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용산참사, 대학생사람연대, 1인시위
▲ 광화문1인시위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필자를 체포하기 위해 다가서는 전경들
ⓒ 대학생사람연대 대학생사람연대
[현장] 1인시위 하다 경찰에 잡혀갔더니... 09.10.13 16:30 ㅣ최종 업데이트 09.10.13 16:30 박정훈 (parti)
지난 8월 개장 이후 광화문광장에 처음 발을 들였다.
한낮의 광화문광장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뿜어 나오는 분수 뒤로 평화롭게 가을햇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오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무전기를 든 중년의 남성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방패를 든 전경들과 여경들도 엄청나게 모이기 시작했다. 오늘(12일) 이 장소에서는 용산참사 해결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합법적인 1인 시위를 하는데
이렇게 많은 경찰이 투입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1인 시위가 시작되었다.
1인 시위 참가자들은 각각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규탄', '용산참사 외면하는 민생정치 기만이다'
'구속자를 석방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으로 적힌 작은 펼침막을 양손으로 들고 서 있었다.
용산참사해결의 요구를 담은 우산을 쓰기도 했다.
대학생으로서 참가한 나역시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동상 사이의
시민들이 오고가는 통로 입구 쪽에서 펼침막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들어보니, 그 사이에 있는 조형물은 시위를 막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 한다.
설계자와 상의도 없이 만들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이다.
한 5분 정도 서 있었을까? 갑자기 등 뒤에 묵직한 느낌이 든다.
4각형의 전투대형을 짠 전경 수십 명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체포할 때, 다른 데 잡지 말고 허리띠를 잡아'
지휘관인 듯한 사람의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나 설마... 1인 시위하다가 체포되는 건가? 설마...'
놀라움보다는 황당함이 컸다. 하지만 둘러싸다가 풀어줄 거라 믿었다.
둘러싸이는 건 인터넷뉴스를 통해 몇 번 봤던 터였다. 그런데 지휘관이 내 앞에 와서,
'자, 미신고집회로 검거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경고방송도, 하지 말라는 제지도 없었다.
바로 검거다. 곧이어 '자 연행해'라는 말과 함께 아까 들은 말대로 허리띠가 들리고
양팔이 잡혀서 끌려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일이었지만 펼침막은 끝까지 내리지 않았다.
닭장차에 들어가서야 체포된 것이 실감이 났다.
나 이외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님을 포함한 6명의 민주노동당 당원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소속 한 분이 연행되어 마포서로 함께 이송되었다.
모두 한 명씩 그렇게 수십 명의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이다.
마포서로 도착했지만, 마포서 지능팀 형사들도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덕분에 우리는 30분 이상 경찰차 안에 방치됐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담당자가 없었나 보다.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받았으니, 그들 역시 당황스러웠나 보다.
우리는 부당한 연행에 항의해 묵비권을 행사했고, 몇몇 분은 식사를 거부하고 단식을 진행하셨다.
우리는 불법연행에 항의하였는데, 경찰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1인 시위는 집회가 아니다. 이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경찰은 집단으로 1인 시위를 했기 때문에 집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행 집시법상 주최자 이외에 단순 집회참가자들은 현행범체포를 할 수 없다.
그러자 경찰은 1인이 모두 주최자였기 때문에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1인시위이니 주최자가 1인인 것이다. 이 경찰의 말장난에, 분노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정권과 경찰이 이야기하는 법치가 개그콘서트보다 더 큰 웃음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마포경찰서 형사들은 현장에 있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고, 다른 사건으로 바쁜 상태였다.
우리가 빨리 갔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기 관할도 아닌데 당연히 귀찮은 일일 거다.
"위에서 진술만 하면 석방해도 된다는 지시가 내려 왔어요."
경찰이 우리에게 말했다. 변호사와 상의한 후 묵비권을 행사하고 조사를 마쳤다.
조사는 서로 할 말도 없고 해서 40분 정도로 빨리 끝냈다. 그러나 경찰이 말을 바꾸었다.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 못 믿을 경찰이다.
우리는 석방되지 못하고 경찰은 퇴근을 못하고 검찰의 지시만을 밤늦게까지 기다렸다.
검찰에 대한 미움으로 미묘한 공감대도 형성되는 것 같았다. 오래 있으니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았다.
"체포통지서를 본인에게 직접 주세요."
변호사님이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자 형사가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직접 달라잖아요!"
경찰과의 약간의 실랑이 후 할 수 없다는 듯 우리의 서명을 받고 체포통지서를 직접 주었다.
그렇다. 나도 여러 번 연행을 당해 봤지만 오늘에서야 알았다. 체포통지서를 굳이 우리 어머니께 전달할 필요가 없다.
경찰은 직접수령의 권리를 한 번도 통보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 형사가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변호사에게 건넨 명함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런 걸 조심해야 해요. 형사들이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도 저런 걸 다 수사보고서에 쓰거든요.
저게 다 재판 때 증거로 올라와요."
이 말에 형사님 얼굴이 빨개지셨다. 진술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조사받는 태도, 경찰서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대화와 정보가 재판 증거로 올라가다니, 이것 역시 새롭게 안 사실이었다.
정말 경찰서 안에서는 형사랑 담배 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말 조심해야 한다.
"따르르릉."
밤 9시 넘은 시각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검찰의 전화였다.
"국감 때문에 이제 지휘가 떨어졌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국감 때문에, 아무런 이유 없이 경찰서에 잡혀 있어야 했던 것이다.
1인 시위를 연행한 종로경찰서도, 그런 우리를 조사한 마포경찰서도,
그것을 지휘하는 검찰도 다 마음에 안 드는 하루였다. 우리나라 수사기관 참 못 믿을 존재다.
덧붙이는 글 | 박정훈 기자는 대학생사람연대 대표입니다.
출처 : [현장] 1인시위 하다 경찰에 잡혀갔더니...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