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며, 각자의 취향은 존중돼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디까지나 취미 영역에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더 전문적인 지식은 잘 알지 못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소리가 명확하게 있으며 원음을 듣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이 글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되겠습니다만,
원음을 듣는 것에 욕심을 가졌지만, 뭐부터 알아가야 할 지 모르는 분들을 위한 매우 기초적인 글입니다.
음원은 아티스트와 엔지니어가 의도한대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감상할 때, 아티스트를 이해하고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단언컨대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음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표준이 있기 마련이고, 음원 역시 그 표준에 맞춰 녹음, 믹싱되는 것이 원칙입니다(물론 이걸 제대로 지키는 스튜디오가 얼마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요). 그리고 그 표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구성의 청음실이 국제 표준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저 청음실에서 모든 가청주파수의 응답이 같은(이를 두고 Flat하다고 합니다)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가 원음으로 취급됩니다.
표준 청음실에서 사람이 듣는 것과 동일한 소리를 내는 헤드폰, 이어폰을 갖는 것이 많은 오디오파일들의 소원입니다.
국제표준 청음실에서는 머리전달함수, 공간전달함수, 크로스토크가 개입되며 이것이 모두 반영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헤드폰, 이어폰에선 저 세가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드폰, 이어폰으로 '원음'을 듣기 위해서는 저것들을 보정해주는 과정이 필요해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의 귀와 두개골은 모두 다르게 생겼고 이에 따라 같은 공간에서 재생한 음원이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사람마다 생긴 것이 달라 머리전달함수와 크로스토크는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소리입니다. 물론 개인별로 EQ를 조정해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공간전달함수는 맞추지 못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헤드폰, 이어폰을 통해 원음을 듣는 것-음상이 두개골 외부에 맺히며 공간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죠.
혹자는 음장감을 공간감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공간감이 느껴진다고 하기 위해서는 음상이 외부에 맺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헤드폰, 이어폰에 음질을 기대하면 안되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걸 못 맞추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음색이라도 원음에 가깝게 들어보자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처: InnerFidelity 가로축은 주파수, 세로축은 음압입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고주파(고음).
현재까지 등장한 타겟 곡선 중 일부입니다.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저것들 외에도 여러 타겟 곡선이 존재합니다.
이런 타겟을 비슷하게 재현한 헤드폰, 이어폰을 두고 그나마 원음에 가까운 음색을 들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보면 3kHz 부근에 커다란 피크가 있으며 이는 각 타겟별로 수 db이 차이가 납니다. 저음은 무려 5db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저정도 차이는 0과 1이 만들어낸 디지털이라는 기적이 해결해 주니까요.
바로 디지털 파라메트릭 이퀄라이저입니다.
유명 모바일 뮤직 플레이어인 Neutron Player의 파라메트릭 이퀄라이저 설정 화면
부족한 응답을 보이는 주파수 대역을 채우고 넘치는 대역은 음압을 줄이는 방식으로 원하는 타겟 곡선에, 또는 본인이 원하는 취향에 맞는 타겟에 맞춰서 적용하면 됩니다. 사족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퀄라이저는 가지고 있는 음향기기마다 적용값이 전부 달라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되죠.
Q. 그러면 아무 헤드폰, 이어폰이나 사서 EQ 맞추면 되지 않나요?
A. 그건 절대 아닙니다.
EQ는 만능이 아닙니다. 이어폰, 헤드폰에는 구조적으로 보완이 불가능한 특성을 가지기도 합니다. 특히 공진이 일어나서 피크를 가진 기기의 경우 이퀄라이저로 해당 대역폭을 줄인다고 완전히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딥과 피크가 극단적이지 않고 공진이 적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지나치게 많은 음압을 조정할 경우 클리핑이 발생할 수 있으니 음압을 올리는 쪽의 조정은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불어 Flat한 음향기기는 이퀄라이저를 통해 특이 취향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기기의 주파수 응답을 알고 있다면 그것에 맞춰 이퀄라이저를 조정하면 비슷한 음색을 체험할 수도 있죠. 물론 이는 주파수 응답만을 조정하며 그 외의 것은 반영하기 힘듭니다.
Hi-Fi 재현에 가까운 헤드폰 이어폰 리스트
순서는 무작위로 떠오르는 순서대로며, 가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제가 모르는 좋은 제품들은 많이 있습니다.
(작성자의 개인적인 호불호도 반영됐습니다. SONY OUT!)
헤드폰
클로즈드 백(밀폐형) 헤드폰은 제외했습니다. 아웃도어 지향이라는 점과 독특한 잔향 같은 점에서 굳이 여기서 다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 젠하이저 HD600, HD650, HD660
명실상부한 Flat 헤드폰의 대표주자. HD600은 현재 시점에서 저음이 다소 저평가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HD650, HD660이 조금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추세.
돌솥
2. 베이어다이나믹 DT880 Pro
세계최초로 헤드폰을 만든 회사가 만들면 다른가? 뭐 사실 고음이 상당히 쏘기 때문에 취향을 타는 제품입니다만, 그걸 좋아하시는 분도 적지는 않더군요.
3. AKG K701(2)
본인의 머리가 매우 크고 편평한 뺨을 소유하고 계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사실 설계는 매우 옛날부터 변한게 없어서 위 두 제품에 비해선 별로 평이 좋지는 않습니다. 근데 예쁘잖아요.
케이온!
4. 젠하이저 HD800
사실 순정상태에서는 고음이 매우 과장돼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Flat하지는 않지만, 이퀄라이저에 노력을 기울이면 최고의 저음 품질을 얻을 수 있는 제품. 사실상 젠하이저 브랜드의 플래그쉽사이버펑크
5. 슈어 SRH1840
저음 부왁부왁 이어폰만 주구장창 만들던 슈어가 헤드폰 장인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오히려 헤드폰의 경우 약간 고음이 강조된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젠하이저의 돌솥 디자인에 질린 사람들을 위한 괜찮은 대안...인데 가격이 이걸;;
다스베이더 방독면
6. 오디오테크니카 ATH-AD700X
일본제 헤드폰을 누군가 묻거든, 고개를 들어
소니를 외면하고오디오-테크니카를 보아라. 별 특색은 없는데 착용감에서 좀 말이 나오긴 하더라고요. 전 괜찮던데...
이어폰
1. LG 쿼드비트3 Tuned by AKG
LG는 음향기기 회사입니다. 쿼드 레이어 드라이버 적용으로 미친듯이 낮은 THD와 고품질의 저음을 들려줍니다. 다만 저음양이 좀 많고 실리콘팁이 너무 구립니다. 사실 AKG가 만든것보다 훨씬 좋은 이어폰입니다. AKG는 이어폰 잘 못만들어요.
오히려 LG가 AKG에 가르쳐주는게 맞지 않나...
2. 소니캐스트 디락
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이어폰"입니다. 새롭게 개발된 드라이버를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개념 자체는 쿼드비트의 쿼드 레이어 드라이버와 유사합니다. 현재 디락은 단종됐으며 이번 달 내에 디락+가 나온다고 합니다. 저음이 좀 많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디락+에서는 저음과 고음이 좀 더 줄어든다고 합니다.
3. 웨스톤랩스 W20, W40
완벽하게 업그레이드 안됐습니다만, 웨스톤랩스 제품 중 그나마 개념제품이라고 불리는 두 모델입니다. 웨스톤랩스 치고는 대역폭도 넓은 편이고 임피던스 특성을 이용해 저항을 달아주면 상당히 Flat한 음색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저음은 강하지만요. 무엇보다 착용감이 편하고 간지가 납니다.
4. 슈어 SE846
슈어가 만드는 듀만콘댐 이어폰. 그래도 나름 납득 가능한 음색을 들려줍니다만 대역폭이 너무 좁은게 평가를 다 깎아먹고 있습니다. 본인의 귀가 노화돼 초고역이 들리지 않는다면 어찌돼도 좋은 특성이지만요.
엑소이어폰
5. 에티모틱 리서치 ER4 시리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91년부터 왕좌를 지켜온 Flat 이어폰계의 최고존엄. 사실 ER4 시리즈 외에도 에티모틱 리서치에서 출시한 모든 이어폰은 Flat합니다. 귓구멍이 넓은 사람에게 추천.
삼단딜도
6. 하이디션 NT1
국산 커스텀 이어폰입니다. 위의 에티모틱 ER4 시리즈와 같은 듀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음색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기술이 부족했는지 공진을 잘 못잡아 고음에 피크가 형성됐으나 요즈음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7. 하이디션 Viento-R
4개의 듀서를 사용하며 극저음, 중저음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버전과 고정된 버전 4개로 총 5가지 모델이 존재합니다. 적절한 양의 저음과 Flat한 고음이 특징인데, 그냥 좋아요 이거. 비싸서 그렇지... 그래도 해외 제품보다 훨씬 저렴하고 AS가 더 빠르다는게 위안.
※커스텀 이어폰의 경우 청음샵에서 샘플을 들으면 노즐 길이가 짧기 때문에 고음에 피크가 생깁니다. 이 점 감안하시길 바랍니다. 실 제품에는 없을 가능성이 커요.
8. 애플 인이어(Me186)
애플이 만든 또하나의 걸작. 꽤나 넓은 대역폭을 자랑하며 나름 Flat한 음색을 선보입니다. 다만 200Hz 부근에 이유 모를 부스팅이 돼있어서 저음이 강하게 들립니다. 다만 이퀄라이저로 충분히 조정 가능한 부분 동의? 어 보감~
그리고 애플은 이어폰 단자를 숙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