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아팠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인가. 머리를 어루만졌다. 머리에 혹이 있었다. 별 고민하지 않고 출근했고,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양부장을 만났다.
"아, 강대리, 보고서 오전 중에 되죠?"
"네."
"이번엔 잘 좀 해봐. 그런데 머리가 좀 떴네."
양부장이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머리를 어루만졌다. 혹이 커지고 있었다. 바쁜 아침 일과 때문에 혹에 대해서는 까먹었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서 머리를 만져보니 혹이 더 커져 있었다. 아니,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니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혹--아니, 뿔이 길어졌다. 이제 어른 남자 손가락 정도 길이가 되어 있었다. 119에 전화를 했다. 긴급요원은 뿔을 보고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병원에 전화했고, 난 이내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뿔이 더 길어졌다. 병원에서는 나를 창문 높이에 있는 침대에 눕혔다. 의사가 보고는 놀라서 다른 의사들을 불렀고, 이내 이야기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도배되었다. 뿔이 더 길어졌다. 고개를 들을 수 없으니 할 일이 없다. 누워서 라디오나 TV를 듣는 수 밖에. 티비에서 의사와 의대 교수들이 뿔의 원인에 대해 전투적으로 논의했다. 뿔이 더 길어졌다.
수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프로필을 "Pray for 뿔"로 바꿨다. 일부 뿔을 숭배하는 종교단체가 생겼다. 신원 미상의 남성이 톱을 가지고 병원에 침입하다 붙잡혔다. 뿔은 이제 병원 옆건물까지 닿는 수준으로 길어졌다. 군대가 병원 주변에 진을 치고 분주히 오가고 있고, 여러 뉴스 채널에서 뿔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병원 옆건물과 각도를 맞추지 못해 건물 외벽에 구멍이 생겼다. 네이트 판 오늘의 판에 "남자친구가 뿔이 있다면?"이라는 글이 오늘의 판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뿔이 있으면 헤어진다는 의견과, 사랑으로 보듬어줘야 한다는 의견으로 양분된 가운데, 뿔을 관광 상품으로 해서 같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남자를 지갑으로 생각한다는 댓글이 달렸고, 그런 댓글이 여혐이라는 댓글이 그 밑에 달렸다. 뿔이 더 길어졌다.
라디오에서 남자 앵커가 "김00 앵커는 내일까지 몇 미터까지 자랄 것 같나요? 저는 아마 내일까지 45미터는 넘을 것 같은데요"라고 하자, 여자 앵커가 "하하하, 저는 그 정도는 안되지 않을까 싶어요. 40미터?"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그들은 웃었고, 뿔은 더 길어졌다.
회사에서 양부장을 시켜서 대기발령 통지를 보내 왔다. 해고하려 했는데, 적절한 해고 사유가 없어서 대기발령했다며, 좋게 생각하라고 했다. 양부장은내 어깨를 툭툭 치려다, 이내 포기하고 그냥 나갔다. 외신 기자들도 인터뷰를 하고자 했고, 나는 거부했다. 토크쇼에서도 나와 화상으로 대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싫다고 했다. 뿔이 옆건물을 뚫고 지상까지 휘어서 길어지고 있다. 고개를 돌릴 수 없어서 누워서 뉴스만 듣고 있다. 개신교, 카톨릭, 불교 지도자들이 티비에 나와 뿔에 대해 논의한다. 목사가 사람 머리에 뿔이 자란다는 것은 종말을 의미하는 거라고 하자, 신부가 기독교의 위대한 예언자를 뿔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 문헌과 미술품이 많다고 했다. 형형색색 옷을 입은 무당도 나와서 침을 튀며 의견을 얘기했다. 병원 주차장에 모인 수백 명의 컬트 신도들이 뿔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뿔이 더 길어졌다.
이제 뉴스에서 날씨를 보도할 때, "오늘은 뿔이 00미터입니다"라고 안내해준다. 뿔이 차도에 진입해서 차량진입이 통제되었다. 외국 대학에서 와서 내 뿔의 일부를 체취하는 것에 대해 동의서를 받아 갔다. 하지만 어떤 기계나 물질로도 뿔을 끊거나 자르거나, 조각낼 수 없었다. 뿔이 더 길어졌다.
병원 일대가 통제되었다. 헬기 여러 대가 시끄럽게 날아다닌다. 뿔에 대한 영화가 제작된다고 한다. 네이버 댓글란에는 그런 주제가 옳지 않다느지, 롯데가 만들면 재미 없을 것 같다느니, 황정민이 뿔남(男)으로 나오면 안 본다느니, 또 신파 억지 울음 영화가 될 것 같다느니, 만들면 꼭 보러(두 번 보러) 간다는 등의 반응이 있었다. 뿔이 더 길어졌다.
뿔이 땅을 파고 들자, 뿔이 더 이상 휘지 못해 내 몸이 들리기 시작했다. 뿔이 더 길어졌다. 병원 주변 집값이 폭락했다. 주민들이 나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라고 시위를 했다. 며칠 뒤, 뿔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상권이 되살아나자 집값이 기존보다 오히려 더 올랐다. 병원 주변에는 내 팬클럽 회원들로 분주했다. 교회에서 온 아줌마는 확성기로 나에게 악마가 깃들어 일어난 일이라며, 자기 종교를 믿으라고 소리 지른다. 경찰이 아줌마를 끌고갔다. 뿔이 더 길어졌다.
뿔이 땅을 깊게 파고 들어갔다. 내 몸이 완전히 들려서 이제 나는 벼처럼 허공에 떠 있다. 머리가 아래쪽이어서 다리를 들고 있기 힘들다. 정부에서는 사다리차로 음식과 옷을 갈아주고 있다. 내 요청에 의해 뉴스 라디오를 이어폰으로 연결해줬다. 뿔이 더 길어졌다.
언젠가부터 내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느꼈다. 지질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지표면을 뚫고 맨틀에 진입했을 것이고, 맨틀은 지표면보다 밀도가 낮지만 일부는 단단한 초고철질암이기 때문에 뿔이 뚫지 못하고 내가 하늘로 솓구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전문가가 뿔이 더 길어지면 맨틀도 뚫고 마그마에 닿으면 마그마에 의해 녹아버릴 것이라고 했고, 또 제3의 전문가는 지구 반대편에 닿을 것이라고 했다. 앵커가 서울의 지구 정 반대편은 어디냐 물었고, 마지막으로 말한 전문가가 우루과이 해안가라고 했다. 처음 말했던 전문가가 만약 지구를 관통하면 지진이 발생하거나, 지각에 악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앵커가 만약 지구를 관통하면 지구가 수박처럼 쪼개질 수도 있냐고 물었고, 두 번째 말했던 전문가가 뿔이 얇기 때문에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지각에 주는 충격에 의한 도미노 효과가 다른 곳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뿔이 더 길어졌다.
긴 뿔을 가진 내 모양의 피규어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제작주문이므로, 뿔의 길이는 구매자가 원하는 길이로 맞춰서 만들어준다고 한다. 병원 주변에 있는 높은 건물에는 내 뿔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한다. 조세전문가가 나와서 이러한 사업은 정당하게 등록하고 하지 않으면 탈세를 조장하므로 좋지 않다고 한다. 경제전문가가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서 고무적이라고도 했다. 뿔이 더 길어졌다.
점점 나는 높은 곳으로 밀려(올라)났고, 이제 고층 건물 높이였다. 사다리차가 더 이상 닿지 않기 때문에 뿔에 도르래를 설치해서 필요한 물품을 받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너무 빠른 속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점점 낙하 속도가 느려졌고, 완전히 멈췄다. 라디오는 잡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허공이었다. 뿔도 더 이상 땅에 박혀있지 않았다. 내 앞에는 광활한 우주가 있었고, 시야의 끝자락에는 반쪽난 지구의 안쪽이 보였다. 잠시 전만 해도 펄펄 끓던 용암이 순식간에 식는 모습과 함께.
이제는
뿔이
길어지지
않았다
출처 |
패닉 - 뿔
오늘의 유머 - 자지가 사라졌다(닉언죄 Mav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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