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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게 만화를 보여주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만화는 나만 보는 게 아니라 엄마도 항상 함께 보는 것이었다.
첫 만화는 내가 기억하기론 닥터 슬럼프였다. 그다음이 드래곤볼이었고. 알고 보니 엄마는 아키라 토리야마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간간이 란마 1/2을 보여주시기도 했지만, 아무튼 제일 좋아하시던 만화는 드래곤볼이었다.
어렸을 적, 엄마와 나는 취침 시간이 되면 작은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잠을 잘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드래곤볼을 볼 준비를 하곤 했다 (비디오방에서 엄마가 매번 비디오를 빌려오셨다). 우리는 이불 위에는 눕지도 않고 앉아서 드래곤볼을 봤다. 엄마는 오프닝도 절대 빨리감기로 넘기지 않으셨다.
엄마는 베지터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환하게 웃으셨다. 베지터는 엄마 것이었기에 나는 트랭크스를 찜했다. 두 부자가 나올 때면 우리 모녀는 서로 '역시 베지터가 제일 멋있어', '아냐, 트랭크스가 제일 잘 생겼어'라며 다퉜다. 물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이다. 내가 트랭크스에서 오반으로 마음을 바꿨을 때도 엄마는 일편단심 베지터였다.
그러고 보니 새 스케치북을 사고 나면 나는 언제나 그걸 엄마한테 들고 갔었다. 첫 페이지에는 무조건 엄마가 그린 그림이 있어야 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엄마가 전화로 통화를 하실 때면 옆에 꼭 붙어 서 있었다. 우리 집 전화기 옆의 메모지에는 엄마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했다. '나도 엄마처럼 그림 잘 그리고 싶어'라고 매번 조르듯 말했던 것 같다.
엄마가 보여주는 만화, 그리고 엄마가 사주는 책. 신기하게 그것 중에 하나라도 재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게 없었다. 그리고 거의 이십 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엄마한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 잘 아셨던 거냐고. 나는 ‘내 자식이니까 내가 잘 알지’, 그런 식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엄마는 그냥 엄마가 좋아하는 걸 너랑 보고 읽었던 거야'.
예상치 못했던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행복하다고 느꼈다.
다 크고 나서는 내가 책을 사서 엄마랑 같이 읽고 또 좋은 만화가 있으면 엄마랑 같이 보고는 한다. 힘들 때 엄마 앞에서 울면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슬픈 만화를 보며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건 괜찮다. 엄마도 같이 훌쩍이시니까. 우리는 슬픈 장면이 끝나면 꼭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친다. 엄마는 눈물, 콧물 범벅인 내 얼굴을 보고 웃으시고 나도 엄마를 따라 웃는다. 그리고 우린 다시 아무렇지 않게 만화를 본다.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고맙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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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베스트에 간 베지터에 대한 글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
무슨 게시판에 올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베지터 때문에 애게에 올려요.
그림은 이미 손을 놓은 지 십 년도 더 돼서 좋은 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같이 이불 덮고 있는 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베지터가 많이 회춘했습니다. 근육도 없어졌고. 이해해주세요 ㅠㅠ).
처음엔 엄마랑 저를 그릴까 했는데, 저 부자를 그리는 쪽을 엄마가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 하하
그나저나 시험 기간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네요.
엄마 보고 싶다.
출처 | 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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