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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ystery_3308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22
    조회수 : 10444
    IP : 115.88.***.168
    댓글 : 18개
    등록시간 : 2013/11/26 11:12:25
    http://todayhumor.com/?mystery_3308 모바일
    세계의 미스터리 (9) - 석굴암(石窟庵) - <BGM>
     BGM : 이슬기(Lee Seul-GI) - Blossom [Gayageum]
     
     
    우리에게도 피라미드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세계를 상대로 자랑할만한 건축물이 있으니 그것은 석굴암이다. 석굴암(石窟庵)은 대한민국 경주시의 토함산 중턱(진현동 891)에 위치하여 있는 국보24호 석굴 사찰(石窟寺刹)이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증수할 때 처음 세워졌으며, 신라의 건축과 조형미술이 반영되어 있다.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으나, ‘석굴’, ‘조가절’ 등의 이름을 거쳐 일제강점기 이후로 석굴암으로 불리고 있다.
    석굴암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적인 가치와 독특한 건축미를 인정받아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석굴암(石窟庵)은 수학 기하학 건축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종합된 작품이다. 당시 중국이나 인도의 영향을 약간은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하나 그 전체적인 설계와 공간배치 및 수학적 비례배분 과학적인 자연통풍 온도 및 습기 등의 자연조절 모든 조각의 미술적 예술성 등은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우리 특유의 작품이다.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보수공사를 했고 많은 과학자들이 석굴암의 신비를 벗기려고 시도했으나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신비의 도는 한결 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난 지금까지 학회의  연구자료와 역사적 고증자료등을 통해 세계적 문화유산인 석굴암(石窟庵)의 실체에 대해서 깊게 고찰해볼 생각이다.  
     
    1)석굴암(石窟庵)의 역사 
     
    석굴암은 경주시 토함산 동쪽에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원으로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축조한 것이다. 국보 제24호. 암벽을 뚫어 조성한 인도나 중국의 천연석굴과는 달리 석굴암은 화강암을 사용하여 촉조한 다음 그 위에 흙을 덮어 완성한 인공석굴이다. 정식 문화재 명칭은‘석굴암석굴’이다.
    석굴암의 유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가난하게 살던 김대성이 죽은 뒤, 재상인 김문량의 가문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는 깊이 깨달은 바 있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석불사:石佛寺)을 짓고,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지었다는 기록이있다. 불국사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점을 참작하여 석불사가 현재의 석굴암으로 여겨지고 있다. 석불사에는 신림(神琳)·표훈(表訓)의 두 성사(聖師)를 각각 청하여 거주하게 하였다 한다. 그 뒤로는 기록에 등장하지 않다가 조선 중기 이후로 중수하거나 방문한 기록이 남아 있고, 정선은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원형의 손상이 거의 없이 1000년 이상을 유지해 오던 석굴암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오면서 구조적 원형을 잃었으며 부실시공으로 곳곳에서 누수가 일어나 이슬이 맺히고 이끼가 끼며 손상돼 갔다.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학자들이 1907년 우연히 석굴암의 존재를 전해 듣고 그들이 최초로 발굴한 것으로 오인, 석굴암 전체를 분해하여 반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나, 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무마되기도 하였다.
    일제는 석굴암이 훼손되어 무너지기 쉬운 위험한 상태라 판단 ,1913년 9월 13일 데라우치 총독은 석굴암 해체수리를 공식 결정한다.
    1913년 ~ 1915년에 모두 해체하여 돌 사이와 천정 바깥쪽에 시멘트를 발랐다. 그 뒤로 결로현상이 발생하여 1920년에 중수를 시도하였으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처음 해체·복원한 뒤로 원형이 훼손되었다.
     
     
    290px-Seokguram_ruin.jpg
     
    그림1)일제 해체전의 석굴암의 모습
     
    당시,일제가 석굴암을 발견했을때는 보존불상에는 부처의 이마의 솜털을 표현하기 위해 보석이 박혀있었으며, 바닥을 차갑게해 습기를 아래로 모이게 하기 위한 감로수가 흘렀다. 일제는 보석을 훔쳐가고, 또한 신라인들의 지혜를 모르고 감로수를 석굴암 밖으로 빼돌려 버린다. 일제는 이를 복원공사라 하며 끝마쳤다. 그러나 시멘트를 바르며 환기구멍들을 모두 막아버리고 감로수를 밖으로 빼돌렸기에 석굴암에 습기가 끼기 시작해 석굴암 벽면에 물이 맺히고 이끼와 곰팡이가 끼기 시작한다. 일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벽면을 부수고 유리창을 설치했으나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광복후,1960년대 한국정부는 석굴암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위에 시멘트를 더 덧발라버린다. 그후 석굴암 벽속에 온풍기와 에어컨을 설치해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고,겨울에는 온풍기를 틀어 습기조절에는 성공하였으나 기계의 소음때문에 석굴암에 미세한 금이 가고있는 상태다.
     
     
    2) 왜 석굴의 형식으로 사원을 조성하였을까?
     
     
    석굴암은 흙으로 된 토함산 동쪽 비탈면을 파내고, 인공으로 석재를 이용하여 굴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석굴암은 왜 다른 사원들과 달리 석굴의 형식으로 만들어졌을까 ? 석굴암에 대한 궁금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석굴암이 창건된 신라 경덕왕대는 정치, 문화의 각 방면에 걸쳐 유례없는 최고의 융성기를 이룩하였던 시기였다. 삼국을 통일한 지 이미 80여 년, 백제 및 고구려의 유민들을 무마하기 위한 작업도 정리되었고, 당나라와의 알력도 해소되었다. 즉, 통일초의 수습기를 지나 안정과 내적인 충실을 얻은 시기였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경덕왕 13년(서기 754년)에는 신라 최대의 황룡사에 50만근에 달하는 범종을 주조했고, 선대 성덕왕을 위하여 황금 12만근을 희사하여 봉덕사의 종을 안치하였다. 황룡사 범종이 주조된 이듬해에 신라 최대의 분황사 약사여래동상을 조성했고, 23년에는 영묘사의 장륙상(丈六像)을 개금했다.
    또한, 당시의 불상과 사찰 조성기술 또한 극에 달한 때였다. 일례를 들어보면, 만불산이라는 가산(假山)을 만들어 그 안에 불상 1만구를 모시게 하여 당나라 황제에게 헌납하였더니, 당 태종이 이를 보고, "신라인의 기교는 하늘의 조화요, 사람의 기교(技巧)가 아니다"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한 전성기의 신라인들은, 왜 사원을 조성하면서 굳이 토산(土山)인 토함산에 인공으로 돌을 쌓아 석굴을 만드는 방법을 택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불교 석굴사원의 유래는 인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며, 인도에서 석굴을 만든 까닭은 그곳의 기후조건과 풍토여건에 따라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즉, 인도의 기후조건은 습하고 더웠으며 지리적인 풍토환경도 지극히 열악하였다. 그래서 쉽게 습기와 더위를 피하는 곳으로 석굴사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석굴사원은 인도에서도 환경이 열악한 아잔타나 엘로라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중국에서는 실크로드의 서역이나 변방인 돈황, 운강, 용문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신라인이 토함산에 굳이 석굴사원을 조성한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아니한다.
    다루기 쉽고 재료도 구하기 쉬운 목재를 이용하지 아니하고 굳이 인공으로 돌을 다듬어 석굴사원을 조성한 까닭에는 인도와 중국변방과는 달리 꼭 그렇게 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 관하여 이기영 선생님은 "석굴암"(1974.6.20. 일지사 刊)이라는 소책자의 마지막에 "붓을 놓으며"라는 후기란에서 석굴암조성의 바탕이 된 경전이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문명대 선생님은 "석굴암 불상조각의 연구"(1987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석굴암 조성의 경전적 바탕은 법화경과 화엄경을 포함한 신인종(神印宗)이 그 중요사상이며 그 구체적 경전은 "관불삼매해경"일 것이라고 하였다.
    "관불삼매해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후 부왕(父王)과 이모(姨母)를 위하여 불상, 즉 32상 80종호를 관상(觀償)함으로써 마군(魔軍)의 항복을 받고 삼매(三昧)에 드는 길을 간곡히 설법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독룡과 나찰을 교화한 부분이다.
    즉, 인도의 불파부제(弗巴浮提)왕이 다스리는 나건하라왕국에 바다의 독룡(毒龍)과 5나찰녀(羅刹女)가 나타나 4년간이나 우박을 내리고 온갖 난행을 하며 기아와 질병이 계속되게 하자, 왕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사천왕, 제석천, 범천, 천자, 천녀 등 권속을 청하여 독룡과 나찰을 퇴치하여 줄 것을 간절히 청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석가모니 부처는 이 나라에 강림하여 그 10대 제자와 대범천, 제석천, 금강역사를 시켜 독룡과 나찰을 항복시키고, 계를 주어 교화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용과 나찰들은 부처님이 떠나지 말고 그들 곁에 계시기를 청하자 부처님은 굴을 보시(布施)할 것을 명한 후 석굴의 돌 속에 들어가 형상을 나타내니 앉은 부처님의 영상이 일장육척(一丈六尺)이었으며, 석굴과 함께 이를 잘 관찰하면 부처님의 진신을 보는 것과 똑 같고 백천겁의 생사의 죄를 없앤다고 했고, 그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항상 볼 수 있게 되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전 중 관련부분을 번안하여 인용하면,
    "부처님이 용의 석실인 굴 속에 앉으시고, 용을 위해 열 여덟가지 모양으로 변신하시어 돌 속에 들어가셨다. 마치 밝은 거울과 같이 돌안에 있으면서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를 않는다. 뭇 천신들이 수없이 와서 부처님의 그림자에 공양을 드리니 또한 나타나셔서 설법을 하신다"
    이 경전이 석굴암 조성의 근거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이 경전에서는 특별히,
    첫째, 석가모니 부처님이 부왕과 이모를 위하여 무상삼매에 드는 방법을 설법하시되, 그들의 근기(根氣)에 맞게 부처님의 상호를 관상하고 염송을 함으로써 삼매에 드는 방법을 설법하셨다는 것으로, 이는 효(孝)를 그 기초로 하고,
    둘째, 부처님께서 권속을 데리고 몸소 강림하여 4년간이나 기아와 질병을 퍼뜨리는 바다의 독룡과 나찰을 항복시켜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 호국(護國)의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석굴암 조성 당시, 통일신라는 번성하고 안정되었으나 사그라들지 않는 근심이 있었으니 이는 바다를 통한 왜구들의 끊임없는 침략이었다. 얼마나 왜구들의 침략이 극심했고, 또 그것이 왕실의 부담이 되었는지는, 문무대왕이 죽어서까지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들을 바다에서 막아내겠다고 유언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기에다가, 삼국유사에 나오듯이 석굴암 조성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대성이 현세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조성하고, 전세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조성하였다는 유래에서 보듯이 석굴암의 조성은 효(孝)의 사상을 그 기초로 하고 있음을 더하여 보면, 당시의 조성자들은, "관불삼매해경"에 따라 석굴사원을 조성하여 그곳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보살, 범천, 제석천 등을 바위에 새겨 놓음으로써, 바다의 악룡과 나찰을 제압하여 부모에 효도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여 나라를 지키고자고자 염원하였으리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이, 석굴암의 조성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먼저 왜 석굴사원의 형식을 택하였을까 하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점을 설명하고 나서야 비로소 석굴암의 조성양식과 불상들에 대하여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성자들은 이러한 "관불삼매해경"을 기본적인 근거경전으로 하였으되 단지 그것만에 의하여 석굴사원을 조성하였다기 보다는 이를 근본으로 하고 당시에 성행하던 해동정토사상, 화엄사상, 법화경의 세계를 두루 반영하는 형태로 사원을 조성하였으리라고 생각되고, 이것은 또한 당시의 신라불교의 복합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고 나면, 석굴암의 본존상에 모셔진 여러 조각상들과 함께 11면관음보살상의 위치도 제대로 자리새김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석굴암의 건축구조와 과학적 원리
     
    석굴암은 설계부터 과학의 원리가 적용됐다. 당시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인 당척(唐尺, 1당척=약 30cm)을 사용해 짜임새 있게 조성했다.
     
    석굴암의 건축적 구조와 전체적인 배치계획의 일단을 살펴보면 석굴암의 건축구조에 대한 중요한 단서는 놀랍게도 이국(異國)의 젊은 건축기사인 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가 제공하고 있다.
    요네다는 1932년 일본대학 전문학부 건축과를 졸업하고 이듬해부터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촉탁으로 한국의 고건축 측량에 몰두 하였다고 한다.
    후지따 교수의 조수로 성불사 개수공사에 참여한 이래 낭산 아래의 사천왕사, 천군동 석탑, 평양 청암리사지, 부여 정림사지, 그리고 불국사와 석굴암의 측량을 도맡았고, 백제 부소산성을 실측하던 중 장티푸스에 걸려 불과 35세의 젊은 때인 1942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요네다는 죽기 3년전, 자신이 7년간 측량한 결과를 종합하여 조선상대 가람축조의 통일적인 기준과 조영계획에 대하여 탐구하였고, 그 결과 '다보탑의 측량관계',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의장계획', '불국사의 조영계획', '조선상대 건축에 나타난 천문사상' 등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한국 고건축의 수리적 관계에 대단히 주목할 만한 견해들을 밝힌 바 있다.
    요네다가 세상을 떠난 후 유고를 모아 펴낸 '조선상대건축의 연구'(우리나라에서는 木壽 신영훈님이 "한국상대건축의 연구"라는 제하의 한정판 번역본이 있다. 1963년 한국문화사 출판)는 석굴암, 불국사의 연구는 물론이고 한국 고대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고전이다. 요네다의 책에 실린 '경주 석굴암의 조영계획'은 석굴암의 건축구조와 조영물 배치 나아가 그 과학적 신비를 푸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석굴의 평면계획을 보면, 주실은 반지름 12당척의 완전한 원(圓)이다. 지금의 석굴암 주실은 약간 일그러진 원의 형태이나 현존하는 주실 입구가 12당척인 점과 그것이 주실의 원에 내접하는 육각형의 한 변에 해당하는 점에 미루어 보아 완전한 원으로 계획된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실의 대좌는 이 원의 중심에 놓인 것이 아니라 약간 뒤로 물러나 있는데, 대좌의 아랫부분 8각형 앞면은 주실을 이루는 원의 횡직경선상(橫直徑線上)에 일치하고, 이 8각형 앞면의 중심점은 주실 입구(12당척)를 밑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그렸을 때 그 꼭지점에 해당하며, 동시에 주실을 이루는 원의 중심이기도 하다.
    석굴의 입면계획에 대해서는, 석실의 벽면에 새겨진 조각상들의 받침돌 아랫변에서 조각상들의 윗부분에 이어진 벽판석의 윗변까지도 12당척인데, 이는 주실의 반지름과 일치하는 것이다. 벽면 조각상 위 벽판석의 윗변에서 그 상단 감실의 높이를 더하면 이는 17.25당척이 되는데, 이 수치는 가로를 벽면에서 주실 원의 중심까지로 하고, 세로를 벽면 아랫부분에서 벽판석 윗변까지로 한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이다.
    그리고 감실의 이맛돌로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다시 12당척으로서 굴의 반지름과 일치한다. 이러한 요소를 종합하여 석굴형태를 계획적 기법으로 요약한다면, 석굴 평면의 반지름으로 구성되는 정방형의 대각선의 길이를 원주상에서 수직으로 잡고, 이 높이에 위치하는 평면원의 중심으로 하여 위쪽으로 반지름을 이루도록 그어가면 반구형이 되고 그 선은 궁융천장의 구성형태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석실의 천정에 해당하는 궁융면은 감실 이맛돌 높이에서 24당척을 직경으로 하는 원둘레에 두고, 석판 열개로 구성되는 원주대로 맞추어져 있고, 석판의 이음새 선의 연장은 궁융 원심(圓心)에 집중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석굴암은 12당척을 기본 단위로 했다. 석굴암 구조의 기본단위인 12당척은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의 수인 4와 8이 결합된 단위다. 고대 인도는 8진법을 썼고 불교가 이를 수용해 8진법의 8과 그 반인 4가 진리의 수가 된 것. 불교의 기본사상인 사성제와 팔정도도 모두 진리의 수에서 나온 것이다. 
     
    12당척을 반지름으로 원을 그린 것이 본존불이 있는 주실의 바닥이다. 본존불을 받치고 있는 대좌도, 앞문의 너비도 12당척이다. 12당척은 하루 12시를 표시하고 360도 원은 음력의 1년을 나타낸다. 설계부터 수학과 기하학, 천체학이 결합된 구조인 것이다.
    또 12당척을 기본으로 전체 구조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1:√2를 이루고 있다. √2는 한 면이 1인 정사각형을 대각선으로 잘랐을 때 나오는 길이의 값이다. 석굴암이 갖고 있는 1:√2(1.414) 구조는 큰 의미를 지닌다. 수치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조화의 비례인 황금분할(1:1.618)과 가깝다. 석굴암은 불교의 가르침을 예술과 과학으로 표현해낸 이상적인 건축물인 것이다.
    12당척을 1로 했을 때 본존불 각 부분은 1:√2의 황금비율을 이루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닥에서 원형 돔이 시작되는 감실 높이까지를 1로 봤을 때 √2의 길이가 바로 굴의 지름이 되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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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석굴암의 수학적비율
     
    본존상은, 석실의 평면에서 본존상의 총 높이는 17당척인데 이는 감실의 이맛돌 높이와 일치하는 것으로서, 앞서 본 바와 같이 석실을 구성하는 원의 반지름을 한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를 그 높이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본존불의 얼굴너비는 2.2당척, 가슴폭은 4.4당척, 어깨폭은 6.6당척, 결가부좌한 양무릎의 너비는 8.8당척이다.
    즉 얼굴 : 가슴 : 어깨 : 무릎 = 1 : 2 : 3 : 4의 비율로 구성된 것이고, 이 부분의 기준이 된 1.1자란 본존불 자체의 총 높이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본존불의 1:2:3:4의 비율을 이루는 기본단위인 1.1당척이란 바로 본존불의 총높이의 10분의 1인 점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궁금점이 많지만, 이것이 바로 로마시대의 신전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서"에서 말하는 균제비례(Symmetry)의 적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의 선조가 비트루비우스의 균제비례를 여기에 적용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의 비트루비우스가 알아낸 안정감과 아름다움의 비율을 우리의 선조들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를 실제 건축에 철저히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10분의 1이란 비율은 바로 인체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과 안정감을 주는 비율이다. 우리의 얼굴(턱에서 이마끝까지)은 신체의 10분의 1이고, 손바닥(손목선에서 중지 아랫선까지)은 팔길이의 10분의 1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얼굴이 길다거나 조금 짧게 느껴진다든지, 어떤 사람의 손바닥이 길다거나 짧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의 팔목길이에 비교한 우리 안목의 자연스러운 판단이며, 그 판단기준은 바로 10분의 1이라는 간단한 비례이다.
    그러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안정감이 주는 심정적 동감상태의 하나가 아닐까요)의 감정이 바로 석굴암의 본존불의 크기 결정과 구성적 비례관계에서도 어김없이 구현되어 있는 것은 실로 감탄스럽다.
     
    그리고,석굴암의 원형 돔 꼭대기 천장을 덮은 연화문 개석도 석굴암의 과학을 말해주는 상징이다. 연화문은 지름이 2.47m, 높이 1m에 무게만 20톤이나 된다. 지금 같은 대형크레인이 없던 시절에 그 무게를 들어올렸고 20톤 무게가 내리누르는 데도 단지 세 조각 금이 갔을 뿐 내려앉지 않고 1000년 이상을 버틴 것은 그야말로 신비다.
    석굴암은 중국의 둔황 막고굴 등 다른 석굴과는 달리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불상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위에 돌을 쌓아 석굴을 조성했으니 건립과정이 과학적인 계획 없이는 불가능하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또 석굴암은 자연환경을 이용한 자동 온도조절장치를 사용했다. 동굴은 햇빛과 공기가 차단돼 습한 것이 사실이지만 석굴암은 이 부분에도 과학의 원리를 받아들인 것. 바로 지하수를 이용한 것이다. 지하수를 끌어와 바닥 밑을 흐르게 해 굴 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벽면에 이슬이 맺히는 현상을 방지했다. 요새 콘크리트로 덮고 인공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면서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지만 결국은 통풍과 습기가 자연조절되던 원래의 구조를 잃어버렸으니 오늘날의 첨단과학기술도 1200년전의 신라인들의 과학기술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고나 할까?
     
    여기서 석굴암의 자연친화적인 원리를 좀더 과학적으로 고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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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감실이라고 불리우는 통풍구, B: 전실, C: 주실-그림3)석굴암의 내부구조
     
    돔의 상부는 천개석이라는 잘 짜여진 화강암으로 치밀하게 구성하고 거기에 약간의 바람구멍을 낸 뒤에 그 위에 엉성한 돌들을 쌓고 맨 위 흙에는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엉성해 보이는 구조로 놀랍게도 천년이나 내부의 석상들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구한말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석굴암은 어떻게 해서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엉성한 구조로 장마철의 지독한 습기를 배제할 수 있었을까?
    그 원리는 다름 아닌 자갈층에 있다. 자갈층의 아래는 석굴암의 내부가 될 터인데, 여기로 흘러들어오는 공기가 제습이 된 건조한 것이라는 겁니다. 분명히 위에서 들어갈 때에는 습기찬 더운 공기였는데, 차가운 자갈층 내부에서 수증기는 응축하여 사라지고 차갑고 제습된 공기가 아랫 면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제습의 원리로 우리가 요즘 쓰는 에어컨도 이렇게 일차 냉각을 시키는 방식으로 제습을 한다고 생각을 하시면 될듯 싶군요. 자갈층 내의 찬 공기는 밀도가 높으니까 아래로 흐르는 것으로 다른 송풍기가 없어도 이런 방식으로 한랭건조한 공기로 석실내를 꾸준히 채우면 하루종일 석실내부가 뽀송뽀송하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부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자갈층에서 한없이 응축되면 물기가 점점 넘쳐나서 그 아래로 응축된 물기가 줄줄이 흘러내려 이윽고 석실내로 흐르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하여 자갈층이 넉넉한 두께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낮 동안에 어느 정도의 응축수를 충분히 감당하여 흘러내리지 않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이제는 외부 공기가 차가와지고 자갈층이 오히려 외부공기보다 더운 상태로 됩니다. 그러면 자갈층 안의 공기가 부력을 받아 올라가고 외부공기가 아랫 면으로부터 들어와 그 빈자리를 메꾸게 됩니다. 자갈층 안에서 더워진 공기는 원래 들어올 때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그 안에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되지요. 즉 목욕탕 속에서도 헤어드라이를 작동시키면 머리가 마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자갈층에서 낮 동안 응축되어 있던 물기가 마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밤새도록 자갈층이 물기를 돔 바깥으로 방출하고 다음 날을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석굴암의 입구쪽에 위치하고 있는 평면방형의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8부신장을 두고 있으며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2구씩의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 석주를 세웠고 이곳을 지나면 평면원형의 주실로 본존은 중심에서 약간 뒤로 안치되어 있으며 입구 좌우로부터 천부상 이구, 보살상 이구, 나한상 십구로 주벽을 채우고 본존 정후면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다.
    조각에 있어서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에서 완벽에 가까운 석가여래상, 10구의 얼굴과 전신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인왕상의 용맹, 사천왕상의 위엄, 주실내의 보살들의 유연 우아한 모습, 나한상들의 개성있는 표현 등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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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4)본존불과 십일면관음상
     
     
     
     
    주실내에 봉안되어 있는 본존불상은 연화문이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약간 뒤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것 또한 앞에서 볼 때 매우 아름다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가는 눈과 웃음 머금은 입술, 두툼한 얼굴과 풍만한 몸체는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움이 풍겨 동양 조각 최고의 걸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존불상 뒤에는 본존불상에 그 예술성이 조금도 뒤지지 않을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다. 본존불상에 가려서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주실 뒷벽 한가운데 자리한 이 상은 다른 조각품보다 유난히 입체감이 강조되어 있다. 약간의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라든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천의(天衣), 섬세하게 표현된 손가락과 발가락, 격조있게 높이 설치된 연화좌대 등 그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이 석굴은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일제 때 완전 해체하여 다시 조립하기도 했던 이 석굴암은 그동안 미술사, 고고학계는 물론 역사, 건축, 불교, 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가 망라되어 이에 대한 연구논문과 저서들을 쏟아냈다.
    특히 전실과 광창(光窓)의 존재 여부, 천장의 구조, 습기와 누수 차단 방법 등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그리하여 석굴암의 수수께끼는 하나씩 그 베일을 벗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석굴암이 안고 있는 숙명의 수수께끼는 많다. 아니 그 사실여부조차 풀지 못할 숙제로 남아 있다.여 조형적으로 완벽하게 부처의 세계를 구현해낸 이 석굴암은 신라건축이 이룩한 한국의 국보 
     
    인공적으로 축조하여 조형적으로 완벽하게 부처의 세계를 구현해낸 이 석굴암은 신라건축이 이룩한 한국의 국보 중 국보라 할만하다.
     
    새삼스럽게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선조들의 빼어난 깊이에 감탄을 금할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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