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마음도 심란하고..해서
제 지나온 과거를 좀 써보고 싶었습니다
일차적으론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제가 다시 읽기 위함이지만
여러분들이 읽어보셔도 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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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기독교가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교문 앞에서 지우개 주면서 교회 나오라고 하는 분들과 이야기한게 발단이었네요.
돌이켜보면 저도 그때는 맹랑한 꼬마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도사가 영혼을 아느냐고 묻자, 나는 꿈 속에서 내가 만나는 세계가 영혼의 장일 것 같다고 했었지요.
어쨌든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본의아니게 나누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고.. 직싸게 혼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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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는 중학생이 되었고, 여름방학 때 어머니 지인분의 권유로 미국 가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물론 그분은 좋은 의도에서 소개해 주셨겠지만.. 알고보니 기독교 단체였습니다.
처음과 끝이 모두 엄숙하게 치러졌고, 교육내용 역시 기독교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가서도 영어설교를 듣고 영어성경을 보았네요. 이해는 잘 안 됐지만..
나는 그때 내가 자처해서 영어로 식사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종교에 대한 아무 의문도 없던 시절, 나는 그렇게 기독교인이 될 뻔 했습니다.
될 뻔이라 함은, 귀국하고 나서는 교회를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는 연수가서 매일 썼던 일기 덕택에 나중에 법정싸움 직전까지 가서 유리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광고내용이랑 실상이 달랐거든요. 이것도 종교적 관점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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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능 끝나고 내 친한 친구의 권유로 어떤 교회를 놀러갔습니다.
근데 갑자기 교회의 가족이 됨을 축하한다고 막 사람들이 박수를 칩니다.
얼떨떨해서 네네 그러고 그냥 나왔는데.. 교회 안가니까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냉정하게 끊기는 미안하고 해서 집안 핑계를 대고 못가게 되었다고 화이트라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몇번 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설교내용인 즉슨,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라고 하고,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엉터리 설교에 또 사람들이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난 발걸음을 끊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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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후.. 가장 먹을것을 잘 주는 곳은 역시 기독교였습니다.
나는 또 교회를 주말마다 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짬 차고는 안 갔지만..
휴가나와서는 가끔씩 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무엇인가가 머리를 탁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낳으시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낳으시고..
이렇게 죽 가다보면 세상이 탄생한 시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신이라고 하고, 각 종교마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형식으로 모실 뿐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 유신론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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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한 다음 나는 공부 핑계로 1년의 휴학기간을 내 버리고 집에 틀어박혀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또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탁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습니다.
세상을 만든 것이 신이라면, 신은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신 애비가 있고 할애비가 있는 것인가? 신이야말로 무한인가? 이거 모순이 아닌가?
처음으로 나의 종교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 보았고,
인터넷에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나요"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불가지론자가 되었읍니다.
이것이 제가 종교 커뮤니티를 입문하게 된 배경입니다. 당시에는 오유를 몰랐고 다른곳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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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이렇게 논쟁을 즐겨 하는 곳도 있구나.
나는 부지런히 책도 찾아보고 논쟁에도 참여하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머리 굴려가면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올 김용옥의 책을 읽다가 러셀의 한정기술이론을 접했습니다.
2페이지에 걸쳐 소개를 해 놓았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5시간을 붙들고 계속 고민했습니다.
밤이 깊어가고 새벽 3시 30분쯤, 드디어 그 구절이 시원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한 기점으로 내 머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그 동안 나는 돌대가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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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토론의 특성상 나는 기독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입장이었고
또 그들 중 일부가 비논리적인 것을 우기는 걸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나는 그야말로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상대방을 항복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매일매일 12시간 이상씩 계속 키보드를 놀려대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고, 전제를 검토하고 하면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상대로부터 응답이 중단되면 일주일 이상 캐묻고 도배하면서 결국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논파하는 것쯤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이 잡혀 갔고, 나는 종교폐기론을 제안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인즉슨, 인간의 모든 진리는 계발되어야 하는데 비이성적인 종교 때문에 발목을 잡힌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역기능일 뿐이다. 순기능의 경우 대체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파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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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의 그 크리스천 친구녀석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지내다가 어느날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죽을 것 같다. 나 지금 교회다. 만나고 싶다!
만사 제쳐두고 달려갔더니, 부모님과 다투고 집을 나오게 되었답디다.
왜 이런 불행이 나에게 일어나야 하느냐고, 정말 하나님은 계시는 것이냐고..
나는 그 녀석 앞에서 차마 신 따위는 없다 교회를 박차고 나와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나란 사람은 그렇게 악랄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일단 사람을 구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지금까지의 내 철학에 위배되는 발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성숙케 하기 위해 일부러 내린 시련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느냐!"
그러자 이 친구는 놀란 표정을 짓고, 기분이 밝아졌습니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고, 얼마 안 있어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이때 나의 종교폐기론을 심각하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내 종교폐기론을 폐기하자는 생각까지는 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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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나는 네이트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착해보이는 기독교인과
이메일 주소를 서로 교환하고 몇주에 걸쳐 토론을 했습니다.
이게 말장난으로 계속 끝이 없을듯 해서 제가 먼저 그만두자고 했는데, 마지막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 : 자유의지는 인간이 선택한다는 건데, 하나님은 전능하므로 창조 시 이미 앞일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 결국 창조되는 순간 하나님의 계획 안에 갇히게 되는데 어떻게 자유의지가 있겠는가? 모순이다.
청년 :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모순됨을 모순되지 않게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 말장난에 당시 대항을 할 수 없었고, 결국 내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내가 대응논리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항복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나의 몰아붙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축복해주는 상대방이 참 이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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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종교폐지론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솔직하게 내가 성급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성을 옳게 사용하지 못한답시고 종교를 폐기하자는 주장을 내가 한다면,
과연 이성의 옳은 사용이라는 판단을 내가 할수 있는 것인가? 무슨 자격으로 가치의 당위성을 판단하는가?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나는 셧다운제 관련해서 장기간의 논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엄청난 심신의 피폐해짐을 얻어 그것을 계기로 오랜 키보드배틀 생활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십수년간 사용하던 일관된 닉네임도 갈아치워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름 바꾸는건 나에게 있어서는 일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닉네임 교체는, 현실의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더 큰 사건이었거든요.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나는 무신론의 정의에 대해 여러가지 자료를 접했고, 결국 무신론자를 자처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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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런 결심 이후, 나에겐 모든 것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예전에 나는 너와 나 중 하나만 옳다고 했다면, 지금은 너와 나 모두 옳을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예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서로의 신념은 서로 존중하면 되는 것인데 왜 그렇게 꼭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고 했어야 했을까?
왜 종교를 통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삶을 내멋대로 왜곡된 삶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일까?
왜 나는 꼭 이기려고만 했던가? 인간세에 시비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구.
왜 상대방이 틀렸다고 단정지었던가? 이성을 옳게 사용한다는 잣대를 내가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나?
그런데 이러한 신앙과의 공존을 현재의 마인드로 삼고 있는 나는 필연적으로 이성과의 대립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이성분리론이라는 걸 고안하게 됐고 그것을 지금의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알고보니 저 말고 슈마르허인가 하는 신학자도 그 비슷한 이론을 주창했던 적이 있다고 그러네요.
사실 이렇게 보면 저는 종교커뮤니티에 상주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이 바닥이 원래 돌고도는 곳이고 유저들 교체도 잦은 곳이라 나름대로 흐름을 읽게 됐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계속 비슷한 패턴 몇 가지가 돌고 돈다는 것이겠네요.
그리고 예전에 오던 분들 중 대부분이 요즘은 더이상 오지 않으십니다.
사실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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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논쟁하다 말이 막혀서 오함마로 대갈통 뿌숴버리기 전에 닥치라고 하던 기독교인부터
나의 모든 의문과 투정을 들어주고 종교적인 관점이 이렇다고 설명해 준 기독교인까지..
종교게시판에서 만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나는 거짓없는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휴학한 1년, 이제 난 복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2학기)
이 1년 동안 종교커뮤니티가 없었다면 나의 사고력은 배양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충분히 키보드배틀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복학하고서도 간간이 열폭하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아아, 처음으로 개인사를 시원하게 쏟아 봅니다.
현실계에서 인정받은 적이 없어 온라인으로 존재감을 표하려 했던 키보드워리어 '컴포나티'는,
이제 열등감과 자존감을 거의 소멸시켜버리고 마음을 비우려고 매일 노력하는 '한삶'이 된 것입니다.
"도무지 저놈을 이해할 수 없다" 가 아닌, "반드시 저분을 이해할 수 있다"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과거의 나, 아는척하면서 이길려고만 하던 예전의 나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존재감을 표해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았던가 하는..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줄곧 외칩니다 : 인간은 후회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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