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살고 있는 젊은 남성들,
그러니까 미래에 내 남편이 될 수도 있는
혹은 사회에서 내 동료나 내 이웃이 될 수 있는 그런 동시대를 사는 젊은 남자들 중에서
진짜 남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초식남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초식남은 단지 하나의 양상일 뿐, 초식남이 아니라고 해도 진짜 남자들이 사라져버렸다.
여자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무시하는 남자,
어떻게든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는 남자,
여자를 노리개로만 여기며 쾌락을 좇는 남자,
어머니의 말이 세상의 진리인 남자,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돈 뿐인 남자,
매너(여자를 대하는 매너 뿐만 아니라 윗사람 혹은 동료들을 위한 매너 포함)를 모르는 남자,
모두 양상은 다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다.
진짜 남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진짜 남자의 부재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교육의 부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가장 큰 실수는 부동산이나 88세대 등 각종 사회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실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정의 교육은 어머니의 전담이 되어버렸다.
내가 아는 한, 해외의 어떤 나라도 이런 나라는 없다.
(아. 하나 있다. 일본.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예전에 진짜 남자는 멸종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버지는 그가 지금까지 윗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것들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다만 돈을 벌어주는 것만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 했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바가지를 긁는 어머니의 탓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를 놓아주지 않고 야근을 시키는 회사의 탓이었을까?
아니면 전쟁과 급속성장이라는 특수한 시대상황의 탓이었을까?
아무튼 덕분에 남자들의 문화는 인간문화제 수준의 것이 되었고
지금의 2, 30대 남자의 문화라고는 피시방과 당구장, 그리고 야동 뿐이다.
나는 여자이고 남녀평등을 지지하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 남자들에는 여자들과 다른 방식의 문화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이것은 가부장제라는 것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남자들은 남자들만의 의사소통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걸 통해서 소통해왔다.
물론 극단적인 남녀평등주의자들은 내 말을 부정할지도 모르겠지만
경험적으로 나는 남자들에게 말하는 방식은 여자들에게 말하는 방식과 전혀 달라야 함을 느낀다.
남성들은 남성들만에 끈끈한 커뮤니티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끼리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다.
지독히도 서투르고 그래서 어떨 때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반면 여성들은 여성들만의 독특한 의사소통 방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역차별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거겠지.
표면에 드러나는 역차별 문제는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에 비하면 소소한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젊은 남성들은 여성과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의외로 쉽게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여성들의 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엄마, 선생님(대부분의 교사는 여자다) 등등.
비록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대처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남성들 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 누가 조언을 해주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남성들조차 그런 경우 너무나 쉽게
"남자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린다.
기껏해봤자 서투르기로는 매한가지인 또래 친구나 선배 정도가 어설픈 조언을 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과거의 남성들은 그보다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그들간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나도 모르겠다. 나는 여성이고, 말했듯이 진짜 남자가 멸종위기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외국 남성들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때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이제 기껏해봤자 남자들이 남자들의 문화를 배우는 곳은 군대밖에 남질 않았다.
군대에서 배우는 남자의 문화는 너무나 극단적이고 특수한 것인데도, 그것이 보편화되어버렸다. 남성들의 문화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책임감, 주체적인 태도, 타인에 대한 예의범절, 삶의 여유, 가치관 등
아니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면도하는 법 같은 사소한 기술까지도
어머니가 나서서 아버지에게 말을 해야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것을 알려주는 상황이다.
아들의 첫사랑을 어머니는 알지만 아버지는 알지 못한다.
남자들이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아련할 뿐
어머니를 떠올릴 때 떠올릴 수 있는 구체적인 것들, 삶 곳곳에 숨어 있는 어머니의 흔적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요즘 남자들은 모두 편모 슬하에서 자란 남자나 마찬가지다.
롤모델로서 아버지는 구체적인 어떤 것도 아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아직 미혼의 여성으로서 나는 내가 진짜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
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 아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스포츠 등을 통해 직접 대면하는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눈 남자를 원한다.
양복 입는 법, 명함을 주고 받는 법과 같은 사소한 예절을 아버지에게 배운 남자이길 바란다.
아버지의 친구를 한 명 이상 알고 그 분과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이 있는 남자이길 바란다.
연애, 진학, 취업 등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아버지와 단 둘이 많은 대화를 나눠본 남자이길 바란다.
아버지의 인생의 가치관이 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남자이길 바란다.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궁금해본 적이 있는 남자이길 바란다.
어머니와의 대화와 교감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비중이 반반 정도여야만 한다.
남자들만의 문화는 전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최소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그들 간의 의사소통 방법을 잃어버리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동료와 친구, 우정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그들의 동료로부터 정신적인 안정을 얻지 못하게 된 이후로
사회에는 단지 유흥과 욕설 등만이 남아버렸다.
사회가 온통 돈과 쾌락만을 좇게 되었다.
옛 남자들은 활쏘기를 하고 좋은 경치를 보며 시를 지으며 서로의 감정을 나누었는데
지금은 단체로 게임을 하면서 채팅창에 욕설 반 ㅋㅋㅋ 반 이렇게만 의사소통이 된다.
그렇게 진짜 남자는 멸종위기에 처해버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마 평생 외롭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