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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32400
    작성자 : Pass871
    추천 : 1
    조회수 : 407
    IP : 211.117.***.33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03/10/27 16:25:01
    http://todayhumor.com/?humorstory_32400 모바일
    무덤파는 할머니.

    이전 공포 '냉동인간'



    할머니는 삽을 들고 있었다. 삽이 할머니 몸에 비해 너무 커서 부담스러워 보였다. 검은 까마귀 같은 검은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주위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검은 정장은 장례식을 생각나게 했다. 굽이 낮은 구두는 유난히 광이 났다. 그러나 산길을 걸어가면 금방 더러워질 것이다. 구두뿐만 아니라 바지 아래 부분도 흙먼지에 더러워질 것이 뻔했다.
    "뭘 그렇게 유심히 쳐다봐?"
    민희가 어깨를 살짝 감싸며 말했다. 그러다 민희의 눈도 할머니를 따라가고 있었다. 민희의 눈 가운데가 찌부러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샛길을 통해 산으로 들어간다.
    "뭐야. 저 할머니?"
    민희는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승희야, 미친 할머니 아냐?"
    그럴지도 모른다. 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공원 아래동네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도 이곳으로 요양을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 삽을 들고 가는 걸까?"
    민희는 무릎을 코앞으로 당기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 뭔가 깨달은 듯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애기 무덤 파러 가는 거 아닐까? 그치? 그치?"
    민희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철봉으로 달려간다. 철봉을 손으로 잡다니 다리를 구부려 매달린다. 낑낑거리다가 바닥에 철썩 주저앉는다.
    "승희야! 너도 이리와 봐!"
    그러나 나는 할머니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차 있었다. 어떤 연민 같은 것이 느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배경을 내 머리 속에서 조작해냈고, 그것이 사실인 듯이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 할머니는 가족도 없을 것 같고, 우선 정신 장애가 심해 친구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산에 놀이 감을 찾으러 간다. 삽을 들고 올라가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승희야, 뭐해?"
    민희가 내 앞에서 지친 숨을 고르고 있다. 별로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몸이 튼튼하질 못하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민희는 오랜만에 운동을 하니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머리는 온통 할머니 생각으로 가득했다. 도대체 삽을 들고 뭐 하러 가는 것일까?
    "민희야, 할머니 따라가 볼래?"
    민희는 팔을 저으며 뒤로 조금 물러나는 자세를 취한다.
    "야, 무서워.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알고...."
    "그렇지..."
    나는 할머니가 들어간 샛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이 공원에 자주 왔지만, 그 곳으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덩굴 숲으로 가려져 그 길은 작은 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운동 많이 했으니까, 내려가자."
    "벌써?"
    "승희야~ 나 힘들어."
    민희가 내 손을 잡아끈다. 못이긴 척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입구 쪽으로 향한다. 저녁 해가 긴 나무 그림자를 만든다. 약간 추위가 느껴진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시 한번 할머니가 들어간 샛길을 바라본다. 조금 멀어지니까 그 길은 보이지도 않는다. 민희가 잡아끄는 데로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 때 할머니가 숲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학교 수업은 지루했다. 시간은 바닥에 눌러 붙은 촛농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몸은 관절이 다 굳어버린 것처럼 찌뿌둥 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책을 배게 삼아 잠을 청했다. 누군가 내 등을 쳤다.
    "야, 일어나."
    민희의 향수가 코를 자극한다. 나는 책에 얼굴을 붙인 체로 민희를 바라본다.
    "요즘 수업 너무 재미없지? 오후 체육시간에 피구한데..."
    "음....공이 너무 무거워.."
    그렇게는 말했지만, 체육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하루종일 교실에 있는 것은 너무 답답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이 지루할수록 운동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더 커져간다. 수업은 안 듣고 운동장만 멍하니 쳐다볼 때도 있었다.
    "체육시간에 같은 편 해야 돼. 알았지?"
    민희가 내 옆구리를 간지른다.
    그러나 점심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운동장은 온통 진흙 밭으로 변해갔다. 작은 강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 산에서 본 할머니가 생각났다. 만일 오늘 산에 올라가기라도 했다면.... 나는 머리 속에서 사실을 조작해내고 있었다. 미끄러운 산길에서 넘어져서 다칠 지도 모른다. 산 속에서 다치면 할머니를 도와줄 사람도 없다. 빗속에서 소리쳐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주말에 공원이나 가지 뭐..."
    민희가 삐진 듯이 말을 했다. 그래....주말에 공원에 가자. 마음 속으로 다짐을 했다.



    주말이 되었으나 공원으로 올라가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민희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같이 못 온다고 했다. 달려가서 민희가 매달렸던 철봉을 잡았다. 다리를 오므렸으나, 오래 버티진 못했다. 이렇게 허약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옆에서 남자아이 하나가 자랑스럽게 철봉을 오르고 있었다. 나보다 철봉을 잘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나보다. 아이가 철봉 위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부모들인 것 같다. 아이는 철봉에서 뛰어내려 부모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손을 잡고, 공원을 빠져나간다. 공원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공원의 입구 쪽을 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은근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을 할머니도 눈치 첸 모양이다. 나를 흘낏 바라본다. 그리고는 전처럼 삽은 든 체로 샛길로 들어가 버린다.
    그 길을 한 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할머니를 따라가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솔직히 한 주 내내 할머니가 삽으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었다. 처음 물건을 훔치는 도둑처럼 샛길 앞에서 주위를 살피고, 샛길로 들어갔다. 샛길은 생각보다 좁고, 험하고, 어두웠다. 5분 정도 걸었으나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잘못 밟고 넘어졌다. 무릎에서 피가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길도 너무 험하고,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할머니가 하는 일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고, 잠시 조그만 돌 위에 앉았다. 5분 정도 걸어 올라왔을 뿐인데, 숨이 차왔다. 숲이 우거져서 길이 아주 어두웠다. 이 정도면 동굴이라고 해도 될 듯 싶었다.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노을 때문에 빨간색의 빛을 띠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면 내려가는 길이 너무 위험할 듯 싶었다.
    내려가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길 앞쪽에서 삽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가면 그 장소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민희가 애기 무덤 파는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조금 무서웠지만, 호기심은 이미 공포를 밀어내고 있었다.
    조금 걸어 올라가자 조그만 공터가 나왔다. 공터 한 가운데 무덤이 있었다. 아직 풀도 심지 않은 흙무덤이었다. 할머니는 그 옆에서 흙을 파, 무덤 위로 올리고 있었다. 무덤을 만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옆에 커다란 봉지가 놓여 있었다. 봉지는 옆으로 조금 눕혀져 있고, 내용물이 밖으로 조금 삐져 나와 있었다.
    그 내용물을 보기 위해, 위치를 옮기기로 했다. 조금 옆으로 가면 그것이 보일 것 같았다. 천천히 기어서 옆의 나무 뒤로 몸을 옮겼다. 날이 어두워서 숲 속에 있으면 할머니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잠시 나무 뒤에서 멈첬다가 다음 나무로 천천히 움직였다. 할머니를 살짝 쳐다보자 등진 체로 흙을 계속 퍼올리고 있었다. 다시 앞을 보고 다음 나무 뒤쪽으로 움직였다. 무릎이 땅에 닫는 순간, 무릎에 의해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가 커다란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동상처럼 얼어붙었다.
    그 자세에서 고개를 천천히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돌아앉은 자세에서 얼굴만 이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은 정확히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모습이 안 보일거야....하는 바램만 머리 속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할머니는 천천히 일어났다. 머리에 두른 보자기의 그림자 때문에 얼굴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눈만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할머니는 삽을 두 손으로 잡아든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고고고고고고고."
    새들한테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입을 오므리자 그 주위에 주름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고목 나무 같았다.
    할머니가 말을 멈추더니 한 발자국 더 다가온다. 그리고 삽을 위로 높이 치켜든다. 삽으로 누군가를 내리치려는 자세다.
    "애기 왔니? 우리 애기 왔니? 벌써 오면 어떻게 해? 망할 것....."
    그렇게 말을 하더니 내 쪽을 바라보던 시선이 분산된다. 무엇을 찾는 듯이 눈으로 숲 속을 계속 뒤진다. 아직 나를 못 본 것이다. 할머니는 뒤를 돌아 무덤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기어서 처음에 목표했던 지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무 뒤에서 얼굴을 내밀어 봉지 안을 바라보았다. 나무 판자 같은 것이었다. 은빛 나는 무언가가 달려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무덤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무덤에 입구가 있던 것이다. 자신이 죽을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발이 보인다. 구두는 진흙에 빠진 까마귀처럼 더럽혀져 있다. 무덤 입구로 빛이 새어 나온다. 안에서 후레쉬를 켠 것 같다.
    갑자기 웃음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가 무덤 속에서 웃고 있었다. 무엇을 본 것인가? 무덤 입구로 팔이 나와 판자든 봉지를 잡는다. 그리고 봉지는 무덤 속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할머니가 무덤 밖으로 나온다. 삽을 들더니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올라왔던 길로 향한다. 그 길과 내 위치는 멀지 않다. 어쩌면 발각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나는 몸을 조금씩 틀어서 할머니가 보지 못하게 나무 뒤로 움직였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다가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할머니가 멈춰선 것이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고고고고고고..."
    이상한 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오므린 입이 다시 생각났다. 주름이 너무 징그러웠다. 칼로 판 듯한 느낌을 주는 주름이었다. 다시 발자국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는 산 아래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자, 숲에서 나와 무덤 쪽으로 다가갔다. 해는 졌으나, 다행히 달빛을 의지해서 무덤의 입구를 볼 수 있었다. 그 어두운 구멍은 작은 맹수가 튀어나올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너무 어두웠고, 다시 애기 시체 얘기를 떠올렸다. 그런데 발에 무언가 밟혔다. 후레쉬였다. 할머니가 모르고 놓고 간 듯 했다.
    후레쉬의 스위치를 열자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입구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입구 벽은 시멘트로 발라 놓았고, 거의 원형인 것이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안쪽을 비춰보니, 구멍은 기울어져서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형상이었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부터 구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갔다. 1m정도 들어가자 안에 꽤 넓은 공간이 보였다. 관 두 개 정도 붙인 듯한 공간이었다. 앉을 수는 없었지만, 세 명은 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레쉬로 구석구석을 비춰 보았다. 구석에 아까 봤던 봉지가 놓여 있었다. 그쪽으로 기어가 봉지를 열었다.
    봉지 안에는 조그만 문이 들어 있었다. 철로 된 동그란 문이었는데, 무덤의 입구에 달면 딱 맞을 만한 크기였다. 그리고 은색 빛은 자물쇠 장치였다. 평소 보던 자물쇠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후레쉬의 전원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바짝 엎드렸다. 할머니가 다시 올라온 것인가? 내 몸은 추위를 느끼는 듯이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지만,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후레쉬를 다시 가지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레쉬가 무덤 앞에 없는 것을 알면 무덤 속으로 들어와 볼지도 모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발자국 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어두운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는 할머니의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머리 속에는 이미 할머니가 무덤 속으로 기어 들오는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그리고 무덤 속에서 미친 할머니와 둘이 있게 된다. 구멍은 좁고, 도망가기는 불가능하다.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삽을 땅에 끌고 오는 소리도 같이 들린다. 그 두 가지 소리는 무덤 안으로 괴기스럽게 퍼지고 있다.
    발소리가 무덤 앞에서 멈췄다. 후레쉬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바램은 여지없이 깨졌다. 할머니는 이상한 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했다.
    "고고고고고고고고.."
    그 소리에 긴장해서 후레쉬를 꽉 쥐었다. 그때서야 후레쉬를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는 이것만 찾으면 다시 돌아갈 것이다. 몸을 움직여 구멍이 시작되는 위치에 후레쉬를 내려놓았다. 움직이면서 소리가 조금 났지만, 할머니의 이상한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입구와 가장 먼 벽 쪽으로 가서 엎드렸다.
    소리가 멈추고 무덤 입구로 할머니가 천천히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더듬더듬 거리며 들어오고 있는 듯 했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가 후레쉬를 찾아내고 불을 켤 경우였다. 그러면 내가 여지없이 노출이 된다.

    할머니 팔이 보인다. 어둠 속에 형태만 겨우 알아볼 수 있지만, 땅을 더듬는 소리는 그 존재를 증명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팔이 더듬거리다가 후레쉬를 만진다. 잠깐 움직임이 멈춘다. 후레쉬를 닿을 정도로 들어왔다면 얼굴은 이미 무덤 속 공간을 볼 수 있는 위치까지 온 것이다. 심장이 멎는 것 같다. 불만 켜면 끝장이다. 내 손은 입을 막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가는 소리를 막기 위해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부터 이미 내 손은 거기에 있었다. 입에 압력이 느껴졌다. 긴장에 의해 손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무덤 속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나를 발견했나? 아직은 아닐 것이다. 무덤에 들어오는 구멍은 좁고, 안으로 기울어져 있어 뒤로 빠져 나가기는 힘들다. 할머니도 들어왔다가 머리부터 밖으로 나려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몸을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의 옷이 살짝 내 배를 스친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러나 나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지는 않다. 밖으로 나가는 구멍으로 할머니가 천천히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서야 나는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쉰다. 무덤 안의 공기는 차갑고 습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 무거운 공기에 눌려 미라가 되어 버릴 것 같다.
    더 이상 할머니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금 기다리다가 구멍으로 기어올라왔다. 기어올라오는 소리를 행여나 할머니가 들을까봐 아주 천천히 조심해서 올라왔다.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달도 구름에 가려 산 속은 너무 어두웠다. 내려가는 길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는 후레쉬 불빛에 의지해서 산을 내려갈 것이다. 산아래 쪽을 바라보았으나 길 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지하실 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귀 위쪽 부분에 고통이 느껴졌다.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나는 머리를 붙잡은 체로 쓰러졌다. 후레쉬 불빛이 눈부셨다. 곧 정신을 잃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특히 오른쪽 머리는 피가 나는 듯했다.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떴다. 허름한 방이었다. 뭔가가 보였으나, 아직 눈의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거리자 앞에 보이는 물체의 정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쇠사슬이었다. 그것은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꽃무늬 벽지가 보였다. 이상한 부적 같은 것이 많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의자에 묶여 있었다. 쇠사슬이 온몸을 감고,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뒤에서 두 손을 묶고 있었다. 두꺼운 테이프가 입과 머리를 강하게 휘감았다. 내 숨소리가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포심은 머리의 고통까지 잊게 만들고 있었다.
    옆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할머니일 것이다.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 아까 머리를 덮었던 검은 보자기는 보이지 않는다. 깊은 주름이 선명하게 보이고, 머리카락은 엉켜서 하얗게 늘어뜨려져 있다. 손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다.
    "아가씨, 일어났나?"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그러나 테이프로 닫힌 내 입에서 음-하는 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할머니가 야구 방망이를 높이 치켜든다. 전에 삽을 들던 자세와 비슷하다.
    "할미가 물어 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야구 방망이가 내 등을 가격한다. 비명 소리가 입 속에서 맴돈다. 눈에서 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것들이 떨어진다. 피하려고 했으나 의자에 너무 단단히 묶여 있다. 다섯 대 정도 때리고 나서야 방망이질을 멈춘다. 다시 이상한 소리를 낸다. 꽃무늬 벽지의 방 안에서, 나의 신음 소리와 할머니의 이상한 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할머니가 소리를 멈추고 내 목을 어루만진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제게 젊은 양기를 보내주시다니요.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젊은 몸으로 태어나, 고고고고고고고고고.... 신령님을 더욱 더 받들여 모시겠나이다."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잡는다. 나는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어깨에서 이빨이 느껴진다. 옆을 돌아보니 할머니가 내 어깨를 물고 있다. 곰팡이 냄새같은 이상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할머니는 내 어깨를 빨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팔뚝으로 내려간다. 그러면서 빠는 행동은 더욱 격렬해진다. 저항을 해보려 하지만 내 몸은 너무 꽉 묶여 있다. 할머니가 고개를 들고 다시 말을 시작한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아주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내 몸을 빨기 시작한다. 왼쪽 손이 온통 할머니의 침으로 범벅이 되다. 주름진 입은 내 살을 뽑아 먹으려는 듯이 거머리처럼 피부에 밀착해 있다. 작고 충혈 된 눈은 아래를 보며 살이 잘 빨려 들어가나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오른 손도 할머니의 침이 안 묻은 곳이 없다. 그 침을 통해 피부로 추악한 것들이 스며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오른 손을 다 빨고 나자 할머니는 일어서서 내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콧물이 흘러내려 숨을 쉬기도 힘들다. 추악한 기분이 온 몸을 감싸고 있다. 이런 느낌이 죽을 때까지 따라 다닐 것 같았다. 그래도 이 만큼하고 끝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소리가 나고 할머니가 들어왔다. 손에는 커다란 가위가 들려 있었다. 목에 가위의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위는 내 목 쪽에서 가슴 쪽으로 옷을 자르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옷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할머니의 말이 진득진득한 숨결과 함께 내 귀에 전해졌다.
    "아직 젊은 영기가 모자라."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할머니는 매일 저녁 같은 행동을 되풀이했다.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의자에 묶여서 지내야 했다. 온몸이 파랗게 멍이 들었으나, 그 의식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할머니의 눈과 깊게 패인 주름에서 나오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목구멍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숨결이 얼굴에 느껴지도록 가까이 다가와서 내 눈을 기다란 혀로 핥았다.
    "무덤 문을 본 적 있니?"
    이상한 자물쇠가 달려 있는 동그란 문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입에서 무언가를 씹는 듯이 우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는 특별한 자물쇠가 달려 있지. 한번 잠기면 절대로 열 수 없는 자물쇠야. 고고고고고고고....한 시간 뒤에 잠기게 해놨어. 그 안에 누가 있을까?"
    괴상한 표정으로 혀를 한번 내민다.
    "친구 중에 민희라는 애가 있지? 그 애가 그 안에 기절해 있어. 히히히. 너를 찾으러 왔더구나. 착하기도 하지. 한 시간 지나면 영원히 태양을 못 볼 테지만 말이야. 고고고고고.."
    내 머리를 잡기 뒤로 당긴다. 주름진 입이 다가와 내 목을 빤다.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갑자기 옷을 벗는다. 검은 정장이 땅에 떨어진다. 할머니는 알몸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간다.
    조금 뒤에 방 바깥쪽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외출을 하는 것이다. 내 앞에는 할머니가 벗어놓은 옷이 놓여져 있다. 벗는 순간 짤랑 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발가락으로 옷을 집어 올렸다. 그 안에 열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옷을 간신히 손이 있는 쪽으로 옮겼다.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민희가 아주 위험하다. 이름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물인 것이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았다. 열쇠고리에 두 개의 열쇠가 달려 있었다. 팔에 달린 수갑 구멍을 찾으려고 더듬었다. 뒤로 묶여 있어서 구멍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열쇠 하나를 구멍에 끼어 넣으려고 했으나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밖에서 문소리가 났다. 손에서 열쇠가 떨어졌다. 다시 할머니가 집에 들어온 것이다. 지금 거실에 있다. 이 방으로 들어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이런 기회를 다시는 못 잡을 뿐만 아니라, 민희를 구할 기회도 없어지는 것이다. 사실 야구 방망이로 얻어맞는 것이 더 두려웠다. 쇠사슬 위로 가격이 될 때에는 사슬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잠시동안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야구 방망이를 들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내 눈은 방 문 손잡이에 고정되었다. 내 모든 신경과 핏줄이 손잡이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저것이 돌아가는 순간, 떨어져 있는 열쇠가 발견될 것이고, 그 다음은 상상도 하기 싫다.
    방 밖에서 문소리가 났다. 할머니가 나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니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내 뒤쪽으로 떨어져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의자를 움직일려고 하였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철제의자는 바닥에 본드로 붙여놓은 기분이 들 정도로 무거웠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힘을 줘서 뒤로 누웠다. 의자의 앞다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곧 뒤로 넘어갔다.
    땅에 닿는 순간 팔목이 뒤틀렸다. 의자 뒤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면서 의자에 눌린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비명을 지를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비명을 알리는 수단이었다.
    고통을 뒤로 한 체 더듬거리며 열쇠를 찾았다. 다행히 손가락 끝에 열쇠가 걸렸다. 이번에는 작은 열쇠를 수갑 구멍에 넣어 보았다. 수갑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화장실 갈때도 풀리지 않던 수갑이 이제야 내 손을 벗어난 것이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쇠사슬에 걸려있는 자물쇠에 큰 열쇠를 넣었다. 곧 쇠사슬도 내 몸을 벗어났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손과 발, 가슴과 배까지 다 멍으로 가득하다. 인간의 몸 같지가 않다. 홀딱 벗은 몸으로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벗어놓은 옷이 보였다. 아쉬운 대로 그것을 몸에 걸쳤다. 소름이 끼쳤다.
    문을 열자 거실이 나왔다. 거실도 온통 꽃무늬 벽지로 덮여 있고, 이상한 부적들이 천장까지 붙여져 있다. 신발장을 열자 내 운동화가 보였다. 왜 이걸 이렇게 잘 놔두었는지 모르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인 체로 운동화를 신고, 뛰어 나갔다. 이 집은 산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공원의 운동기구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몸에 힘은 별로 없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공원으로 뛰어 갔다. 공원 입구까지 가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전에 보았던 남자 아이가 다가왔다.
    "누나, 또 늦었네. 벌써 어두워지려고 그러는데."
    남자 아이는 입구로 달려가더니 이내 모습을 감춘다. 나는 반대쪽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샛길로 들어간다. 세 번 정도 넘어지고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났으나 멈추지 않고 달렸다. 곧 무덤이 나타났다. 무덤 위에 심어진 잔디가 달빛을 반사하고 있다. 그동안 잔디까지 다 심어 놓은 것이다. 앞에 묘비도 세워져 있었다. 이젠 완전한 무덤처럼 보였다.
    입구가 있는 곳으로 가자 전에 봤던 동그란 문이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닫혀 있지는 않았다. 문 앞에 후레쉬가 놓여 있었다. 급하게 후레쉬를 들고 미끄럼 타듯이 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후레쉬 스위치를 올렸다. 그곳에는 민희가 있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옷 한점 걸쳐 있지 않은 민희의 몸을 비추자, 깊게 패인 상처들이 보였다. 할머니의 깊은 주름같이 징그러운 상처들이었다. 온 몸을 흉기로 난도질당한 모습이었다. 목이 막혀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번도 떨어져있어 보지 않은 친구였다. 민희는 눈도 감고 있지 못했고, 입은 양쪽이 절개되어 징그럽게 벌린 모습이었다.
    이곳을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돌리려는데 검은 물체가 갑자기 무덤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였다. 나는 놀라 민희 쪽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내 손가락이 민희의 절개된 피부 안으로 들어간지도 모를 정도로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할머니는 몸을 돌려 입구에서 나가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무덤 안으로 들어왔다.
    후레쉬로 할머니의 얼굴을 비췄다. 하얗게 분을 바르고 입술은 빨갛게 물들였다. 내 입에서는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입구를 닫았어. 이제 영원히 나가지 못할 것이야. 고고고고고고고고...."
    할머니는 바닥에 누웠다. 할머니의 발이 나의 발에 와 닿는다. 나는 벗어나려고 꿈틀거리지만 공간이 너무 비좁다. 민희 시체 위로 몸을 피했다. 민희와 포개 누운 자세가 되었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지신명이시여. 당신의 뜻대로 젊은 피 두 명을 잡아 왔습니다. 한 명은 신령님의 배를 달래고자 칼질을 했으며, 한 명은 당신의 놀이개가 되기 위해 산 체로 잡아 왔사오니다. 이제 다시 저를 젊게 다시 태어나게 하옵소서~~ 고고고고고고고... 다시는 정신병원 같은 곳에 가두지 마시옵소서."
    무덤 속에서 곡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목소리는 무거운 공기와 칙칙한 습기에 의해 흡수되어 버린다. 일생의 한을 모두 뱉어내려는 듯이 큰 소리로 말을 한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토해내는 느낌이었다.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입이 양옆으로 벌어진다.
    "신령님, 좋으시겠어요."
    오른 손에 커다란 가위가 들려져 있다. 가위를 가슴 위로 올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는다. 내 옷을 자르던 그 가위다. 웃음소리가 더 커진다. 나를 바라보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마구 웃다가, 가위로 기도를 자른다. 그리고 만족 못한 듯이 자신의 목을 가위로 마구 자른다. 날카로운 가위는 목을 난도질한다. 목에서 피가 솟아난다. 심장 박동을 타고 규칙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할머니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떨더니 이내 숨을 거둔다. 무덤안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 후레쉬 렌즈에도 피가 묻어 빨간색 불빛이 나온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입구 쪽으로 기어갔다. 아직 체온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몸 위를 지나 구멍을 향해간다. 후레쉬 불빛으로 입구 문이 보인다. 손잡이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힘껏 밀어 보았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며 문을 마구 쳤다. 변하는 것은 없었다.
    민희 시체와 할머니 시체 사이에 누웠다. 민희의 손을 잡았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피는 바닥에서 굳어져 진득해져 있었다. 내 얼굴과 몸에 묻은 피도, 그늘에서 말린 찰흙처럼 이미 굳어버렸다. 무덤 속의 공기가 피의 무게만큼 더욱 무거워진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후레쉬의 불빛이 꺼졌다. 나는 더듬거리며 할머니가 들고 있던 가위를 찾았다.
    Pass871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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