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비
위치 |
춘천시 근화동 |
건립일자 |
1968. 5. 7 |
비문내용
자유수호를 위하여 한국전쟁 중 이 땅에서 공헌한 영웅적인 "에디오피아" 제국의 용사들에게 바친다. [ 파병을 주도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
아마도 잠시나마 국권을 잃었던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는지, 그는 동서냉전시기가 도래하자 어느 한편에 확실히 가담하여야 차후에도 국가의 주권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전격적으로 파병이 결정되었는데, 1950년 8월 당시 에티오피아군은 황실근위를 담당하던 10개 대대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 중에서 자원자들을 차출하여 1개 대대규모의 신편 파병부대를 창설하였습니다.
[ 파병 직전 카그뉴대대를 사열하는 셀라시에 황제 ]
이 부대는 카그뉴 ( Kagnew ) 대대라고 명명되었는데, 황실근위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였으나 사실 현대적 교리에 따른 대대 급 전술훈련 경험도 없었던 전근대적인 군대였습니다. 하지만 파견 나온 영국군 교관의 지도하에 강도 높은 전투훈련을 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용맹스러운 군대로 탈바꿈을 하였고, 1951년 5월 6일 파견사령관 게브레 ( Kebbede Guebre ) 대령의 지휘 하에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 모자에 국기가 선명한 부산도착 직후의 모습 ]
카그뉴대대는 부대정비 후 7월 11일, 가평으로 이동하여 종전 시까지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전하였습니다. 여타 UN군에 비교한다면 부대편성 및 교육훈련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비록 참전은 늦은 편이었지만, 1951년 9월 적근산전투를 필두로 1952년 10월 김화고지전투, 1953년 5월 요크, 엉클고지전투 등에 연이어 참가하면서 혁혁한 전과를 올립니다.
[ 용맹한 아프리카 사자들인 카그뉴대대의 참전기록 (上) 과 전투 중인 모습 ]
이들이 전투를 벌인 곳은 오늘날 에티오피아군 참전비와 최근 건립된 기념관이 있는 춘천 일대의 중동부전선 일대였는데, 고원지대 출신들답게 고지전에서 탁월한 전과를 벌여서 용맹한 아프리카의 사자들답게 한번 피탈된 고지는 반드시 탈환하는 괴력을 선보였고 종전 시까지 적에게 포로가 된 에티오피아군 병사가 한명도 없다는 무서운 신화를 창조해냅니다.
[ 아프리카의 용맹한 사자들은 민사작전을 벌일 때 순한양들로 돌변하였습니다
에티오피아군이 설립한 고아 보호시설인 보화원 (下) ]
연인원 총 3,518명이 이역만리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 120명, 부상 536명 등의 피해를 당한 에티오피아군은 1965년까지 순차적으로 철군하였습니다. 엘리트 집단인 황실근위대원이자 파병경력 때문에 병사들은 귀국하여 영웅대접을 받았으나, 1974년 멩기스투 ( Mengistu Haile Mariam 1937~ ) 가 이끄는 쿠데타세력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후 단지 북한과 싸우는데 이들이 자원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핍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 전적지를 방문한 참전용사들 (上)
현지의 한국촌에 거주 중인 참전용사와 후손들 ]
사회주의 정권의 탄압으로 탄압을 받은 6.25전쟁 참전 용사들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한국촌 ( Korea Village ) 을 형성하여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최근 한국 구호단체의 참여로 참전용사 및 그 후손들에 대하여 지원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되고 우리가 어려울 때 목숨을 주었던 그분들에게 더욱 많은 도움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한국 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한국 전선에 참여한 이디오피아군은 한국의 국권과 자유를 수호하는 전투에서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 촘 참전병력은 6,037명에 달합니다.
셀라시에 황제는 한국에 파병하는 부대명을 “Kagnew(강뉴) 부대”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에디오피아말로 “격파하다”라는 뜻이다. 황제는 한국으로 강뉴 부대를 파병할 때 행한 연설의 한 대목은 이렇다. “우리 에디오피아가 항상 추구하고있는 세계평화를 위한 집단안보라는 이 신성한 세계정책을 실현하고 보호하기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Fight until you win, or die)”
황제의 명령으로 우리나라에 온 강뉴부대는 용감히 싸웠다. 5차에 걸쳐 약6000명이 참전하였고, 121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으나, 포로가 한명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기든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53번 전투에서 253번 승리를 거두었다.
아직도 한국에 도움을 주고싶다는
에디오피아 참전노병.
한국전쟁 당시에 에디오피아는 황제가 통치하는 왕정국가였다.
그리고 1천400백명 가량의 정예 왕실근위병을 보내서 한국을 돕는다.
하지만 에디오피아는 한국전쟁 직후 왕정이 무너지고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국가가 된다.
전쟁 전에는 탑 엘리트였던 왕실근위병들은
전쟁후에는 공산주의를 배신한 배신자로 낙인 찍혀 살게된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후회하지않았다.
아주 먼 작은 나라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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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랑 미국만 생각하지말고 에디오피아랑 기타 참전국들도 생각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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