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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bestofbest_33375
    작성자 : 부장
    추천 : 218
    조회수 : 16060
    IP : 64.229.***.154
    댓글 : 54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0/01/29 17:29:00
    원글작성시간 : 2010/01/29 10:47:32
    http://todayhumor.com/?bestofbest_33375 모바일
    반석차 30등에서 고려대까지
    요즘 대학때문에 희비가 엇갈리지요.

    이십년전 졸업한 고려대 졸업생입니다.

    대입으로 고민하는 청춘들을 보면서 나의 과거 회상을 얘기해 봅니다.
    충고도 뭣도 아닌 그냥 회상일 뿐이니 그냥 편안하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공부를 지질히도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때 반에서 석차 30등이었으니까요.
    잘할때는 25등 최하 38등까지 해 봤습니다.

    그때는 한 반에 65명 많은 반은 70명 있는 반도 있었어요.
    완전 포기한 막장 꼴찌는 아니지만 중간 이하 성적이었다는 소리지요.

    그 성적가지고 어떻게 고려대 갔냐구요. 당근 못가지요.

    요즘 대학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도 SKY 대학 가는것 쉽지 않았습니다.

    내 학력고사 성적은 고교 성적에 비해 무척 잘 나왔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날 컨디션이 좋아서 잘 찍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점수로는 명지대 공대, 광운공대 정도가 아슬아슬 하다고 
    판정해 주더군요.

    아마 요즘은 반에서 30등 40등 성적가지고는 명지대나 광운공대도 안될것으로
    생각되고 더우기 그때 대학순위와 지금과는 또 다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내 친구중 하나는 광운공대 졸업하고 지금 LG에서 인정받고 잘나가는 
    임원입니다.

    명지대 불합격을 확인하고 바로 재수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노량진에 대입 재수학원인 대성학원을 들어갔는데 무슨놈의 학교도 아니고
    학원이 입학시험을 다 치루더군요.

    대학도 떨어진 놈이 학원도 떨어지면 정말 살맛 안났을텐데
    다행히 학원은 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열반 편성에는 당연히도 열반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서럽더군요.

    대성학원 열반에서 고등학교 중학교 친구들 많이 만났는데 공부 잘했던
    놈은 거의 없었고 반에서 양아치는 아닌데 공부 못하던 녀석들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나도 그들중 하나였구요.

    하긴 양아치 짓거리하면서 애들 괴롭히던 놈들이 재수학원에 올 리가 없지요. 
    그녀석들은 도시의 뒷골목으로 제자리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대학 떨어지고 재수학원에 첫 등교(등원?)하던 그날 아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대성학원 정문은 노량진 삼거리에서 영등포쪽으로 나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리면 횡단보도를 건너 학원 정문까지 5분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일곱시니까 아직은 러쉬아워가 아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버스속의 사람들이
    전부 나만 쳐다보는것 같았고 어디선가 "저기 재수생간다 저기 봐라" 라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후다닥 걸어서 학원정문을 통과해 들어갔지요.

    재수학원 첫시간은 국어시간이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노선생이었는데, 확실히 실력이나 가르치는 노하우는 학교선생에 
    비할바 없이 노련했지요.

    그러나 그 선생의 첫마디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학생분들은 대학에서 받아주지 않아 반품된 상품이니, 여기서
    일년동안 잘 수리해서 좋은 대학에 가도록 하시오 허허허"

    교육자로서 차마 입에 담을 말은 아니라 하겠지만, 그 선생은 학원선생이지, 
    나의 인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인지라, 그의 
    말은 뼈저리게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대학에 갈 자격에 미달되니, 기준에 미달해 불합격된 상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재수생인 동시에 납품이 거부된 불량품이었습니다.

    학원이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일곱시였습니다.
    문을 닫는 시간은 밤 열한시였습니다.

    수업시간은 여덟시 반에서 다섯시였지만, 학원이 오픈한 시간에는 교실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남아서 공부하는 것은 학생들 자유였습니다.

    요즘말로 자율학습과 비슷한 것인데, 듣자하니 요즘 학교에서는 반강제로 
    자율학습을 시키는 것 같은데 당시에 학원은 말 그대로 완전 자율학습이었습니다.

    정말 자율이라는 것은 무섭더군요.

    아무도 남아서 공부하라는 소리나 권고 안합니다.
    그래도 다들 기를쓰고 일곱시에 와서 공부하고, 밤 열한시까지 남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학원 책걸상은 상당히 열악했습니다.
    쿠션 이런거 없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좁디 좁은 책상입니다.

    이런 책걸상에 아침 일곱시에 엉덩이를 붙이면 밤 열한시까지, 화장실에 오줌누러
    가는 시간을 빼고는 그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는 일이 없었습니다.

    한달 두달이 지나니 1/4 정도는 학원에서 사라졌습니다.
    게을러서 사라진 사람도 있었겠고, 나름대로 공부방법을 찾아서 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게 마지막 절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중고등학교 내내 새벽잠 설치면서, 전날 먹다남은 밥으로
    도시락 싸면 맛없다고, 연탄불에 새로 밥해서 도시락 싸주었던 어머니의 그
    정성을 생각하면 도저히 해서는 안될 재수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또 실패하면
    정말 나는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재수생활 내내 어머니의 새벽밥은 계속되었습니다.
    한마디 불평도 없이, 불편한 표정 한조각조차 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대학에 실패한 재수생, 그것도 학원에서도 열반, 성적은 아직 
    고만고만.

    아침 일곱시에서 밤 열한시까지, 한자리에서 공부하고, 졸려 못견디면 그자리에서
    엎드려 잠깐 자고, 그자리에서 도시락 까먹고, 다시 같은자리에서 공부하고..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버린듯이 생활했습니다.

    매달 보는 모의고사 성적은 처음에는 요지부동이었는데, 두달정도 들입다 파니까
    조금씩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석달째 우반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엉덩이가 풍선같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한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욕창이 생겼던 
    것입니다.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밤 열두시에 문 걸어잠그고 혼자 고름을 짜 냈습니다.
    재수하는것도 천하에 불효라 죄송해 죽을 지경인데 재수공부 한답시고 
    엉덩이에 탈이 났다고 도저히 말을 못 하겠더군요.

    피고름이 정말 한도 끝도없이 나오더군요. 다 내가 노력을 안 한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몇달동안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동안 놀았던 것을
    지금 일년에 압축해서 한다는게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사실 고등학교
    학문이란 것은 말 그대로 딱 고등학교 수준일 뿐이라, 정말 집중해서 파고들면 
    불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시험때까지 계속 그렇게 했다면 아마 서울대학교는 충분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렇게 하다가 막판에 도저히 지쳐서 그만 좀 풀어져 버린것이
    탈이었는지, 성적은 어느정도까지 오르다가 더이상 오르지 않고 고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게 서울대 농대, 연세대 이과대, 고려대 공대, 이과대 
    수준이더군요. 

    사실 고등학교 반에서 30등 40등짜리가 이정도면 감지덕지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더 노력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학력고사 결과가 나오고, 학원에서 컨설팅 해준 대로 고려대 공대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물론 그당시에도 눈치작전이니 뭐니 난리도 아니었지만 내 마음은
    지금 생각하면 당돌할 정도로 담담했습니다. 그냥 고려대에 원서를 넣고 잊어
    버렸습니다.

    사실 학원 입장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SKY 대학에 몇 명 들어갔다는 것은
    그 학원의 매출과 직결되는 일인지라, 학원의 대입 컨설팅을 따른다는 것은
    99% 안전지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데, 괜히 욕심때문에, 의심때문에 무리수를
    두면 마음고생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합격이었는데 과 수석은 아니었습니다. 과 수석은 서울대 갈 실력인데
    장학금 받고 들어온 녀석이었지요. 과 수석은 바라지도 생각하지도 않았구요.

    지금 대학 졸업한지도 오래되었고 그사이 군대다 직장이다 해서 많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물론 수험생의 실력을 가늠하는 것이니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진짜 게임은 졸업한 후에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대기업) 최단기 상무승진을 한 직장선배님은 지방대 공대 출신
    입니다. 내가 신입때 내 사수를 하던 대리였는데,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다가
    지방대, 시골 출신이라, 당시 박통 전통을 지나면서 사회 분위기가 왠지 전라도 
    출신은 꺼려하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실로 대단한 분이라 아니할 수 없겠
    습니다. (임원 승진은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라 다소 정치적인 판단도 가미가
    됩니다.)

    그러나 이분의 면면을 보면, 일단 자신의 전공에 빠삭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형님처럼 후배직원 정말 잘 챙겨주고, 무엇보다 공정하며, 기분나면 새벽 술자리도
    아래 직원들 끌고다니며 2차 3차 같이 할 줄도 아는 멋진 분입니다. 

    지금 수험생분들에게는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일생일대의 중요한 문제겠지만,
    막상 사회생활에서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는 정말정말 아주 작은 부분이랍니다.

    사회생활은 권모술수가 판을 친다 하지만, 사실 권모술수는 잠시 잠깐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 뿐이며, 어차피 사람들은 진실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진실함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무엇보다 귀중한 자산이며, 성공의 밑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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