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이집트 카이로 공항. 3일째 노숙중, 배가 고픕니다. 중국, 일본 미국은 물론 유럽 국가 대사들이 각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밤을 새며 공항을 지키는데, 태극기는 보이지가 않네요."
독재자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 여행자(@moonlightyw)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카이로 국제공항에 발이 묶인 여행자들과 교민들에게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귀국 항공편을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이 쏟아졌다.
이 여행자는 3일 오전 2시(한국시간)경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어제 잠시 대사관 직원을 봤습니다"라며 "음식을 가져왔다기에 열어봤더니 감자칩 몇 개? 알아서 한국인들과 나눠 먹으라며 제 앞에 과자봉지 몇 개 쌓아두고 돌아가더군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도시락, 중국인들은 샌드위치 먹으며 음식이 많다고 버립니다"라며 현지 대사관의 부실한 지원을 비판했다.
해적은 왕실 전용기 빌려 이송... 이집트 교민들은?
"중국, 일본인이 버린 음식을 한국인들이 주워 먹습니다. 그리고 중국, 일본은 공짜 국적기(타는데), 우리는 200만 원짜리 추가운행 전세기... 한국인들은 밤새 기다리다 더욱 저렴한 타 국적기 타고 돌아갑니다."
그는 이어지는 글에서 자국민 철수를 위해 전세기를 대거 투입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되는 우리 정부의 대처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일 정기항공편과 2일 저녁 특별전세기 편으로 400여 명이 귀국했지만 아직도 귀국의사를 밝힌 260여 명이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150여 명은 3일 저녁 정기항공편으로, 60여 명은 오는 6일 정기항공편으로 귀국하고, 나머지 인원은 타 국적기를 이용할 예정이다. 반면 중국은 지난 2일 6대의 전세기를 동원해 자국민을 철수 시켰고, 일본·미국·터키 등도 주민 철수에 다수의 전세기를 동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행자는 "공항에서 자국민을 위해 국기를 달고 발로 뛰며 보호구역을 만드는 타국과 5분 만에 돌아간 대사관의 태도가 비교 된다"며 "국민이 공항에서 물만 먹고 노숙할 때가지 찾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에 실망"이라고 글을 맺었다. 이집트 카이로 공항의 상황을 총 4편으로 나눠 올린 그의 글은 각각 60회 이상 리트위트(ReTweet) 됐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정부와 현지 대사관의 미흡한 대처를 성토하고 나섰다. 누리꾼 아이디 '@uhjeen'은 "새해 아침을 어찌 그리 보내게 놔둡니까? 정말 '인간'으로서 너무한다"고 비판했고, '@jungchulkyo'는 "뉴스에서 말하는 특별기가 무료가 아니라니, 돈 없으면 무질서로부터 귀국도 못하네요"라고 말했다.
"소말리아 해적 모셔오는데 10억 전세기 동원해 놓고 이집트 교민들께는 참 야박하다"(@sej1027)라며 '아덴만 여명' 작전 상황과 비교하는 의견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혐의로 소말리아 해적 5명을 체포해 아랍에미리트(UAE) 왕실의 전용기를 빌려 국내로 이송했다.
주이집트 대사관 "일본 외교관은 25명, 우리는 9명... 최선 다하고 있다"
▲ 이집트 시위 현장에 투입된 군 지난달 30일 이집트 카이로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 군인과 탱크가 투입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62명이 사망했다는 정부발표와 달리 전국적으로 적어도 89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25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해진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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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집트 대사관 관계자는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여행자들과 교민들의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일본과 미국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대사관 인원이 훨씬 부족하다. 그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대사관은 주재 외교관만 25명 이상인 것에 비해, 한국 대사관에는 외교부 직원 5명,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온 각 1명, 자원봉사 지원을 위해 온 코이카(KOICA) 직원 2명을 포함해 총9명 뿐이라는 게 대사관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또 "3일 동안 공항에 나갔지만 대사관 쪽으로도 계속 민원이 들어와 밤샘을 할 수는 없었다"라며 "직원 5명이 모두 철야 작업을 하다가, 어제(2일) 전세기가 떠나고 나서야 2교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항에 계신 분들에게 물과 식량을 계속 공급했지만 받지 못한 분들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세기 투입이 타국과 비교되는 것에 "귀국 비용은 자비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중국의 사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본이 제공하는 특별기는 본국으로 수송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인근 국가까지만 이동시킨 뒤 귀국 등의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기편으로 오는 일요일(6일) 이후에는 대사관 직원을 포함해 귀국 의사 없는 교민 400여 명만 남을 것"이라며 "이후에도 교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지원 하겠다"고 밝혔다.
현지 교민 "대사관 사정 이해하지만,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도 전세기 동원"
현지에서 30년 거주한 교민도 이 같은 대사관의 상황을 "일정 부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희 이집트 부인회 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대사관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 대부분은 배낭여행 온 사람들일 것"이라며 "이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어느 정도 어려움을 감수하고 1~2일치 식량은 준비해 나가는 게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사관 직원 수가 적고, 그들도 이런 사태는 처음 겪는 일"이라며 "민원 전화 받는 일만 해도 밤을 새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전세기 운용에 대한 불만은 이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사관에만 뭐라 할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부족한 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본국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시위가 처음 일어났을 때 미국·일본·중국·터키는 정부 차원에서 교민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대처방안과 귀국방법을 설명했다"며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도 전세기를 띄워 자국민을 귀국 시키는데 우리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18651&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