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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tarcraft_33441
    작성자 : 4게이드랍
    추천 : 6
    조회수 : 2954
    IP : 96.48.***.31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3/15 10:38:09
    http://todayhumor.com/?starcraft_33441 모바일
    스타크래프트를 말하다

    스타크래프트

    한국 게임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스타크래프트

    한국 게임사는 [스타크래프트] 이전과 이후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스타 이전 시대가 중세 암흑기와 같았다면, 스타 이후부터 찬란한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회가 그랬다. 게임하는 아이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게임하는 어른들은 ‘애들처럼 게임이나 하냐’며 핀잔 받았다. PC게임이 노래방처럼 짭짤한 사업수단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게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더더구나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다.

    대한민국에서 ‘게임’ 따위는 사회낙오자들의 전유물처럼 취급됐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가 나오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이 게임은 한국 사람들의 취향에 찰떡궁합처럼 맞아떨어졌다. PC방은 새로운 유망사업으로 각광받았고, 프로게이머는 청소년들의 선망의 직업이 됐다. 한국은 IT 강국으로 떠올랐고, 남녀노소 모두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게임에 대한 경계심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스타가 변화시킨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지금부터 시간을 돌려 [스타크래프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할머니가 빌려준 종자돈으로 사업을 하다

    “처음부터 게임을 만들어 한 몫 잡으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자체가 경이로운 경험이었죠. 우리는 지금까지 보고 배운 모든 지식을 마치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 블리자드 공동창업자 엘런 애덤

    블리자드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991년, ‘마이크 모하임’, ‘앨런 애덤’, ‘프랭크 피어스’, 3명의 젊은이는 ‘실리콘앤시냅스’라는 게임회사를 설립했다. 이 작은 회사가 블리자드의 전신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나온 마이크 모하임은 실리콘 벨리의 유망한 하드디스크 제조사 '웨스턴디지털'에 취업했다. 그러나 그는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동창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그들이 회사를 차렸던 1991년, 미국 게임시장은 온전히 닌텐도의 천하였다. 오락실의 시대가 가고, 닌텐도 게임기가 미국의 가정으로 파고들었다. 닌텐도의 인기를 실감한 모하임 대표는 게임이 가져올 엄청난 가능성에 전율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PC게임에 열광하는 날을 꿈꾸며 게임을 만들었다.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대표. 할머니에게 빌린 돈으로 지금의 블리자드를 차렸다.

    그는 할머니가 빌려준 15,000달러(약 1,700만원)를 종자돈으로 게임회사를 차렸다(지금도 그의 사무실에는 할머니가 빌려준 수표가 걸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꿈은 멀고 현실을 가깝다고 했던가. 회사를 차린 그들은 당장 돈을 버는 일이 급했다. 주로 PC게임을 콘솔게임으로 이식하는 하청 업을 맡아 했다. 이렇게 번 돈으로 [로스트바이킹]과 [로큰롤레이싱]을 개발했다. [로스트바이킹]은 모하임 대표가 직접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작품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미국 게임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신작들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로스트바이킹]같은 액션게임은 길거리에 차일 정도로 흔했다. 첫 작품의 성적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가 늘어났다.

    블리자드의 초창기 작품 [로스트 바이킹]. 게임은 좋았지만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진 못했다.

    블리자드의 배고팠던 시절

    천하의 블리자드도 한때 직원 월급 주기도 힘든 궁핍한 시절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일상의 연속 있었다. 당시 어려움을 모하임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매일매일 어딘가에 돈을 지불하기 위해 사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유통사 중 어느 한곳에서라도 개발비 지불이 늦어진다면 진짜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죠. 종종 직원들 급료를 지불하기 위해 나와 애덤은 개인 신용카드까지 긁어야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블리자드는 하청업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세상을 뒤흔든 [스타크래프트] 신화도 아직까지는 먼 꿈에 불과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블리자드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전신인 [워크래프트]의 기초를 차근차근 다져나갔다.

    1994년 그들은 회사이름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로 바꾸었다. ‘눈보라’처럼 게임시장을 뒤흔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지은 이름이다. 회사 이름을 바꾸자 블리자드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같은 해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를 발매했다([워크래프트] 성공담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편에서 다뤄 보도록 하겠다). 블리자드 경영진은 유통사들을 전전긍긍하며 7백만 달러(약 40억 원)를 투자받아 [워크래프트]를 겨우 완성 시켰다고 한다.

    ‘실리콘앤시냅스’에서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꾼 후 첫 성공작 [워크래프트]를 발매했다.

    고생 끝에 완성시킨 [워크래프트]는 흥행에 성공했다. 회사 형편도 조금씩 나아졌다. 이어 1995년에 출시된 [워크래프트2]가 대박을 치면서 블리자드는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워크래프트]를 통해 블리자드는 RTS 개발사로써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블리자드 노스가 만든 [디아블로]로 또 한 번의 '잭팟'을 터뜨렸다. [워크래프트], [디아블로]가 성공하자 블리자드는 업계 유망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차기작 [스타크래프트]를 꺼낼 시간이 됐다.

    만족 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라!

    “우리가 출시 일정에 쫓기며 게임을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출시 일정에 불만족스러운 게임을 내놓는 것 보다 일정에 늦더라도 완벽한 게임을 내놓는 것이 사용자에 대한 예의죠. 물론 불평, 불만이 쏟아지지만 막상 출시된 게임을 보면 다들 좋아하지 않습니까.”

    -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대표(위클리비즈 인터뷰 중)

    혁신은 위대한 결정에서 나온다. 한 시대를 바꾸려면 그에 따른 힘든 결정이 수반된다. [스타크래프트]가 그랬다. 만약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를 그냥 출시했다면, 지금의 ‘스타 신화’가 있었을까. [스타크래프트] 초기버전은 개발자들도 만족하지 못한 미숙한 게임이었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2]를 성공 시킨 후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구상했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같은 공상과학물에 에일리언, 프레데터의 소재를 버무려 제법 근사한 SF게임을 만들려고 했다.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실제 게임은 [워크래프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타크래프트]는 1994년 E3게임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혹독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워크래프트]의 싸구려 우주판”, “대충 그래픽만 바꾼 게임”, “완전히 구닥다리 게임” 등 혹평 일색이었다. [디아블로] 시연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스타크래프트] 쪽으론 눈길조차 두지 않았다. 개발자들도 예상치 못한 반응에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블리자드는 스타에서 [워크래프트]의 느낌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렇다면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초창기 공개된 [스타크래프트] 알파버전. ‘[워크래프트2]의 싸구려 우주판’이란 비판을 받고 전면 폐기된다.

    2년 동안 절치부심한 끝에 스타는 [워크래프트]의 느낌을 완전 지우고 다시 돌아왔다. 주변의 평가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부에서 변수가 생겼다. 스타와 함께 E3에 출전한 [토탈어니힐레이션]을 본 순간 블리자드 개발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완벽한 3D그래픽, 현란한 전투효과, 100여 개 이상의 유닛, 실제 미래 전쟁터를 방불케 한 이 괴물게임은 스타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가망이 없었다. 무엇보다 블리자드 개발자 자신이 만족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창피한 게임은 만들기 싫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자!”

    뼈를 깎는 결단이었다. 블리자드는 또 게임을 갈아 엎었다. 프로젝트는 무한 연기됐고 당연히 유저들의 관심은 냉대로 바뀌었다. 게임사에게 발매일은 생명과도 같다. 발매일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손해가 엄청나다. 투자자들의 노발대발했다. 일부 극성유저들은 회사에 찾아와 발매연기에 항의하는 소동까지 빚었다. 블리자드는 1년 매출의 70~80%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발매를 연기했다. 만족스러운 게임이 나올 때까지 타협하지 않았다는 각오다. ‘개발자가 만족할 때가 게임을 발매할 때’라는 블리자드 특유의 개발철학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게임회사의 목표는 사용자가 만족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며, 개발자들이 만족 못하는 게임은 사용자들도 만족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렇게 2년이 더 흘렀다. 1997년 발매된 [스타크래프트]는 그 동안의 기다림을 한 번에 털어버릴 만큼 최고의 게임이 되어 돌아왔다.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위치한 블리자드 본사. 마치 대학교 캠퍼스 같은 분위기다.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스타크래프트]의 주인공 칼날여왕의 모형이 방문객을 맞고 있다.

    1997년, RTS의 춘추전국시대

    블리자드의 핵심은 RTS다. '블리자드 노스'에서 만든 [디아블로]를 제외하면 블리자드의 모든 게임은 RT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역시 [워크래프트]를 원작으로 한다. 비록 개발이 중단된 [워크래프트 어드벤처]나 [스타크래프트: 고스트] 역시 RTS에 기반을 둔다. 블리자드가 신뢰받는 개발사로 자리매김하는데 RTS게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한 90년대 말 게임시장은 어땠을까.

    그 시절 세계 게임시장은 ‘RTS 전쟁’ 한 가운데에 있었다. 사람들은 80년대를 풍미했던 어드벤처와 RPG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1992년 발매된 최초의 RTS [듄2]는 지리멸렬한 게임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전략과 전술, 생산과 소비 등 모든 명령을 실시간으로 컨트롤 하는 방식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를 내놓았지만 [듄2]의 아성은 넘지 못했다. 스타가 출시된 1997년은 그야말로 RTS이 춘추전국시대였다. 자고 일어나면 혁신적인 게임들이 쏟아졌다. 그만큼 쟁쟁한 경쟁자도 많았다.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었다.

    90년대 [스타크래프트]의 강력한 경쟁자, [토탈어나힐레이션](왼쪽)과 C&C [타이베리안선](오른쪽). 블리자드는 이 게임들 때문에 발매일 까지 늦춰야 했다.

    당시 시장의 지존은 [커맨드앤컨커] 시리즈였다. [듄2]로 RTS의 초석을 놓은 웨스트우드는 아예 작정하고 최고의 대작게임을 내놓았다. 영화 같은 동영상과 사실적인 그래픽, 치밀한 전략전술은 유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인터페이스나 밸런싱 등 어느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게임이었다. 여기에 외전격인 [레드얼럿] 시리즈까지 가세하면서, 웨스트우드는 RTS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이뿐만 아니다. 웨스트우드의 뒤를 쫓는 자객들도 속속 등장했다. [토탈어나일레이션]과 [홈월드] 같은 혁신적인 작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토탈어나일레이션]은 당시 RTS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블리자드 개발자들의 기를 죽일 만큼 그래픽 적으로 압도적이었다. 시에라의 [홈월드]는 기존 RTS 통념을 깨고 우주공간에서의 전투를 표현했다. 실감나는 유닛 간 전투, 새로운 형태의 인터페이스, 뛰어난 3D 그래픽, 무엇보다 몽환적인 우주배경은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또, [에이지오브엠파이어]처럼 방대한 역사를 담은 교육적인 게임도 인기였다. 이런 기라성 같은 게임들이 시장의 패권을 놓고 싸우던 시대가 90년 말이다. 스타 같은 신출내기(?)는 감히 명함도 내밀기 힘든 시대였다.

    스타의 ‘신의 한수’, 3종족의 혁명!

    “처음에는 주당 50시간, 그 다음에는 80시간을 일하다 결국에는 아예 회사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가져다 준 음식을 먹고 소파에서 잠을 자는 생활이 계속 됐습니다. 이런 힘든 일상 속에서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을 플레이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 스타크래프트 레벨디자이너 밥 핏치

    [스타크래프트]는 막강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어떤 차별 점을 내세웠을까.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지만 그 중 최고의 신의 한수는 '테란', '저그', '프로토스'의 3종족 시스템이다. 완벽한 전략게임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 종족을 3개로 나눴다. 이런 시도는 거의 도박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3개 종족을 도입한 게임은 없었다. RTS 지존[커맨드앤퀀커]도 'GDI vs NOD'의 2종족 체재다. 유닛수가 100개 이상 되는 [토탈어나힐레이션]도, 드넓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홈월드]도 종족은 2개다. [워크래프트]도 그렇다. 스토리상은 많은 종족들이 등장하지만, 결국에 게임에 나오는 건 ‘인간’과 ‘오크’의 대결이다. 이렇듯 당시 전략게임은 2종족이 대세였다. 그게 최선이라기보다,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저그’, ‘프로토스’, ‘테란’의 3종족 시스템은 [스타크래프트]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일단 삼강구도는 구현하기 힘든 시스템이었다. 종족이 3개가 되면 밸런싱이 무너지기 쉽다. RTS의 생명은 밸런싱이다. 아무리 그래픽이 화려해도 밸런싱이 무너지면 끝이다. 어느 한쪽이 강해서도 안 되고, 약해서도 안 된다. 곡예사가 줄타기 하듯 종족간의 균형이 정확히 맞춰져야 한다. 종족을 하나 더 추가하면 그에 따른 고도의 밸런싱 조절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게임을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스타가 3종족으로 제작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코웃음 쳤다. “2개도 힘든데, 3개로 늘린다고? 욕심이 과하구먼!” 대부분 사람들은 스타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제대로만 구현되면 이보다 멋진 게임은 없을 것이다. 원래 전쟁이란 서로 치열하게 견제하는 삼파전 구도가 재미있지 않는가.

    블리자드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종족 도입도 모자라 각 종족의 개성을 완전히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그 당시 대부분 RTS들은 유닛들의 모양만 다를 뿐 기능은 비슷했다. 초반에 보병으로 버티다가, 탱크 뽑고, 비행기 뽑고 상위 테크트리로 넘어가는게 정석이다. 때문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상대방이 어떤 유닛으로 공격해 올지 눈에 뻔히 보였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는 달랐다. ‘테란’은 전통 SF물에 등장하는 인간형 종족이다. 그런데 ‘저그’와 ‘프로토스’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에일리언 같은 흉측한 괴물들이 화면을 뒤덮더니, 판타지 세계의 기사나 마법사 같은 존재들이 나와 번개를 쏘아댄다. 게다가 게임속도는 왜 이리 빠른지! 여차하면 다 이긴 게임이 한 번에 뒤집혀 버린다.

    종족 간의 절묘한 밸런싱과 흥미로운 스토리는, [스타크래프트]를 RTS 장르의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유닛들이 절묘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투를 이끌어간다. 종족마다 플레이 방식이 제각각이다. 그에 따른 전략 전술도 무궁무진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 종족 마다 고유의 이야기를 덧입혔다. 단순한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아니다. 사랑과 증오, 배반과 복수, 조직의 리더십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우주를 배경으로 장엄하게 펼쳐진다. 인간에게 버림받고 저그의 여왕으로 성장하는 ‘캐리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연인을 외면해야 했던 ‘짐 레이너’, 종족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택하는 프로토스 영웅 ‘타사다’, 권력을 위해 거리낌 없이 부하들을 희생시키는 냉혈한 '악투러스 맹크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버릴 게 없을 만큼 완벽한 서사를 보여준다.

    종족간의 절묘한 밸런싱과 흥미로운 스토리는 스타가 ‘RTS 전쟁’에서 승리를 차지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후 그 어떤 게임도 스타의 완벽한 게임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스타크래프트]는 확장팩 [블루드워]가 출시된 이후 전 세계에 1,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물론 판매율 면에서 [디아블로](2000만장), [워크래프트](2000만장)에는 못 미치지만, 적어도 ‘스타’가 한국에 끼친 영향력은 그 어떤 게임도 비할 바가 못 된다.

    스타의 인생 2막, 한국을 향해!

    “[스타크래프트]를 만나고 게임에 대한 나의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죠. 생각을 해보세요. 얼굴도 모르는 8명의 유저가 사이버공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 이건 된다! 스타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가능성 그 자체였습니다.”

    - 한빛소프트 김영만 전 회장

    아이러니하게도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에 대해 가장 배타적인 국가였던 한국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스타크래프트]의 한국 진출은 더욱 극적이다. 1997년 발매된 스타는 이듬해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다. [스타크래프트]를 가져온 한빛소프트 김영만 전 회장은 당시 ‘LG소프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LG소프트는 국내 소프트웨어사업을 맡았는데, 아무래도 대기업이다 보니 사회적 인식이 안 좋은 게임 쪽 유통은 소극적이었다. 스타도 처음엔 LG가 유통했지만 마케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를 발굴해 과감히 승부수를 던진 한빛소프트 김영만 전 회장. 그의 탁월한 안목이 있었기에 지금의 [스타크래프트] 현상이 만들어졌다.

    김영만 전 회장은 스타를 가능성을 직감했다.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대표가 게임의 가능성만 보고 잘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회사를 차린 것처럼, 그 또한 자신의 인생을 스타에 걸어보기로 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게임회사(한빛소프트)를 차렸다. 이때 [스타크래프트] 판권을 퇴직금 대신 받아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한국은 IMF라는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었다. 스스로 안정된 대기업을 그만두고 벤처의 길을 걷는다는 건 그 자체가 모험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했다.

    스타는 한빛소프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국내에 시판됐다. 1999년 확장팩 ‘블루드워’가 출시되면서 스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승승장구했다. 한국에서만 300만장 이상 팔리며 그야말로 초대박 게임이 됐다(LG소프트는 배가 좀 아팠을 것이다). 불법복제가 만연해 있던 그 당시엔 5만 장 팔기도 힘들던 시절이었다. 게임만 잘 팔린 게 아니다. 스타는 한국의 산업과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물론 스타의 성공으로 한빛소프트는 최고 매출을 올리는 게임회사로 성장한다. 이후 [스타크래프트]의 성과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스타크래프트]는 IMF이후 1조 1400억 원 이상의 산업 확대효과와 15만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 했다. 프로게이머라는 신종직업을 만들었으며, e스포츠라는 새로운 문화가 창출됐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당구장이나 호프집 대신 PC방에 모여 스타 한판 즐기는 게 일상화 됐다. 펜티엄2급이면 무난히 돌아가는 부담 없는 사양도 게임의 대중적 인기에 한몫 했다. 배틀넷과 레더 시스템은 한국인 특유의 경쟁 심리를 자극했다. 스타는 한국 게임업계에도 자극을 주었다. 스타의 성공 후 [임진록], [아트록스], [킹덤언더파이어] 등 국산 전략게임이 줄을 이었다.

    1년 후 확장팩 ‘브루드워’가 추가되면서 [스타크래프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전한 게임성을 갖춘다.

    쌈장 이기석과 황제 임요환, 21세기 콜로세움

    "슬레이어즈_박서, 게임 아이디를 입력하고 상대의 등장을 기다린다. 조명도 카메라도 모두 사라지고 팬들의 함성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순간 완전한 고요 속에 나만이 남는다. 이제 곧 무대의 막이 오를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승자이며 나만이 끝낼 수 있는 무대가 열릴 것이다."

    - 임요환 자서전(나만큼 미쳐봐)에서 발췌

    [스타크래프트]와 ‘e스포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e스포츠는 스타 때문에 성장했고, 스타도 e스포츠 덕분에 성공했다. ‘스타’와 ‘e스포츠’는 당시 시대의 고정관념에 맞서며 성장해 왔다. 90년대 말, 국내 PC방 컴퓨터의 90%는 스타가 돌아가고 있었다. 자연히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스타게임대회를 열었다. 스타리그가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시점은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씨부터다. 그는 98년 블리자드가 주최한 ‘스타크래프트 레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최초의 프로화를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게임을 스포츠로 보는 인식이 전무했다. 더구나 게임 플레이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신주영 선수의 프로선언은 그만큼 한국 e스포츠 역사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안타깝게도 신주영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전에 군에 입대해야 했다. 신주영의 바통을 이어 받는 선수가 그 유명한 쌈장 이기석이다. 신주영과 같은 길드에 속해 있던 이기석은 KPGL 대회에서 2연패 기록을 달성해 차세대 유망주로 떠올랐다. 특히 ‘인터넷 카리스마’라는 유행어를 남긴 CF광고에 출연해 더욱 유명세를 탔다. 프로게이머가 광고에 등장한다는 자체가 사회적 이슈였다. 이 한편의 광고는 대한민국에 ‘스타크래프트 열풍’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었다. 이기석의 활약으로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만 100만장 이상 더 팔렸다. 프로구단이 결성됐고 프로게임협회가 생겼다. 1998년 투니버스가 처음 게임대회를 중계한 후 온게임넷 같은 전문 게임채널까지 등장했다.

    앞서 필자는 한국 게임사를 [스타크래프트]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다. 그럼 스타 전성기를 둘로 나누라면 나는 주저 없이 임요환 이전과 이후로 나눌 것이다. 테란 황제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의 또 다른 아이콘이자, 한국 e스포츠의 상징으로 통한다. 쌈장 이기석의 인기가 주춤해지고, 곱상한 외모의 한 신인선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임요환의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거의 질것 같은 경기를 극적으로 뒤집는 그의 승부사적 기질은 수많은 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2003년 8월 15일, 도진광 선수를 상대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8.15 대첩’은 지금도 회자되는 최고의 명경기다. 그는 당시 여학생들에게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스타의 완벽한 게임성은 임요환의 화려한 플레이와 어우러져 거의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게임이 이렇게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열광시킬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처음 알았다.

    “인터넷 카리스마!” 쌈장 이기석. 그가 출연했던 코넷 CF광고는 스타가 한국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스타크래프트]의 또 하나의 상징 임요환. 그로 인하여 스타리그의 전성기를 맞았다.

    황제 임요환 이후 프로게이머는 본격적인 스타성을 갖추게 된다. 천재테란 이윤열, 폭풍저그 홍진호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e스포츠의 전성기를 열었다. 프로게이머들은 마치 로마시대 검투사처럼 좁은 유리 박스 안에 들어가 나 홀로 치열한 사투를 펼쳤다. 관중들은 이들이 펼치는 승부사에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리고 부산 광안리에서 벌어진 스타리그 결승전은 관객 10만 명의 신화를 창조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스타리그를 즐겼다. 더이상 프로게이머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스타는 이미 우리의 문화 한복판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이후 한국 게임의 모든 것은 [스타크래프트]로 통했다.

    승자의 혼미, 10년 권좌를 뺏기다

    2007년 5월 19일. 올림픽체조경기장을 꽉 채운 사람들은 블리자드의 신작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형 스크린에서 멋진 영상과 함께 [스타크래프트2] 로고가 뜨자 체육관은 한 순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모두가 기대했던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이 아닌가. 10년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엄청난 환대다. 블리자드는 '스타2'를 한국에서 최초로 발표했다. [스타크래프트2]는 한국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당시 스타2의 성공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스타2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블리자드는 스타2 방송중계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e스포츠협회/게임방송사와 갈등을 빚었다. 사실 지금까지 국내 e스포츠는 스타 의존도가 너무 강했다. 모든 인기가 스타 한 종목에만 쏠리다 보니 스타가 없으면 경기가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블리자드는 기존의 관계를 끊고 한국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았다. 협회와 방송사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국 스타리그 신화를 견인했던 두 주인공들은 결국 결별을 선언했다. 양측은 법적분쟁에 들어갔고 한동안 TV에서 [스타크래프트2] 중계를 볼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한 손해는 게임사, 협회, 유저 모두에게 돌아갔다. 한마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시된 [스타크래프트2]. 그러나 유저들의 반응은 예전만 같지 않았다.

    게임성도 지적을 받았다. 사실 유저들은 스타2의 변화를 기대했다. ‘어떤 종족이 추가될지’, ‘게임방식이 어떻게 바뀔지’ 같은 근본적인 변화 말이다(출시전만 해도 젤나가 종족이 추가될 것이라는 소식이 인터넷을 달궜다). 하긴 아무리 좋은 게임도 10년 동안 계속 하다 보니 질릴 만도 하다.

    하지만 스타2는 안전한 길을 택했다. 종족도 그대로고, 게임방식도 변함없다. 그래픽만 좋아지고 유닛만 몇 개 추가됐을 뿐 전체적인 모습은 전작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자체만 보면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나지만, 유저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혁신적인 모습은 없었다. 판매방식도 논란이 많았다. 외국에서 판매되는 한정판 패키지를 국내에 발매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뒤늦게 출시된 일반판 패키지도 마분지 상자에 시디 하나 덜컹 넣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스타2'를 끼워 파는 방식으로 판매해 또 한 번 빈축을 샀다.

    그 결과 스타2는 10년 동안 지켜온 e스포츠 권좌를 새파란 후배인 [리그오브레전드(LOL)]에게 내어줘야 했다. 사람들은 ‘스타2’의 익숙함 보다 ‘LOL'을 새로움을 선택했다. 스타2는 국내 PC방 점유율에서 일찌감치 10위권 밖으로 떨어졌다. 반면 ‘LOL’은 30% 이상의 독보적인 점유율로 과거 스타의 전성기를 재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보다.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한 [스타크래프트2]. 그래픽은 화려해 졌지만, 시스템적으로 전작에 비해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어 아쉽다.

    이 시대, 스타크래프 현상을 말하다

    이번 [스타크래프트] 편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 쓸 내용은 많은데, 막상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두서가 안 잡혔다. 그래서 몇 차례 연재를 늦춘 것도 솔직히 고백한다. 고민 끝에 나름의 결론을 지어보았다. [스타크래프트]를 게임의 범주로 재단해선 안 된다. 스타는 지난 15년간 한국 사회를 관통해온 하나의 사회 현상이다. 인간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을 따로 봐야 하듯,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현상’을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전반부에는 스타의 게임성을 위주로, 후반부는 스타가 가져온 사회현상을 이야기하려 했다.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 과거 ‘브루드워’가 스타를 완성 시켰듯 ‘군단의 심장’으로 스타2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 본다.

    공교롭게도 [스타크래프트]는 우리사회의 절망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스타가 발매된 1998년 한국은 IMF 한파가 한창이었다. 아버지들은 영문도 모르고 직장에서 쫓겨났고, 극심한 취업난은 청년들을 좌절케 했다. 자살률이 급증하고, 가족이 파괴됐다. 절망은 온 사회를 뒤덮었다. 그런데 스타가 나오면서 조그마한 변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전국에 PC방이 들어섰고, 프로게이머라는 신종직업이 생겨났다. 인터넷망이 빠른 속도로 보급됐고, 한국은 IT산업 강국으로 도약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때 거리로 나섰던 넥타이부대들이 이젠 스타 한 판하려고 PC방으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국의 e스포츠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마치 거대한 빅뱅에 휘말리듯 사회 전체가 게임에 열광했다. 쌈장 이기석이 '인터넷 카리스마!'를 외칠 때 우리사회는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임요환의 경기에 누나 팬들이 대거 몰리면서 경직된 한국사회는 조금씩 문을 열었다. 스타는 우리 사회의 문화 생태계를 바꾸어 놓았다. 이 놀라운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스타크래프트2] 확장팩 ‘군단의 심장’이 발매됐다. 이번 편의 주인공은 칼날 여왕 ‘캐리건’이다. 동족에게 배신당하는 좌절을 딛고 고난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캐리건의 인생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과연 그녀가 멸망 직전인 저그를 일으키고 진정한 여왕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새로운 [스타크래프트]의 시대가 기대된다.

    지난 2013년 3월 12일 개최된 스타2 군단의 심장 발매 기념행사. 수많은 인파가 행사장을 가득 매웠다. 역시 스타의 저력은 여전하다.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5&contents_id=23254

    글 : 이덕규 / 게임어바웃 편집장([email protected])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편집장으로 근무. 게임을 단순한 재미가 아닌, 문화적 가치를 살리고자 하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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