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지역에 있는 모대학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음대생 출신으로, 지금은 음악을 접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사건에 관련한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맨 처음 났던 기사의 제목은 「서울대 음대교수, 제자 폭행 혐의」였다. 초기의 기사는 단지 서울대 음대교수라고 애매모호하게 나왔으나, 나는 기사를 읽으면서 대번에 이건 100% 성악과 교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 내가 대학 다닐 때 우리 교수가 하는 행동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
사건의 혐의자는 과연 성악과 김인혜 교수로 밝혀졌으며, 대학들이 개강을 며칠 앞 둔 지금 서울대는 김인혜 교수를 직위해제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나는 이번 사건 터지고 과연 서울대라고 생각했다. 일부 사람들은 서울대 학생들을 비난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학생들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연대 포함 다른 음대였으면 그저 꾹 참고 당하는 것을 당하는게 아니라 교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뿐이니 이런 사건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인혜 교수도 서울대가 아니라 다른 학교 교수였다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대세계의 연줄을 모조리 교수들이 쥐고 있으니 크나큰 용기가 필요 했을텐데, 이번에 확실히 문제제기한 서울대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생각이다.
음대. 나도 졸업했지만 치사한 각종 비리의 온상이다. 신문 기사를 뒤져보니, 김인혜 교수는 “때린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음대의 교육이다”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듯 하고, 그 외 많은 음대 교수들이 그 행동이 폭력인지 아닌지에 대해 찬반이 분분한 듯하다.
정말, 여기까지 읽고 나니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김인혜 교수 포함 음대교수들이 어떻게든 ‘폭력인가 아닌가’로만 연관지어, 행여나 재 점화될 수 있는 ‘음대의 관습화된 비리’를 어떻게든 쉬쉬하며 어물쩍 넘어가려하는 태도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우스운 일이다. 이러면 안 된다. 후배들을 위해서도, 이 사건이 단순한 음대 내에서 교수의 폭행 사건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이 사건은 음대 자체의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 교수 직위해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음대 내에 만연해있는 비리를 공론화시켜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한다. 관습화된 악법을 유용하는 상당수의 교수들에게 경각심을 주어야하는 것이다.
고로 이번 기회에 내가 아는 음대, 특히 성악과에 대한 모든 것을 써보려한다. 비록 모든 학교의 시스템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 일부 잘못되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모든 음대 교수가 이렇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나는 정말 성심성의껏 활동하시는 음대 교수님을 욕보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음대 자체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내가 아는 부분만큼은 모두 진실이라고 장담할 수 있으며 이는 현역 음대생 후배들도 증명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음대는 어째서 내부비리가 많은가에 대해
첫째. 타 학과 교수와는 다른 음대교수의 특성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관련한 루리웹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다, 내 눈에 들어온 리플이 있었다.
[살다살다 대학교수한테 체벌 받았다는 건 처음 들어본다]
[나는 자연대 학부졸업하고 공대 대학원 재학 중인데 학생 때리는 교수는 한 번도 못 봤다]
바로 이런 종류의 글이다.
이런 글을 쓴 여러분들은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이 분들은 ‘음악’을 해서 교수가 된 사람들이다. 결코 ‘공부’를 해서 교수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음대 역시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음대는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다. 여러분들이 다녔던 공부로 대표되는 인문대, 경상대, 공대에서 통하는 상식은 음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성악과 교수들은 사실 제대로 된 학술적 논문 한 편 써본 적도 없고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럼 대학평가에서 교수는 연구실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논문을 학교에 제출해야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냐고? 음대 교수들은 무대에 출연하는 것으로 논문과 똑같은 점수를 학교에서 받는다. 오페라나 연주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타 학과 교수들이 연구하여 발표하는 논문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즉, 음대 교수는 애초에 일반적인 공부(국,영,수)등에 대해서는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상식적인 배움과 지식을 얘기 해봐도, 음대 교수들은 현역 교교생보다도 뒤떨어진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된다. 음대 교수들은 전공 외의 공부는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타 학과 교수라면 학생들의 눈치가 보여 조심해야할 행동들이나 교수로서 생각도 못할 행위도, 음대 교수는 잘 인식하지 못하기에 비상식적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저지르고는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 3교시가 시작된 현재 음대생 A군은 교양수업을 듣고 있다. 그는 오늘 6교시에 레슨이 내정되어있다. 그런데 수업 중에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에게 사정이 생겼으니 오늘은 레슨을 지금 당장 하잔다. A군이 정중하게 지도교수에게 수업 중이라고 연락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교수는 그냥 수업에서 빠져나오란다. “너는 음악 하는 사람이지,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냐”는 거다. 이유는 필요 없다. 제자들의 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본인들도 애초에 일반 과목 공부라는 것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제자들이 음악 말고 다른 과목도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제자는 음악 말고 다른 과목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러나 교수의 명령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업에서 빠져나와 결석처리 되었다.
⒝ 음대생 B양은 며칠 뒤 중요한 가족 행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꼭 참석해야하는 행사다. 그런데 교수가 자신의 연주회가 며칠 뒤로 잡혔으니 그 날 전부 모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 날이 가족행사가 있는 날이다. B양은 고민 끝에 교수님께 연주회에 가지 못하겠다고 사죄드렸고, 교수는 떫은 표정을 지으며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교수에게 불려간 클래스 선배들에게 B양은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다. 선배들은 “네 친척이 돌아가시는 게 아닌 한 그 무슨 일도 교수님의 일보다 우선할 수 없다”며 B양을 다그친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결국 노이로제에 걸려버린 B양은, 가족 행사가 뭐고 전부 불참하고 교수의 연주회에 이를 갈며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내가 음대생들의 고민을 실제로 들어보고 읽은, 아는 사실 중 일부를 적은 것이다. 이와 같거나 비슷한 일이 음대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Yes. 음대는 일반 세상의 상식과는 동떨어져있다. 폭력에 대한 문제도 같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고로 ‘성인이 돼서 어떻게 교수에게 맞을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상식은 음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대는 교수나 학생이나 「우리는 예능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일반적인 사고를 갖지 않는다. 고로 클래식 음대 교수들은 타 학과 교수들과는 다르다.
전공 외에는 특별히 공부해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의 사회이기에, 극히 갈라파고스화 되어 폐쇄적인 분위기 내에서 살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음대의 부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다른 과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을까? 물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학과는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일반적인 학과의 교수들은 그만큼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내 성취한 사람들이다. 물론 부정이 개입되었을 수는 있으나, 그 사람들이 최소한 학문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다. 또한 해당 일반계열 학과 학생들 역시,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어차피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으로 나가 연구원 등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런 교수의 부정에 눈을 감아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 음대 교수와 제자의 일방적인 관계가 악영향을 끼친다.
음대는 일반계열 학과와는 달리, 전부 도제식 교육을 채택하고 있다.
모르실 분은 없겠지만, 굳이 쉽게 설명하자면 1:1 과외와 똑같다. 즉, 1주에 한 번 1시간 정도 교수의 방으로 들어가 1:1레슨을 받는 것이다.
이는 음대의 매학기 필수전공과목으로, 이른바 [전공실기]라고 불린다. 즉, 같은 필수전공이라도 학과생 수십 명이 와글와글대며 강의실 하나에서 공통으로 수업 받는 타 학과와 달리, 음대는 교수와 제자의 1:1수업으로 엄격한 분위기가 요구된다.
그럼 여러분이 생각하는 음대 교수와 제자의 관계는 어떨 것 같은가? 도제식 교육이라 했으니 다들 아시겠지만, 쉽게 얘기하면 군주와 신하의 관계요, 주인과 노비의 관계처럼 일방적이다.
더욱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음대 교수와 제자는「군대에서 소원수리를 적는 것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 부대의 선임과 후임의 관계」에 가깝다. 이해가 가나? 내가 내 후임을 괴롭히든, 겁나게 쥐어 패든, 가혹행위를 시키든 걸리지 않는다. 바로 완전무결한 권력인 것이다.
음대 교수들은 ‘신(神)’이다. 이 세계에서 제자들에게 신과도 같은 대접을 받는다. 짐이 곧 국가라고 얘기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농담 안하고 루이 14세 따귀를 때렸으면 때렸지 그 이하는 아니다. 세상 어딜 내놔도 불편함 하나 없을 정도로 제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이게 유독 심한 곳이 음대에서도 성악과다. 성악과의 경우 교수가 제자를 마구 패거나 견디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거나 책을 집어던지며 나가라고 하면, 제자는 눈물을 머금고 그리해야한다. 교수가 제자에게 개새끼 흉내를 내보라고하면 정말 깨갱 소리를 내며 개새끼 흉내를 내야하며,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도 해야 한다. 여교수는 제자가 예쁜 백이나 목걸이를 가지고 오면 노골적으로 탐을 내서 그것을 받는 일이 상당하다.
믿기지 않는가? 그것이 음대다. 교수는 절대적인 왕권을 쥐고, 자신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 선배 음대생들을 수족삼아 후배음대생들을 다스린다.
사실 우리나라 자체에서 음대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 계열 대학도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일방적인 것은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음대에서 이러한 일이 문제로 자주 불거지는가? 그건 바로 음대 교수들(특히 성악과) 대다수가 상식적인 선 이하에서 성인인 제자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음대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속된 말로 이른바 ‘쪽’도 쓰지 못할까?
답은 간단하다. 취업 때문이다.
일반계열 타 학과는 영어 열심히 공부하고 특정 부분 자격증을 따며 열심히 준비한다면 전공과는 관계없이 취업을 할 수 있다. 허면 음대 나와서 할 수 있는 음대만의 취업이 무엇이 있겠는지 생각해보라. 음대의 취업이란 정말 눈물 나게 뻔한 법이다.
예능이 다 그렇다만,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 참 고달픈 삶이 기다리고 있다. 피아노와 작곡은 그나마 낫다. 피아노 전공자는 피아노 학원을 차리면 되고(피아노 학원도 포화상태일 테니 입에 풀칠만 하면 다행이겠지만) 작곡은 그쪽 계열 회사에 취업하면 된다. 비록 긴 시간동안 박봉을 받으며 일하겠지만, 그래도 전공을 살려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성악이랑 기악은 참 고달프다. 이쪽 계열에서 취업이라 말할 수 있는건 딱 두 가지밖에 없다.
시립, 국립 합창단(오케스트라단)에 TO가 나면 시험을 쳐서 합격하는 방법과 유학을 간 뒤 나이 서른 중반에 돌아와 귀국독창회 후 국내 대학의 강사로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강사로 일하면서 기회를 보다가, 교수 자리 TO가 생기면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다. 그나마 후자는 비정규직이니 취업이라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아무튼 길은 이것뿐이다.
이쯤 말하면 읽는 여러분들도 당연히 짐작이 갈 것이다. 즉, 두 가지 방법 다 국내에서는 자신의 힘 있는 전임교수를 통하지 않으면 그나마도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이른바 지저분한 연줄이다.
교수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목매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에게 생사여탈권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권위를 무소불위로 휘두른다.
그리고 음대생이 되면 여기에서 파생되는 음대 비리의 온갖 참상을 목격할 수 있다. 음대 교수들, 위에 적었다시피 음악외의 공부는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보니 어떤 면에서 보면 참으로 순진하고 단순하다.
이것도 머리를 좀 쓰거나 눈치를 봐서 그러면 욕을 덜 먹을 텐데, 너무 단순하게 행동하니 문제가 된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부정은 분명 누가 신고하면 사법처리까지 받을 수 있는 범죄인데도, 위기의식은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져서 그러한 것들은 「음대의 일반적인 관습」이니 이해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번 김인혜 교수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나도 맞고 자랐고, 그게 음대에서 훌륭한 음악인을 키워내는 관습이다. 이해해 달라’고.
그런데 사건이 벌어진 곳은 교수나 학생이나 국내 최고의 지성들이 모이는 서울대 아닌가. 서울대 일반계열의 교직원들도 음대에 대해서는 완전 동떨어진 세계니 잘 모르고 있다가, 이번 사건에 대한 서울대 음대교수의 소명을 듣고 있자니 웃기는 거다. 그건 관습이고 뭐고를 떠나서, 음대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상식으로 봐야하거든.
그런데 어떤 음대교수들은 왕처럼 대접 받다 이런 일이 터지니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자신이 하는 말이면 하늘의 별을 따오라 해도 따올 제자들뿐이니 흡족해하다가, 교수가 눈꼴시려워 음악 그만둘 각오하고 가끔 폭로하는 사건에 “나는 제자들이 잘되기만을 바랐다. 나는 제자들이 나를 이해해줄줄 알았다”며 억울해하고 제자를 원망하는거다.
교수들은 아주 간단한 것을 생각 못한다. 때린 자는 쉽게 잊지만, 맞은 자는 결코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자라고해서 상처가 어찌 가슴에 남지 않겠는가? 폭행을 포함한 여타 음대의 부정적인 관습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자세히 쓰겠다.
○ 음대의 부정적인 관습들
⒜ 폭행
이번에 주요 논란이 된 사건이다. 사실 난 폭행에 관한 부분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공감을 한다 해도, 실제 폭행을 당한 기분이 얼마나 억울하고 비통할지는 그 당사자 외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난 김인혜 교수의 문하도 아니다. 사건 자체는 어떻게 된 건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으나,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한쪽 손을 들기는 어렵다.
김인혜 교수는 수업 중 배나 등을 때리고 머리를 흔든 것은 도제식 훈육의 일환일 뿐, 폭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제자의 입장에서 스승의 이러한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는 김인혜 교수의 발언이 틀렸다고 할 수 없으나, 음대생들 역시 그것을 스승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상식은 있다. 실제로 성악을 가르칠 때는 배를 때리기도 하고 머리를 잡아 누르기도 한다. 이는 제자들이 결코 교수의 폭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제자는 교수의 폭행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 다른 제자들의 증언도 그러하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실제로 교육이 폭행에 가깝게 이뤄졌다는 뜻이다. 김인혜 교수의 어떤 제자는 실제로 뺨이 퉁퉁 부어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폭행 관련한 부분은, 음대 교수들(성악과 교수들)이 유일하게 ‘성악과식 교육’이라며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김인혜 교수 외 다른 교수들도, 어떻게든 문제를 이 부분만 심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보인다. 왜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변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사(私) 레슨
음대에서 교수가 용돈이나 해볼까하고 제자들이 피 흘려 모으는 쌈짓돈마저 꿍치는 일을 말한다. 이는 음대의 모든 학과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악습으로, 학생과 학생의 부모를 두 번 울게 하는 일이다. 생각해보자.
사 레슨은 음대에서 배정되는 정규시간 레슨을 제외하고, 교수에게 별개로 수업을 더 받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주에 한 번 교수에게 정규시간으로 레슨 받는 것이 규정이면, 레슨을 한 번 더 받고 10~20만원의 돈을 교수에게 페이로 지불하는 것이다.
사 레슨은 학교에서도 윗선에 걸리면 크게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교수들은 휴일에 제자를 자신의 집으로 부르거나, 아니면 사(私) 연습실에서 하기도 하고 그러기도 뭣하면 대범하게 아예 자신의 교수실에서 레슨 한 번 더해주고 돈을 받는다. 교수 입장에선 당연히 쏠쏠한 수익이다. 1시간 투자해서 기십 만원 가량의 현금이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사 레슨은 그 자체로도 금지지만, 문제는 교수가 형편이 좀 되는 제자에게(혹은 안 되더라도) 사 레슨을 받으라고 은근히 종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사 레슨을 받는 제자는 교수의 예쁨을 받는다. 그리고 사 레슨을 받지 않는 제자는 당연히 정규 레슨에서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사 레슨을 하는 교수가 정규 강의를 하는데 성의가 있을 리 없다) 점차 교수의 눈에서 멀어지게 된다.
차별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교수에게 나중에 떡고물 좀 달라고 요청하는 제자는 사 레슨을 받은 제자일 수밖에 없다. 즉, 사 레슨을 받는 제자는 매월 큰 액수의 돈을 교수에게 따로 헌납한다. 이는 본인이 번 돈일수도 있고, 부모님이 내주시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교수가 아닌 강사에게 실력 조금 더 늘려보겠다고 레슨 한 번 더 받는 것까지 뭐라 하고 싶지는 않다. 교수와는 달리 음대 강사는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면 다행일 정도로 상황이 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직 전임교수에게 받는 사 레슨은 정말 크나 큰 문제가 된다. 이는 모든 음대에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악습인데도, 교수나 제자나 전부 어떻게든 쉬쉬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플 따름이다.
⒞ 티켓 강매
이 글을 읽어주는 당신이 만약 음대 출신이 아니라면, 하나 퀴즈를 내보겠다. 만약 제자가 자기 교수가 하는 연주회에 출석한다면, 자제 자신은 관계자니까 연주회 표가 공짜일까 아닐까?
답은 No다. 아니, 관계자이기에 오히려 초대권 등으로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내는 모순이 팽배하다. 우습지 않은가?
표 값을 받지 않는 교수도 물론 있다. 그러나 일체의 표 값을 제자들에게 다 받는 교수는, 표 한 장당 얼마 x 제자(수)라는 공식을 대입해서 미리 그 돈을 제자들에게 걷는다.
예를 들어 자신이 주연으로 나오는 오페라 표 한 장에 5만원, 제자가 10명이면 공연 전에 50만원을 클래스의 회비를 전담하는 학생에게 말해 가져가는 것이다. 그럼 그 학생은 울며 겨자 먹기로 클래스를 돌아다니며 난색을 표하는 선후배들에게 그 돈을 받아내야 한다. 교수의 연주회에 예외나 불참, 그런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럼 여기에서 끝나나? 아니!
제자들은 또 따로 회비를 걷어서 교수 연주회에 필요한 꽃과 케이크과 선물을 산다. 그야말로 교수 연주회 한 번에, 제자들은 생돈을 털어가며 며칠 전부터 정신없이 준비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사실 약과고, 정말 문제 되는 것은 집이 부유한 제자들에게 표를 몇십만원 씩 팔고 친구를 데려오라고 강매를 하는 것이다. 이번 김인혜 교수의 경우, 그 혐의도 받고 있다.
⒟ 수업일수 조작
이번 사건에서 서울대가 학생 폭행만큼이나 크게 문제로 삼는 부분이다.
수업일수 조작은 일반적인 음대에서 교수는 보통 제자 한 명을 1주에 한 번 1시간씩 레슨을 잡는데 그 레슨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모든 대학 수업은 16주까지 있으므로 학생은 한 학기에 16시간의 정규 레슨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까지 교육하는 음대 교수는 없다고 봐도 좋을뿐더러(언제나 그렇듯 타 학과보다 성악과가 월등히 심하다) 대부분의 제자들 역시 그렇게까지 레슨을 full로 받지는 못한다.
생각해보라. 교수는 특별히 열과 성을 다해 제자를 지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은 교수가 되었으니 제자를 맞고 교육한다. 이미 성공을 이룬 입장에서 제자를 받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연장인 것이다.
일단 교수가 되었으면 그 다음부터는 만사가 귀찮다. 제자들 레슨을 하루에 몰아넣고, 툭하면 그 날 교수가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학교에 안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른 학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음대는 자체 내에서 소원수리를 막는 막사처럼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음대교수는 언제나 땡땡이를 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 경우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음대생들 1,2학년은 별 불만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포인트다. 즉, 본인들도 비싼 돈 내고 음악을 배우면서 연습 안 해가면 막상 혼나니까 레슨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게으른 교수와 게으른 제자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 모든 음대는 제자 한 명당 강의록 하나씩을 두고, 매주 해당 제자에게 어떤 곡을 가르치고 어떤 수업을 진행했는지 상세하게 적게 되어있다.
참말로 우스운 일이다. 본인이 장담하는데, 난 이걸 직접 본인 손으로 작성하는 성악과 교수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음대 타 학과 교수도 마찬가지겠지만 혹시나 모르니 이것은 장담은 안하겠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종강에서 몇 주 남기고 교수는 제자들에게 해당 강의록을 배포한다. 즉, 내가 어떻게 너희를 가르쳤는지 교수가 직접 작성한 것처럼 써오라는 거다-_-; 이는 일반적인 계열의 학과등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음대는 자체 내에서 일을 처리하니, 얼마든지 이런 악습이 가능하다.
⒠ 선물 강요
돈 없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눈물 나고 심각한 일이다.
가끔 음대교수(무엇보다 성악과)를 보면 저렇게까지 철이 없나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제자에게 노골적으로 선물을 요구할 때다. 그러면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과연 교수인지 애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참 순박한(?) 음대 교수들이 보통 손꼽아 고대하는 날은 스승의 날과 당신 자신의 생일이다. 그리고 그 교수의 ass를 빠는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1인당 큰돈을 낼 것을 요구한다. 나 같은 경우, 스승의 날에 매년 6~7만원 정도를 내야했다. 정말 악랄한 교수의 클래스는 1인당 10만원 이상을 걷는다. 백여만원을 넘어가는 목돈이 단번에 생기는 것이다. 제자는 클래스당 10명 이상인데, 그 큰 돈을 모아 뭐하냐고?
뻔하잖냐. 명품 선물을 사 바친다. 남자교수는 골프채 세트를 선물로 받기도 하며, 여자교수는 보통 명품으로 통일된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에 애초에 교수들은 웬만하면 자신의 제자들을 집이 꽤 사는 학생들로 채워 넣는다. 돈 없는 학생은 특별히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이상 교수 제자가 되기에는 버겁고 서럽다.
그냥 제자들의 선의라도 큰 문제가 될 건인데, 위기의식 없는 교수들은 한 술 더 뜬다. 그게 뭐냐고?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정해놓고 내가 올해 받고 싶은 선물은 이거라며 제자들에게 귀띔하는 것이다. 그러면 제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걷어 그 선물을 준비해온다. 교수들은 자신이 무슨 선물을 받을지 뻔히 알고, 만족스럽게 받는 것이다.
선물로만 끝나나? 스승의 날이나 교수 생일에는 교수를 모시고 나가 제자들이 밥을 산다. 제자는 교수에게 있어 충실한 용돈 지갑이다. 선물이란 것은 제자가 적정 금액 안에서 스승에게 마음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음대에선 그런 게 없다.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것을 넘어서 이젠 음대의 심각한 부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대학은 음대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 외 연주캠프 강요 등과 타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이러한 부정과 비리들은 ‘관습’이라는 표현으로 음대에 너무나 만연해 있으며 이는 음대생들이 눈물을 떨구게 하는 이유가 되고는 한다.
위 기준은 어디까지나 성악과 기악과가 기준이다. 작곡과는 음악에서도 유일하게 연주가 아닌 학문을 다루는 영역이며, 피아노과는 애초에 제자들이 부자가 적어서(집이 부유하면 보통 피아노를 하지 않는다)특별한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문제는 항상 성악과에서 일어난다. 행여나 이 글을 보는 피아노과, 작곡과 후배들은 “우리 교수는 안 그런데”하고 필요이상으로 깊게 받아들이지 말기 바란다.
○ 마치며 - 음대 후배들, 성악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후배들이여-!
나는 후배들이 이 글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마음속으로 공감하는 이도 있고, 별 생각 없이 글을 넘기는 이도 있을 것이며 “음악 관둔 패배자가 여기서 왜이래” 할 수도 있다.
그래, 나는 이미 음악을 그만뒀으니 선배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내가 졸업한 이후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음대의 세계는 아직 변한 것이 없으니,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선배로서 마음을 담아 충고와 조언을 한마디 하려한다.
후배들아-! 너희 인생은 소중하다. 그리고 너희의 인생은 교수가 보장해주지 않는다.
특별한 재주가 없는 20대 중후반의 음대생이라면, 이제 음악의 짐을 벗어놓아라. 스물 후반에도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미련을 버리고 다른 일을 찾아라.
음대는 [끝까지 하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이 있다. 바로 이 말 때문에 고민하는 여러 후배들이 쉽게 자신이 배운 음악의 끈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성악과 남자 테너 후배들아. 네가 모나코, 스테파노, 파바로티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바리톤 베이스 후배들아. 네가 드리트리나 터펠, 토마스 햄슨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여자 후배들아. 하다못해 국내의 조수미와 신영옥의 재림이라 불릴만한 소리를 내고 있는가?
그래, 재능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은 재능과 노력과 돈이라는 삼박자의 요소가 모두 갖추어졌을때 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재능이 아예 없는 사람은 차라리 낫다. 어설프게 잘하는 녀석들이 바로 끝까지 교수들의 타깃이 되는 것이다. 교수들은 너에게 꿈을 잃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독려한다. 그 꿈을 나이 몇에 이룰 것인가? 네 부모님 얼굴은 보면서 그런 생각 하는가?
후배들아. 꿈은 달콤하지만 현실은 쓰디쓰다. 네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네 삶의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아라. 교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음악 계속 하겠다고 하지 말아라.
지금은 옛날이 아니다. 지금의 음대 교수들처럼, 아무 공부도 안하고 그저 음악만 붙잡고 파서 국내에 돌아와 음대 교수가 될 수 있는 세상 따윈 옛날 옛적에 지나갔다.
그 시대착오적인 시스템에 재수 좋게 안착해서 편하게 안주하며 제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바로 너희의 대다수 음대교수인 것이다.
특히 음대 중에서도 성악과 후배들아. 이 선배는 너희를 볼 때마다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다. 너희 교수도 분명히 너희에게 사 레슨을 요구하고 선물과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잊지 마라. 그 돈은 너희가 버는 것이 아니라면 너희 부모님이 내주시는 것이다. 시간당 1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비싼 돈, 너희가 번 것이 아니다. 너희 부모님의 피와 땀과 눈물이다.
음대를 졸업해서 무엇을 할거냐? 음대 후배들아. 현실을 직시해라.
너희는 타 과에서 너희가 무슨 과냐고 물었을 때 “음대에요” 소리에 “와-!”하고 놀라거나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쭐하지 않았는가?
답답한 후배들아. 사회에서 음대 출신은 놀림감이다. 아예 쳐주지도 않는다. 기업에서 음대의 학력은 고졸과 똑같다. 아니, 고졸 출신보다도 못하다.
음대 나와서 뭐하냐고? 음대를 택한 이상 후배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밖에 없다. 음악을 계속 하던가, 학벌 안 보는 영업을 뛰던가, 장사를 하던가. 그것이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한 순간부터 후배들의 운명인 것이다. 음악을 계속하는데에 대한 일말의 망설임이 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음악의 끈을 벗어던지고 취업 준비를 해라. 매년 주름살이 늘어가는 어머니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가?
후배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미래에 목숨을 걸지 마라. 그것은 교수들의 꾐이다. 정말 될 성 싶은 학생은 자신이 음악해도 괜찮을까하는 조금의 의구심도 갖지 않는다. 그런 학생에게는 자신의 인생에서 음악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무대에 솔로로 설 수 있는 연주가는 음대인 중에서도 0.1%다. 그리고 아쉽게도 후배들 대다수는 냉정하게 말해서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한다.
1. 교수는 결코 널 돌봐줄 사람이 아니며, 네가 왕이나 여왕처럼 떠받들어 모실 존재도 아니다. 너는 너를 사랑해주는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결코 교수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교수에게 머리를 조아릴 필요 없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고 질 나쁜 교수에게 굴복하지 말고 예는 예 아니오는 아니오라고 당당하게 말하라. 그런 학생들이 많아져야 음대가 개혁이 되는 것이다. 네 자신을 사랑하라. 네 자신의 가치를 높여라.
2. 교수의 사 레슨은 받지 말라. 다만 음악 계속할 생각이 있고 형편이 어려운 강사 선생님의 제자라면 그건 본인에 따라 달린 것이다. 교수는 너희를 사랑하는 제자로 보지 않는다. 너희는 교수에게 있어 돈이자 봉이며, 그나마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내칠 수 있을까 시시탐탐 도발을 한다.
제자는 교수에게 있어 “사랑하는 부사수”라기 보다는 “잠재적인 적이자 라이벌”에 가깝다. 교수는 그나마도 네가 정말 뛰어난 학생이라면 네가 잘되는 길을 막아설 것이다.
3. 제발 부탁이니, 성악과는 이태리어니 독일어니 하지 마라. 그 언어들 너희가 다 익히지도 못하지만, 설령 마스터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부탁이다. 영어를 해라. 세상의 모든 대학에서 음대만큼 영어나 토익 얘기가 안 나오는 학과가 없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세상일에 귀를 막고 사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대체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냐. 성악과 후배들아. 전공실기보다 영어가 먼저다. 고음 반음 뚫는 것보다 영어 천 단어를 완벽하게 외우는 것이 네 인생에서 도움이 된다.
4. 정말 음악하고 싶으면, 국내 대학 가지마라. 국내에서 연줄 만든다고? 그 연줄 만드는데 네 부모님의 수천만원이 그냥 깨진다. 그리고 그 연줄이라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줄 아나? 교수가 변덕 한 번 부리면 말짱 꽝이 되는 것이란 말이다.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면,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가든가 아예 시작부터 외국에 가서 눌러 살아라.
돈 되는 후배는 가능하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미국으로 가라. 음악 정말 할 생각이 있으면 외국에 안착해서 그 곳에서 살아라. 안되면 한국에 돌아올 생각하는 너는 이미 목표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음악을 한다고 자신의 전공만을 하지 말기 바란다. 이제는 음대 내에서도 자신의 전공과목 하나만을 잘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대다.
전공외에, 성악과는 지휘를 배운다던가 피아노과는 서양음악사를 마스터하거나 잡지에 기고를 해본다던가하여 다방면으로 진출할 기회를 마련해야한다.
이제 무대에만 서는 음악인의 시대는 끝났다. 음대의 수요와 무대의 소비를 생각해볼때 극히 소수만이 가능하다는건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러니 전공 과목말고 음악의 다른 과목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를 해놓아야한다.
이런 말을 해서 선배로서 미안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교수가 잘못하는 점이 있으면, 참지 말고 당당히 학교 총장을 찾아가라.
- 마치며
물론 음대만 이런 것은 아니며, 같은 예술인 미술과 그 외 모든 일반계열 등도 마찬가지일 거라고는 생각한다. 경우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음대만이 힘들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디나 파벌 문제가 있고, 연구실 같은 곳은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극히 엄격할 것이다. 다만 음대의 세계는 워낙 좁으며 악습이 고쳐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 이렇게 적었으니, 타 학과생의 양해를 부탁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음대 후배들이여. 음악은 아름답다. 클래식을 하는 사람은, 결국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나는 후배들이 교수들에게 돈을 바쳐가며 전공으로 음악을 계속하는 것을 말리고 싶다.
그 음악 하는 시간동안 후배들이 낭비한 시간은, 나중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비교해서 너를 옥죌 것이다. 너는 나이를 먹고 비로소 음악을 계속할 수 없는 사정에 처했을 때 내가 왜 그때 용기 있게 그만두지 않았나 하면서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음악에 자신의 열정을 모두 투자하겠다는 후배라면 말리지 않는다. 집 종교상 자신이 음악하는 것을 응원하고 후원해주는 가정이라면 말리지 않는다. 집에 돈이 넘쳐난다면 말리지 않는다.
후배들이여. 너를 사랑해주는 것은 네 자신뿐이다. 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
후배들이여. 건투를 빈다. 그 외에 똑같이 고생하는 다른 예능과 학생들. 미술과 학생들. 체육과 학생들. 그 외에 공부로 대표되는 모든 학과들 학생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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