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뤘던 삼성 선동열 감독과의 10대1 인터뷰가 드디어 성사됐다.
29일 낮 일본 오키나와 아카마구장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선 감독은 특정 질문에 대해선 질문한 선수 이름을 되묻기도 하는 등 흥미를 보였다.
선 감독은 한달여간의 마무리캠프에서 본인 운동도 열심히 한 덕분에 4㎏ 정도 체중을 줄인 모습이었다. 때론 박장대소하며 어린 후배들의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예전에 뱀탕도 즐겨 드셨다고 하던데 요즘도 드십니까. 평소 체력관리를 어떻게 하십니까(LG 봉중근)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 난 뱀탕은 안 먹었어. 곰탕, 한약, 노루피, 그리고 잉어 붕어 장어를 즙으로 많이 먹었지. 한 30년 먹었나. 어릴때 먹은 게 아직도 효과가 있는 것 같어. 지금 별도로 먹는 한약은 없고 철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역시 건강에는 운동이 최고일테고.
-한국 최고 투수셨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경기에 임하셨는지요(LG 이동현)
▶첫번째는 자신감이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디 한번 쳐봐라' 하면서 자신있게 볼을 던졌지. 타자를 압도하고 공격적인 피칭을 한다는 생각. 볼, 볼 하면서 피해가는 일은 없어야 해. 절대적으로 내가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삼성을 투수왕국으로 만드신 노하우를 조금만 공개해 주세요(LG 이진영)
▶허허허, 훈련이 중요하지. 2004년에 코치가 된 뒤 전지훈련때 투수들에게 3000개씩 던지게 하고 러닝도 많이 시켰어. 요즘 젊은 선수들은 적게 던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많이 던지면서 자기 공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제구도 잡히고. 노력 없이 대가를 바라면 도둑놈이야.
-감독님 안녕하세요. 존경합니다. 감독님 현역 시절의 슬라이더가 명품이었는데요, 지금 우리팀 김광현의 슬라이더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냉정한 답변 부탁드립니다(SK 정우람)
▶광현이 슬라이더, 좋지. 그런데 내가 현역때 던진 슬라이더는 카운트를 잡는 슬라이더와 위닝샷으로 던지는 슬라이더가 확실히 구분이 됐어. 광현이도 구분해서 던지겠지만, 내 경우에 슬라이더 구속이 더 빠르고 각이 컸지. 훨씬 낫다고 평가하긴 뭐하지만, 하하하.
-제가 광주일고 3학년때 감독님께서 학교에 찾아와 폼을 봐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타자로 뛰지만) 그때 저도 나름 팀의 에이스였는데요. 저는 딱 두번만 봐주시고, 제 1년 후배를 집중적으로 지도해 주시더라구요. 사실 그 후배가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흑흑. 어린 투수들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보시는지요(SK 이호준)
▶핫핫핫, 기억난다. 그때 후배쪽이 단점이 더 많았기 때문에 걔를 많이 봐준거지. 호준이가 미워서 그런건 절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호준이가 볼을 곧잘 던지고 있을 때잖아. 그래서 간단한 충고 외에는 호준이에겐 말을 많이 안한거야. 호준이는 투수를 계속 했어도 잘 됐을거야. 아파서 투수를 접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젊은 투수는 일찍부터 하반신을 이용해 볼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
-감독님을 포함한 그 시절의 A급 투수와 지금 A급 투수들을 비교하면 어디가 나을까요(SK 박정권)
▶지금 A급 투수라면 류현진인데…. 옛날에는 최동원 김시진 임호균, 이런 투수들이 있었지. 지금 류현진과 비교하면 서로 막상막하 같은 걸. 오히려 구위 자체로만 놓고보면 현진이보다 옛 선배들이 나았지. 호균이형 같은 경우엔 별 볼을 다 던지는 스타일이었고. 나와 비교하자면, 구위는 내가 훨씬 낫다고 생각해. 직구 힘 자체는 내쪽이 좋았지. 대신 현진이는 변화구의 다양성이 좋고. 내가 던질 땐 슬라이더 하나 외에는 특별히 던진 구질이 없었어. 나를 포함한 선배들은 연투능력도 대단했어. 한시즌 200이닝은 쉽게 던졌지. 지금 투수들에게 15회까지 던지라면 던지겠어? 나도 15회를 4차례나 던졌는데. 한경기에 200개 이상 피칭이 지금은 말도 안 되는거지. 선발로 던지고 이틀 쉬고 마무리로 나가고…. 한시즌에 선발 등판 35게임, 중간으로 15~20번을 던졌다고. 지금 투수들이야 관리를 잘 받지.
-감독님이 보실때 박정권의 장,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SK 박정권)
▶단점? 허허 좋은 타자인데. 빠른 볼에 강한 스타일이지. 임팩트가 좋아. 그런데 조금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와 바깥쪽에 약간 약점이 있어보여.
-만약 지금 현역시절 공을 던지신다면 맞대결하고 싶은 타자 한명을 꼽아주세요. 혹시 저도 해당될까요(롯데 홍성흔)
▶흐흐흐. 올해 경우에 이대호가 7관왕까지 했으니 한번 해볼만한 대결 같은데. 이대호와 붙는다면 초구에 몸쪽 높은 직구를 볼로 던질거야. 헛스윙 아니면 파울이겠지. 2구째는 외곽 스트라이크존에 꽉 차게 직구를 던질거야. 여기까지 투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을거야. 3구째로 낮은 변화구(슬라이더)를 던지면 절대적으로 헛스윙 한다고. 3구 삼진으로 잡을 자신 있어, 하하. 그나저나 성흔이 너는 조금 있다가 하자.
-감독님이 지금 현역 선수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던지신다면 어느 정도 기록을 내실 것 같은가요(롯데 조성환)
▶한시즌에 15~20승은 가능하다고 봐. 지금도 그 정도 스피드를 던지는 투수가 거의 없어. 김광현 류현진 같은 좋은 투수들이 있지만, 그 친구들도 스피드는 나보다 떨어지거든. 예전에 던졌던 슬라이더만 장착해도 지금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에 가서 익힌 몇가지 구종을 추가한다면, 매해 방어율과 다승 부문 타이틀을 노려볼만 할 것 같다.
-제가 삼성전에서 던지는 걸 보셨을텐데, 제가 어떤 걸 보완해야 할까요(롯데 송승준)
▶좋을 때와 안 좋을 때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거. 좋은 피처일수록 컨디션 나쁠때 그게 눈에 띄지 않아야 해. 초반에 실점했을 경우에 다시 자기 페이스로 가줘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는 것 같다. 마인드컨트롤이 조금 부족해보여.
-감독님은 선발과 마무리로 모두 성공하셨습니다. 제가 감독님 밑에서 뛴다면 선발과 구원중 어느 쪽을 맡기실지 궁금합니다. 두 보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두산 임태훈)
▶임태훈이라, 글쎄 둘 다 잘 하는 투수지만, 하나 고르라면 아직 젊으니 선발로 뛰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서른살 훌쩍 넘어서 마무리를 해도 관계 없어. 선발은 실투를 해도 만회할 수가 있어. 자기 페이스대로 끌고 가는 게 중요하지. 강약조절을 말하는거야. 마무리는 힘으로 싸워야한다. 밀어붙여야 해. 마무리는 한번 실패가 곧 게임이 끝나는 걸 의미하니까 돌이킬 수 없어. 마무리가 제구력도 더 나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부상이나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치료를 위해 말고기를 어깨에 붙인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효과가 있었나요(두산 고창성)
▶나는 일본 첫해때 슬럼프가 정말 힘들었어. 야구 자체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생각한대로 안 되니까 운동장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기가 무서울 정도였지. 그때 결국엔 훈련으로 슬럼프를 헤쳐나왔어. 밸런스를 차츰 잡아나가니까 어떤 계기가 오더라고. 내 폼도 돌아오고. 말고기는 어깨 건초염때 지인 충고로 어깨에 붙여봤지. 말이 땀을 안 흘리는 동물이라고 하더라고. 다친 어깨를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는건데, 특별한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한여름에 그거 며칠씩 붙이고 있으면 냄새가 엄청나지.
-대학 같이 다닐때 선 감독 아버지께서 보양식을 가져다주시는 모습을 많이 봤소. 잘 먹고, 관리를 잘 해서 그런지 그때도 아프지 않고 몸이 부드러운 좋은 투수가 된 것 같소. 이제 지도자 입장의 몸관리는 다를텐데, 시즌중에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지 말해주소(두산 김경문 감독)
▶예전엔 술, 담배 모두 많이 했는데, 지금은 담배를 끊었고 술도 줄였습니다. 역시 운동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철에 나는 좋은 음식 먹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가수 양수경, 이종범 선배와 함께 음반을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그런 제의가 오면 하실건가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신데 스캔들이나 에피소드는 없으셨는지요(넥센 강정호)
▶하하. 절대 안 해. 그때는 해태 구단이 추천해줘서 해본거야. 솔직히 말하면 그거 음반 만들고 1000만원 받았는데, 해태가 가난해서 연봉을 잘 못 올려주니까 그런 걸로 대체를 해준거지. 그때야 나도 철없고 그럴 때니까 노래를 불렀지. 그때 만든 음반이 테이프로 딱 한개 집에 남아있다. 에피소드는, 선수 시절때 '가루지기'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김문희씨와 식사를 한 적이 있어. 당시 해태쪽 구단 관계자와 기자 한 분이 김문희씨와 식사를 하면서 나를 한번 만나게 해주겠다고 그랬다는거야. 그래서 한번 만나긴 했지. 그런데 며칠후에 그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났어. 사귄다고 말이지. 전혀 아니었는데. 그래서 나중에 정정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전성기때 미국에 진출하셨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거뒀을까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넥센 손승락)
▶84년 LA 올림픽을 마치고 다저스쪽에서 오퍼가 있었는데, 그때 갔으면 아마도 나중에 한시즌 10승은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안 가봤으니 모르겠지만. 99년 일본에서 은퇴할때 마무리투수로 미국에 갔다면, 그때는 나이도 되고 했으니 잘 해야 30세이브 정도였을 거라 생각한다.
-스타플레이어가 지도자로 성공한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습니까(KIA 이강철 코치)
▶노하우란 게 있을 게 있나. 허허. 선수 잘 파악하고 그런게 노하우 아니겠나. 나랑 같이 해보진 않았지만 강철이가 오히려 선수들과 잘 얘기하면서 이끌어가는 것 같더라.
-선수와 감독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아본다면요(KIA 이건열 코치)
▶선수 시절엔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것. 그리고 감독으로선 2005년에 첫 우승한 게 아닌가 싶네. 해태 시절에 우승을 많이 했지만 82년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네. 그해부터 내가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고. 최동원 김시진 임호균, 이런 선배들이 원래 던져줘야 할 경기를 내가 많이 던졌으니까. 그때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자신감도 많이 얻었고, 선배들이 불펜에서 던지는 거 보면서 공부 많이 한 측면도 있고.
-감독님이 던졌던 슬라이더의 그립은 보통 선수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한화 신인 유창식)
▶커브만 던지다가 고교 1학년때 방수원 선배로부터 슬라이더를 배웠다. 내가 중지 악력이 좋아서 중지로 찍어던지는 것 같은 스타일이었어. 지금도 오른손으로 공을 잡아보면, 나 아직도 힘이 있다고. 프로에 가서 여러 각도로 테스트를 하면서 내 슬라이더를 만들었고 86년부터 두가지 종류의 슬라이더를 던졌어.
-한국과 일본에서 애착이 남는 기록이 무엇인가요(한화 류현진·올해 선 감독이 갖고 있던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을 깼다)
▶투수 능력 평가는 역시 방어율이라고 생각해. 다승도 좋지만 그건 야수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투수가 유일하게 혼자 만들어갈 수 있는 기록이 방어율이야. 일본에선 특정 기록 보다는 세이브 하나하나를 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에서 올라오는 흥분을 세리머니로 표현했던 순간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
-캠프에서 프리배팅할 때 감독님이 피칭머신 뒤에 서 계시니 타자들이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왜 계속 거기에 계시는지요(삼성 채태인)
▶핫핫, 더 열심히 치라고 그러는거야. 내가 너희들 앞에 서있는 것과 아닌 게 다르지. 내가 그걸 아니까 일부러 그러는거지. 다들 마무리캠프 치르느라 힘든 거 알고 있다. 하지만 공 하나를 치더라도 조금씩 더 생각하면서 훈련하는 게 중요해. 그래야 단점 보완이 될 수 있어.
-감독님께선 대체 언제 가족과 만나십니까. 시즌이나 비시즌을 막론하고 개인시간을 갖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삼성 강명구)
▶왜? 12월에는 가족과 함께 있지. 서울 3연전 중에도 하루 이틀은 꼭 집에 가서 자고 오는 걸. 사실 나는 많은 사람 있는 곳에 가족을 부르는 걸 별로 안 좋아해. 다들 훈련하고 단체생활을 하는데, 나만 감독이라고 가족을 부르는 건 보기가 좋지 않아.
-(농담조로) 선수 시절에 훈련 많이 안한 걸로 유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왜 이리 훈련을 많이 시키시나요(삼성 이영욱)
▶하하, 그나저나 내가 선수시절에 훈련을 별로 안한 건 아니었는데. 나도 할 만큼 했어. 자발적으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시켜야만 하는 선수였어. 마음에서 우러나서 먼저 하는 건 없었지. 지금 우리팀은 선수층이 젊기 때문에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결국 훈련밖에 없다. 열심히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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