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만한 공포영화는 별 감흥도 없이 보는 성격이라 가끔 오유 베스트에 올라오는 공포 글들을 보면 항상 피식거리곤 하는 21살 청년입니다.
얼마 전 베스트에서 '나홀로 숨바꼭질'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심심하고 기분도 꿀꿀하던 차라서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직접 시도한 '나홀로 숨바꼭질'의 후기이며, 제 이름을 걸고 정말 단 한 마디의 거짓말조차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맹세합니다.
나홀로 술래잡기 원문 :
http://todayhumor.paran.com/board/view.php?table=panic&no=3371&page=1&keyfield=&keyword=&sb= ====
[새벽 2시 30분, 술래잡기를 위한 준비]
나홀로 술래잡기를 실행할 기회가 온 것은 부모님들께서 모두 출장, 연수를 가셔서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게 된 이번주 월요일이었습니다.
담이 세다고는 하지만 역시 혼자서 이런 짓을 하려니 왠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이 자꾸 들어서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제가 문자를 보내면 바로 저희 집으로 와달라 전해두었습니다. 그 친구도 공포물이라면 이력이 난 녀석이라 역시 한참을 낄낄거리더군요.
저도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쨌든 꿋꿋하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원본 글에 써있는 대로 손바닥 크기만한 사람 모양 헝겊 인형의 배를 갈라 솜 대신 쌀을 채워두고 제 손톱을 잘라서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평 남짓한 다용도실에 소금물을 가져다 두고 욕실의 세숫대야에 물을 받았습니다. 거울에 인형을 붉은 실로 둘둘 감고 있는
제 모습이 꽤나 으스스하게 비쳐서 인증에 쓰려고 사진을 찍었는데 핸드폰을 쓸 수 없어서(이유는 후기 끝에 나옵니다) 올리질 못하네요..
마지막으로 만일의 경우 친구가 바로 집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현관문 잠금 장치를 모두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새벽 3시, 술래잡기 시작]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나고 인형에게 이름을 정해줄 차례. (여기서 디카로 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그건 아예 제대로 찍히질 않아서..)
까만색 인형이어서 '밥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술래는 ㅇㅇ(제 이름), 술래는 ㅇㅇ, 술래는 ㅇㅇ" 라고 말하며 세숫대야에 넣었습니다.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배란다 밖에서 드는 불빛도 차단하기 위해 커튼까지 친뒤 어둠 속에서 TV를 켜는데 오랜만에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눈을 감고 열을 센 뒤,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식칼을 들고 욕실로 향했습니다. 핸드폰이 손에 있으니 왠지 안심이 되어서
여기까지는 별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벌써 푹 젖어있는 인형을 칼로 찌르며 "밥샵 찾았다~ 이제 밥샵이 술래~"라고 말하곤
칼을 내려놓고 다용도실로 가서 문을 닫았습니다. 준비해둔 소금물을 문전에 두고 김치냉장고 위에 앉아 핸드폰을 보니 3시 5분이더군요.
그렇게 55분이 지나고.. 후기들을 보면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해서 아침까지 숨어있었다고 하는데 제겐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게 뭐야.. 역시 뻥이었네ㅋ'라고 생각하며 슬슬 이 지루한 술래잡기를 끝내려고 김치냉장고에서 내려와 소금물을 손에 드는 순간..
그르륵-
제 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을 긁는 듯한 소리.. 너무 놀라서 소금물을 반 이상 바닥에 엎지르고 말았는데 오컬트에 관심이 없어서
그때는 그 소금물이 갖는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모두 엎질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머리 속이 새하얘져서 다시 김치냉장고
위로 뛰어올라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사시나무 떨듯 떨었습니다. 지금껏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감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문 긁는 듯한 소리는 그 한번 뿐이었지만 이상한 현상은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집으로 전화가 몇차례
걸려왔는데 창피하지만 너무 무섭기도 했고 새벽 4시에 집으로 전화를 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없다고 생각해서 받으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전부 자세히 묘사하고 싶어서 후기를 쓰기 시작한건데 도저히 못하겠네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려서..
처음엔 친구가 장난치는거라 생각했는데 거의 열번이 넘게 오니까 아무 생각도 안나고 이런 짓거리를 시작한 것이 후회되기만 하더군요..
전화벨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무렵, 이건 진짜 안되겠다 싶어서 미리 약속해두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위해 핸드폰을 여는 순간에
놀랍게도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며 받아보니..
본인 "여보세요?"
친구 "피요 그거 끝났으면 우리 집에 좀 와주라.. 현관 비밀번호 xxxx."
본인 "뭐? 뭔소리야."
친구 "집으로 전화 니가 한거지?"
본인 "전화? 언제?"
(여기서부터 전화내용 녹음)
친구 "...까 니가 전화한거 아니야?"
본인 "난 우리집에 전화한게 너인 줄 알았는데?"
친구 "XX아.. XX아 장난치지 말고.. 나 진짜로 지금.."
본인 "니네집에 내가 이 시간에 어떻게 전화를 해."
친구 "지금 아무도 없어. 아 니가 한번 전화해볼래? 집으로?"
본인 "부모님 안계셔?"
친구 "어. 누나 분명히 있는데 전화 계속 울려 미친 나 지금 꿈꾸는거같아."
본인 "뭐야 술래잡기 해 너 지금?"
친구 "어.. 아 난 @#%$#$^(뭐라고 하는지 잘..) 전화 몇번 와서 받을까 하다가."
본인 "야 절대 받지마. 나 아니었어. 나도 계속 전화왔어."
친구 "아 존나 찌질해 우리. 어쩌지? 거북이(친구 인형) 존나 무서워.."
그렇게 10분쯤 통화하다가 결국 제가 먼저 나가서 친구에게 가기로 했습니다.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짜내서 남은 소금물을 입에 물고
문을 열었습니다. 어두컴컴한 집안을 미미한 TV 불빛과 홈쇼핑 쇼호스트 목소리가 가득 채우고 있더군요. 그 때가 4시 50분경이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해서 일단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전기 스위치를 모두 켜서 집안을 밝게 하면서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새벽 5시, 술래잡기 종료]
환하게 밝힌 화장실에서 본 인형과 그 앞에 놓인 식칼은 정말 오싹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더군요..
다급히 입에 든 소금물을 인형에 뱉고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하고 소리쳤습니다. 마치 어깨에 뭔가 올려놨던 것처럼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더군요. 뻣뻣하던 목이 부드러워지고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고작 두시간 남짓이었지만 평생 느껴본적 없는 공포를
맛본 저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담배를 꺼내물었습니다. 두 개피를 연달아 필터까지 태우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10분쯤 공포감과 승리감에 도취된 상태로 오유에 후기를 쓰고있던 저는 뒤늦게 친구도 저와 같은 상황에 쳐해있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가서 잠금장치를... 풀었습니다...
그날 저는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고 누나를 깨워 화를 내고 있던 친구를 끌고나와 놀이터에서 함께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다음 날에 들었지만 친구의 누나 말로는, 나중에 동생이 소리를 질러서 깨긴 했는데 그 전에 전화벨 소리같은건 전혀 못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 핸드폰은 다음날 아침부터, 친구의 핸드폰은 오늘 아침부터 켜지질 않았습니다. AS 맡겨서 사진과 음성녹음은 꼭 복구해달라
부탁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혹시라도 호기심에 나홀로 술래잡기를 시도해보려 하는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말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