼지털에 불과했다??/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선동영상에 넘어가지는 않겠죠 ,,,,
또한
동영상에서는 박정희의 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형편없어 미국이 원조를 빌미로 압박을 넣었다고 나오는데
그것은 잘못된 선동입니다.
무엇때문에 전환하였는가: "유럽이 전후 경제를 회복하면서 금 보유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은 달러 위기(dollar shortage)에 봉착하게 되었다" (한국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수정과정에서 정부-기업 관계에 관한 연구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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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960년도 미국이 겪었던 Dollar shortage 관련 논문
출처: Review of Social Economy, Volume 19, Issues 2, 1961
"President ordered all federal agencies to "cut their foreign spending to the bone" in order to stem the increasing deficit in the United States balance of payments with its consequent drain on the nation's gold reser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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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미국은 우리나라 원조방식을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서독에게 미군주둔 비용 부담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이르고
우리나라는 어쩔수 없이 기존 방식의 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장면정권의 정책을 똑같이 베꼈다는 말도 사실과 다릅니다
또한 프레이저 보고서에는
와 같이 대한민국 정부를 칭찬하는 내용도 들어있었으나 의도적으로
동영상은 배제했죠
장면정부에서 마련됐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1차상품(농산물/천연자원)을 수출하여 벌어들인 돈을 공업화에 쓰자는 전략이었는데, 박정희 정부는 이를 뒤엎고 철저히 공업화전략에 집중하여 수출지향적 발전을 유도합니다. 장면정부와는 성격이 다릅니다다.
박정희 정부가 다른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수입대체화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이차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개도국/후진국들이 수입으로 인한 국부유출과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해서 수입대체화, 즉 수입해서 쓰는 물건을 대신 만들어서 내수를 확장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결과론적으로는 상당히 부정적인 경제개발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박정희 정부는 수출지향적 개발전략을 선택하는데, 이는 동아시아 신흥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는 당시 환경과도 잘 맞물립니다.
1. 일단 선진국들이 후진국의 물건을 수입하는 것에 매우 관대한 자세를 보였는데, 당시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이념갈등이 매우 극심했던 탓에 후진국을 '그대로 냅둘수만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낙후될 경우 내부 불만이 급증하게 되고 이러한 정치적 불안이 공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선진국들 사이에 공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후진국의 수출상품을 "사줘야하는" 처지였다. 당시 GATT 체제는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불균형 발전을 인정하였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도래하기 전까지의 무역 환경이었다는 것입니다
2. 또한 전쟁이 이제 막 끝나고 유럽과 미국이 급속도로 경제발전을 하면서 세계 경제가 대호황이었다는 점도 큰 작용을 했다. 특히 미국이 최강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세계 경제발전을 견인해 나갔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원조와 전후복구 비용 충당을 통해 자유진영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동아시아 신흥국가들은 수출전략을 선택하여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린 반면, 수입대체화를 선택한 중남미 국가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고, 결과론 적으로는 무역적자를 완화하는 것도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박정희 경제발전에 있어서 빼놓을수 없는것이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새마을운동 산임녹화 산업입니다
특히 산업화를 가속시킨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의 판단이 아니었다면 10년후로 미뤄졌을것입니다
야당과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로 말이죠
로 말이죠 ,,,
당시 1960년대 한국정부는 5000만불조차 없던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또한 그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경제인인 11인도
공장몇개 가진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사회기반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여러 외국에서 차관을 얻어와서 선택과 집중을 한것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과 공업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죠
특히 중공업산업은
박정희의 유신독재기간에 발전시킨것으로
독재를 통해서 단기간에 중공업산업을 육성시켰죠
이렇게 중공업산업을 육성시킨 박정희는 우리나라의 기반산업을 닦은 인물인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강조하자면
그당시 국민들은 민주주의보다 목고살고 일하는 인권의 향상을 더 요구했고
그에 따른 독재정권을 "선택"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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