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이웃에 살던 아저씨를 바보취급했다. 꾀죄죄한 검푸른 점퍼, 빠진 것보다 남은 쪽이 더 적은 머리카락. 잔뜩 굽은 새우등, 생기 없는 눈동자. 그 아저씨의 존재 자체를 혐오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란 자신감이 있었지. 어렸을 때 매일 매일 겪었던 시행 착오를 어른이 되서도 겪을 거라곤 꿈에 생각지 못했다. 중학생 무렵 다녔던 학원 강사가 말했다.
[나는 머리가 별로 좋질 않아서 호세이 대학밖에 못갔어요.]
아이들은 그 말에 웃었다. 우리중 호세이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생각지도 않았다. 매일 회사에 다니며 밤늦게까지 일했던 아버지.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 일인지 커서야 알게 되었다. 전직을 반복하며 윗사람한테 바보 취급 당하면서 간신히 알게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정말로 힘들다. 무슨 일을 하든 후회가 남는다. 특별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20대 후반이 되서야 간신히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아저씨에게 사과하고 싶다. 힘들지만, 당신 몫까지 살아가고 싶다고. 이제서야 당신의 괴로움을 알았다고. 하지만 약간,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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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알고 있어... 나도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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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쓰러질 때가 아냐. 조금만 더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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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 나도 이해가 된다.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때는 손에 든 거라곤 아무 것도 없으면서 마치 모든 게 손에 쥘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 손을 뻗으면 당연히 닿을 거라고 믿었어. 살아가는 게 힘겹다곤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 백부의 싸구려 양복 소매가 닳고 닳아서 번들 번들해진 걸 보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곤 했지만 나는 결국 저렇게 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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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신문을 손에 들고 빨강 색연필을 귓등에 꼽은 채 경마 라디오에 귀를 귀울이던 아버지의 등을 보며,
[저렇게 살고 싶진 않다.]
그렇게 말하곤 했지만.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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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이 스레를 읽고 잊어버렸던 뭔가를 기억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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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울었다. 이상하지, 슬픈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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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글이 가슴에 사무치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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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특 부모님이 너무나 작아 보이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 그 부모님이 모든 꿈과 희망을 나에게 담아 줬다는 걸 깨달았을 때. 부모님의 존재는 너무나 거대해보인다.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것이 얼마나 끝없이 멀고도 긴 길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것도. 어째서 좀 더 빨리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어느 샌가 부모님이 내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가신 후에야 나는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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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이 스레를 보다가 눈물이 흘러 넘쳐서 화장실로 도망쳤다. 나도 그랬어. 고등학생때까진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 반드시 승리자의 인생을 걸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었지. 현재 나 자신이 아닌 머릿속에 그리는 나를 진짜 나라고 믿었다. 그 어떤 것도 보증해주지 않지만 전능감이 흘러 넘쳤지.
내 머릿속 녀석을 뒤쫓다 작별을 고할 때까지 30년이나 걸렸다. 현실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노력을 다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밑도 끝도 없는 피해 망상에 사로 잡혀 그 평범한 진리를 알지 못했지. 언제나 스트레스를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내기만 할 뿐. 내 바보짓을 깨달았을 땐 이미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어느샌가 전부 사라지고 없었지. 남은 거라곤 머릿속 나의 잔재뿐.
다만 생활을 잇기 위해선 일을 계속 해야 했지. 몇번이나 그만두려고 했지만, 이제와서 새 직장을 찾을 기력도 노숙자가 될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같은 회사에 계속 매달려 있었다.
지금은 과거의 내가 바보 취급했던 평범한 생활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결국 이제 결혼을 하거나 친구를 사귀며 즐기는 건 무리. 앞으로도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백조처럼 필사적으로 발을 휘저을 거야.
평범한 삶을 바보 취급한 댓가는 참으로 값비쌌다. 어째서 이렇게 오랫동안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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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무렵,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좀 더 현실을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당시의 내가 이런 말을 제대로 들었을리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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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건 해야될 일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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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 그렸던 꿈과 동떨어진 곳에 와있는 나를 깨닫고 울었다. 잠시 우회해도 괜찮다고 나를 속였지만. 결국 나는 어디를 목표로 했는지도 잊어 버렸어. 매일, 매일 삶에 쫓겨 경치조차 보이질 않는다. 파랑새는 잡히질 않고, 나는 피터팬이 될 수 없었어. 나이를 먹을 수록 많은 걸 알게 됐지만 동시에 모르는 것도 많아지고 있지. 너무나 무서워서 뚜껑을 닫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 스레가 그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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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랬지. 중학생 시절, 어른이 되면 진정한 나로 바뀔 거라고 믿었어. 진심으로 덤비면 뭐든 간단하게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지금은 귀찮으니 내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일 하자, 내일, 그리고 내일 하자. 계속해서 뒤로 미루면서 진정한 나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이만큼 나이를 먹고서야 깨달았다. 나의 약함도 게으른 기질도 간사한 성격도 모두 나 자신 이었다는걸. 그게 바로 진정한 나 였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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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스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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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회사를 다니며 아둥바둥 사는 직장인들을 비웃은 적 있어. 그런데 이제는 내가 비웃음 당할 차례가 됐네. 너무 아이러니해서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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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꿈은 어느샌가 현실의 벽에 빨려 들어가 내가 기억했던 그 모습은 흔적도 남지 않았어. 미래의 자신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내일의 자신밖에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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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집정리를 하다가 앨범을 발견했다. 안에는 내가 태어나고 1살이 될 때까지의 모습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사진 중간 중간에는 어머니가 쓴 듯 손가락을 빨고 있다거나, 이제 곧 일어설 것 같단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앨범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결국 부모님의 파랑새가 되지 못했으니까. 처음에는 태어버리려고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앨범을 벽장에 쳐박아둔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스레를 보고 간신히 기억났다. 내 마음속 파랑새는 이제야 간신히 죽어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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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 내 희망, 내 파랑새는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결국 나한테는 현실의 행복, 현실의 삶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