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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31540
    작성자 : 발저
    추천 : 2
    조회수 : 255
    IP : 180.182.***.5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8/04/17 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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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어려워할까

    신발 신으면서 양치하기, 라면 끓이면서 설거지하기, 독서하면서 킥보드 타기, 노래 부르면서 명상하기... 

    이해하기가 쉬우면서도 어렵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뇌는 한 가지에 몰두하기를 권유한다

    인간의 드러나 있는 감지 센서는 총 6개인데 그 중에 2가지 이상은 항상 작동하지만 3가지가 넘어가면 과부화가 일어나고 4가지, 5가지가 가동되려면 온 몸의 에너지를 총동원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은 매우 한정적이고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가령 지금, 고속도로에 20분 째 정체되어 있는 경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앞 차의 백라이트의 디자인을 바라보는 상황

    나는 시각을 이용하여 내가 내가 타고 있는 경차의 백라이트와 앞차의 것을 비용적, 심미적, 추상적, 괄목적인 비교를 하고 있는 데 급작스럽게 내 몸 안에서 가장 긴 부분의 정체는 심할 정도로 잘 풀려서 액체 상태로 된 자동차들이 괄약근이라는 좁은 통로로 인해 병목현상이 된 나머지 클락션을 눌러댈 때

    그런 상황은 정말 벚꽃이 불광천에 만개할 만큼이나 갑작스럽다

    시각은 노랗게 흐려진 나머지 사물을 잘 분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한 초점에서 다른 초점으로 분주하게 이동하지만 사물을 잘 포착하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손과 발에서는 땀이 솟고 핸들을 잡은 왼손은 일주일 전에 정안 휴게소에서 산 오돌토돌한 핸들 커버의 표면만 의미 없이 더듬을 뿐이다

    귀에서는 이미 싱글벙글쇼 따위 들리지 않게 되고, 동굴 안에서 밖으로 이야기 하듯 무성한 메아리만 감돌뿐이다

    입 안에 씹고 있던 자일리톨 껌은 이미 단물이 빠진지 오래지만 격투 선수들이 샌드백을 치면서 연습하듯 먹고 사는 연습을 부단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이 바로 먹기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미침과 동시에 그 연습을 중단 한다

    인생사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내 조수석에서 그딴 말을 지껄이는 입이 있었다면 씹고 있던 껌을 먹여준 뒤 윗니와 아랫니를 아래턱뼈를 올려서 만나게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조수석은 비극적이게도 비어 있고 앞 차는 희극적이게도 2m 앞에서 다리를 절고 있다

    남은 시간은 10, 아니 858초 쯤 되려나

    매일 아침에 런닝 4km를 뛰고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면서 헬스장에 개근할 때 왜 케겔 운동은 등한시 했을까

    후회가 먹으로 망울망울 져 한지에 떨어져 내린다. 아니야. 액체를 생각하면 안돼. 차라리 기체를 생각하자

    내 몸의 센서는 빨갛게 점멸하면서 요란하게 경보음을 울려 대지만 관제센터에서는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용 스피커로 단지 진정하시고 심호흡을 하세요.’ 와 같은 전형적인 사무과 펜대들이나 할 만한 말만 되풀이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 난관도 결국 내가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해야겠구나

    조수석의 서랍을 열었다

    손을 뻗어 검은 비닐봉지와 곽 휴지를 꺼냈다

    차 안 스피커에서는 김혜영씨의 친근하면서도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시청자의 사연을 읽는 소리가 봄 볕 햇살처럼 나른하게 내리 쬈다

    8. 아직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는 시간이 좀 있으므로,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일단 냄새. 자동차가 어떠한 공정으로 만들어 지는지 나는 자세히 모르지만 차는 냄새를 참 잘 머금기 때문에 8분이 지나기 전까지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 차는 사람 냄새로 향기롭게 될 것이다

    본능적이면서도 가장 태초의 냄새

    건강한 사람이라면 매일 아침에 한 번씩은 맡는 그 냄새가 거구 두 명이 타면 꽉 차버리는 내 경차 안에 존재감을 드러내어 착하고 자기 딴에는 양심적인 대출업자의 독촉 전화처럼 사나운 이빨을 웃어 재끼는 입 속으로 숨기며 은은히 협박할 것이다

    2개 나있는 차문의 유리를 열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만 지금은 벚꽃이 만개한 4월 중순

    산책로에는 노란 가방을 맨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노부부가 흐뭇하게 바라보며, 젊은 커플들은 꽃비를 맞으면서 소원을 비는 날씨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옆 차선의 미니 쿠페를 타고 있는 4명의 젊은 여성들도 한가롭고 무료하게 어디서 재밌는 서커스라도 있었으면 하는 표정으로 앞을 주시하고 있다

    물론 차문 유리는 내린 채로... 나는 내가 서커스 단원이 되어서 꽃처럼 싱그러운 봄의 청춘들을 위한 엔터테이너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고난과 역경의 상징인 향기를 간직하여 봄을 만끽할 것인가를 사이에 두고 즐겁고 행복한 고민을 했다

    6. 그래 냄새는 기체다. 기체는 공허하고 외롭기 때문에 항상 떠나왔고 앞으로도 떠날 것이다

    빌보 베긴스처럼 뜻밖의 여행이 재밌을 것이고 내가 간달프가 되어 지팡이로 엉덩이를 몇 번 찔러주면 알아서 나갈 것이다

    안되면 몽둥이찜질을 해서라도 내쫒을 것이다

    그리하여 창문은 닫기로 결정했고 조용하고 경건하게 차문 유리 올림 버튼을 눌렀다

    530초가량. 손에 쥔 검은 비닐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조수석 서랍 속에 언제부터 들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편의점에서 라면 5개 묶음을 사면 담아주는 사이즈의 봉지였다

    봉지의 위쪽에 나있는 구멍 두 곳을 고정시키지 않는 한 흐물흐물한 이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진 변기안의 내용물은 역류하여 막혀서 내 구두 위를 지나 페달에 안착할 것이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고정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였다. 나는 구두끈을 풀었다

    1m 30cm쯤 되는 길이를 보고 안도했다

    다행히도 경차라서 차량 내부의 차체가 높지 않았고 차안의 왼쪽 천장에 달린 손잡이에 구두끈 한쪽을 묶고 다른 한쪽은 봉지의 한 쪽 구멍에다가 묶었다

    봉지의 다른 구멍을 고정시키기 위해 안전벨트를 잠시 풀고 조수석 쪽을 향해 무릎걸음으로 건너갔다

    건너가는 동안 개통이 될법한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길이를 조금 더 길게 하여 봉지가 수평이 되게 하여 조수석 쪽 천장에 달린 손잡이에 구두끈을 묶고 남은 봉지의 구멍에다가 그 끈의 반대쪽을 통과시켜서 단단히 묶었다

    3. 김병만 족장도 울고 갈만한 환상적인 간이 변기는 완성되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분리하는 받침대에 당당히 올라선 검은 봉지를 보며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가다듬고 입꼬리를 올렸다

    1. 이제는 근본적인 고민만이 남았다

    과연 이 행위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름 지식인이 할법한 행동인가. 그리고 그 행위는 정당한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쇼핑을 한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한 중심에는 무수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물론 나는 식탁에서 밥을 먹는 쪽이었지만 어쨌든. 지식인이라는 기준은 비지식인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식인으로써의 역할을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존재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그래도 나는 행복할 것이고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저주스러운 고민을 할 여유도 생긴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려고하는 이 행위 자체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나는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벨트를 풀었다

    자동차 라디오에서는 이제 싱글벙글쇼 시청자의 구수한 사투리가 누룽지처럼 달라붙어 있다

    김혜영씨의 맞장구는 사람 마음을 참 편하게 한다

    차문의 유리를 넘어 미니 쿠페를 타고 있는 젊은 여성들은 변함없이 앞을 주시하고 있다

    동질감이 느껴졌다

    정체의 해소를 나도 너무너무 바라고 바랐지만 8분은 야속하게 흘러가버렸다

    이제 운전석과 조수석의 중간 턱에 자리를 잡고 바지를 완전히 내렸다

    검은 봉지에 잘 조준하고 긴장의 끈을 놓았다

    앞 유리 앞에서 절뚝거리던 차량들이 날개가 돋아 맑은 하늘위로 무수히 흩어졌다.

    발저의 꼬릿말입니다
    18. 04. 17
    보잘것 없는 아무것도 아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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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18 04:22:21  182.209.***.10  무연히  729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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