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가)와 (나)는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다. 물음에 답하시오.
(가)
꽃을 피운 듯,
발그레해진 저 두 뺨을 봐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①더러워
그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당장에 머리 위엔 햇살을 띄우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너의 속은 먹구름과 닿아있네
②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잎을 가져가
하나뿐인 꽃을 꺾어가
(나)
한 떨기 스물셋 좀
아가씨 태가 나네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얄미운 스물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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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밑줄 친 ①더러워의 의미로 적절한 것은?
① 제제의 성정이 더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 앞의 어린아이처럼 투명해와 대비되는 의미로 제제의 모순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2. 밑줄 친 ②제제가 의미하는 바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의 모티브가 된 라임 오렌지나무라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제제를 의미한다.
② 작가의 모순되 점이 투영된 케릭터로 작가 본인을 의미한다.
참 문제 수준이 낮죠?;
아이유에 관련된 논란은 진정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이유에게 씌여진 색안경은 사라지지 않고 있어 글을 작성해봅니다.
아직 아이유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분들의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인 것 같습니다.
학대받은 5살 아이를 성상품화한 것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시험을 치고 있는데 만약 위와 같은 논지의 문제가 나왔다고 생각해봅시다.
두 문제에서 1번을 선택하실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여러분은 이미 학교에서 배워서, 혹은 책을 읽고 자연히 익혀서 알고 있습니다.
2차 창작물의 케릭터는 원작의 케릭터와 다르다는 것을요.
다음은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말년갑의 이말년 서유기의 한 장면입니다.
... 네, 저 분은 삼장법사입니다.
말년갑 작품의 케릭터가 다 그렇듯 여기서의 삼장법사는 피지컬갑에 종종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하는 우스꽝스러운 케릭터이죠.
하지만 저는 아직 삼장법사가 폭력성을 띈다고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나, 스님을 희화화 했다고 이말년 서유기를 비판하는 글은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 우리는 모두 원작 서유기와 이말년 서유기가 다른 작품이고, 두 작품의 삼장법사 또한 다른 인물임을 알기 때문이죠.
또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같이 3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남성동지분들이라면 삼국지 조조전을 한 번쯤 해보셨을겁니다.
여기서 가상모드로 진행할 경우, 제갈량이 마왕;;으로 각성하고 우리의 조조는 이에 맞써 싸웁니다.
심지어 제갈량의 경우는 가상의 케릭터도 아니라 아니라 실존인물이죠;
하지만 아무도 조조전을 만든 코에이에 항의하지 않습니다.
왜? 거기 나온 제갈량은 가상의 창작물일 뿐이거든요.
아이유의 ZeZe에 나온 제제는 원작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재창작된 가상의 인물일 뿐입니다.
이를 섹슈얼하게 묘사하여 페도필리아라고 주장하려면, 작품 자체에서 제제가 아이라는 묘사가 존재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작품 어디에도 제제가 어린아이라는 묘사는 없습니다.
원작과 노래에서 나온 두 제제를 구분할 수 있으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오해는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유를 비판하는 또 하나의 주장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제제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섣불리 재창작하였다 입니다.
이 분들은 주로 제제는 더럽거나 하지 않고, 제제의 모순된 성격은 아동학대의 결과라고 이야기 하시면서
아이유가 책을 잘 안읽고 곡을 쓴 것 같다느니 피상적으로 이해를 하고 글을 썼다고들 말씀하시던데요.
위 예를 그대로 들고오면, 이말년은 삼장법사가 덕력 높은 스님이란걸 몰라서 폭력적으로 묘사했을까요?
조조전을 만든 사람은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걸까요?
영화 장화, 홍련을 보면 홍련에 대응되는 동생이 처음부터 귀신이죠. 김지운 감독은 책도 안보고 그런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를 보면 신데렐라는 언니의 구박에 흑화해서 언니를 냉대하고 괴롭히죠.
드라마 작가가 신데렐라 이야기도 모르는 걸까요?
작가가 모티브 삼고, 차용해올 부분을 정하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차용해온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어떻게 채울지 또한 작가의 마음이죠.
그걸 몰랐다기 보단, 어떤 사람은 제제가 학대당하거나 5살이란데 집중을 한 반면,
아이유는 제제의 모순적인 성격에 집중을 하여 그를 표현했을 뿐이지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추가하자면, 대중에게는 물론 비판과 비평의 자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니 노래속의 제제와 소설의 제제를 동일시하고 하는 비판 또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학작품에도 좋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듯이 있듯이 비판과 비평에도 수준이란 것이 있습니다.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노래속의 제제와 소설에서의 제제조차 구분 못하는 1차원적인 비판을 보고는 그 수준이 높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네요.
논란이 좀 가라앉으면서 아래 글과 같이 가사속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해석들이 하나하나 나오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수준 높은 평을 읽는 재미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