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글만 읽는 눈팅족에서 글을 제조하는 제조사에 도전을 해 봅니다.
이글은 어디까지나 실.재.로. 현.재. 지.금. 저에게 벌어지고 있는 그냥 그저그런 일들입니다.
말할 곳도 없고 마음에 담아두기 안타까운 현실이라 한번 주절히 적어두어 한풀이라도 하고 싶네요..
2010년 8월 이이야기는 처음 시작됩니다.
저는 그때 당시 현 대학교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ROCT를 지원 한 한 2학년 학생입니다.
당연히 남학생이고요 그때 당시 아주 저에게 어울리지 않은 아리따운 여자친구도 있었습니다.
방학때 집안 형편이 힘든 저로 써는 방학마다 막노동을 해서 돈을 모아야 했고 그 돈으로 학교를 다닐때
용돈으로 사용하며 보냈습니다.
막노동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적당히 내기는 힘들었고 당연히 여자친구와 보는게 많이 힘들어 졌습니다.
주말만 되면 일에 찌든 몸을 쉬느라 힘들었고 평일에는 퇴근후 하루하루 힘든 일을 버티기 위해 밤마다
술을 마셔야만 숙면을 취할수 있었습니다.
여자친구가 도저희 보고 싶어 진걸 견디지 못해 아버지(아버님이 막노동 쪽에 소개시켜주신 장본인..)께
일을 내일 빼돌라구 했다가 오지게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묻더군요.
아버님 왈 : 먼일 때문이냐 솔찍하게 말하면 듣고 이해해 주겟다.
저 왈 : 여자친구가 보고 싶습니다.
로맨스 드라마를 많이 봣나 ?.. 지금 생각해도 한심하긴 하지만 일단 기본적인 욕들은 다 들은거 갔습니다.
미xx 부터... 벌써부터 여자친구 챙기느니 마느니...
저도 마찬가지로 대들었습니다. 언성을 높히고 서로 얼굴을 붉혔죠...
그러고 마음대로 하란 말이 들려왔습니다.
불안하기도 하였지만.. 우선 내일 여자친구를 만날수 있다라는 안도감이 우선 절 먼저 진정 시켯죠.
다음날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제가 일을 안간거에대해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더군요..
이런 저런 이야기 뒤 집에 왓습니다.. 그떄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 후 3일뒤
저는 일을 나가지 않았고 집에서 눈치밥을 먹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당시 외가댁에 잠시 내려가있었는데..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는 동생들을 앉쳐놓고 저를 까기 시작하더군요.. 형이란 놈이 어쩌고 저따구를 살면 어쩌고..
등등...
저역시 술에 먹은 상태여서 그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선 아버지와 이야기가 필요하다 생각된저는
방에 나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어리다. 멀 모른다. 제가 대화 방법이 잘못된거 일수도 있었습니다만.. 먼가 억울 했습니다.
워낙 고지식한 성격이신건 알았지만... 대화 자체보다는.. 먼가.. 절대군주의 포스를 풍긴다는게 맞았습니다.
제가 바란 아버지는 저의 대화를 들어주시고 저의 말에서 피드백을 해주는 아버님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지없이 번번히 벗어나더 군요...
서로의 언성만 높아지고 이놈 저놈 욕이나오기 시작했으며 저도 맞받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부엌에서 칼을 들고와 절 죽이실려고 하시더군요..
필사적으로 막고 칼을 뺏은뒤 아버지가 움직이지 못하게 눞혀서 손과발을 잡아 두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안 동생들이 주위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현장을 목격한 절 일단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를 못음직이게 막고 있었으니.. 좋게 보일리도 없고 제자신이 잘못한것도 맞기 떄문입니다.
연락받은 어머님은 다시 집으로 급하게 올라오셧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더니.. 저보고 집을 나가라 하시더군요 ..
다음날 부모님 께 빌었습니다만 아버지는 제가 대들었던게 충격이 크셧다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보고 이야기를 하엿지만.. 이야기 보단 또 싸움으로 번져 이혼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 또 감기가 걸린건지 제가 내과를 찾아가 봤는데 저보고 의사가 정밀검사를 받아보라 하더군요..
아마 심장쪽에 문제가 있는거 같다고 말씀하셧습니다.
의사가 그쪽 전공은 아니지만 잘못하면 수술을 해야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 전 도저희 이런말을 부모님께 해드릴수 없었습니다.
신세지는게 너무나 싫었기 때문입니다.
사는것도 싫었고 힘들때 제 옆에서 절 든든하게 위로 해주던 친한 친구들 마져 나라의 부름에 가버렸습니다.
여자친구가 떠올르긴 했지만.. 전 그때당시 죽는줄 알았습니다. 이미 심장병에 걸려버렷고
수술을 해야되는데 돈이없으니.. 그냥 죽는다고 생각해 버렸죠..
그 당시 전 제가 살아온걸 조금씩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안하던 방정리를 시작하고 옷을 정리하고 서랍까지 깨끗하게 정리 하고...
그리고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마지막 데이트라 생각하면서 여자친구의 웃는 얼굴만 하루 종일 보는 제가
한심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저녁에 술을 먹으로 가자 제안을 먼저 한뒤 조용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 해어지자고 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이유를 물었지요..
전 대답해줄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알았다는 말은 한뒤 여자친구가 일어났을때 전 도저희 참지 못한 입을 열었습니다.
그 이유를 주절히 설명했지요..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곳 죽을것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너무 무섭게 살고
있는데 그 모든 짐을 혼자 지기에는 제 짐이 너무 무거웠고 무서웠습니다.
하나의 기둥이 필요하다 생각하였지요;;
여자친구는 절 이해해주는듯 절 잘 다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울고 서로 다시 두손을 꼭 잡고 집에 들어왓습니다.
그러던뒤...
여자친구의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싸이의 제 폴더가 삭제되고 글은 이별의 느낌이 나는 글을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시간도 잘 내주지 않았으며 전 하루 종일 진통 제아 안정제로 먹으면서 하루하루 근근히 버텨갔습니다.
어느날
제 6촌 뻘되는 형님께서 잘지내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믿을만한 형님이기에 저의 말을 다했고 그떄당시 전 집을 나왔습니다.
형님은 차를 살려고 모아둔돈이 있다면서 일단 사람이 살아야된다고 말씀하셧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셧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서울이야기를 꺼냈지만 여자친구는 이미 마음을 떠난듯하게 말을 하여 확실히 하고 가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해어지자더군요..
전 서울로 올라갔고 수원 oo병원에서 입원 하여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심장병이 있긴 하였지만 수술을 해도되는 상황까지는 아슬아슬하게 피해 입원치료를 받으면 낳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떄 정밀검사후 받은게
외이도염,심장병,우울증,불면증,영양실조 초기증세 그외 소소한 병명들이 절 따라 다녔습니다.
의사가 저보고 엄청 머라그러시더군요.. 몸을 함부로 다룬다며 ;;
입원후 전여자친구와 연락을 하였지만서도.. 이미 연락은 거의 닿질 않는게 대다수였습니다.
하루하루 저혼자 침대에 누워 수십가지의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옛여자친구 싸이를 켜놓으면 우울이라고 적어논뒤 여러 남자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3개월 절대안정을 선고받은 전 2주만에 병원을 나왔습니다.
형님한텐 미안하지만 쓰라고 주신 돈으로 ktx 표를 끈어 저희 지역으로 내려 오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일인지.. 그때 쓰러져 다시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다시 실려왔습니다.
형님이 저보고 엄청 머라 하시더군요 ..;;;
결국 전 3주만 채운뒤 다시 저의 지역으로 내려왔습니다.
(ROTC의 최종발표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집부터 구해야 됬습니다.
벌써 월말은 지나가 수강신청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지금 제손에 들려 있던돈은 학자금 대출하며 받은 생활 비 100만원이 전부 였습니다.
우선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옛 여자친구를 찾아가서 다시 한번 물었지만... 여전히 대답은 하지않더군요...
방학떄마다 막노동을 하면서 항상 여자친구에게 못해주는 저로 써는 그 돈을 조금씩 모아 제 저축을 들어놓은게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필리핀 겨울이면 일본 훗카이도를 놀려갈려고 열심히 몰래 저축한돈 120만원 가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수중 220 만원 가지고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ROCT가 있지만.. 솔찍히 떨어지길 바랬습니다.. 현역으로 가기 전 돈도 벌어놓고 저축을 들어
놓고 가면 된다는 생각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ROCT가 붙으면.. 학교 생활을 오로지 저의 스스로의 힘으로만 해야되는 상황이기 떄문에...
도저희 자신이 없었습니다..
ROCT도 여자친구때문에 신청하기도 하였기 떄문이죠 ..
그 기간동안은 정말 하루하루가 살기 싫었습니다. 여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고 가정파탄에.. 나와 사는
이 현실이 너무 지랄 맞고 욕을 했습니다.
자살 기도 까지 한적있었습니다. 불면증 때문에 받은 수면제를 통제로 먹어본적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하루 꼬박 자더니 일어났습니다.
두번째는 쥐약을 먹었던거 같습니다. 근데.. 엄청 괴롭더니 살더군요 ..
신이 이제 자살까지 못하게 하나 싶었습니다. 살아야되나..?..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자살기도를 하기에는 제 간이 그리 크지 못한것일수도 있습니다.
근데 이 빌어먹을 세상은 절 붙여 놓더군요.. 합격이라고..
포기 하길 생각 했었습니다 .
하지만.. 그 6촌형님께서 ROCT는 나름 도움이 엄청 된다면서 극구 하길 권유했습니다.
제과는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거의 낙하산 수준이라더군요 ;;;
그래서 방을 구하고 제 삶을 구할려고 시작했습니다.
근데 집값 밥값이 엄청 나더군요..
밥을 최대한 굶었습니다;
가끔 저에게 오는 후배들이 밥사돌라고 나타나면 밥을 사주고 굶는 경우도 부지 기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베프의 친구분 부모님이 제 사정을 들으신 모양입니다.
와서 사시라는 말씀에 염치불고 하고 들어갔습니다
제 친구가 군대에 있기때문에 방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서 최대한 조용히 죽어 살았습니다.
아침에 일찍나오고 저녁엔 자는 시간에 들어오고 빨래 설거지는 제가 거의 다 햇습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그러면서도 가끔 외식하러 가자시면 안잡은 약속을 있다말하며 PC방을가 컵라면으로
떄우고 오는 저였습니다.
그러면서 학교를 다니는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병원비도 제돈으로 내야되는데 대학병원이 엄청 비싸더군요;;; 갈때마다 십단위로 돈이 깨지는데 학교 차비
식비 등등 너무 많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11월달정도에 들어서면서 200만원대는 돈이 거의 다 날라가 버렸습니다..
외 병원비가 많이 드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
그떄 부턴 학교 차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나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째고 당일 일을 하고 용역같은곳에도 가보았지만 일을 못받아 일을 못간경우도 부지기수 였습니다.
학점은 이미 거의 날라갔습니다.;;;
수업을 많이 빠졋고.. 과제역시 내지 못하과목이 좀 됩니다;;
근데.. 더 지x 같은건... 그 전 여자친구를 계속 학교에서 마주칠때마다 너무 미칠것 같습니다.
과 CC엿다 보니 볼때마다 괴롭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다시 기대고 싶어진다는 거네요;;;
계는 아무렇지 않은듯 잘다니는데..
저랑 같이한 일년반의 시간이.. 저한테만 소중한 추억인거 같아 슬프네요..
너무 많이 생각나 학교도 무섭습니다;;;
우선 내년 ROTC 본단에 1년 휴학계를 신청 해놓았습니다.
1년동안 서울에 올라가 죽도록 돈만 벌 생각입니다..
이게 좋은 선택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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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실화를 적어논것입니다.
너무 정신없이 살아온 방학과 2학기가 다시돌아가고 싶을정도로 잊어버린게 너무 많습니다;
베플 추천 ? 이런거 보다.. 저에게 따뜻하고 따끔한 충고를 듣고 싶습니다;;
웃긴 게시판에 진지한글 올려도 되나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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