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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갔다가 돌아와서 바로 15,16회를 몰아보고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가 이제야 회복했다...
16회인데 아직까지 고딩인 것도 놀랍고, 김정환 봉쇄 상태가 쿠바 봉쇄보다 오래 가는 것 같아 놀라기도 했지만,
신나게 욕하는 와중에도 욕을 할 수가 없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사람과 사람 관계에 대한 작감의 고집이었어.
럽라만 보면 욕부터 안할 수가 없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15년 가까운 우정을 나누는 열아홉살 아이들로 대입해 보면,
지금 브금으로 깔리는 '슬픈인연'을 선택한 워노의 변태스러움에 치를 떨면서 놀라게 되더라.
그래서 개떡 감정선 따라가기보다 김정환과 최택, 최택과 김정환 이 둘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싶었어.
개떡 감정선 따라가기 리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지만, 내가 판단한 정환이의 마음은 이렇더라.
11,12회에서 혼란스럽고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갈팡질팡했다면(그래서 덕선이 대시에 그만 콘서트 간다고 약속해버림)
14,15회를 거치는 동안 내가 덕선이를 좋아하는 감정과 그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별개로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16회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한 것 같았어.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와는 별개로.
정환은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이 우정을 깨뜨리면서 사랑을 얻을 수가 없어.
덕선의 마음을 얻는다 해도, 아무것도 모를 덕선은 물론이거니와 택이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결코 행복할 수 없을 테니까.
이대로 직진하여 덕선을 얻는 건, 결국 덕선을 잃는 것과 같아. 친구로도 남을 수 없을 것 같아.
시청자들이 복장 터질 만큼 정환은 길고 오랜 시간 고민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 이 결론에 이르렀어.
정환에게 최상의 결론은, 아무런 변화 없이 다섯이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우정을 지키는 거야.
그런데 택이의 마음이 움직인 이상, 그건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 그럼 정환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차상의 결론은, 택이와 덕선이 잘 되어서 그 둘을 축복해줄 수 있는 것. 그럼 나만 괴로우면 그만이니까.
차악의 결론은, 택이가 고백했지만 덕선이가 거절하는 경우. 그럼 택이의 아픔을 지켜봐야 하지만, 그건 정환의 컨트롤 범위 밖의 일.
그렇지만 적어도, '자신'이 택이에게 아픔을 주는 일만은 피할 수 있어.
최악의 결론은, 덕선의 마음이 자신에게 향해서 택이도 덕선이도 자신도 아프게 되는 것.
그럴 경우는, 정환은 덕선의 손을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게 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정환은, 덕선을 그 자리에 놓아두기로 한 것 같아. 잠시 상심해도, 선우 때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정환은 핑크 셔츠 오해를 풀 타이밍을 놓여 버려서이기도 하지만, 일부러라도 풀지 않는 것 같았어.
풀려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오해인데도 굳이 나서지 않아. 덕선이가 자신을 미워하는 건 견딜 수 있어. 괜찮아.
금세 다시, 돌아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정환에게 가장 무서웠던 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었던 것 같아.
아파도, 고통스러워도, 힘들어도, 그건 모두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지만
타인의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야.
택의 세상은 딱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지. 바둑과 쌍문동 친구들.
택이 그 세상을 셋으로 쪼개기 시작했을 때 - 바둑과 쌍문동 친구들과 덕선, 사실 택의 세상은 정환의 그것처럼
균열이 시작되었던 것인지도 몰라.
덕선을 향한 정환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정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정환의 세계가 흔들렸던 것처럼,
덕선을 향한 택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택에게 전부였던 세상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택은 승부사야. 택이 덕선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 택은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라.
택이 "내가 고백하면 덕선이가 믿어줄까?" 고민했던 것은, 덕선이 자신을 남자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택에게 그 사실은 큰 장애물이 될 수 없었던 것 같아. 거절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택이 덕선에게 '고백'을 하기로 했다는 건 '나를 남자로 봐달라'는 선언과 같은 의미였던 것 같거든.
덕선이 자신을 남자로 보기 시작한다면, 그래만 준다면, 승부사 최택은 그 마음을 얻을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지금까지 덕선과 자신의 관계도 충분히 소중하고 만족스러운 것이었지만, 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해.
택이 고백 시점을 우승 후로 정한 것은 여러 가지로 택에게 중요한 의미였을 거야.
어려운 경기지만 지지 않을 거야. 덕선 역시 마찬가지야. 쉽지는 않겠지만, 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 택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정환의 마음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갈 법해.
택에게 이 경기는, 덕선과 자신의 경기였는데, 링 위로 불이 켜지고 나니, 정환이 올라와 있는 게 보이는 거야.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김정환이.
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할 결심을 하지. 그 후에 쭉, 택의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강조한 에피소드를 배치한 것을 보면,
택이 왜 처음에는 고백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택에게 정환은, 이제 친구이자 함께 링 위에서 덕선을 두고 싸우는 '경쟁자'인 거야.
바둑의 신 최택에게, 승부란 물러서고 양보하고 하는 것이 아니야. 같은 조건이라면, 그건 붙어봐야 아는 경기야.
택이가 정환을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는 게 아니라, 택과 정환은 기질이 다르다는 얘기.
정환은, 자신의 마음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자신의 세계를 깨뜨릴 위험 요인이라고 판단한 반면,
택에게는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새로 이루고자 하는 세계를 이룰 가장 필요한 요인이야.
택은 자신도, 정환도 믿고 있는 것 같았어. 원래 승부의 세계란, 바둑에서는 특히, 깨끗한 패배 후에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아.
택은 믿었을 거야.
정환이 패배한다면, 정환이 자신과 덕선을 응원해 주리라는 것을.
자신이 패배한다면, 자신이 덕선과 정환을 응원해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평생을 쌓아온 우정을 해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택은 고백을 할 결심을 했던 것 같아.
그러나 택은, 정환의 지갑 속 사진을 본 후 무너지고 말지.
정환이 택의 수첩 속 사진을 보았을 때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접는 쪽으로 더욱 더 마음을 굳히게 됐다면,
택이 정환의 지갑 속 사진을 보았을 때, 택은 이 승부가 자신이 생각하던 그런 승부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어 버린 것.
정환의 마음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어. 갑자기 정환의 집에서 갈비를 먹었을 때가 생각나.
아무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끝끝내 덕선의 소원을 들어주려 하던 정환이. 그게 정환의 마음이었음을.
친구들 사이에서 공개 고백을 했던 때가 뒤이어 생각났을 거야.
그 고백을 들은 정환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택이 깨달은 순간, 택은 이 승부가 출발부터 공정하지 않음을 깨달아.
정환은, 고백을 하겠다고 하는 자신의 모든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의 마음을 감추었어.
갈비를 먹었을 때 명백히 보였던 그 마음이, 그때는 그런 마음인 줄 몰랐지만, 그런 표현이 사라졌어.
택은, 정환이 링 위에 올라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링 위에 서겠다고 선언한 순간 링 아래로 내려간 것을 알게 된 것 같아.
만약 정환이 물러나지 않았다면, 이건 공정한 승부야. 승부사 최택이 최선을 다 해 임할 수 있는.
그런데 바둑판을 두고 앉았는데, 상대 선수가 없어.
상대 선수는, 나는 너를 이기고 싶지 않다며 기권했어. 나는 너를 이기고 싶지 않다, 에 담긴 그 마음의 무게.
세상에서 승부사 최택이 거둘 수 있는 가장 허무한 승리는 기권승이 아닐까.
이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어. 택이 새로 새우려고 하는 세상은, 출발부터 가능하지 않아.
택이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얻은 사랑이 정환에게 아픔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정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얻은 사랑이 택에게 아픔이 될 수밖에 없게 된
이 기막힌 인생의 아이러니.
작감이 선택한 16회 소제목 '인생이란 아이러니'. 그리고 엔딩 브금 '슬픈 인연'.
덕선의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열아홉살 아이들은, 지금이 힘들어도 나중에 나이들면 이때가 제일 좋았다 싶을 거다, 라고.
엔딩에 깔리는 브금의 가사.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열아홉살의 사랑은, 열아홉살 짜리들의 것일 수밖에 없어.
열아홉살의 김정환과 최택은, 한 여자아이를 무척 사랑했더랬지.
그건 그 아이의 손을 결코 잡을 수 없어도 멈출 수 없어서, 차라리 계속 아플 수밖에 없는 접히지 않는 마음이었고,
그건 그 아이가 없으면 죽을 것 같던 마음이었지.
그건 열아홉살에만 가능했던 뜨거운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어.
그 시절, 열아홉살에만 가능했던, 마음.
세월이 흘러 같은 사람과 또 사랑에 빠진다 해도, 그 사랑의 색과 의미는 열아홉살의 그것과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어.
열아홉살에만 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세월이 우리를 스쳐지나간 것을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일까.
다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 말하는 게 아냐.
다만 그건, 열아홉살 때의 그 사랑과는 다른 사랑일 것이라는 것.
열아홉살에 시작된 사랑은, 어쩌면 그래서 열아홉살에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오늘도 잠 못이루고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모르는 열아홉살의 청춘, 정환이와 택이에게
언젠가는 다 지나가지만,
지금 아픈 것이 어쩌면 너희들 청춘의, 청춘만의 특권일지도 모르니,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출처 | http://gall.dcinside.com/reply1988/402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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