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1화를 쓰기는 어렵다. <div><br></div> <div>그래서 써보는 '프롤로그만' 모아보기로 했다.</div> <div><br></div> <div>말하자면 프롤로그의 사연집인 것이다. 그 첫 번째.</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div> “눈을 뜨십시오.”</div> <div><br></div> <div>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엄마 목소리다. 그래서 나는 눈을 뜨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이 토요일인 건 열 번도 넘게 확인을 했으니까.</div> <div><br></div> <div> 오늘은 토요일이고, 나는 이렇게 누워만 있을 거다. 오늘 내 하루 계획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침대에서 시작해서 침대에서 마무리한다. 이보다 더 깔끔한 계획은 없을 거다.</div> <div><br></div> <div> “일어나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div> <div><br></div> <div> 하지만 오늘따라 엄마는 집요했다. 보통 몇 번 깨우다가 대답이 없으면 어련히 자는 줄 알고 갈 텐데. 거기에다가 당최 오늘은 무슨 컨셉을 잡았는지 말투도 이상하다.</div> <div><br></div> <div> “셋 셀 때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일으키겠습니다.”</div> <div> “억지로?”</div> <div><br></div> <div> 내가 무심코 되물었다.</div> <div><br></div> <div> “팔을 자르겠습니다.”</div> <div> “어?”</div> <div><br></div> <div> 엄마?</div> <div><br></div> <div> 아무래도 엄마가 컨셉을 아주 제대로 잡은 모양이다. 나는 적당히 어울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팔을 이불 밖으로 슬쩍 내밀었다. 얼마나 잘 자르는지 보자,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div> <div><br></div> <div> 서걱.</div> <div><br></div> <div> “다음은 반대쪽 팔입니다.”</div> <div> “엄마. 기왕 할 거면 효과음 정도는….”</div> <div><br></div> <div> 엄마의 지극 정성에 겨우 이불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깔끔하게 잘린 팔이 있었다.</div> <div><br></div> <div> “…….”</div> <div><br></div> <div> 나는 그것을 잠깐 바라보았다. 내 옆에 툭하니 떨어져있는 건 팔이었다. 그것도 내 팔. 나는 고개를 돌려 내 팔을 바라보았다. 내 팔이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div> <div><br></div> <div> 어?</div> <div><br></div> <div> “엄마?”</div> <div> “저는 당신의 엄마가 아닙니다.”</div> <div><br></div> <div> 그런 목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인상을 쓰고 앞을 바라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안경이 없었다. 나는 사라진 팔을 멍하니 바라보다 물었다.</div> <div><br></div> <div> “그럼 당신은 누구죠?”</div> <div> “저승사자입니다.”</div> <div><br></div> <div> 저승사자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많이 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상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다.</div> <div><br></div> <div> “그런가요?”</div> <div><br></div> <div> 나는 떨어진 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긴, 꿈이 맞는 모양이다. 팔이 잘렸는데도 아프지는 않으니까.</div> <div><br></div> <div> “꿈이구나.”</div> <div> “아닙니다.”</div> <div><br></div> <div> 단호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그것 참, 꿈인 주제에 대차네. 여기가 꿈속인 걸 알았으니 자각몽일 테고, 자각몽이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div> <div><br></div> <div> “당신은 그간 너무 쓰레기같이 살았습니다. 변변찮은 연애도 한번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div> <div><br></div> <div> 네?</div> <div><br></div> <div> 쓰레기요?</div> <div><br></div> <div> 아니, 연애를 못해본 건 맞는데 쓰레기는 좀 심한 거 아니에요, 하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꿈속에서까지 변명을 하는 건 너무 구차하잖아.</div> <div><br></div> <div> “그래서 염라께서는 당신을 긍휼히 여겨 한 가지 명을 내렸습니다.”</div> <div> “아, 거절할게요.”</div> <div><br></div> <div>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래도 안경은 보이지 않았다. 기왕 꿈이라면 시력이 좋아졌다 같은 버프 정도는 줘도 좋을 텐데 말이야.</div> <div><br></div> <div> “거절은 윤허되지 않습니다.”</div> <div> “그럼 사절할게요.”</div> <div> “…….”</div> <div><br></div> <div> 내 대답에 꿈속의 저승사자가 입을 다물었다. 무슨 판타지 같은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도를 아십니까?’ 같은 목소리로 물어봐야 설득력이라곤 하나도 없다.</div> <div><br></div> <div> “당신이 맡을 명은 타락한 인간을 갱생시키는 것입니다.”</div> <div> “안 할 건데요?”</div> <div> “지상계에는 당신과 같이 쓰레기처럼 사는 인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자손을 낳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간들이 늘어나는 터라,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습니다.”</div> <div><br></div> <div> 아니, 잠깐만요.</div> <div><br></div> <div> “안 한 다니까요.”</div> <div> “앞으로 열 해의 유예를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열 명의 인간을 교화하는데 성공할 경우, 당신에게 새 생명을 약조하겠습니다. 허나 실패할 경우, 당신은 지옥의 법률에 따라 재판을….”</div> <div> “PPL하시는 거예요?”</div> <div> “…받게 될 것입니다.”</div> <div><br></div> <div> 저승사자는 아무래도 내 말을 무시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기왕 꿈속이기도 하니, 나는 저승사자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div> <div><br></div> <div> 열 명의 인간을 갱생시키면 새 삶을 주고, 실패하면 재판을 받는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득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를 향해 말했다.</div> <div><br></div> <div> “그 제안 받고 하나 더 추가해주세요. 새로운 삶을 줄 때 꽃미남에다 재벌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어정쩡한 재벌 말고, 아무것도 안 해도 통장에 쌓인 잔고가 늘어나는 정도의 재벌로요.”</div> <div> “그건 허락되지 않습니다.”</div> <div> “꼬우면… 아시죠?”</div> <div><br></div> <div> 내 물음에 저승사자는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꿈인데 제깟 게 노려보면 어쩔 거야?</div> <div><br></div> <div> “좋습니다. 단 이쪽도 조건을 내걸겠습니다.”</div> <div> “말이 좀 통하는 분이시네.”</div> <div> “실패할 경우 당신은 돼지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div> <div> “그 정도는… 네?”</div> <div><br></div> <div> 저승사자는 처음과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div> <div><br></div> <div> “당신은 생후 삼 개월 된 돼지로 태어나지만 구제역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폐기처분이 될 것입니다. 다만 그해 구제역은 불과 보름이 지나지 않아서 방역이 되고, 그 구제역으로 폐사된 가축은 백 자리 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 돼지 안에 든 당신은 고통스럽게 골골거리다가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div> <div><br></div> <div> 우와, 저 디테일함은 대체 뭐람.</div> <div><br></div> <div> “근데요.”</div> <div> “말씀하시죠.”</div> <div> “이거 제안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살아있는 저한테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해봤자.”</div> <div> “당신은 죽었습니다.”</div> <div><br></div> <div> 저승사자가 말했다.</div> <div><br></div> <div> “전 살아있는데요?”</div> <div> “죽었습니다.”</div> <div> “전….”</div> <div> “생전의 당신은 쓰레기같이 살던 도중, 우연한 사고에 휘말려서 쓰레기처럼 죽었습니다.”</div> <div><br></div> <div>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교통사고였다. 차에 치여서 붕 날아가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div> <div><br></div> <div> “아하. 누군가를 살려주려다 그만 제가 죽고 말았군요.”</div> <div> “무단횡단이었습니다.”</div> <div> “…….”</div> <div><br></div> <div> 아하.</div> <div><br></div> <div> “그럼 전 무단횡단을 하다 죽어서 여기에 온 건가요?”</div> <div> “그렇습니다.”</div> <div><br></div> <div> 저승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납득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사고로 죽고 저승사자를 만나게 되다니. 이게 꿈이 아니라니.</div> <div><br></div> <div>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죠?”</div> <div><br></div> <div> 나는 저승사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저승사자는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div> <div><br></div> <div> “쓰레기를 찾아야 합니다.”</div> <div><br></div> <div> 하고 말할 뿐이었다.</div></div> <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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