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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ovie_32625
    작성자 : bellyache
    추천 : 4
    조회수 : 870
    IP : 116.37.***.15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4/08/23 02:17:26
    http://todayhumor.com/?movie_32625 모바일
    수몰된 87년 체제와 잉태된 97년 체제 - 해무 영화분석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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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길어서 잘라질까봐 다시 언급합니다.
    본 글은 영화 해무에 관한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있사오니,
    내용을 알고싶지 않은 분들께선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동식와 홍매의 정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평들이 많은데,
    이점을 비롯해서 해무에 관해 좀더 심층적인 이야기가 나와주길 기대하며 나름대로의 분석을 공유합니다.
    개인블로그 저장이 첫째 목적이었던 글이라 경어가 아닌 점 양해를 구합니다. (__)



    97년과 현재, 마음의 풍경


    명량의 신기록 행진 여파로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치지 못한 상업영화 해무를 보았다.

    봉준호가 기획/제작하였고, 실화를 바탕에 둔 희곡이 원작이다.

    박유천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기력이 보장된 배우들이 참여했다.

    그럼에도 비교적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흥행이 전부는 아니나 안타까운 마음이다.

    합당한 평가에 따른 성적이라면 마땅한 일이겠으나, 반응을 살펴보니 그렇지 않은 듯하다.



    해무에 관한 평들은 대부분 위급할 때 보이는 인간 밑바닥의 추악한 본성을 말한다. '파리대왕'과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상정한 자연상태에 관한 가정이다. 하지만 해무는 그러한 성악설을 장황하게 주장하는 작품이 아니다. 바다 안개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97년 대한민국호에 드리운 IMF라는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고자 채택한 신자유주의 노선이 우리 선원(국민)들의 심성에 미친 부작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1998년이다. 1997년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IMF 외환위기 사태를 초래한 이듬해, 김대중의 국민의정부가 이극 극복하고자 과감한 경제정책을 시작한 해다. 마음의 레짐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를 명확히 구분한다. 87년 민주화 시대의 증상인 도덕적 강박 즉, 진정성이 97년 외환위기 시대를 맞이하며 속물성으로 대체되었다는 진단이다. 해무는 이 '97년 IMF 체제'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제7태창호 사건1'에 투영한 작품으로 읽힌다.




    줄거리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98년 감척 사업 대상으로 파선 직전인 전진호는 빚을 떠안고 운항한다. 하루아침에 200만원을 방만하게 써대고 부실한 기관을 제때 손보지 않은 게 어려움의 원인이었다. 선장 철주(김윤석)는 빚을 탕감하고 선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밀항 작업을 하기로 한다. 가족같이 유대가 끈끈했던 선장과 선원들은 이를 계기로 점차 갈등을 일으킨다. 그런데 단속을 피해 어창에 숨어있던 조선족 밀항자들이 질식해 떼죽음하고, 선장은 이들을 바다에 내다 버리라고 지시한다. 마음이 여린 기관장 완호(문성근)는 원혼을 보는 듯 정신을 놓아버리고, 갑판장 호영(김상호)은 극도의 냉정함을 유지하며 결속을 다진다. 롤러수 경구(유승목)는 돈에 집착하고, 선원 창욱(이희준)은 성에 집착한다. 막내 선원 동욱(박유천)은 유일한 생존자인 홍매와 사랑에 빠지고, 무사히 뭍에 도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동욱을 제외한 선원이 모두 죽는다. 선장은 전진호를 살리고자 배의 기골을 내다 버리는 등 발버둥 치지만 마찬가지로 숨을 거둔다. 동욱과 홍매는 정신을 잃은 채 뭍에 닿는다. 동욱이 정신을 차리자 홍매는 발자국만 남기고 사라졌다. 6년이 지나 막노동꾼이 된 동욱은 식당에서 홍매로 보이는 여인을 발견한다. 홍매는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있었고, 동욱이 일러줬던 뱃사람식으로 청양고추를 주문해 라면을 먹인다.




    분석


    1. 전진호는 대한민국의 성장 신화를 상징한다. 대한민국의 선장과 선원들은 경제성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수밤바다든 공해상이든 방향이야 어찌 됐든 전진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이 성장 신화야말로 속물의 아이콘 이명박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일 테다.



    2. 밀항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현상인 노동 유연화를 상징한다. 국적을 초월해 값싼 노동력을 데려오고, 이들에게 최소한의 대우만 해주거나 그조차 지키지 않는 사실은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됐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삼겹살 대신 동파육을 권하는 장면이 이런 의미를 이어준다.



    3. 재기를 위해 신자유주의와 손잡은 선장은 값싼 노동력을 데려와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며 착취하기 시작한다. 사람다운 대우를 요구하던 동포를 매질하고 바다에 던져버리는 선장의 모습 역시 현재 공장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4. 여린 마음을 지녔던 기관장 완호 아재는 87년 체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87년 체제의 진정성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요약되는 부채의식이다. 망자를 위로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완호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된다. 맹목적 전진을 방해한 대가는 죽음이었다. 대한민국호의 기관장 진정성이 숨을 거둔 것이다. 실제로 기관실을 차지하는 인물은 돈에 집착하는 롤러수 경구와 성에 집착하는 선원 창욱이다. 대한민국호의 새 기관장은 속물성이다.



    5. 선장이 가라앉는 배를 기어이 살려내겠다며 선원과 배의 기골을 바다에 빠뜨리는 장면은 기업들의 줄도산과 서슬 퍼랬던 정리해고 바람을 떠올리게끔 한다. 나라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정작 나라의 필수요소를 수장시킨 건 아닐까 질문을 던진다.



    6. 동식은 이미 반쯤 가라앉은 전진호를 포기하지 못한 철주에게 미친 건 당신이라고 일갈한다. 철주와 갑판장 호영은 제발 정신 좀 차리라며 다른 사람들을 나무란다. 해무는 특이하게도 영화 중반에 이르러 주인공이 철주에서 동식으로 옮겨간다. 철주의 관점에서, 전진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지고 보았을 때 완호/동식/홍매는 정신 못 차리는 걸림돌로 보인다. 관객도 이에 동조하게 된다. 하지만 동식이라는 순진무구한 인물로 관점이 옮겨지니 풍경이 달라진다.



    7. 해무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라면 동식과 홍매의 정사 그리고 재회 장면을 꼽겠다. 기관장 완호가 선장 철주로부터 죽음을 맡고, 기관실에 숨어있던 동식과 홍매는 불안을 극복하려는 듯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6년 후, 우연히 재회한 홍매는 동식과 같은 식성(청양고추를 넣은 라면/빵가매)의 아이와 함께 있다. 동식과 홍매의 아이라는 암시다. 아이는 정리해고의 피바람과 진정성의 수몰을 목도하며 잉태한 IMF둥이다. IMF둥이의 잉태와 현재 모습은 신자유주의 노선의 채택과 현재를 관통한 질문이다.

    bellyache의 꼬릿말입니다
    원글: http://noncon.tistory.com/entry/%EC%88%98%EB%AA%B0%EB%90%9C-87%EB%85%84-%EC%B2%B4%EC%A0%9C%EC%99%80-%EC%9E%89%ED%83%9C%EB%90%9C-97%EB%85%84-%EC%B2%B4%EC%A0%9C-%ED%95%B4%EB%AC%B4-%EC%98%81%ED%99%94%EB%B6%84%EC%84%9D-%EB%A6%AC%EB%B7%B0-%EC%8A%A4%ED%8F%AC%EC%9D%BC%EB%9F%AC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에 관해 더 궁금하신 분은
    김홍중 교수의 「스노비즘과 윤리」, 『마음의 사회학』을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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