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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1. 시네마 천국이 워낙 많은 영화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이다보니 몇가지 공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이 리뷰에는 강한 수준의 스포일러,19금 장면 그리고 아주 강한 수준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있습니다. 저의 해석이 일반적 해석 방향과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시네마 천국이란 영화에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거나 그날의 감동을 간직하고 싶은 분은 이 리뷰를 읽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2. 시네마 천국은 이탈리아 국내용 오리지널판(155분), 국제용 축약판(123분), 1994년 감독판(173분) 3가지 버젼이 나와 있습니다. 따로 감독판을 구해서 본 것이 아니라면 국제용 축약판(123분)을 보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리지널판(155분)이 이탈리아 국내에서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지 못하자 123분짜리 축약판으로 편집 재개봉하여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축약판은 감독판에 비해 60분이나 칼질을 해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독판(173분)을 기준으로 리뷰를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3. 축약판에는 없고 감독판에서 추가된 장면
토토의 학교 친구였던 보치아가 시네마 천국 분점에서 자전거로 영화필름을 가져오던 도중 풀숲에서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감독판에서 추가되었습니다. (초반에 산수문제 못풀어서 선생님께 혼나던 뚱보아이)
축약판에서는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공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창문 아래서 99일을 기다렸던 병사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왜 병사가 100일이 되기 전날 밤에 홀연히 사라지는지 설명하는 부분을 삭제해버렸습니다. 감독판에서는 토토의 입으로 병사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감독판에서는 고향섬(쟌칼도)으로 돌아온 토토가 첫사랑이었던 엘레나와 재회하는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공주와 병사에 대한 우화와 엘레나와의 재회장면은 영화의 주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60분이나 칼질하는 바람에 시네마 천국에 대한 어긋난 해석과 오해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시고 리뷰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영화라는 창(窓)
시네마 천국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상징물은 창문입니다. 창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이자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스크린은 창문과 거의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알프레도와 토토가 세상과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영화(=스크린=창문)였던거죠. 알프레도는 토토를 아끼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마음씨 좋은 멘토입니다. 엄청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토토와 진실한 우정을 나누고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영화라는 훌륭한 우정의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영화와 관련해 반드시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영사기사로 일해오며 평생을 좁은 영사실의 창문 안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유명한 배우들의 대사를 혼자 따라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죽은 날에도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서 마지막 상영분까지 끝내고서야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영사실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장님이 됩니다. 이 모든 불행은 영화 때문에 찾아옵니다. 영화는 그에게 있어서 지긋지긋한 악연의 창문이었던 거죠. 영화가 자신의 일생을 망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영화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토토에게 영화는 세계를 인식하고 공감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로써 기능하고 있습니다. 영화 필름을 불 근처에 두었다가 집을 태워먹을뻔 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심부름 하라고 준 돈을 영화관에 가서 홀랑 털어먹기도 하며 어머니의 속을 썩입니다. 그래서 토토의 어머니는 알프레도에게 다시는 토토를 영사실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지만 토토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토토의 영화에 대한 집착은 가족간의 애정을 메마르게하고 30년간 변변한 대화도 없이 지내게 되는 결정적 단초가 됩니다.
# 엘레나에 대한 사랑과 창문
그러면 여기서 창문의 성질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창문은 그것을 통해 사물을 보여주고 동경하게 하지만 실제 만지고 느낄 수는 없는 일종의 장벽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결코 본질에는 도달 할 수는 없는거죠.
창문은 엘레나와의 애절한 로맨스 장면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토토는 고해성사실의 좁은 창문을 통해 엘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사랑을 받아준다면 그 징표로 엘레나 방의 창문을 열어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창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바라 볼 수는 있지만 결코 만질 수는 없는거죠.
여기서부터 영화광 토토의 삐뚤어진 현실인식이 시작됩니다. 그는 엘레나와의 사랑이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그 자체로서 영화(=허상)와 같은 것이라고 결론 내려버립니다. 사랑따위는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환상이라고 오해하게 되는거죠. 이런 토토의 생각은 축약판에서 삭제된 공주와 병사의 옛날이야기에서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병사와 공주는 로마에 군인으로 끌려간 토토와 창문을 통해 토토를 몰래 내려보던 엘레나의 직접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공주를 본 병사가 첫눈에 공주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합니다. 공주는 자신의 방 창문 아래서 100일동안 기다린다면 사랑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 99일동안 힘겹게 기다리던 병사가 100일이 되기 전날 밤에 홀연히 사라져 버립니다. 축약판에서는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는데 감독판에서는 토토의 대사를 통해 이유를 설명합니다. 토토는 99일동안 공주의 창문 아래서 기다리던 병사가 공주와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떠난 것이라고 결론내립니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병사처럼 떠나라고 말합니다. 토토가 슬퍼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알프레도의 애틋한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장애를 극복하려 노력해보지도 않고 현실에서 도망치라고 부추기는 겁니다. 결국 토토의 로마행은 사실상 현실도피적 성격이었기 때문에 토토가 나중에 감독으로 성장해서도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쓸쓸히 헤메이게 되고 평생 동안 진실한 사랑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축약판에서는 삭제된 엘레나와의 재회장면에서도 창문을 통해 비치는 그녀의 모습이 나옵니다.
차 안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나는 씬은 차 앞유리창이라는 스크린에 영사되는 한편의 영화 같은 연출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30년이 흘러버렸고 엘레나에겐 가정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허상이 되어렸습니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말라고 하고 장례식에도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토토가 앞으로 겪어야 할 슬픈 운명을 예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와 고향집 사이 창문에 위치한 새싹을 줌아웃으로 잡아주는 오프닝 시퀀스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망망대해를 건너 있는 로마(영화의세계=허구의세계)와 고향섬(=현실=가족=첫사랑)사이 창문이라는 경계에서 방황하는 토토(새싹)의 이야기라는 암시로 해석한다면 아주 의미심장한 오프닝이 아닐까요.
# 신부와 종의 의미
토토의 고향섬 쟌칼도 주민들에게는 영화관 시네마 천국이 유일한 오락거리이고 휴식처입니다. 영화가 상영중단 되거나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관객들은 거의 폭동을 일으키려고 할 정도죠. 쟌칼도 주민들에게 영화는 고단한 현실을 치유하고 안식을 주는 달콤한 마약입니다. 키스 장면을 신경질적으로 삭제해버리는 교회의 신부는 민중을 억압하는 종교 권력자처럼 묘사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사실상 신부는 우매한 민중들이 영화라는 허구에 휘둘리지 않게 도덕적 윤리적 보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경종을 울린다' 는 표현 많이 들어보셨죠. 신부는 요란한 종소리로 잘못된 길을 들려는 민중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실제로 구 시네마 천국에 불이나서 타버리고 복권에 당첨된 나폴리인이 극장을 인수해 신 시네마 천국이 개관한 이후에는 극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과거에는 영화관이 같이 웃고 눈물흘리는 소통의 공간이었다면 종교권력이 물러나고 자본가가 경영하는 새 영화관은 외설적인 영화가 나오고 아이들은 몰래 자위하고 어른들은 매춘을 일삼는 퇴폐적 공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런 메시지는 광장의 미치광이를 통해서도 전달됩니다. 광장은 민중들의 현실 참여를 상징하는 대표적 상징물입니다. 영화라는 허구에 취해 있는 쟌칼도 주민들과 달리 사실 이 미치광이만 제대로된 현실인식을 하고 있다는거죠. 미치광이는 새 시네마 천국이 개관하자 영화는 딱 질색이라며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쟌칼도 주민들에게 한바탕 욕지꺼리를 퍼부으며 독일로 이민가는 공산주의자 캐릭터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맺음말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입니다. 감독이 직접 편집된 키스장면을 보여주는 이 씬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토토의 학교친구 보치아가 영화 필름 배달중에 매춘부와 들판에서 정사를 벌이는 씬입니다.
영화 필름을 내팽겨치고 현실에 충실했던 보치아는 영화관이 아니라 현실에서 천국을 경험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결코 천국을 찾을 수 없다는거죠. 재미있는 것은 이 보치아가 나중에 엘레나와 결혼하여 그녀의 남편이 된다는겁니다. 영화에 집착했던 토토와 엘레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실에 충실했던 보치아는 결과적으로 사랑을 쟁취했던거죠.
게다가 시력을 잃고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된 후에야 제대로 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알프레도의 대사를 곱씹어보면 감독은 영화가 끝나야 비로소 현실이 시작된다는 단순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진리를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네마 천국은 사실 시네마 지옥이었던 것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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