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헨리는 가신들에게 왕비와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왕비의 육체는 내안의 욕망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네.
하지만 난 곶아가 아니야.
다른 여인과는 그것을 왕성하게 치룰 수 있었으니
이는 내 책임이 아니네.
나는 왕국을 위해 자식을 갖진 않을 걸세"
그리고 궁 전체가 이 결혼해 대해 입에 올리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안나는 영어실력이 딸린지라
자신이 도마위에 올려져 썰림을 당하고 있는지 몰랐지요.
한편 헨리의 딸 엘리자베스는 새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이 짧은 편지로 왕비인 당신에게 무한한 존경을 바치고
어머니인 당신에게 절대 복종하겠다는 뜻을 보이고자 합니다.
아직은 어리고 연약한지라 축하한다는 말밖에 달리 할 게 없네요.
제가 어머니를 믿고 따르듯
폐하께서도 제게 호의를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여섯살짜리 공주의 글에 캐감격한 안나가
헨리에게 편지를 보여주면서 베스(엘리자베스)를 궁에 데려오자고 합니다.
안그래도 짜증난 헨리는 이를 묵살하며
크롬웰에게
"그 애가 생각하는 어머니와는 다르니 만날 생각 하지 말라고 전하게. ㅡㅡ"
라고 퉁명스레 말하죠.
한편 앞서서 말했듯이 유럽정세에 변화가 오는데요.
헨리는 서둘러 안나를 제거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돌연 안나의 대관식 계획을 취소해버리죠.
한편 순진한 안나는 시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헨리 폐하가 침대로 와서 입맞춤하고는 손을 잡고 '잘 자, 여보' 라고 해요.
그리고 아침에도 키스해주면서 '잘 잤소, 여보?'하고 속삭이죠."
왕비가 명목뿐인 허수아비 아내라는 사실을 아는 시녀들은
묘한 시선을 주고 받습니다.
시녀들은 안나가 곧 왕자님을 갖게 빈다고 말하죠.
그러나 안나가
"나는 아직 임신하지 않았어요."
라고 합니다.
에지콤 부인이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자
"그냥 알아요."
라고 대답하죠.
그러자 에지콤 부인이 대담하게
"왕비님은 아직 처녀이신 것 같네요!"
말합니다.
안나는 까르르 웃으며 대답합니다.
"매일 밤 같이 자는데 어떻게 처녀일 수 있어요!ㅋㅋ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이번에는 러틀랜드 부인이 나서서는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온 나라가 염원하는 왕세자를 갖기 힘들 거에요."
안나, 당황스런 표정을 짓더니
"아니, 그냥 모른 채 살래요. 원하는 만큼 충분히 폐하의 관심을 받고 있어요."
라고 단호하게 끝을 맺습니다.
시녀들에겐 그렇게 말했지만 안나의 머릿속에도
이 빛나는 결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캐서린 왕비에게 그랬듯이 날 쫒아내려는 건가?
앤 불린에게 그러했듯 내 목을 치려는 걸까?
안나의 속마음은 정확히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녀는 최대한 수그리고 행동하죠.
1540년 3월에 헨리는
안나와 로레인 공작 아들의 결혼 협약이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안나는 중복 혼인을 맺은 셈이요,
자신은 안나의 배우자가 아니니
이 결혼을 지속시키는 것은 어긋난다고 말합니다.
"내 양심의 동의를 얻으려고 무던히 애써봤소."
이에 추밀원은 왕이 혼인무효의 명분을 찾으라는 것으로 알고는
조사에 착수합니다.
구교세력이었던 노퍽 공작과 가디너 주교 등은
안나가 가톨릭 전통의식을 기꺼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축출해내려고 애를 씁니다.
이에 신교세력인 크롬웰의 위치는 흔들리게 되죠.
4월 17일 헨리는 크롬웰을 에식스 백작에 임명시킵니다.
이에 대해 제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과 더불어
당시의 구교 세력은 의문을 가질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이는 헨리의 지독히도 잔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헨리는 크롬웰을 안심시킨 후에
필살기를 날릴 작정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시기즈음인 1540년 4월
헨리는 궁 안의 어떤 여인과 지나치리만큼 친밀하게 지냅니다.
그 이름은 캐서린 하워드였죠.
캐서린 하워드에 대해서는
이전 시리즈에서 썼으므로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5월이 되어 5월제가 열립니다.
헨리는 안나와 나란히 마상창시합을 참관했죠.
크롬웰은 자신의 동지(?)를 불러 다음과 같이 투덜거립니다.
"왕은 여전히 왕비가 마음에 안 드나 보네!
처음부터 그랬지. 왕비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섯 달이 다되어가도록
처녀신세라구!"
헨리는 크롬웰 앞에서 계속해서 찡찡거립니다.
왕비의 고집이 쇠심줄같다고 찡얼거리죠.
(정작 근심으로 젖어들어가는건 왕비이건만
헨리는 타고난 본성대로,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죠.)
한편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여 불안한 크롬웰은
왕비에게 좀 더 나긋나긋하게 굴라고 충고합니다.
1540년 6월 10일 크롬웰은 항상 그랬듯 내실청에 들어갔다가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노퍽 공작에게 체포됩니다.
그리고 크롬웰이 수 많은 타인을 런던탑으로 이송했듯
그 자신도 런던탑으로 이송되죠.
이에 대다수는 고소해합니다.
그리고 6월 24일에 안나는 역병이 돈다는 이유로
리치몬드의 고성으로 보내어집니다.
역병이 돌았다면 제일 먼저 꽁지빠져라 도망갔을 것은 헨리였을 것임이 분명하기에,
안나 역시도 '역병'이라는 이유는 명분에 불과함을 알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안나는 군말없이 런던을 떠나죠.
6월 29일에 크롬웰에 대한 사권박탈 법안이 통과되면서
그는 역적으로 몰려 목숨, 명예, 재산이 모조리 박탈당하게 됩니다.
크롬웰은 왕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씁니다.
"제게 있어 폐하는 주인보다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제가 지은 죄를 부디 용서해주소서.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 고의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7월 초에 크롬웰은 자신이 처형될 것임을 알고
왕에게 절규로 끝맺은 탄원서를 보내죠.
"최고로 관대하신 왕이시여,
자비를 바라옵나이다.
부디 자비를, 자비를!"
헨리가 이에 꿈쩍도 안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죠.
7월 5일, 리치몬드에 있는 안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왕명이 전달됩니다.
"본인과 왕비의 양심의 죄를 덜어내고
왕국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신료들과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신의 법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7월 6일 의회에서 의원들은
안나♡헨리의 결혼의 적법성에 대해 심사하도록 헨리에게 청원합니다.
그리고 의원들은 오후에 안나를 찾아가서는
이혼 절차에 대해 동의를 얻으려 했죠.
안나는 침착하게 유능한 재판관인 성직자들이 재판을 해줘서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540년 7월 9일 마침내 판결이 나옵니다.
의회가 제시한 세가지 이유로 인해 이 결혼은 무효라고 결정을 내리죠.
첫째, 로레인 가문과 안나가 맺은 결혼 협약
둘째, 왕이 결혼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은 점
셋째, 합궁하지 않은 점
이에 따라 헨리의 네번째 결혼은 끝을 내립니다.
더불어서 안나의 짧디 짧던 몇 달간의 왕비 생활도 끝이 나죠.
추밀원은 안나에게로 가 이 사실을 알리면서
왕이 안나가 스스로 헨리의 여동생으로 여겼으면 하고 바란다,
라고 했다고 말해줍니다.
안나는 이에 매우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죠.
그러자 추밀원은 안나에게
매년 4천파운드의 연금이 지불될 것이며
잉글랜드에 남는다는 전제하에
블레칭리와 리치몬드의 영지, 헤버 성이 양도될 것이라고 알립니다.
그리고 헨리는 안나가 처녀임을 알리면서 원할 경우 가능한 수월하게 재혼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처녀이므로 결혼할 수 있다, 라고 공표하지만
이는 매우 모순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왕 자신이 안나는 중혼이라며 혼인을 무효화시키지 않았던가요?
안나는 결혼할 수 있는 몸이 되,
결혼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안나의 앞에 자유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스물 셋의 안나에게는 이 이혼이 슬프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당시 헨리는 제가 기억하기로 약 쉰 셋이었고
허리둘레는 57인치요
입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흘러나왔고
다리의 종기에서는 썩은내를 풍겼으니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혼인 무효 후 한동안 헨리는 안나와 클레브스 공국으로 오가는 편지를
검문합니다.(안나의 동의하에)
타고난 의심쟁이였던 헨리는 안나가 제후를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웠던 거지요.
어쨌건 안나는 헨리의 요구 전부를 흔쾌히 응합니다.
헨리는 내심 얼떨떨해하죠.
앞선 세 왕비 중
캐서린와 앤처럼
안나 역시도 쇠심줄같은 고집을 보일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쨌건 안나의 순종에 헨리는 발뻗고 눕습니다.
그리고 안나는 헨리의 두 딸과 친밀하게 지내게 됩니다.
안나는 결혼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재혼할 의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도 없었기에 특히나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여자로서의 모성을 쏟아 부어주죠.
그래서 헨리의 허락을 받게 되고,
엘리자베스는 리치몬드 궁의 단골손님이 됩니다.
7월 21일 프랑스 대사의 편지를 살펴봅시다.
"놀랍게도 왕비의 반대는 없는 듯 싶습니다.
제후의 사절이 그녀에게서 들은 유일한 답은 그녀가 왕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잘 대접받고 있다는 증거를 내보이면서 이나라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왕은 그녀를 더욱 존경하게 됩니다.
잉글랜드 인들은 그녀를 최고로 다정하고 너그럽고 인강적인 왕비 가운데
하나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계속해서 왕비로 남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왕은 곧 젊고 아름다운 처자와 재혼하려 합니다.
노퍽 공작의 동생의 딸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미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문도 있지만 비밀에 부쳐져있습니다.
안나 왕비는 그 모든 것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월 28일 크롬웰의 처형이 이어집니다.
헨리의 분노는 크롬웰을 불태우고나서야 잦아집니다.
크롬웰은 고통스런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형집행관의 솜씨가 서툴렀던지
죄인의 목을 베려고 두번이나 도끼를 휘둘렀기 때문이었죠.
안나는 크롬웰처럼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확실히 행운아였습니다.
이후 그녀는 간간히 궁을 방문하는 등
'왕의 여동생'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녀는 헨리가 사망한 뒤까지 누구보다 풍족하게 살아갑니다.
(헨리가 죽은 뒤에는 연금이 제때 지불되지 않아서
고역을 치루지만 헨리의 아들 에드워드가 조금 도와주게 되죠.)
안나는 자신의 영지들인
리치몬드 성과 블레칭리 성 그리고 헤버 성
세 곳을 옮겨다니며 생활합니다.
(안나는 헤버성을 싫어했다고 해요. *헤버는 앤 불린의 고향이었죠..)
안나는 16세기 중반에 권력과 왕의 운명이 격동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두 눈으로 지켜본 산 증인이었습니다.
에드워드 6세
제인 그레이
메리 1세
헨리의 세 후손이 권력을 쥐어 부상함과 추락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게 되죠.
안나는 끝내 재혼하지도, 잉글랜드를 떠나지도 않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돌아가신지 오래였고
독실한 신교도인 그녀의 남동생(제후)은
그녀의 개종을 완전 싫어했으니까요.
(안나는 메리의 설득으로 인해 신교에서 카톨릭으로 전향합니다.)
(종교 문제 뿐만 아니라, 그대로 본국에 돌아갔다간
쫒겨난 애물단지가 되기 쉬웠죠..)
1557년 7월 중순 그녀는 유언장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최고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메리여왕'에게
유언이 지켜지는지 감독할 유언장 관리자가 되어줄 것을 부탁하죠.
그리고 1557년 7월 16일
안나는 마흔두 살 생일을 앞두고 첼시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사망 원인은 현재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안나가 죽고 반세기가 흐른 뒤 라파엘 홀린셰드는 그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녀는 바른 시각을 지닌 정중하고 점잖은 여인이자 성실한 주부, 아랫사람들에게 더없이 너그러웠던 안주인이었다.
그녀의 궁에는 다툼이나 중상모략, 사악한 음모가 없었으며
그녀는 백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
.
.
.
.
.
.
여기서 마무리지어야 하지만 저는 필리파 그레고리의 소설인 '불린가의 유산'을 인용해볼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헨리가 죽은 직후인 1547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
마침내 그가 세상을 떠났다. 나를 거부했던 남편, 젊은 시절의 꿈을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
사랑스러웠던 소년에서 괴물로 변한 남자.
오랫동안 그의 동맹군이자 동료였던 저승사자가 결국 그를 데려갔다.
그래, 이제 끝났다. 나는 상복을 입고 왕을 애도할 것이다.
나는 이제 자유로운 여자다. 그에게서도, 그리고 마침내 공포에서도 해방되었다.
이제 누군가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더라도, 낯선 사람이 찾아와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고양이를 키울 것이고 나를 마녀라고 해도 겁내지 않을 것이다.
춤도 출 것이고 헤픈여자라 불릴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달려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것이다.
흰 바다매처럼 하늘 높이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
나만의 삶을 즐기며 살 것이다.
자유로운 여자가 될 것이다.
여자에게 자유는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안나 폰 클레페(클리브스)
[Anne of Cleves, 1515.9.22 ~ 1557.7.16]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