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작년 봄에 남편의 여사친이 저희집 부근으로 이사를 오면서 뭔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여사친은 초딩 동창이에요. 어렸을 때 옆집에 살던 사이라
두 집이 거의 한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학교도 같이 가고, 숙제도 같이 하고.
그때 여사친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여서 저녁도 저희 남편 집에서 자주 먹었다고 하네요.
그러다 여사친이 고등학교 때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뒤로도 동창회에서 만나거나 하는 등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낸다고 합니다.
솔직히 살짝 불안하긴 하더라고요. 저는 이성 간에 친구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은근슬쩍 떠봤죠.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데 이성적으로 안 끌렸어?"
남편이 그러더군요.
"야, 걔 얼굴을 봐라. 끌리게 생겼나. 멸치 같아서 볼륨도 없고. ㅋㅋ"
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제가 한 몸매 합니다. ^_^
아무튼, 그날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어요.
여사친의 남편은 건축일을 한다네요?
현장 소장이라 부산에서 지낸대요. 여사친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요. 그렇죠. 주말부부인 거죠.
여사친네 가족을 보니 아이도 없고 맞벌이하고 그래서 그런지 생활이 굉장히 여유 있어 보이더라고요.
가끔 주말에 두 가족이 만나 몇 번 저녁을 먹은 일이 있어요.
여사친은 커리어우먼이라 그런지 화려하게 엄청 잘 빼입었더라고요.
멸치 같다는 남편 얘기랑 다르게 보정 속옷을 입었는지 뭔지 제 눈엔 섹시하게만 보이더군요.
모임은.. 완전 별로죠. 남편과 여사친 어린 시절 이야기만 오가가 보니 그쪽 남편이나 저는 별로 할 얘기도 없고..
저는 또 애가 어리고 그래서 자야 할 시간에 제때 재워줘야 해서 모임 중에 먼저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요. 여사친이 이사온 이후로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아지고,
가끔 영수증 내역을 보면 딱 두 명이서 먹을 만한 금액들도 자주 보이고 그렇더군요.
음식점 주소를 보면 거의 집 근처예요.
여사친이랑 먹은 건지 뭔지 알 수는 없는데 자꾸 둘이서 먹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히 여사친이 주말 부부라는 게 엄청 마음에 걸려요. 애도 없고...
저는 지금까지 남편을 철떡같이 믿고 살아 왔어요. 휴대폰 뒤지거나 뭐 의심하거나 그런 거 일체 안 해 왔죠.
그러다 하루는 남편이 술에 잔뜩 취해 와선 쓰러져 자는데 문득 여사친과의 카톡 내용이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떨리는 손으로 열어 봤는데 서로 매일매일 톡을 했더군요.
내용 자체는 사실 특별할 게 없었어요.
남편이 요즘 회사 일이 힘든지 여러 상황, 고민되는 걸 상담했고 여사친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에 답변을 해 주는 내용이더라고요.
실은 여기서도 좀 소외감이 들긴 했죠 전 전업주부라서 모르는 내용이니까...
근데 충격적인 건 가장 최근에 주고받은 메시지의 이상한 뉘앙스였어요.
이렇게 오가더군요.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 네 와이프도 알아?"
"아니, 우리 와이프한텐 얘기도 안 해."
"얘기 좀 하고 살아~"
"걔는 예민해서 이런 얘기하면 싫어해."
"하긴 우리 남편도 진짜 힘든 얘기는 안 하더라. 기운내. 네 와이프 좋은 사람이더라."
"그래? 넌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 헐... 넌 더 좋은 사람이라니..
사실 불륜이나 뭐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맨 끝에 있던 '넌 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더라고요. 그걸 본 날부터 잊히지 않아요.
제가 너무 못난 거 같고 다른 사람은 이 상황에서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왜 이렇게 화가 날까요?
왠지 비교당한 느낌에 열등감이 들어 이러는 걸까요?
자존심도 상하고.. 그렇습니다.
친구들한텐 말도 못 해요. 괜히 친구들이 오바해서 남편을 마치 불륜한 사람처럼 몰아갈까 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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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 글을 남깁니다.
여자분이 정말 참을성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자존감이 많이 하락할 것 같아요. 나는 그럼 뭐였나, 내가 못해줬나 라는 생각이 들 것 같고, 저는 사실 남자친구 사귈 때엔 그 사람이 제일 좋아서 다른 남자들과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한들 제 옆 사람만큼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저 남편같은 생각은 안 들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제가 저 여자분 입장이라면 조용히 대화를 나누자고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화를 내거나 싫어하는 티를 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당신이 기댈 수 있는 여자가 못 돼 줘서 나는 너무 속상하고 미안하다 라고 말할 것 같아요.
당신에게 저 여자에 대한 마음에 대해 잘잘못을 묻기보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정을 못 만들어준 내 자신이 너무 밉고 당신에게 미안하다 앞으로 당신이 힘들 때에 언제든 말해라. 싫은 티를 내지 않고 당신을 보듬어 주겠다
라고 말할 것 같아요. 저는 그 당시 그 여자에게 저런 말을 하게 된 남편의 심정이 너무 착잡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남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저 현상 자체만으로 바람이라기 보다,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숨긴 것때문에 바람과 같은 상상이 들어 괜한 의심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그 의심이 생기기 전에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전 더 늦기 전에 빨리, 알자마자 바로 말할 것 같거든요.
근데 문제는 상대방인 남편이 저의 이런 마음에 대해 다 듣기도 전에 화를 내며 짜증을 내고 의심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면 그때부턴 대화할 마음이 사라지고 똑같이 더 서운한 점을 으르렁거리며 말하게 될까봐,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골이 더 깊어질까 걱정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