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니고.
어머니가 1980년 후반부터 십여년간 만화대여점을 하셨습니다.
정확히는 대여점이 아니고 "대본소"죠.
현재 베스트에 올라와있는 표를 인용해봤습니다.
여기 서점 옆에 대본소가 보이죠? 이게 저희 집이 하던 업종입니다.
대여점과 대본소의 차이라는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대여가 가능한가의 차이입니다.
물론 대본소에서도 대여시스템을 갖추긴 했습니다만 그리 수요가 많지는 않았고..
회계장부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직접 집으로 전화를 걸어 대여인의 거주지가 맞는지 확인하고 며칠간 빌려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대여점에서는 말 그대로 만화/잡지 외 비디오등을 "대여"하는 곳이기 때문에 대본소보다 상대적으로 전산화가 빠른 경향이 있었죠.
여튼 대본소와 대여점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도서 대여점이 출판만화계를 망하게 했다는건 새빨간 거짓말 입니다"
라는 베스트 글 보고 이것저것 살을 덧대보기 위해 글을 썼는데
첫번째로 2. 김대중 정부는 도서대여점을 장려한적 없습니다 라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 드릴까합니다
일단 이 말은 사실입니다. 장려를 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금전적 지원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대본소 창업하는데 자본이 3천만원 들어갔다고 하시더군요. 정부지원은 물론 없었고
그 후에 창업하는 사람들도 정부지원 받아서 했다는 이야기는 못들어봤다십니다.
1980년대부터 대본소 체계는 이미 틀이 갖춰져있었고
주 공급되는 만화들은 이른바 무협지/일간지/소설이 주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허영만이나 이현세작가님들 같은
중견급 작가님들이 한국만화를 지배하고 있을때였죠.
그리고 만화사업은 아이큐점프/챔프등 주간지들의 성장과 함께 같이 호황을 누리는데
이때가 바로 전설의 만화 드래곤볼이 연재할 시기입니다.
아이큐점프 부록으로 나오는 드래곤볼이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의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아이큐점프 판매율이 미칠듯이 치솟고
후발 주간잡지들이 만화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죠
아마 이때 아이큐점프 판매부수가 50만부를 돌파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만화대여점..정확히는 이 시기까지도 대본소라고 불러야될 시스템이었습니다만..여튼
시장이 커지면서 판매부수가 더욱 늘어나고 만화사업에 황금기가 찾아온건 맞습니다.
신인작가 발굴도 활발했고 아이큐점프나 소년챔프에서는 매주 실력있는 작가들을 모집하거나
독자 우편등으로 일러스트를 받아 책에 실을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한국만화시장의 황금기는 드래곤볼과 함께 시작해서 드래곤볼과 같이 끝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대본소는 왜 망했나?
네.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느것 하나 꼭 찝어서 이야기할수 없는 문제에요.
일단 제일 먼저 생각나는건..
대본소가 증가하고, 현재 시스템을 갖춘 전문 대여점까지 등장하자 고정적으로 팔리는 책의 양이 많아진 부작용이라고 할수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간지/무협지등의 질적하락입니다.
일간지라고 해도 매일매일 책이 나오는게 아니라 3일~4일에 한번 신간이 나오는데
어느순간을 기점으로 신간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기 시작합니다.
진짜로요.
특히 무협지/일간지들은 장기연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권이 빠지면 내용을 이어갈수 없기 때문에 완결날때까지 책 전부를 사야합니다.
그런데 이 책들이 갈수록 질이 하락되고, 부수만 많아지게 돼요.
무협지 가격이 아무리 낮다고해도 한권에 2천원에 육박하는데 이게 나중에가면 감당할수 없을정도가 됩니다
주간지에 연재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퀄리티가 보장이 되긴 하지만 연재속도가 느리고 단행본이 나오는 텀이 길어서
실질적으로 일간지로 벌어들이는 만큼의 매출은 안나오고요.
대본소체계를 갖춘 영업장의 경우 주 고객이 일간지를 구독하는 중년층이었고
일본수입만화를 적극적으로 배치한 대여점의 경우에는 청소년이 많았습니다만
여튼 결정타가 나오고 나서도 한동안 호흡기를 달다가, 한꺼번에 망해버리게 되죠.
그 한방이 바로
pc방의 등장입니다
98년 스타크래프트
2000년 디아블로2
그리고 급속도로 보급된 pc게임과 인터넷 스캔본.
네. 이게 다입니다.
일본만화호황기,PC방의 등장 사이에서 대여점과 pc방 수가 같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 전쟁에서 결국 pc방이 승리하게 되면서 대여점은 순식간에 몰락하게됩니다
중장년층 일간지 위주의 단골손님을 갖춘 저희 대본소는 어느정도 매출을 유지했습니다만
주위 대여점들은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더군요 1~2년사이에 대여섯군대가 개업했다 망하는걸 봤습니다
좋든 싫든 대여점/대본소와의 관계를 구축하면서 판매를해왔던 주간지/일간지업계는 대처할틈도 없이 싸그리 망해버리고.
일본만화를 수입해서 출판했던 대형출판사만이 살아남아 호흡기만 달고 현재상황까지 오게되죠.
제일 첫번째 표를 보시면 이해하기가 쉬우실겁니다.
2000년도 pc방의 압도적인 상승추세와 대여점의 압도적인 몰락을요.
상대적으로 대본소하락추세가 적은데, 저희집만을 대상으로 통계를 낼수는 없겠습니다만
pc방의 여파에서 고객층을 뺏긴 대여점보다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보았다고 보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저 시기에 매출이 잘되서 남아있는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상태에서
동앗줄 잡고 버틴것에 불과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