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시아의 경제호랑이 중 하나다. 매우 성공적이고 경쟁적인 경제다. 한국은 거대한 자동차, 제철, 화학 산업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산업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오늘날 세계 최고 무역국 중 하나다.” 올해 채택될 미국의 한 고교용 세계지리 교과서에 새로 삽입된 한국 관련 내용의 한부분이다.
하지만 이 교과서로 공부하는 미국 고교생이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진단하는 국내 언론보도를 접하게 된다면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 같다. 국내 언론들은 ‘매우 성공적이고 경쟁적인 경제가 작동되는 한국'을 걸핏하면 ‘위기’ ‘추락’ ‘파탄’이란 단어로 폄하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분명한 경제위기론이나 비판은 기업을 비롯한 사회 각 부문에 경종을 울려 위기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만, 근거없는 위기론은 경제의 주체인 기업과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킨다. 정치적 복선을 가진 언론의 경제실패론 보도는 자칫 없는 위기까지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국내 일부 언론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와 달리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A로, 무디스는 A+, 피치는 A+로 유지하고 있다. S&P의 최정태 한국대표는 “한국에 대해 싱글 A와 ‘안정적(stable)’ 전망을 유지한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불안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더욱 낙관적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25년 한국은 세계 9대 경제강국에 오를 것으로 내다 봤으며,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을 일컫는 ‘브릭스(BRICs)’에 한국을 포함시켜 ‘브리크스(BRICKs)’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또 골드만삭스는 2050년에는 한국이 1인당 GDP 8만1000달러를 기록, 일본과 독일을 따돌리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부국이 될 것이라는 ‘가슴 떨리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바깥의 이런 평가에 대해 국내 언론은 대체로 외면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3일 신년연설에서 “경제위기론이 가장 심했던 2003년과 2004년에 외국인들은 우리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영자신문 읽는 사람은 한국 주식에 투자하고, 한글 신문 읽는 사람은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 비판 일색인 국내 언론 환경에 대한 갑갑함의 표현이다.
근래 한 보수신문은 ‘제2의 경제위기’까지 들고 나왔다. 지난해 12월 14일 동아일보는 ‘구석구석 경고음... 경제가 심상찮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공교롭게도 내년(2007년)은 외환위기를 맞았던 10년 전(1997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라며 “‘제2의 경제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고통을 겪어본 국민들 입장에서 또 한번 가슴이 철렁할 주장이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주장은 환율 하락, 경상수지 악화 가능성, 금융권 부실 등을 최악의 경제상황 시나리오로 해서 나온 무책임한 주장이다.
IMF 제럴드 쉬프 아태 담당 부국장 |
쉬프 부국장은 “원화 가치가 상당히 상승했는데도 한국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제조업 분야에서 노동생산성의 빠른 증가가 주요인”이라며 “한국의 대기업들이 이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과 관련,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2월 “엔화는 약세이고 중국은 계속 위안화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원화는 아시아지역, 특히 한국의 경제성장을 반영해 주는 유일한 아시아통화”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5년 한국의 종합주가지수가 50% 이상 큰 폭으로 올랐음을 언급하며 “원화 강세가 일부 수출기업들에게는 족쇄가 될 수도 있지만 한국 기업들의 실적을 전반적으로 잠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국내언론과 해외언론의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이 왜 이렇게 다를까. 한국기업평가 윤우영 평가정책본부장은 “해외에서 한국을 볼 때는 아무래도 총량적 지표같은 큰 틀에서 보게 된다”며 “규제나 환율 등이 네가티브(부정적) 요소이긴 하겠지만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국내에서는 시각 자체가 대립각을 세우다보니까 더 부각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깊이 있는 경제기사로 세계의 권위지가 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12월 특집 기사를 통해 2006년 고유가와 원화가치 상승, 세계경제 둔화 가능성, 그리고 북핵까지 갖은 악재 속에서도 한국경제가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은 쉽지 않은 여건과 일부의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올해(2006년) 경제성장률 5%를 유지함으로써 아시아의 가장 역동적인 국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이동통신 업체들이 한국 따라하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 기사 |
또 ING그룹, 구글, 모토롤라 등 거물급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 등 기업들이 세계적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도 빛나는 성과라고 지적했다.
올해 수출 전망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 둔화가 예상되지만 한국의 수출시장이 중국과 유럽 등으로 다변화됐기 때문에 미국발 악재가 발생한다 해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지난해 9월 초 보도한 ‘길 잃은 한국경제’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는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와는 너무나 다르다.
조선일보는 시리즈에서 “한국경제가 좌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3년 넘게 지속된 내수 침체로 경제가 활력을 잃고, 수출마저 흔들리는 내우외환에 빠져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래다. 기업가 정신이 땅에 떨어지고 투자가 위축돼,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성장 잠재력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도 조선일보와는 확연히 다른 평가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한국의 수출이 8분기 연속 신장했고 사상 처음으로 3000억달러를 돌파한데 주목하고 “GDP의 약 40%에 해당하는 이 같은 실적을 달성한 나라는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며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마찬가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11월 30일 “반도체 생산 급증과 민간 소비에 힘입어 10월 산업생산이 2.6% 증가했고 경상수지도 원고(高) 등 일부 불확실 요인에도 불구하고 1년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한 17억3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며 “한국경제가 여전히 성장견인력을 잃지 않은 채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거의 성장만능주의적 논조를 가지고 있는 국내 보수 언론들은 한국경제의 성장률 둔화를 비관론, 위기론의 주된 근거로 제시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성숙해 갈수록 성장률이나 소비ㆍ투자 증가율은 다소 둔화되는 게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성적이 낮은 학생은 조금만 공부해도 석차가 많이 오르지만 상위권에 있는 학생일수록 상승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엄밀히 말해 2006년 한국이 기록한 5% 성장은 결코 낮은 성장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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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베트남의 1인당 GDP가 각각 1273달러(2004년 기준)와 640달러(2005년 기준)이며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610달러(2005년)이다. 국민소득 1만6000달러의 한국과 이들 국가의 성장률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무슨 시사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한 신문 지면에는 이 같은 무분별한 경제위기론 보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실리기도 했다. 지난해 중앙일보 3월 3일자 연세대 이지만 교수의 옴부즈맨칼럼은 같은 해 2월 24일자 ‘누가 봐도 위기상황, 기업들 비상경영 돌입’이라는 기사에 대해 “근거자료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 칼럼은 “지금이 과연 위기상황인가는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현재와 같은 환율 하락과 고유가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구조적으로 취약한가를 검토해 본 후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며 “‘경제위기 상황이다’는 주장은 조심스러워야만 한다. 위기론의 주장이 위기상황을 사후적이고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초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