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대배치를 받고 이제 겨우 조금씩 군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해안생활이 끝나고 내륙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생활 패턴도 근무 환경도 새롭게 바뀌다 보니 겨우 익숙해졌던 군생활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라고 해봤자 나같은 일이등병들은 해야할 잔업들이 산더미였기에 휴일다운 휴일을 즐기기
어려운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평일보단 나은 편이었다. 내무실 청소를 하던 중 소대장이 들어와 대민지원을 가야한다며
지원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대민지원을 가본적이 없어 정확히 무슨일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사회에 있을때 스치듯 보았던 뉴스에서의 장면장면과
고달팠던 이등병 시절을 보내던 나의 상상력이 더해져 무슨일을 하던 굉장히 힘들것 같은 이미지로 내 머리속에서 그려졌다.
비가 주룩주룩내리고 강물이 범람하며 수재민이 발생하고 온갖 가재도구들이 떠다니며 흙투성이가 된 내가 넘실거리는 강물을
주먹으로 막고있는 그런 네덜란드의 소년같은 나의 모습이 머리속에 떠올랐고 절대로 가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맴돌았지만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내 몸뚱아리는 이등병이라는 나의 본분에 충실했다. 꼭 가고싶다는 표정과 함께 관등성명을 대며 앞으로 나선
나의 모습에 내 스스로 그래 자연스러웠어 라고 위로하며 부디 내 앞에서 순서가 끊기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마지막 커트라인에 걸린 나는 안도감과 내 밑으로 세명이나 후임이 들어왔다는 하찮은 뿌듯함에 고참들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후임들은 떠나갔지만 그렇다고 쉴 수 있는건 아니었다. 얼마남지 않은 유격훈련 준비에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할일이 많았고 자리를 비운 후임들의 몫까지 일해야 했다. 게다가 처음가는 유격이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고 그렇게 헤매는 모습이 고참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는지 고참들에게 하루종일 이런 성관계를 맺을 녀석. 이런 몸이 불편한
아이. 일을 참 남성의 생식기 같이 하는구나와 같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을 들어야했다. 그래도 나가서 노가다하는거 보단 이게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작업이 끝나고 고참은 풀죽어 있는 나의 모습이 그래도 미안했는지 왠일로 PX를 데리고 갔고 소시지를
돌려먹는 호사까지 누리게 되었다. 소시지 하나에 오늘 하루 담아두었던 분노,미움,고통,증오는 눈녹듯 사라졌고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등병이 되었다.
해가 저물어 갈때 쯤 대민지원을 갔던 인원들이 돌아왔고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무슨일을 하고 온건지 궁금해 졌지만
그시절은 내무실에서 이등병끼리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든 시절이었기에 호기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저녁 점호 전 청소시간이
되자 후임들과 나는 걸레를 빨기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이등병들끼리의 사교활동이 가능한 시간이 바로 이 걸레
빠는 시간이었고 나는 오늘 PX에서 소시지를 먹었다는 6~8세의 미취학 아동이나 할 만한 자랑을 할 생각에 들떠 가벼운 발걸음으로
화장실을 향했다. 빨래터에 둘러앉은 아낙네들 처럼 걸레를 빨며 오늘하루 있었던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난 오늘 PX에서
소시지를 먹었노라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외로 반응은 시큰둥 했다. 그리고 후임들이 해준 대민지원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그들이 향한 곳은 수재의 현장도 강물이 넘쳐흐르는 강둑도 아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시외의 어느 한 농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이야 말로 군대에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지상낙원 이었다고 한다. 힘든 일도 없이 그냥 꽃이 든 상자를 몇개 나를뿐이었고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친절하고 점심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농장주인아저씨의 딸들도 있었다고 한다. 꽃같은 아가씨들..
이미 후임들의 얘기소리는 귓전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 머리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편한 일거리+사제음식+꽃같은 아가씨들. 난 하루종일 중노동+PX소시지+잣같은 고참들. 허탈함과 분노로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써 쿨하게 좋았겠네라고 말하며 더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걸레만 쥐어짤 뿐이었다. 후임들을 먼저 내무실로 돌려보내고
나도 울고 걸레도 울고 소시지도 울었다.
유격을 다녀 온 후 주말이었다. 유격에서 사용한 장비들을 정비하고 있는데 다시 소대장이 내무실로 찾아왔다. 이번에도 대민지원을
간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앞으로 나섰고 결국 선택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트럭에 몸을 실었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왠 목장이었다. 그곳엔 향긋한 꽃향기도 꽃같은 아가씨들도 없었다.
오로지 소들 뿐이었다. 대관령에나 있을법한 목장이 경기도에도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난 하루종일 똥을 치웠다.. 사방이 소똥냄새였고 그때 알게 되었다. 소들은 나보다 똥을 자주싸고 많이 싼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