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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333013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81
    조회수 : 5735
    IP : 220.81.***.41
    댓글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2/18 12:38:31
    원글작성시간 : 2011/02/18 11:24:45
    http://todayhumor.com/?humorbest_333013 모바일
    『백제 멸망의비밀 불명예와 오욕을 씻은 의자왕(1)[BGM]













    아...이거 어제 우리 역사 제대로 한번 알려보겠다고

    출근해서부터 작업하다가 한방에 날리고 자폭했던 자료인데...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올려봅니다.

    재미는 없지만 정말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우리의 바른 역사라

    저 개인적인 견해지만...공게 회원님들께서는 꼭 한번

    정말 나중에 읽을게 없을때 읽으셔도 되니 정독 한번 해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올립니다(__)

    참고로 저도 역사 무지 싫어합니다 항상 성적표 "미"아니면 "양"

    이런 제가 이 글을 읽고 의자왕하면 삼천궁녀만 떠올랐던게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느껴지네요ㅡㅜ















    이해하기 쉽게 간략시 3줄 요약하자면...




    1.백제가 멸망하지 않을수도 있었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의자왕이 당나라에 잡히며 백제가 멸망한다.

    2.의자왕을 사로잡아 당나라에 투항한 부하는 당나라에서 잘먹고 잘살았다.

    3.의자왕의 삼천궁녀는 허구이다.












     


     


    1. 의자왕 삼천궁녀?


                승자의 기록은 누명과 오욕으로 이어지고!...


     


     


    신라 5만 대군을 맞아 처절하게 싸운


    백제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의 투혼. 


     


    황산벌 전투


     


    그것은 기우러져 가는 백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기나긴 누명과 오욕은 시작됐다.


     


    660년 7월 18일.


    웅진성의 달빛 아래선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었다.


     


    1,300여 년의 세월,


    묻혀졌던 진실이 드러났다.


     


    그것은 철저하게 가려진 백제 멸망과


    의자왕 항복에 관한 충격적인 역사보고서였다.


     




     




    "저는 지금 <삼국사기> '의자왕편'을 보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의자왕 하면


    향음, 삼천궁녀, 망국지환 같은


    치욕적인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왕이었습니다.


     


    헌데 이러한 '의자왕이 재위 기간 내내 대내외적으로 의욕적인 정복활동을 펼쳤다'는 것이 의외군요.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허망하게 백제의 멸망을 보고말았던 이 의자왕이


    활발할 정복전쟁을 펼이고 강력한 왕권강화를 시도했다?


    사실 좀 연결이 되지않는 부분입니다.


     


    얼마전 백제 멸망을 담은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의자왕의 최후를 담은 충격적인 역사를 추적해보겠습니다."


     


     


    2.  '대당좌위위대장군 예식진', 그는 누구인가?


     


     


    중국 낙양.


    황하의 물줄기가 중국 고대 문명을 이루었던 곳이다.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던 낙양에서는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유물이 발굴돼 세상을 놀라게 한다.


     


    뜻밖의 유물이 발견되어 고대사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얼마전 이곳에서 백제와 관련된 유물 한 점이 발견됐다.


     


    왜 백제 유물이 낙양에 등장했을까?


     


    제작진은 이 유물의 행방을 수소문해봤다.


     


    "백제국 유물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건 탁본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백제국 유물 들어본 적 있으세요?"


    "들어본 적 없어요."


    "당대의 묘지명이 나왔다는 것도 못 들었어요?"


    "당대 묘지명은 아주 많아요."


     


    "이건 언제 꺼예요?"


    "청나라 시대요."


    "그럼 백제국 비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없습니다. 신경을 안 써서... 아마 아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곳에는 도굴성 유물들도 있기 때문에


    출처나 행방에 대해 솔직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수소문을 하던 우리는


    그 비를 한 중국학자가 사진으로 찍어갔다는 정보를 들었다.


     


    제작진은 일단 그 교수를 만나 유물의 행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는 오랫동안 낙양에서 고대문물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오쩐화 교수였다.


     


    중국 고대 금석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다.


    조오쩐화 교수는 유물의 탁본을 사진으로 갖고 있었다.


     


     


     


    사진은 두 장으로 된 묘지명이었다.


    묘지명은 망자의 무덤에 넣는 금석문이다.


     


    무덤의 주인공은


    '대당좌위위대장군 예식진' 묘지명으로


    정 3품의 고위직을 지낸 사람이었다.


     


    "좌위위


    우위위와 더불어 전부 당 왕조의 16위 중 하나입니다.


    이 16위는 조정의 금위군입니다.


    전문적으로 황제와 조정 그리고 수도의 안전을 도모하는 부대의 수장입니다.


    황제가 신뢰하고 의지했던 사람입니다."


                                                                   -조오쩐화 교수(고고문물연구가)


     


    그런데 묘지명에


    '백제웅천인(百濟熊川人)'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백제 웅천,


    즉 웅진, 충남 공주 출신이었다.


     


    어떻게 백제인이 당나라에서 고위직을 지냈을까?


     


    유물은 진품이다.


     


    취재 도중 조오쩐화 교수는 어딘가에 전화를 해보더니


    유물 소장 기관이 방송에 나오기를 꺼린다고


    좀더 알아보고 나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왜 백제 웅진 사람이 이곳에 묻힐 것일까?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몇일후 다행히도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유물을 취재진에게 보여줄 수는 있지만


    방송 촬영은 안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 설득하기로 하고


    급히 유물이 있는 <낙양2이공대학>으로 갔다.


     


    우린 조심스럽게 묘비명을 촬영하게 해줄 것을 부탁했다.


     


    "왜냐하면 지금 아직까지 연구 단계에 있습니다.


    아직 공개를 하지 않아서 제 생각에는 찍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시린후이(낙양 2이공대학 문물연구원)


     


    그러나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묘지명이 창고에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있어서 촬영이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손님이 몇 분 오셨는데


    우리 진열실을 보고 싶어 하세요."


                                         -   시린후이(낙양 2이공대학 문물연구원)


     


    간신히 촬영 허락을 받았다.


    우리를 안내한 곳은 이 학교의 탁본전시실이었다.


    창고에서 꺼내온 문제의 묘지석이 탁자에 올려지는 중이었다.


     




    사진속의 묘지명이었다.


    아직 중국에서도 실물이 공개된 적이 없다.


     


    지석과 덮개인 개석으로 된 묘지명


    글자 한 자 파손된 게 없었다.


     



    측면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개석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당나라의 대표적인 길상문인 당초문.


     


    지석의 사면엔 십이지신


    마치 종이에 그린 듯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선명하게 새겨진 '백제웅천인'.


    백제, 마치 고대 백제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묘지명은


    중국에선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가장 유행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대거 매장되었다.


     


    묘지명의 글자를 정확히 알기 위해 탁본을 떠보았다.


     


    묘지명은


    망자와 함께 바로 묻히기 때문에


    당대의 기록들이 왜곡되지 않고 기록되어 있어


    어떤 기록물보다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지석에는 빼어난 글씨의 문자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문장의 내용은 묘지명 특유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되어있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예식진(禮寔進),


    할아버지 예다와 아버지 사선,


     


    모두 백제 최고 직위인 좌평을 지닌 유력 가문 출신이었다. 


     


    '祖左平譽多' (조좌평예다)


    '父左平思善' (부좌평사선)


      




    614년에 태어나서 672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 묘지명은 백제 출신 한 장군의 죽음을 너머


    백제사에 엄청난 비밀을 담고 있었다.


     


    '대당 좌위위 대장군 예식진 묘비명'


    '백제 웅천인'


    좌평 집안.


     


    예식진은 누구인가?


     


     


    3. 백제 신흥 세력 예씨 집안!


     



    "이것은 저희가 어렵게 입수한 '예식진 묘지명'의 탁본 되겠습니다.


    상당히 정밀하게 만들어졌죠.


    원래는 죽은 사람 묘지에 묻혀 있었겠지요.


     


    1,300년만에 드러난 예식진 묘지명.


     


    이 사람은 원래 백제 사람인데


    당나라에 의해서 중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당나라의 높은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당나라에 왜 갔을까요? 


     


    예식진의 생몰 연대를 보면


    614에 태어나 672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생존 시기가 백제 멸망과 겹쳐집니다. 


     


    그렇다면 백제가 멸망하던 시기를 찾아보면


    예식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660년 11월 1일.


    당나라 수도 낙양에선 특별한 행사가 이루어진다.


     


    당 고종은


    이곳에서 소정방이 백제에서 잡아온 포로들을 접수했다.


     


    포로들은


    의자왕과 왕자 융과,


    88명의 백제 고위 관리들,


    그리고 1만 2천여 명의 백제 백성들이었다.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직 예식진도 이들 중 한 명이었을까?


     


    그 가능성을 왜의 사신 이키도구라치 증언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그는 당나라에 머물다가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그의 목격담을 보자.


     


    "...백제왕 이하 태자 융 등 왕자 13인,


    대좌평 사택천복, 변성 이하 37인, 모두 50여 인이 조당에 나가..."


                                                                                                    - <일본서기>, 제명천황 편


     


    왕족 및 귀족 포로들은 백제 최고위직이었다.


    그렇다면 최고위직 좌평 예식진도


    이때 전쟁 포로로 당나라에 끌려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백제 최고 고위층 집안인 예씨가 


    백제 멸망할 때까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국립부여박물관. 사택지적비.


    이 비는 의자왕 때 좌평을 지낸 사택지적이 인생무상을 한탄하며 세운 비다.


     


     


     


    백제는 부여(扶餘), 사(沙), 진(眞), 목(木), 해(解), 국(國), 협(協), 등이


    지배층의 성씨들로 당연히 백제 금석문에 그들의 성이 등장한다.


     



    "종전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가문의 존재가


    이 묘지명을 통해서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좌평을 대대로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씨 집안은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의아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이도학 교수(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최고 가문이면서 비문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예씨 가문의 비밀.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흑치상지(黑齒常之, 630?~689, 부여씨->흑치)의 묘지석에서 찾을 수 있었다.


     


     


     



    흑치상지의 묘지석은


    1920년대 낙양에서 발견되어


    현재 남경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흑치상지는


    예식진과 같은 시대의 장군으로


    좌평 다음 직급인 달솔을 지냈다.


     


    백제 멸망후 당에서


    예식진과 비슷한 우무위위대장군(軍)을 지냈다.


     


    그런데 흑치상지 비문에는


    증조부 때부터 집안 내력이 적혀 있다.


     


    曾祖 文大 (증조 문대)


    祖 德顯 (조 덕현)


    考 沙次 (고 사차)


     


    "중국에서 발견된 당 시대의 묘지명은 선조를 설명할 때


    보통 그의 증조부부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흑치상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식진의 묘지명은 그의 조부부터 시작했습니다."


                                                                       - 조우쩐화 고고문물연구가


     


    예식진의 묘지명에 왜 증조는 기록되지 않았을까?


     


    예식진은 웅천,


    지금의 공주에서 614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략 590년생,


    할아버지는 대략 570년생이 될 것이다.


     


    조부와 아버지는


    무왕 때에 좌평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식진의 묘지명을 보면


    증조부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할아버지대부터 좌평에 오른 것으로 기록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으로 비쳐볼 때에 


    예식진 가문은 할아버지대에 와서 중앙 정계에 진출하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판단이 됩니다." 


                                                                                - 이도학 교수


     


    예씨 가문은


    600년대 백제 신흥 정치 세력인 셈이다.


     


    가문의 역사가 짧더라도 어딘가 예씨 가문의 흔적이 있지 않을까?


     


    의문의 장군 예식진,


    그의 족적을 찾아 예식진 생존 시기 한중일 기록을 샅샅히 찾아보았다.


    어디에도 예식진은 찾을 수 없었다.


     


     


    4. '웅진 사람 예식진(예寔進)'?


                                         '그 장군 예식(예植)'?


     


     


    중국 정주, 하남성도서관


     


    그런데 <신당서> '소정방전'에서 또 다른 예식진을 찾을 수 있었다.


    소정방은 660년에 나당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다.


     


    '소정방전'의 내용 중, 


    의자왕이 항복을 한 대목에,


    웅진성의 장군 예식이 의자왕과 함께 항복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장군 예식이 의자왕과 함께 항복하였다."


                                                            - <신당서> '소정방 열전'


     


    의자왕은 660년 7월 18일,


    사비가 아닌 웅진성에서 항복한다.


     


    그런데 왜 굳이 '그 장군 예식과 함께 항복했다'고 기록했을까?


    의자왕과 함께 항복한 그 장군 예식은 누굴까?


     


    '그 장군 예식(예植)'?


    '웅진 사람 예식진(예寔進)'?


     


    대대로 좌평을 지닌 웅진 사람 예식진(예寔進)과,


    의자왕과 함께 항복한 그 장군 예식(예植)의 관계는?


     


    예식진 묘지명을 통해


    '예식'은 같은 웅진성의 예씨 집안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예식(예植)'


     


    그런데 예식은 의자왕과 같이 항복할 때 이외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1,300년전에 홀연히 사라진 예식


    1,300년만에 홀연히 나타난 예식진.


     


    가문, 직위, 활동 시기, 너무나 일치한다.


      


    중국 섬서성, 섬서사범대학.


     


    경북대학에서 당과 한반도 관계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배근흥 교수


    예식 장군을 독특하게 해석했다.


     


    예식과 예식진은 같은 집안 이상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추정컨대 예식은


    당나라에 도착한 뒤에 자기 이름을 쓸때,


    중간에 변화가 생겨 예식을 한자 예식진으로 바꾼 겁니다.


    지금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이 두 사람은 동일인입니다."


                                                  - 배근홍 교수(섬서사범대)


     


    <삼국사기>에도


    동일인의 이름을 다르게 표기하는 방법은 흔히 있다.


     


    '龍樹 一云 龍春' (용수 또는 용춘 )


    '陳純 一云 陳春' (진순 또는 진춘)


    '欽春 一云 欽純' (흠춘 또는 흠순)


     


    "그 당시에 한자에 어떤 글자를 쓰느냐는


    가차(한자음만 빌려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음만 같으면 거의 같은 글자를 쓴다고 보고,


     


    한 자를 더 쓰느냐 덜 쓰느냐는 표기상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동일인물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 김영관(청계천문화관 관장, 백제사 연구)


     




     


    당의 정 3품 예식진은


    패전국 백제의 예식장군이었다.


     


    당의 대장군 예식진 = 백제웅진장군 예식


     


    그러나 예식진의 묘지명은


    예식진과 예식이 동인물이라는 차원을 넘는


    백제 마지막날의 충격보고서였다.


     


    백제 예식장군은 전쟁포로에서 어떻게 당나라 대장군이 되었을까?


     


     


    5. 18만 나당연합군의 총공격,


                   의자왕, 사비성에서 웅진성으로 후퇴!~


     


     


    "그렇다면 예식진은 의자왕의 최측근이었던 셈입니다.


    헌데 왜 의자왕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 즉 부여가 아닌,


    웅진, 즉 공주에서 항복을 했던 걸까요?"


     


    의자왕은


    660년 7월 14일 웅진성에서 예식장군과 함께


    방어선을 구축하고 나당연합군에 대비하고 있었다.


     


    의자왕의 친고구려 반당 노선은


    당나라와의 마찰을 빚고,


     


    20년에 걸친 신라의 친당 외교에 맞물러


    당나라의 침공을 초래한다.


     


     


     



    660년 6월 18일 당군 13만 명 백제 침공


     


    당군은 660년 6월 21일,


    서해를 가로질러 인천 앞바다 덕물도에 도착했다.


     


    예상치못한 나당연합군의 전격적인 양동작전은


    백제 방어대책에 큰 어려움을 줬다.


     


    70평생을 신라와의 전투로 단련된 백전노장 의자왕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시간이 문제였다.


     


    나당연합군은 엄청난 속도로 진격하고 있었다.


    신라는 이미 백제의 요충지 탄현(논산)을 넘어섰다.


     


    삼국시대의 보편적인 전쟁은


    거점성을 점령한 후


    주변을 평정하며 차근차근 진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전투의 기본틀을 깨어버렸다.


    목표는 영토가 아니라 백제 멸망!


     


    중간 방어성들을 무시하고


    곧바로 사비성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전황은 긴박했다.


     


    의자왕은 신라군이 없이는 당군이 섣불리 싸우지 않음을 간파하고


    결사적으로 돌진해오는 신라군 저지를 위해 


    계백의 5천결사대를 급파했다. 


     


     


     



    계백의 5천 결사대는


    직진해오는 신라군을 저지하기 위해서


    사비로 가는 길목 황산벌(논산)에서 사생결단의 전면전을 벌여야 했다.


     


    "소수의 정예부대를 지닌 계백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전술은


    아마도 성에 들어가 수성전, 장기전을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신라가 취한 전법이


    성들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수도 사비성으로 곧바로 진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계백으로서도 신라군을 저지하기 위해


    벌판에 나와 저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판단이 됩니다." 


                                                         - 나종남 교수(육사 군사사학과)


     


    5천결사대의 중요한 임무는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660년 7월 9일부터 7월 10일까지 황산벌에선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신라의 5만군은


    백제의 5천결사대의 철벽 방어에 가로막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결사대의 전과는


    4전 4승, 믿기지 않는 전과를 올렸다.


     


    계백의 5천결사대는


    이틀 동안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숫적 열세로


    우리 역사상 가장 비장한 장면을 남기고 황산벌의 전설이 되었다.


     


    백제군은


    사비 남쪽에서 18만연합군과 최후의 전면전을 벌이지만


    정면전은 역부족이었다.


     


    일말의 사상자를 내고 패배한다.


    신라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당연합군의 전투력이었다.


     


    결국 개전 5일째인 660년 7월 13일,


    의자왕은 웅진으로 지휘부를 옮긴다.


     


    그날밤 사비도성은


    더 이상 연합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함락된다.


     


     


     


    전선은 웅진의 공산성,


    2차방어선으로 이동한다.


     


    대규모 나당연합군을 상대하기에 평지인 사비성보다


    험준한 웅진성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의자왕이 2차방어선을 웅진으로 정한 것은


    웅진의 유력 가문 예씨 집안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묘지명에 나오는 예식의 할아버지 예다와 아버지 사서,


    그들도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 때에 웅진성을 지키고 있었다.


     


    무왕은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627년,


    군사를 일으켜 웅진성에 주둔했다.


     


    4개월 동안 웅진성은 임시수도였다(삼국사기).


     


    630년에도 무왕은 사비 중건을 위해


    웅진성에서 7월까지 4개월간 머물렀다(삼국사기, 무왕 31년).


                                           


    "예식진의 할아버지, 아버지좌평이었다고 한다면


    그들이 좌평으로서 활동한 시기는 무왕시대로 추정을 해볼 수 있는데,


     


    무왕시대부터 왕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의자왕도 예씨 귀족에 대해 기대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이문기 교수(경북대 역사교육학과)


     


    예씨 집안과 더불어


    의자왕이 웅진성을 제 2의 방어선으로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임존성(충남 예산)이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존성


    백제 멸망후 부흥운동세력이


    나당연합군과 3년 동안 대치했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곳의 흑치상지 가문 또한


    의자왕의 든든한 엄호세력이었다.


     


    사비에서 4만 나당연합군이 웅진성을 공격하면


    임존성의 흑치가문이 측면 지원하는 양상으로 전선이 그어진다.


     


    의자왕이 항전을 할 의지가 있었던 것은


    웅진성이나 임존성 같은 지방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백제 지방군의 세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확인해주는 유물이 있다.


    백제에 주둔했던 당군 사령관 유인원 기공비다.


     


    유인원 기공비(충남 부여).



    마모된 희미한 글자에서 백제 지방군의 활약상을 볼 수 있었다.


     


    "백제부흥군이 벌떼처럼 모이고


    고슴도치처럼 일어나


    산과 골짜기에 가득 찼다."


     


    "흑치상지복신이 부흥군을 모을 때 순식간에 3만 명이 되고,


    또 곧 200여 성을 회복 했다는 것은,


    백제 지방군들이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여전히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노중국 교수(계명대 사학과)


     


    개전 5일만에 사비성을 함락한 완벽한 군사작전.


    그러나 나당연합군은 의자왕을 놓치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백제 지방 행정은


    5방(五方 - 동,서,남,북,중방)으로 나누어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연합군의 사비 직공으로


    지방군의 사기는 고전되었다.


     


     




    제가 자른게 아니라 자료가 너무 많으니 알아서 잘리네요(__)

    2부에서 잘린 부분 뒤부터 올리겠습니다(__)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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