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을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지루하고 실망스러워서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남겨봅니다.
어제는 역사게시판에 명량이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한 사실관계에 대해 글을 적었는데, 오늘은 영화로 봤을 때에 보이는 문제점들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감독이 이순신 3부작으로 영화 찍을 거라는데, 개인적으로 말리고 싶습니다.
아래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전개는 명량해전 이전의 암울한 상황 - 구루시마의 등장 - 전쟁 위기 고조 - 해전 전투 - 승리 후 대사 일부 처리로 진행됩니다. 해전 내에서도 전투 도입 - 대장선의 위엄 - 대장선의 위기 - 부하 및 백성들의 도움 - 승리와 갈등 해결의 구조로 전체적인 그림으로 도입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이 있으며 절정에 해당하는 해전 안에서 다시 작게 도입부터 결말이 진행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틀에 맞추기 위해 사실에 극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더하면서 오히려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인과관계를 무너뜨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억지 감동코드를 남발하면서 오히려 실제 역사보다 극적인 매력이 떨어지고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잘못 그려냈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지요.
1. 전장의 전개
명량해전은 소수와 다수가 싸워 소수가 이겼고, 전사자가 겨우 2명에 불과할 정도로 조선군이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싸운 전투입니다. 물론 이런 역사적 배경이 꼭 영화에서 그대로 그려질 필요는 없지만, 명량해전 자체가 가진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면 그 상황을 단순화시켜서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영화에 도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가 거의 없이 소수가 다수를 이겼다는 건 전투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군은 철옹성 같은 모습으로 버텼고, 적군은 이에 질려 도망쳤다는 의미입니다.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난전을 벌이는데 조선군이 왜군을 다 물리치고 수많은 역경에도 멀쩡한 판옥선의 모습이라면 애초에 12척이라고 겁먹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12척 다 돌진했으면 왜군은 애초에 졌을 것 같은 포스였지요.
2. 맹장형 이순신 캐릭터
이순신 장군은 난중에 일기를 남기고 그 안에도 활을 하루에 몇 대 쏘았고 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을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한 감성의 지략가라는 데에 그 위대함이 있습니다. 마치 삼국지에 그려진 제갈량처럼, 천시와 인화를 읽어 항상 이기는 상승장군의 모습이 가장 위대한 점이지요. 위험한 확률에 도박하듯 부딪히고 직접 나서서 적을 죽이는 맹장형 캐릭터는 아무리 영화라지만 좀 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 전장의 흐름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철옹성처럼 무너지지 않으려 악착같이 버텼을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노고를 오히려 반감시키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수상 성벽처럼 굳건히 서서 어떻게든 적이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쓰는 수군의 모습이 그려졌더라면 더 긴장감 있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3. 구루시마의 쓸데없는 포스
이순신과의 대척점을 이순신 vs 구루시마로 그리다 보니 이런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극 초반부터 굉장한 포스를 풍기는 구루시마는 마치 뭔가 있어보이지만 실제 해전에서는 찔끔찔끔 배를 보내다 각개격파 당하고 그 사실에 격분해 돌진했다가 허무하게 목이 떨어지죠. 실제로 별 포스가 없는 캐릭터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넣으려다보니 굉장히 어정쩡해진 느낌입니다. 오히려 이순신 캐릭터는 앞서 말한대로 지략가와 수성의 달인과도 같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주고, 구루시마에게 맹장형의 거칠고 거센 캐릭터를 주었다면 전체적인 그림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수적으로 더 많은 왜군이 굳이 조심스럽게 공격할 이유가 없으며, 해적출신이라는 구루시마가 그럴 필요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보다 깔끔한 전개를 위해 다시 정리하자면 명량해전은 상황을 명확히 분석한 이순신 장군이 소수의 군대로 다수를 막기위해 좁은 길목인 명량을 택하고, 처한 상황상 가장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선택들을 취한 맥락 내에서 치열한 전투와 하늘의 도움으로 마침내 이겨낸 기적적인 전투입니다. 정황상 대장선이 먼저 앞에 나가 싸우고 일본군의 돌격에도 끄떡없이 버티자 기세가 오른 아군이 참전하고 적은 겁을 먹고 도망치면서 사상자를 낸 전투이지요.
어떤 분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쓴 것도 봤습니다만, 오히려 실제가 더 극적이고 더 강한 쾌감이 있는데 굳이 영화로 각색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없앨 필요는 없으며, 특히 3부작으로 다른 해전을 다룰 것이라면 각 해전이 가진 매력을 파악하여 영화의 전개가 그 매력을 향해 달려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을 주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명량은 전개에 잡음이 많았으며, 단순화시켜야할 사실관계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사건이 가진 매력을 반감하고 개연성이나 노고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CJ 계열 사극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억지 감동 코드와 극단적 극 요소는 제발 사라졌으면 합니다. 진구-이정현의 텔레파시나 느닷없는 토란의 등장도 그렇고 대장선에서 싸우던 병사는 왜 느닷없이 자폭대형민폐을 하며 도망가는 배설은 이순신을 왜 시해하려하고 또 구선은 왜 불태운답니까 도망가는 거 들키려고 어둠 속에서 소리치다가 활 맞는 거 보고 기도 안 차서 ㅋㅋㅋ 나 여기 있으니 죽여주시오 하는 것도 아니고... 배설 후손들이 알면 진짜 소송걸리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3줄 요약
1. 다큐로 만들어도 매력있는 사건인데 영화가 말아먹음
2. 영화로만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
3. 감독님 제발 좀 더하지 말고 빼는 식으로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