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조언자
주영은 마른낙엽 같은 사람이다. 바람만 불면 생각과 마음이 불어가는 쪽으로 한 번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기에 치여 한 번 뺑뺑이를 돌아가 바닥에 떨어진다. 방금 웃고 이야기 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외로워지는 사람이다. 누가 밟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스스로 바스라질 그런 사람이다.
어깨를 처지게 하는 손가방을 길가에 있는 나무 의자에 놓았다. 주영은 심란한 마음을 다잡으려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연습이란 것을 어제도 그제도 지금도 안다. 그럼에도 마음이 방황하니 몸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습관적으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한 번씩 울적함과 함께 걱정이 밀려왔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찾아오는 여러 고통 때문에 마음이 편할 날이 하루도 없다. 엄지로 검은 화면을 꾹꾹 눌렀다가 전화나 메시지를 확인했다. 멍하게 있다가 또 반복했다.
"거서 뭐해요?"
"어~ 안녕."
"방황해요? 같이 해줄까."
"저리 가."
"알았어요."
상연은 나타나자마자 지나치듯 길을 따라 가버렸다. 그러다가 열 걸음 만에 몸을 틀고 돌아왔다. 상연은 편치 않아 보이는 주영이 표정을 살폈다. 정확하게는 콧등에 발라놓고 덜 퍼진 하얀 선크림 같은 것을 처다 봤다. 콧등에 생겼던 상처가 아물 도록 발라놓은 것이다. 그러다가 주영이 옆에 놓인 손가방을 두려운 표정으로 봤다. 여러 번 들어준 적 있었는데 정말 무거웠다. 상연이 손가방을 들며보며 물었다.
"이 가방 몇 키로에요?"
"하~ 또 맞을 소리를 하네."
"아따 짐에 돌이 들었나, 무거워 죽겄네."
"너 진짜 맞을래? 저리 가라니까, 왜 또 와서 매를 벌고 있어. "
"내가 돈은 못 버는데 매는 잘 벌어."
"하- 진짜 어이없네. 너 때문에 지금 더 방황하게 생겼잖아!"
"같이 해드림."
"아 제발 너는 반말을 할 든 존대를 하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해."
어느 새 상연은 주영이 짐을 들어주며 따라다녔다. 상연은 자칭 조선 짐꾼이라 스스로 칭하며 짐꾼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얻어먹을 것은 당당하게 다 얻어먹었다. 매번 사준다는 것은 극도로 사양하며 자신은 한입충이 아니다. 얻어먹기만 해선 안 된다고 신념 있게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식당에 가면 먹는 모습을 구경만 한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결국 지가 다 처먹었다.
주영이가 콜라를 사주었다. 상연은 오늘도 본인은 목도 안 마르고 사양했지만 결국 자판기 앞에서 5초 만에 신념을 팔아먹었다. 그렇다. 주영은 상연이 처음에는 거절하고 두 번째는 흔들린 척 하며, 세 번째에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조선 거지란 것을 깨달았다.
콜라를 훌쩍이면서 상연은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주영을 살폈다. 그리고 물었다.
"걱정 있어요?"
"딱 보면 몰라 지금?"
"뭔대요?"
주영은 최근에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소리 들어서 마음에 고생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 재능이라는 것이 바로 피아노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피아노를 배우다가 엄마가 피아노 선생님에게 재능이 있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원치 않게도 피아노를 그만 두게 되었다. 그러다가 16년이 흘렀다. 지금으로 부터 약 2년 전 쯤에 피아노 전공생이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상연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입술을 꿈틀 거렸다. 뭔가 근사한 직관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당장 표현하기에는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한 개 던져 보았다.
"꼭 피아노를 배워서 이걸로 밥 먹고 살아야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어릴 때는 그냥 배우는 건데 재능이 없다고 그만 두게 하다니, 말이 안 되는데."
주영이 고개를 끄덕 거렸다. 상연은 물어뜯던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러면서 서서히 생각을 풀어 보았다.
"그리고 무대 공포도 있으시잖아요. 이게 불안에서 오는 것인데 음~ 어. 그 뭐냐 주영씨가 어린 시절에 엄마로 부터 상처를 받고 트라우마가 생겼잖아요. 이게 큰 문제인 게. 아이는 엄마로 부터 안정감을 얻거든요? 막 그 애기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 무릎에 앉고 조금 쉰 다음에 또 뛰어나가서 노는 게 있거든요. 그래야지 아이가 무엇이든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는 거에요. 저는 주영씨가 재능이 없다, 있다 보다 큰 문제가 근본적인 자신감을 잃어버린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 엄마가 선생님에게 재능있냐, 없냐를 물어봤던 게 핵심이에요. 보통 자식이라면 재능이 코빼기도 없어도 잘 한다 잘 한다 하면서 칭찬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이가 잘 될 거라고 믿는 거죠.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선생님 말을 듣고 판단을 내려버린 것은 내 자식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이고요. 설령 재능이 없는 게 사실이라도 피아노를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 것인데 이것을 막는 다는 것은 잘 못된 거에요."
말을 잠시 멈춘 상연은 콜라 한 모금을 뽈았다. 그 다음 입을 꾹 닫고 경청하고 있는 주영을 보고는 자신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더욱 신나게 입을 털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게 그 엄마가 자식을 자기 생각대로 판단대로 키우려고 하는 문제 거든요. 그냥 자식을 자기 소유물로 보는 거에요. 지금까지 들어본 이야기를 생각하건데 진짜 이거는 재능에 문제가 아니라 자식이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터득하지 못 하도록 상실하게 만든 거에요. 결국 이게 무슨 문제가 되냐면요. 아이는 부모를 보고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내리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엄마가 자식을 못 믿는 거에요. 그러면 자식도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누군가가 너 재능이 있다, 없다라는 말 한 마디에 엄청나게 흔들리게 되는 거에요. 지금은 다 컸지만, 이게 해결이 되지 않아서 생각과 감정에 아주 박혀버렸어 박혀버려. 그래서 누가 재능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잘 할 수 있고 재능이 있어! 라고 생각을 못하게 되요. 그게 뭐냐면 나를 못 믿으니까!"
말 하고 상연이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빈 깡통을 바닥에 대충 놓았다. 빈 깡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상연은 은근히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감동을 해버렸다. 나중에 테드라는 유명한 강연에 나가서 강연하는 본인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하니까 더 기분이 좋아졌다. 상연이 다시 입을 털었다.
"저는 글을 쓸 때도 연주를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항상 내가 천재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사실은 진짜 천재가 아니잖아요. 절대 음감도 없고 그림도 그리면 뭔지 알아보기 힘들고 글도 틀리는 게 많아요. 그런데도 나는 내가 천재라고 빠져서 살아요. 저희 엄마도 잘한다 잘한다 천재다 하면서 칭찬을 해줬는데. 사실 그게 엄마가 바라는 거지 진짜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내가 천재라고 믿어줄 사람은 딱 한 명 빼고는 없어요.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누가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해도 나보다 훨신 어린 열살도 안 되는 꼬맹이들이 내가 평생을 바쳐도 연주 할 수 없는 음악이나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나는 내가 그들 못지않는 천재라고 믿어요. 설령 우물안에 개구리가 될 지언정. 이 세상 그 누구도 내가 천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도 나 만큼은 나를 천재라고 생각해 줘야 해요. 나를 믿어주는 거에요. 내가 아니라면 누가 나를 믿어줘요."
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연이 하는 말을 경청했다. 상연은 두 눈으로 주영이를 바라보면서 열띤 강연을 했다. 그런데 주영을 바라 봤을 뿐 이미 자기가 한 말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빠져 버려서 보고도 보는 게 아니었다. 다만 주영이가 엄청나게 경청을 하며 감동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입이 열려있으면 듣고 있지 아니라한 것이라 했다. 주영이는 입을 꾹 닫고 말하는 사람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태도를 하고 있다. 경청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교과서 그 자체였다. 이것은 상연을 더욱 만족 시켰고 입을 더 근사하게 털리도록 장려했다.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거에요. 내가 과연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고민 할 시간에 한 곡이라도 더 쳐야 되요. 음악이란 평생 배워야 하는 것이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어진간한 피아니트가 공연하는 수준은 우리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고 봐요. 아니, 있어요. 솔직히 극단적인 신체적인 정신적인 장애가 없고 레슨을 받을 돈만 있으면 무조건 따라잡는다고 봐요. 설령 그럴 환경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음악은 우리 인생과 분리 될 수 없는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즐기면 즐겼지 피하거나 외면하면 안 돼요. 그리고 엄마도 그래요. 주영씨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거에요. 이게 정말 어려운 것이고 어쩌면 불가능 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정신적으로 행동적으론 벗어나야 되요.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자면, 아침밥을 스스로 해먹는 거에요. 점심이나 저녁은 정말 어쩔 수 없더라도 아침만큼은 스스로 챙겨 먹는 겁니다. 밥을 차려주려면 그거 먹지 마요. 그냥 스스로 퍼서 먹고 반찬 뚜꼉도 엄마가 꺼내줄려고 하면 그거 다시 닫은 다음에 열어서 먹어요. 아침밥을 먹을 때 엄마가 해주는 모든 것을 다 거부해야 돼요. 아침은 부모님을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먹는 거에요. 아침밥 만큼은요. 이게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다는 뜻과 행동이 되는 거에요. 이 사소한 것 하나가 나를 바꾸는 거죠. 꼭 아침밥은 스스로 챙겨먹으세요. 여기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주영은 굉장히 큰 것을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연은 그 표정에 만족했고 그 이상으로 자기가 한 말에 우주급으로 만족했다. 사실 약간 눈물이 고인 것이 자기가 한 말에 감동을 하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밥을 스스로 챙겨먹으라는 이야기는 방금 생각한 이야긴데 어떻게 이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상연은 본인도 이제 밥을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큰 뜻을 품게 되었다.
이야기 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다. 해가 지고 있었다. 상연은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 때 한 참을 듣고 있던 주영이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지 했던 말은 전부 다 실천해 본..."
"아니요."
"...."
0.1초만에 대답한 상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서쪽으로 저물어가는 시뻘건 해를 등지고 동쪽으로 걸어갔다. 주영은 어이가 없어서 입이 절로 벌어졌다. 지 말만 시원하게 다 하고 혼자 만족하며 집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워 보였다. 남에게 많은 조언을 해댔던 상연이지만 정작 본인이 처한 상황은 변한 게 없었다는 사실을 주영은 뒤늦게 떠올렸다. 주영은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외쳤다.
"고마워! 진짜 도움이 됐어!"
도리여 격려를 하였다. 상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코끝이 겨우 보일 정도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떠났다. 그러나 주영이 눈에 안쓰러워 보이던 상연은 오늘 큰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진정한 조언자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지가 말하고 지가 깨닫는다. 이보다 훌륭한 조언자란 없을 것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 상연은 자존감이 은하계를 찌르고 사건의 지평선을 넘보고 있었다.
상연이 떠나고 주영은 상연이 앉아있었던 그 자리를 바라봤다. 바닥에는 눈물 한 방울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주영은 다시 한 숨을 쉬었다. 잘 생각해보니 상연이가 하는 말을 듣고 울적한 기분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조언들이 현실성이나, 본인 환경에 적용 할 유용성이 하나도 없던 것이다. 주영은 조용히 한 마디 뱉었다.
"내 감동, 내, 시간 물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