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뉴스에서 퍼왔습니다.
심재철 의원의 후배였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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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의원님.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순간의 국회 본회의장 모습을 담은 신문기사를 보다가 저는 또 다른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누구나가 느끼는 배반감 이외에 제가 느끼는 또 다른 슬픔은 당신 때문이었습니다. 그 역사에 오명을 남길 193명의 이름 속에 '심재철', 저는 그 이름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우린 80년 5월 서울역을 향해 함께 걸었지요
심의원님. 의원님은 저를 아실 턱이 없지만 저는 의원님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벌써 이십년도 더 됐군요. 1980년 5월 말입니다. 그날이 정확히 며칠이었는지. 제 기억으로는 5월 15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의원님께서 총학생회장이던 그 봄이었지요.
저는 의원님의 일년 후배로 신림동 학교에서 영등포를 거쳐 서울역까지 이어진 보도 행진에 뜨거운 마음으로 목이 터져라 "독재타도"를 외치던 한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선배님은 지프차로 기억나는 차를 타고 대열을 천천히 따라가며 우리를 독려하고 계셨습니다.
차에서 잠깐 내린 선배님은 약간 검게 그을린 얼굴에 조금은 야윈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옆을 지나며 활짝 웃는 얼굴로 "힘들지. 조금만 참아"하고 격려해주던 선배님의 목소리가 그때 그 스무살 여학생에게 얼마나 힘이 됐는지 선배님은 결코 모르실 겁니다.
그날 그 열정과 희망의 행진을 기억하십니까? 선배님. 저는 아직도 선배님의 티없이 맑았던 미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들의 열정이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혀 내던져졌는지 저는 그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저에게 세상이 얼마나 진실과 거리가 먼지, 진정으로 사심 없이 원하면 민주주의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순진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상처가 아무느라 힘들었습니다.
이제 40대 중반, 선배님도 많이 변했더군요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저도 벌써 사십 중반입니다. 선배님의 모습도 많이 변했더군요. 어느 날 선배님이 MBC 기자가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보니 국회의원이 되셨더군요. 저는 기뻤습니다. 선배님이라면 분명히 훌륭한 국회의원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탄핵반대 의견을 듣고 선배님은 역시 결코 그런 터무니 없는 행위에 동참할 리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이게 뭡니까. 지금의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것인지 잊어버렸단 말입니까. 1980년 오월 우리의 함성이 어떻게 스러졌는지 선배님은 모른다고 하시겠습니까.
사실 저는 이런 이야기할 자격 없습니다. 비겁하게 입다물고 내 배부른 것만 신경쓰고 살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선배님은 안됩니다. 선배님의 어깨 위에는 우리가 맡겨 놓은 그날의 열망이 같이 있다는 걸 모르십니까. 선배님이 내미신 말도 안 되는 탄핵안을 한번 보십시오. 그 안에 찬성한 사람, 심재철이 내가 알고 있는 80년 5월의 심재철이 정말 같은 사람인지요. 아니라고 대답해 주십시오. 다른 심재철이가 있다고 말입니다.
저도 그 찬성이 본심이 아니었다고 선배님이 그렇게 말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지요. 세상일을 모두 생각한 대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꼭 국회의원 해야 합니까? 자신의 영혼과 진실까지도 팔아 가면서 국회의원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80년 5월 그 심재철이 맞습니까?
선배님, 선배님은 그냥 인간 심재철이 아닙니다. 1980년 오월 100만명의 간절한 열망을 작은 어깨에 힘들게 짊어졌던 그 청년, 두려움 없이 빛나는 눈빛으로 활짝 웃던 우리의 영웅입니다.
저는 최병렬 대표나 정형근 의원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배님이 겨우 그들의 행동대나 하고 있는 상황은 정말 참을 수가 없군요. 오늘의 배반은 결코 잊혀질 것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말씀하실지 모르겠군요. 왜 나만 비난하느냐고. 당신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왜냐구요? 선배님은 변절자이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다지 큰 일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기만하거나 양심을 팔아먹는 일을 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3월12일에 벌어진 그 국회사태는 80년 서울의 봄을 군화발로 짓밟은 군인들의 행동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저는 그 무리들 속에서 역할이 뒤집어진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정말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선배님. 국회의원 한 번만 하려니까 아깝습니까? 누구든지 금배지 달면 사람이 바뀐다고 하는데 선배님 역시 그런 수순을 가고 있는 것인지요. 국회의원 또 하고 싶은 것 사람인 이상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긴 안목을 갖고 세상을 보십시오. 지금 꼭 17대 국회의원 안 돼도 됩니다. 그 전에 하실 일이 있습니다. 바로 속죄입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원래 심재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국회의원 여러 번 하고 싶다면 지금은 버리십시오.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스무살 때 당신에게 배운 것
아직은 선배님을 80년의 심재철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의 목록에 두고 싶습니다. 선배님. 우리가 알고 있던 한 서클의 회장 우 선배 기억나세요. 선배님과 마찬가지로 77학번이었던….
5·18 이후 그 선배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계시죠. 고문이 그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말입니다. 저는 지금 그 선배 어떻게 지내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절대 죽어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순진한 사람이 어떻게 되어버렸는지 그것이 누구의 탓인지. 우리는 모두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 선배 몫까지 지켜볼 겁니다.
마지막으로 선배님. 우리 세대는 해야 할 일이 많은 세대입니다. 우린 많은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회피했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비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을 제대로 세워서 그 비겁함에 대해 속죄하고 우리가 본 그 불의의 증인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 겁니다. 이것이 제가 스무살 때 바로 당신에게 배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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