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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337
    작성자 : DKM고냥이
    추천 : 6
    조회수 : 2290
    IP : 210.206.***.19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05/04/15 02:25:13
    http://todayhumor.com/?readers_337 모바일
    판타지 소설 '마검'
     6권 완결 나왔구요.

     김형섭, 이도경 작가님 합작입니다.
     좀 엉뚱하게 재밌는 면도 있고, 소설 속의 영웅들의 명장면도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가장 많은 명장면이 나온 '2권' 몇부분을 올리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의 스토리 진행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당신......!"
     에오페는 말을 멈추고 루퍼스를 바라보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루퍼스의 눈빛은 냉랭함만을 담은 채 에오페를 마주보고 있었다. 에오페는 담담한 어조로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거군요."
     "아아......"
     "알겠어요. 그럼 더 이상 부탁하지는 않죠. 잘 가요. 배웅은 하지 않겠어요." 
     에오페는 루퍼스에게 내뱉듯이 말한 뒤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루퍼스는 잠시 에오페의 등을 바라본 뒤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걸어갔다. 그때, 처소로 가는 거리 옆 건물벽 아래 세디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꼬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
     "마침 잘 됐군. 일찍 자두도록 해. 아침에 떠날 테니까."
     세디는 루퍼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둠을 한꺼풀 입은 세디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당신도 결국 다를 것이 없어."
     "응? 뭐라고?"
     "나도 그다지 다른 종류는 아니니까, 댁한테 뭐라고 할 처지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뭘 말하고 싶은 거냐, 꼬마?" 
     "오빌리안에서 지낼 때 많이 봐왔지. 힘 센 인간, 돈 많은 인간. 남보다 뭐라도 좀 더 가진 인간들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하지. 힘으로 남이 가진 것을 빼앗고, 오로지 자신의 배만을 불리고 자기만 편하기를 바래. 다른 사람이 배고파 울던 말던, 아파서 신음하던 말던 전혀 신경 쓰지 않지. 용사를 자처한다는 모험가들이 말이야. 오빌리안에서조차도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야."
     "......."
     "하지만 말이야...... 난 당신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었어. 누가나 탐내는 힘을 갖고서도 그 힘을 버리려 하는 당신이라면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어. 다른 사람을 다 죽여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도, 그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서도 참고 혼자 떠나려 하는 당신이라면...... 그런 당신이라면 그 힘을 다른 이를 위해서도 쓸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어......"
     "착각은 자유다. 꼬마."
     "나는 내게 그런 생각이 들게 해준 당신이 좋았어. 깡패 성기사."
     "......"
     세디는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루퍼스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이제 나는 당신을 따라가지 않겠어."
     루퍼스는 세디의 말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세디는 담담한 표정으로 루퍼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세디의 눈에는 평소의 불만 어린 감정도, 장난기 어린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세디의 눈동자에는 호수의 수면처럼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루퍼스는 한참동안 그런 세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좋을 대로 해라."


    ~~~~~~~~~~~~~~~~~~~~~~~~~~~~~~~~~~~~~~~~~~~~~~~~~~~~~~~~~~~~~~~~~~~~~~~~~~~~~~~~~~~~~~~~~~~~~~~~~~~~


     "그러나 저 사람에게 그런 것을 부탁해도 될까?"
     "예?"
     "조금 전 하는 말을 들오보면 마치 쫓기는 사람 같더구나. 게다가 이 근방에는 모험가가 다닐 만한 일도 없다. 데몬이 나타난 것도 최근의 일이고. 본디 그 흔한 고블린조차 볼 수 없는 곳이지. 그런데 이곳에 갑자기 그런 실력을 지닌 이가 나타나고, 데몬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
     "하지만......"
     "그보다, 차라리 케이룬 신전에 부탁해 보는 것은 어떻겠나?"
     "케이룬 신전요?"
     "그래, 케이룬 신전의 성기사단 분들은 정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마스터 급의 실력을 지니셨다더구나. 게다가 사제 분들 역시 모두 만만찮은 실력을 지닌 전사라고도 하고. 그분들이라면 훨씬 쉽게 일을 처리해 주지 않을까?"
     "글쎄요......"
     "그건 아마 어려울걸!"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세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은빛 갑옷을 입은 이가 건들거리는 태도로 서 있었다. 루퍼스였다.
     "기, 기사님."
     "당신......!" 
     "엿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잠이 안 와서 산책 좀 하려는데 말소리가 들리더라고."
     루퍼스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촌장은 조금 전 루퍼스의 뒷담화를 한 것이 걸려 루퍼스를 쳐다보지 못했다. 에오페는 멋쩍어하는 촌장 대신 루퍼스에게 물었다.
     "무슨 의미죠?"
     "케이룬 성기사단이 이곳을 도와 얻을 것이 없다는 뜻이지."
     "얻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종교 국가예요. 그들의 교리는 세계의 수호자로서의 의무를 중시하는데, 이득이 없다고 악마들에게 위협받는 이들을 외면한다는 건가요?"
     "누가 알아주지?"
     "예?"
     "당신들이 악마에게 위협받는다는 것을 누가 알아주냐고."
     에오페는 루퍼스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루퍼스는 엷은 비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케이룬 성기사단은 그렇게 순진한 사람들이 아냐. 그들의 이무는 케이룬 교단이 교리를 지킨다는 것을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 그래서 케이룬 교단이 가진 세력권을 보다 뚜렷이 하는 거야. 교리고 뭐고 그런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엇갈린 막대나 숭배하는 싸구려 광신도 같은 이들과는 다르단 말이야"
     "무슨......"
     "실제 케이룬 교단에 일년 동안 도움을 요청해 오는 성주나 마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 오우거 같은 몬스터의 퇴치. 실제 이 마을처럼 레서 데몬 같은 악마에게 위협받는 이들의 구원 요청. 그리고 사람들을 속이거나 힘으로 위협받는 이들의 구원 요청. 그리고 사람들을 속이거나 힘으로 위협하는 마법사나 전사의 고발. 그러나 개중 실질적으로 케이룬 교단이 처리해 주는 일은 오직 그만한 보답을 얻을 수 있는 건들만이야. 물질적으로든, 때로는 명예로서든."
     "그렇다면 괜찮지 않나요? 레서 데몬 같은 이들 뿐만 아니라 둠 가드도 있어요. 둠 가드 같은 강력한 악마를 쓰러뜨렸다면 충분히 큰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무대가 준비되어 있는 곳이 아니지."
     루퍼스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곳에서 둠 가드를 잡는다 해도 케이룬 교단에 그다지 큰 명예는 따라오지 않아. 오빌리안이나, 또는 트렌부르그 같은 대도시를 위협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런 작은 마을에서의 사건을 해결한다 하더라도, 명성을 얻으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또 돈이 들게 되어 있어.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이곳에 출몰한 데몬들의 존재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안기었을 때 해치운다면 케이룬 교단에는 훨씬 쉽게 '명예'를 얻을 수 있겠지.
     루퍼스의 말을 이해한 에오페는 안색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촌장이 당혹감에 젖은 목소리로 루퍼스에게 말했다.
     "다,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아시오 ? 케이룬 교단을 음해하려는 중상모략 아니오? 케이룬 교단은 예로부터 세상을 수호하는 성기사 사단이오. 당신 말 같은 파렴치한 짓을 할 리 없소!"
     "저기...... 이봐, 영감님. 내가 입고 있는 갑옷이 뭔지 알아?"
     루퍼스는 엷은 비웃음을 띤 채 말했다. 촌장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루퍼스와 에오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에오페는 창백한 안색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루퍼스는 비웃음과 함께 내뱉듯 말했다.
     "케이룬 교단의 신성은 갑옷. 댁이 그토록 찬양하는 케이룬 성기사 사단의 제복이야."

    ~~~~~~~~~~~~~~~~~~~~~~~~~~~~~~~~~~~~~~~~~~~~~~~~~~~~~~~~~~~~~~~~~~~~~~~~~~~~~~~~~~~~~~~~~~~~~~~~~~~~

     

     "레서 데몬? 둠 가드? 로스킬 마을이라니, 그 마을 근처에 데몬게이트라도 열렸다는 거요 ? 레서 데몬이라면 흑마법사가 소환해 냈을 수도 있지만, 둠 가드는 데몬 게이트 급의 주력 없이는 현신 시키기 어려운 것인데......"
     에오페는 숨을 들이켰다. 케이룬 성기사단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루퍼스의 일을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생명의 은인인 그를 팔기란 에오페로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디는 자신의 어깨에 닿아 있는 에오페의 손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미리 준비했던 대답이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그건 제가 말할게요. 저랑 함께 다니던 깡패 성기...... 그러니까 데스나이트는 로스킬 마을 주변에 있는 침묵의 숲으로 들어가 데몬들을 소환하기 시작했어요. 레서 데몬이나 둠 가드. 그 모든 이들을 그 데스나이트가 자신의 마검으로 소환하는 것을 봤어요."

    ~~~~~~~~~~~~~~~~~~~~~~~~~~~~~~~~~~~~~~~~~~~~~~~~~~~~~~~~~~~~~~~~~~~~~~~~~~~~~~~~~~~~~~~~~~~~~~~~~~~~

     "주군......이라고?"
     ┌예, 주군이시여. 어째서, 어째서 저희를 죽이려 하십니까? 그것도...... 우리를 불러내신 당신께서 말입니다.┘
     "......"
     루퍼스는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무슨 헛소리야?"
     ┌당신꼐서 저희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당신을 섬기고자 마계로부터 달려왔습니다! 새로 탄생하신 데스나이트를 위해, 마계에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왔습니다! 단지 당신의 부름에 응답코자 우리는 차원을 넘어 당신께로 달려온 것입니다. 이 숲에서 우리가 벌인 일은 모두 당신을 위한 터전을 닦기 위해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우리를 왜 당신께서 멸하시는 겁니까 주군이시여!┘

     "야, 고철. 이 덜 떨어진 자식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
     "내가 이들을 불렀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아크 데몬의...... 말은 사실이다 깡패 성기사.┘
     "뭐?"
      
     "무슨 소리야? 사실이라니? 내가, 내가 언제 저놈들을 불렀다는 거야?"
     ┌네가 부른거다, 깡패 성기사.┘
     "야, 장난하지 마 !"

     "이 자식을 당장 죽여버리겠어. 목숨이 아까우니 별 해괴한 소리를 다 하는군."
     ┌......┘
     바카라스는 침통한 얼굴로 루퍼스를 바라보았다. 루퍼스는 서드윙을 치켜들고 바카라스를 노려보았다. 칼자루를 쥔 손에 무거운 히밍 주어졌다. 바카라스는 포기한 듯 두 눈을 내리감았다. 루퍼스는 이를 악물고 바카라스를 향해 서드윙을 내리쳤다. 순간, 서드윙이 허공에 못 박힌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뭐야, 고철 ? 당장 풀지 못해! 어서 풀어!"
     ┌그만 둬라, 깡패 성기사. 더 이상 널 지키기 위해 온 이들을 해치지 말란 말이다!┘
     "뭐 ? "
     ┌저들은 널 지키기 위해, 네 부름을 받고 달려온 것이다. 저자의 말은 진실이야!"┘
     "난 저들을 부른 적이 없어!"
     ┌불렀다. 네가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야.┘
     "대체 내가 언제......?!"
     ┌너의 존재 자체가 그들을 부르는 것이다. 깡패 성기사.┘
     "뭐......?"
     ┌나는 서드윙. 마신 루시펠의 세 번째 날개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신의 현신인 셈이지. 나의 주인인 데스나이트는 그 현신의 힘을 모두 받는 존재가 된다.┘
     "......사설 빼 !"
     ┌끝까지 들어라. 깡패 성기사. 본디 이 세계에는 신 급의 힘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균형이 붕괴되기 때문이지.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육신을 버리고 드래고니아로 차원이동을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그런 세계의 규정을 무너뜨리는 존재다. 그 강대한 암흑력은 이 세계 위에 또 하나의 마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무슨 의미야?"
     ┌네 주변으로는 하나의 작은 마계가 만들어 진다는 의미이다.┘
     
     ┌새로이 생겨난 작은 마계는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닌, 마계의 혈통을 가진 이들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 거대한 암흑력으로 마계에 사는 이들을 부르게 되는 것이지. 깡패 성기사, 아니 루퍼스. 저들은 너의 존재 자체가 외친 그 부름에 따라온 것이다. 너를 위해서 말이다!"┘


    ~~~~~~~~~~~~~~~~~~~~~~~~~~~~~~~~~~~~~~~~~~~~~~~~~~~~~~~~~~~~~~~~~~~~~~~~~~~~~~~~~~~~~~~~~~~~~~~~~~~~

     "꼬......마?"
     "깡패 성기사."
     세디는 웃음을 지으며 루퍼스에게 다가서려 했다. 루퍼스는 세디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멈춰!"
     "깡패 성기사?"
     세디는 불안한 얼굴로 루퍼스를 바라보았다. 루퍼스는 메마른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라, 꼬마. 한 걸음만 더 가까이 오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
     "왜 그래, 깡패 성기사? 나야, 당신 종자 세디라고......"
     "돌아 가거라."
     루퍼스는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네가 올 곳은 이곳이 아니야! 처음으로 정을 느꼈다고 했지 ? 그럼, 거기 머물러라, 꼬마. 내 옆으로는 오지 마, 나는 남에게 정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깡패 성기사!"
     "내 말 들어 바보 자식아!" 
     
     "가라! 어서!"
     "깡패 성기사!"
     "가서 돌아오지 마! 가란 말이야!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잡아라! 놓치고 후회하기 전에 잡아! 너라도 가서 잡아라!"
     "흑, 흐흐흑......."
     세디는 울음을 터뜨렸다. 루퍼스는 서드 윙을 휘둘러 다시 세디를 향해 검풍을 내뿜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 열심히 했잖아!"
     세디는 크게 소리질러 루퍼스의 말을 끊었다.
     "......당신 열심히 했잖아! 아퍼도, 슬퍼도 그렇게 열심히 했잖아! 적어도 난 알아! 난 봤으니까 안다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렇게 눈물만 흘려야 한다는 거...... 빗 속에 혼자 숨어 울어야만 한다는 거...... 이건...... 이건...... 너무 심해...... 너무 불쌍하다고......"
     "꼬마."
     "깡패 성기사...... 흐흑, 깡패 성기사." 
     루퍼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세디에게 다가갔다. 아픔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던 루퍼스의 얼굴은 빗물에 씻겨 맑은 자애로움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정히 웃음을 지었다.
     푹!
     그때, 세디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세디는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뒤에선 붉은 레서 데몬의 손톱이 자신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급격히 세디의 눈에서 빛이 흐려져갔다.
     "세디!"
     
     "데 테우로 엠 케이룬! 위대하신 군신 케이룬이시여. 이 아이의 생명을 구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제발 이 아이를 구해 주세요."
     루퍼스는 처음으로 간절히 케이룬에게 기원했다. 루퍼스는 어서 신성력이 흘러나와 세디의 상처를 치유하실 바랬다. 하지만 루퍼스의 손에서는 아무런 힘도 뻗쳐나오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데 테루오 엠 케이룬! 데 테루오 엠 케이룬!"
     
     "어떻게 된 거야? 젠장, 케이룬이여! 힘을 주시오! 앞으로 영원히 쓰지 못해도 좋으니 제발!" 
     
     "너, 넌 뭔가 알고 있지? 왜, 어째서 내가 신성력을 쓸 수 없는 거지? 데스나이트가 된 이후로도 계속 쓸 수 있었다. 아니, 바로 어제까지도!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신성력을 쓸 수 없게 된 거지?"
     ┌네가 달아났기 때문이다.┘
     "뭐?"
     ┌네가 신성력을 얻어쓰던 군신 케이룬은 '전사의 신'. 그가 중시하는 것은 선과 악보다도 '전사'로서의 긍지와 존엄이다. 그는 '전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에게는 힘을 빌려주지 않아.┘
     서드 윙은 다시 루퍼스에게 눈을 돌렸다. 낮은 목소리에 경멸조차 섞여 흘러 나왔다.
     ┌너는 이 숲에 온 이후로 계속 도망다녔다. 강적이나 운명으로부터의 도피였다면 케이룬 역시 훗날을 기대하며 가호를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넌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로부터 도망다니고 있었다. 데스나이트라는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는 자신으로부터 말이다.┘
     "그건......"
     ┌그리고 조금 전, 에오페라는 여자 앞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도망나왔지. 넌 그렇게 치졸한 도피를 했던 거다.┘
     "......"
     ┌전신은 전사에게만 가호를 내린다. 위대한 전사의 이름 속에는 비겁한 도망자는 들어 있지 않아.┘
    ~~~~~~~~~~~~~~~~~~~~~~~~~~~~~~~~~~~~~~~~~~~~~~~~~~~~~~~~~~~~~~~~~~~~~~~~~~~~~~~~~~~~~~~~~~~~~~~~~~~~

     "데 테루오 엠 케이룬. 자애로운 군신이시여. 당신의 전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클라리스의 손에서 따스한 신성력이 솟아나왔다. 상처가 서서히 아물며 피가 멎기 시작했다. 루퍼스는 그 광경을 보며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우스는 루퍼스에게 냉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약속을 지켜라 루퍼스."
     "응."
     루퍼스는 선선히 대답하고 서드 윙을 뽑아들었다. 서드 윙의 황금빛 눈동자는 루퍼스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원 성취한 것을 축하한다. 고철. 드디어 나랑 떨어지게 되었구나."
     ┌처음이다.┘
     "응?
     ┌네 녀석이 내 주인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 말이다.┘ 
     "헤, 영광이군. 그럼,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 고철."
     ┌물론이다, 깡패 성기사.┘

    ~~~~~~~~~~~~~~~~~~~~~~~~~~~~~~~~~~~~~~~~~~~~~~~~~~~~~~~~~~~~~~~~~~~~~~~~~~~~~~~~~~~~~~~~~~~~~~~~~~~~
     

     "그만둬. 꼬마, 지금 내 걱정할 여유가 어디 있냐? 의자 밑에라고 숨어 있어. 어서!"
     "내가 풀어줄게...... 내가 풀어줄게...... 깡패 성기사."
     "세디야!"
     "나...... 오빌리안에서 못 따는 자물쇠가 없었다고. 이런 사슬정도는 금방 풀 수 있어. 깡패 성기사."
     "바보야! 숨어. 이러다 화살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깡패 성기사도 맞잖아. 숨을 거면 같이 숨어. 깡패 성기사."
     "세디야......!"

     쐐액!
     한 대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어 왔다. 붉게 물든 화살촉은 표독스런 살기를 띤 채 루퍼스를 노리고 있었다. 황금 사슬로 결박된 루퍼스는 그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루퍼스는 죽음을 각오하고 화살을 노려보았다.
     그런 루퍼스의 눈앞에 갑자기 어두운 장막이 드리웠다. 가냘프고 힘없는 작은 장막이었다. 그것은 온 힘을 다해 일어나 루퍼스에게로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몸을 던졌다. 루퍼스는 처절한 목소리로 그 장막의 이름을 외쳤다.
     "세디!"
     푸욱!
     
     "세디야! 세디야!"
     "깡......패 성기사."
     세디는 피를 토하며 루퍼스에게 말했다.
     
     "세디야, 괜찮아. 이제 곧 클라리스들을 불러서 다시 치료해 달라고 할게. 데몬에게 배를 뚫렸을 때도 나았어. 이번에도 꼭 나을 거야."
     "응, 깡패 성기사...... 다친 데 없어?"
     "응, 나는 괜찮아. 네가 지켜줬잖니, 세디야."
     "다행이다......"
     세디는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맑은 세디의 눈이 천천히 흐려지고 있었다.
     루퍼스는 비통한 목소리로 세디를 불렀다.
     "세디야! 눈을 떠. 죽으면 안 돼. 세디야. 눈을 떠. 눈을 떠 !"
     
     "크흑, 죽으면 안 돼 ! 죽으면 안 돼 ! 세디야 !"
     
     "서드 윙!"
     ┌불렀냐, 깡패 성기사?┘
     "세디를...... 세디를 살려줘. 서드 윙."
     ┌나는 치유술 같은 것은 모른다. 깡패 성기사.┘
     "너, 넌 뭐든 알고 있잖아. 만년의 세월을 살면서 그렇게 모든 걸 알았다고 했잖아. 세디를 살려줘. 서드 윙. 세디를 살려줘!"
     ┌......┘
     서드 윙은 잠시 말없이 루퍼스를 바라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간절함이 루퍼스의 두 눈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서드 윙은 다시 눈을 돌려 세디를 바라보고 말했다.
     ┌어떻게든 이 아이를 살리고 싶나?┘ 
     루퍼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알겠다......┘
     서드 윙은 황금빛 눈동자를 루퍼스에게 돌렸다. 루퍼스는 그 시선 속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위엄을 느꼈다. 
     ┌이 소년은 이제 어중간한 신성력으로는 살리지 못한다. '부활'급의 주문이 아니라면 어렵지. 지금 네가 이 소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가지이다.┘
     "그게 뭐지?"
     ┌루퍼스, 네가 완전한 데스나이트가 되는 것이다. 이 나를 완전히 받아들임으로써.┘
     "......!"
     ┌네가 완전한 데스나이트가 되면 이 소년의 몸에 마의 핵인 '어둠의 심장'을 심어 강력한 육체를 지니게 하는 정도의 권능을 얻을 수 있다. 진실한 데스나이트는 어둠의 마신과 같은 격을 지니게 되니까. 그렇게 하면 이 아이는 이 정도의 화살 정도는 이겨내고 살아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반은 마족으로 변하겠지만. 아니, 그 전에 너부터가 완전한 마족으로 변하겠지.┘
     "마족으로......?
     ┌그래.┘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나?"
     ┌있다고 해도 나는 알지 못해. 어차피 나는 본디 치유술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
     루퍼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디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세디의 얼굴은 이제 생기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루퍼스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엇이 아까워 망설이느냐, 루퍼스."
     루퍼스는 손을 뻗어 서드 윙을 향해 내밀었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루퍼스를 만류했다.
     "그만 둬라! 루퍼스!"
     "시리우스?"
     루퍼스는 고개를 돌려 마차 바깥을 바라보았다. 땀에 흠뻑 젖은 시리우스가 예리한 눈매로 루퍼스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루퍼스를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는 대충 들었다. 그만둬라, 루퍼스. 아무리 선행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네가 서드 윙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넌 두 번 다시 구원받을 수 없다. 성기사단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거야."
     "......"
     "함께 돌아가자, 루퍼스. 클라리스와 사부님과 친구들과 함께 지내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 루퍼스."
     "언제부터......"
     "응?"
     "언제부터 성기사라는 이름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남을 외면하는 자들의 것이었던가?"
     시리우스는 냉랭한 루퍼스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루퍼스는 차가운 눈으로 시리우스를 돌아보고 있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나의 안위를 위해, 그런 것을 위해 상처 입은 이들을 외면하는 것. 그런 것이 성기사라는 이름이었나, 시리우스?"
     "루퍼스......!"
     시이루스는 말문이 막혀 루퍼스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눈으로 시리우스를 바라보던 루퍼스는 조용히 고개를 세디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잠든 아이의 귓가에 속삭이듯 조용히 고개를 세디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잠든 아이의 귓가에 속삭이듯 낮고 친근한 목소리로 루퍼스가 읊조렸다.
     "세디, 너는 나를 위해 울어주었지. 너의 맑은 눈물이 나를 나락의 어둠에서 구원해 줬다. 이젠 됐어. 이젠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돼. 더 이상은 눈물 흘리지 않게 하겠다! 나의 검이 너의 눈물을 닦아줄 테니!"
     다시 고개를 든 루퍼스는 가슴을 열며 맹세하듯 소리쳤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나는 맞서 싸울 것이다! 내 검은 약자를 위해 쓰일 것이요, 나의 방패는 약자를 지키는 굳센 성벽이 되리니, 나는 싸워 이기리로다! 나는 위대한 전사의 신, 케이룬의 성기사다!"
     루퍼스는 서드 윙의 자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충류의 촉수가 뒤얽힌 모양으로 된 서드 윙의 자루가 루퍼스의 손바닥 안으로 안겨 들어왔다. 루퍼스는 서드 윙의 자루를 다부지게 붙잡으며 외쳤다.
     "와라, 서드 윙! 내가 너의 주인이다! [I`m your master!]"
     "알겠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Yes, My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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