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틀넷에서 외국인들과 게임을 하다 보면 국가나 민족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성향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민족성을 운운할 정도는 아니고 각 국가간 다소 수준차를 느끼는 정도다.
사실 베틀넷에서 각 국가나 민족의 성향을 확연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게임의 진행방식이나 양상은 외국인이나 한국인이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 미국 등지의 외국 게이머들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고 한국 게이머들의 경기방식을 답습한다. 따라서 각 국가나 민족의 차별화된 특성을 맛볼 기회는 의외로 적다.
다만 이미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프로게이머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유럽이나 미국 게이머들의 성향은 대체로 마이크로보다는 매크로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게임 전체를 읽는 거시적 안목과 전략이 탁월하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것이 젓가락 문화의 직접적 수혜자인 동양인보다 더 세밀하고 정교한 손놀림을 기대하기 어려운 서양인들이 그나마 강점으로 취할 수 있는 부분이 독창적이고 거시적인 전술전략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나 이스트 서버에서 무한맵 마니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마이크로보다 매크로를 선호하는 서양인들의 취향이 반영된 걸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외국 게이머들이 유한맵보다 무한맵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 한국의 프로리그 진출을 꿈꾸거나 오랫동안 유한맵에서 진검승부를 벌여온 고수들을 제외하면 무한맵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외국 게이머들 중에는 유한맵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무한맵 고수들도 적지 않다. 전적만 놓고 보면 무시무시할 정도다. 2000승 500패, 1000승 100패 등등 하지만 한국 게이머 처지에선 냉정하게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는 초보들인 셈이다.
반면 유한맵 고수들도 적지 않은데 대체로 이들의 전적은 실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가령 유한맵 고수의 전적이 1000승 100패라면
거의 프로게이머 수준인 셈이다.
따라서 외국인 게이머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건 무리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무한맵과 유한맵을 별개 장르로 구분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면 최근 베틀넷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스타크래프트 강국은 어디일까? 우선 전통의 강국으로는 베틀넷 종주국인 한국과 월드사이버게임대회(WCG) 상위 입상국인 스웨덴, 독일, 러시아, 프랑스가 있다. 또 인구 대국 중국의 인해전술도 만만치 않고 일본 역시 매서운 실력을 발휘하는 전통의 다크호스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남아와 남미로 게임 열풍이 번지며 신흥강호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남미에 비해 동남아 쪽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21세기 선진국 진입을 꿈꾸며 IT분야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가 새롭게 부상하는 스타크래프트 강국이다.
말레이시아는 이미 WCG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언젠가 베틀넷에서 캄보디아 게이머와 부시의 대외정책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을 정도로 동남아에서 스타크래프트 열기는 점차 고조되고 있다.
남미로 시선을 돌리면 동남아처럼 활발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콜롬비아 게이머들을 베틀넷에서 가끔 만난다. 그 대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 계열의 게이머들은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페니시와 미국내 히스패닉들이 주축인
이들의 경기력은 아직 상위권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스타크래프트 강국을 예상해 본다면, 인구 대국 중국, 베트남, 전통의 유럽 강호들을 꼽고 싶다. 우선 중국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경계대상 1호다. 앞으로 중국에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확산될수록 스타크래프트 종주국 한국을 향한 도전은 더 거세질 것이다.
반면 베트남은 다소 의외라 생각할 수 있지만 베틀넷에서 가끔 만나는 베트남 게이머들의 실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경계대상으로 꼽힐 만하다. 일부 미국 게이머들이 전적에 비해 형편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베트남 게이머들은 전적에 비례해 실제 실력도 뛰어나다.
물론 내가 베트남인으로 알고 있는 게이머들 중엔 베트남계 미국인이나 베트남에 관심 있는 미국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일단 'viet'가 포함된 베틀넷 아이디라면 경계하는 게 좋다. 베트남 게이머들은 한국 게이머들처럼 매크로와 마이크로에 모두 능하고, 집요하고 승부욕도 강하다. 아마 몇 년 후엔 WCG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걸로 예상한다.
끝으로 한국, 미국과 함께 베틀넷을 3개 대륙으로 분할하고 있는 유럽의 전통 강호들에 대한 경계심은 한시도 늦춰선 안된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스웨덴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군 유럽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한국의 유일한 경쟁자이자 동반자라 할 수 있다.
베틀넷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단지 승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정한 기쁨은 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전세계 게이머들과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이미 베틀넷은 또 하나의 지구촌이고 우주다. 그 안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승자가 되기보다 친구로 기억되길 바라며 오늘도 작은 전쟁터에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출처 - 오마이 뉴스-
괜히 한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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