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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브 왕조' 술탄 살라딘.
뛰어난 전략가이자 명군이었던 그는 1차 예루살렘 십자군 이후 끝없는 분열과 내전, 동족상잔에 빠졌던 혼란스러운
이슬람 세계의 상당수를 통일하여 아이유브 왕조의 초대 술탄으로 등극한다.
1188년 안달루시아 십자군의 방어에 나선 그는, 십자군을 계속패서 격파했고
사자의 심장 리처드까지 패퇴시켜 전쟁을 종결. 카톨릭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후 수니파 칼리프를 도와 예루살렘 왕국을 침공하여 결국 완전히 멸망시키고 카톨릭을 아랍에서 몰아낸다.
그는 이슬람 최고의 성군으로 불렸으며,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아이유브 왕조는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
아즈텍 제국과 몽골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낸다.
<아사그라 가문 2세대>
'조안 데 아사그라' 통칭 조안 1세.
1197년 5살에 아사그라 가문의 가주가 된다.
그는 프랑스 여왕 스태파니와 결혼하려고 시도 했지만 실패하고 스웨덴 공주 군힐드와 결혼한다.
그는 1211년 10월 프랑스 남쪽 지방 베아른을 정복했고
아이유브와 전쟁 중이던 알모하드 왕조에게 성전을 걸어 발렌시아 공작령을 빼앗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1221년 우르겔 백작령을 공격하다 안포스 3세로 인하여 강제로 전쟁이 종료되자
조안 1세는 분노하여 왕에 대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1222년 비잔틴 제국이 아드리아노폴리스를 노리고 공격해 왔을때도 안포스 3세의 군대와 손발이 맞지 않아 합류를 못하여 실패.
제노아의 루나 남작의 대군에게 공격받아서 위험에 빠졌을때 프랑스 여왕 스태파니가 도와줘서 겨우 이겨내기도 한다.
1229년 우르겔 백작 다시 공격해서 승리하여 결국 영지를 빼앗는다.
1231년 엠푸리에스를 공격하다가 안포스3세가 다시 전쟁을 멈추게 만들자
또다시 분노한 조안 1세는 자문회를 그만두고 왕에 대항하여 선거제 파벌을 만들었으며, 왕에 대한 암살을 노렸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결국 들켜서 반역자가 되지만, 당시 안포스 3세는 조안 1세보다 군대가 적어서 투옥을 시도하지는 못한다.
대신 왕은 조안 1세의 파벌 동료들을 전부 빼내가서 조안에게 역습을 성공.
분노한 조안 1세는 왕을 납치하려고 시도 했으나 또다시 실패. 왕에게 다시 암살자를 보냈으나 부상만 입히고 실패한다.
모든 음모가 실패하자 1234년 엠푸리에스와 포익스를 명분으로 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그는
아라곤의 반역자, 왕 시해 시도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는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1235년 파죽지세로 아라곤 수도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그는
왕의 동생, 아내 등 바르셀로나 가문의 친척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왕의 조카 안포스만 살려둔다.
결국 안포스 3세와 원수가 된 그는 1235년 독사를 풀어 안포스 3세의 암살에 성공한다.
그는 새로 왕이 된 안포스4세와 전쟁을 하게 되고, 장녀 귀슬라의 엄청난 활약으로 1236년 승리를 하지만
전쟁에 익숙치 않았던 그는 불구가 되어 1236년 10월 27일 45세의 나이에 불구의 후유증으로 사망.
당시 아라곤의 왕 안포스 3세에게 재무관으로 임명된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사업과 재산증식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재능있는 상인이었으며 투자, 무역을 좋아했고 신하들과 무역 원정을 떠나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조안 1세가 남긴 무역로, 시장, 도시등은 수십년간 아사그라 가문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그의 후손들의 살을 찌웠다.
그가 남긴 재산과 영토로 인하여 아사그라 가문은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한편, 그는 장녀인 귀슬라를 총애하였고 여성도 얼마든지 남성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에 대한 인권을 매우 신경쓴 그는, 여성의 권한을 상승시키는 법안을 계속해서 통과하여
페미니스트 공작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안포스 데 바르셀로나. 아라곤의 왕 안포스 3세.
조안 1세의 이야기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름인 그는, 초창기에는 조안 1세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조안 1세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시키자 불안함을 느낀 안포스 3세는 2번에 걸쳐 조안 1세의 전쟁을 강제 종료시켰고
이런 불합리한 명령을 계속 당한 조안 1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수도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조안 1세가 잔인하게 왕의 아내와 가족을 모조리 참살하자, 안포스 3세는 조안 1세를 암살하려고 시도했고
조안 1세도 똑같이 그를 암살하려고 시도하며 완전히 원수가 된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두 사람의 대립은 결국 안포스 3세가 독사에 물려 사망. 얼마 뒤 조안 1세가 불구가 되어 사망함으로 끝나게 된다.
< 아사그라 가문 3세대>
귀슬라 데 아사그라. 통칭 귀슬라 장군
아사그라 2세의 누나였던 그녀는 조안 1세의 장녀였고 당연히 계승권이 있었다.
그녀는 남동생을 죽여서 스스로 가주가 되려고 했으나, 음모는 실패하여 동생에게 용서를 빌게 되고
마음을 고친 그녀는 동생과 가문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는 대장군이 된다.
그녀는 당시 유럽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유능한 장군이었으며, 그녀의 측면에서의 공격은 너무나 매서워
당대 적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동생을 위해 수많은 전쟁터에서 싸우고 이겨온 그녀였지만
동생이 어이없게 사망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하여 여생을 보냈고, 오랫동안 장수하여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사그라 가문 4세대>
알라이스 우르겔. 통칭 프로방스 여공작 알라이스.
아사그라 2세의 아내였던 그녀는 겉으로는 아사그라 2세와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없었지만
남편 몰래 아라곤의 왕 누노 2세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누노 2세와의 불륜으로 임신을 하게 되고, 사생아 레이몬드를 낳았으나 그 아이는 몸이 약해서 일찍 죽게 된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누노 2세와 간통을 한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아챈 남편 아사그라 2세를 누노2세와 함께 모의하여
암살하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개인적인 불륜을 저질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행동으로 인하여 서유럽의 역사는 완전히 대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아사그라 2세는 모든 군대를 끌고 프랑스, 베니스, 신성 로마 제국 등등 수많은 카톨릭 국가와 연합하여
아즈텍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남편을 죽이는 바람에 동맹은 끊어졌고, 연합군은 각개격파 당하여 아즈텍에게 패배한다.
그녀의 행동으로 인하여 아즈텍 제국은 훨씬 오랫동안 서유럽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까지 누노 2세와 불륜을 저질렀던 그녀는 결국 친아들인 아사그라 3세에게 암살당해 사망한다.
누노 데 바르셀로나. 통칭 누노 2세.
조안 1세가 안포스 3세를 죽이고 그의 친척들을 학살했지만, 정작 뒤를 이은 안포스 4세에게는 충성을 바쳤고
아라곤의 왕실 가문인 바르셀로나 가문은 계속해서 왕위를 잘 유지했다.
그러나 누노 2세가 알라이스와 간통을 저지른 행동이 발각되는 바람에, 아사그라 3세의 분노를 사게 되어
결국 아라곤 왕위를 아사그라 3세에게 빼앗기게 되고, 차후 프로방스 백작령까지 모조리 빼앗겨 바르셀로나 가문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그의 간통으로 인하여 가문이 몰락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알라이스의 뒤를 이어 아사그라 3세에게 암살 당하며 끝을 맞이하게 된다.
< 아사그라 가문 5세대>
아이네스 데 아사그라. 통칭 아이네스 여왕. 아사그라 가문의 첫 여군주였다.
그녀는 8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당시 그녀의 세력은 형편없이 약했으며
하필 왕국의 섭정은 삼촌이자 1순위 왕위 계승자였던 아톤 공작이었다.
당시 아톤 공작은 발렌시아 공작 미카엘의 계략으로 강제로 선거상속제 파벌에 들어가 매우 위협적이었다. 언제 반란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러나 1290년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 잉그리드가 아톤을 섭정에서 몰아내고 스스로 섭정이 되어 아이네스를 지킨다.
안전하게 1297년 성인이 된 그녀는 1년간 여름 축제, 가을 축제, 봄의 연회를 열어 백성들과 봉신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1298년 비잔틴 황제의 동생 다가토와 약혼한다.
1298년 6월, 아키텐 여왕 세실리아에게 툴루즈 명분으로 전쟁을 걸고, 1300년에 아톤 공작의 공성 능력으로 전쟁을 승리한다.
1301년 봉신들의 불만으로 반란이 일어났는데 반란군의 수는 16000명이 넘었으나 여왕의 군대는 겨우 11000명 뿐이었다.
그러나 아톤 공작이 엄청난 활약을 하여 적을 무찌르고, 반란군 수장 오토 백작의 아들 페란드를 생포해서 전쟁을 종결시킨다.
1303년 천재아들 시몬을 출산. 폐렴에 걸리지만 운좋게 완쾌한다.
1303년 7월, 흑사병 발발
1304년 12월 흑사병 멈춤. 그러나 남편과 친구들이 모조리 사망하고 아사그라 가문의 2/3이 사망한다.
1305년 두번째 남편 램버트와 결혼
1306년 아즈텍 독립 전쟁을 벌인다. 당시 병력은 아즈텍 46000 여왕 51000
로지어의 잉글랜드 특공대가 엄청난 활약을 했고, 니스 백작 베르톨도와 템플 나이트 그랜드마스터 오비조의 돌격으로 전쟁에서 승리.
1307년 7월 독립에 성공한다.
1308년 세실리아 여왕의 아키텐 왕위를 빼앗고 아키텐을 아사그라 가문의 대표 왕작위로 선포한다.
더불어, 아키텐의 독립 군주들을 회유하여 모두 그녀의 봉신으로 만든다.
1309년. 아즈텍 봉신들을 개종시킴. 거절하면 전부 영지를 몰수했으며, 아키텐의 독립 아즈텍 군주들을 공격해서 영토를 빼앗음
1312년 잉글랜드+시실리 여왕 로라와 후계자인 시몬을 약혼시킴
1313년 예전 동맹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지팍토날을 선제 공격.
그러나 로지어가 지팍토날을 죽여버려 그의 영토가 아즈텍 황제에게 양도되어 강제로 전쟁 종결
1314년 포이투 공작이자 재상인 산초의 명분으로 뤼지냥 백작령을 공격했으나,
파리에서 클레임 조작 중이던 산초가 사망하는 바람에 전쟁이 강제 종결
1315년 막내딸 알리에노르를 낳는 도중에 질병에 걸림.
1315년 12월 8일 33살의 나이에 사망
그녀는 아사그라 가문의 첫번째 여왕이었지만 매우 힘든 일생을 보냈다.
우선 여왕으로의 즉위 자체도 매우 힘들었다. 모친 잉그리드가 섭정 자리를 빼앗지 않았다면 왕위를 빼앗겼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봉신들은 그녀를 무시해 반란을 일으켜댔으며, 출산 중에 폐렴에 걸려 고생했고 흑사병이 돌아서
친구들과 친척, 남편을 잃는 고통을 겪는다.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다섯째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또다시 병에 걸렸고 사망하고 만다.
그러나 여왕 아이네스는 그 어떤 남자들 보다도 훌륭히 여왕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많은 신하들이 그녀를 축복하고 칭송했다. 그녀는 아키텐을 점령하여 아키텐의 여왕이 되었고
영토를 많이 늘렸을 뿐 아니라, 수십년간 아사그라 가문을 지배했던 아즈텍 제국에게 독립하여 자유를 되찾았다.
비록 여성의 몸이었으나 남자 못지않지 않은 위대한 왕이었던 그녀는 차후 아사그라 가문의 성군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멋이 없다는 이유로 아사그라 2세의 경보병 상비군을 해산시키고 중기병으로 이루어진 기사 상비군을 모집했는데
그녀의 단순한 선택으로 인하여 한 남자의 인생이 변하게 된다.
잉그리드 잉링. 아라곤의 왕대비 잉그리드.
그녀는 아사그라 3세와 결혼했는데,
정작 남편이 그녀의 오빠 오소르를 암살하는 바람에 가족을 죽인 남편을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두 사람의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은 남편이 암살당하면서 끝났고, 그녀의 유일한 자식인 외동딸 아이네스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고만다.
당시 잉그리드는 그저 왕대비일 뿐 아무런 권한이 없어서 딸을 지킬 방법이 없었는데
훌륭한 기지를 발휘하여 궁성을 점거. 아톤 공작의 섭정 자리를 빼앗는데 성공하여 딸의 위기를 막아낸다.
그렇게 딸을 교육하여 무사히 성인으로 만든 그녀는, 흑사병으로 인해 잉링 가문의 뒤를 이을 수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네스를 떠나 노르웨이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딸보다 오랫동안 살아남아 노르웨이의 권력 쟁탈에서 다른 정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노르웨이의 절반 이상의 영토를 먹어 치우는데 성공. 외손자인 시몬 왕에게 많은 재산과 영토를 남기고 사망한다.
토르스테인. 아이네스 여왕의 명재상. 귀족이 아니고 천한 신분이기에 성은 없다.
그는 잉그리드를 따라 노르웨이에서 아라곤으로 건너온 천한 남자에 불과했는데,
뛰어난 외교력을 갖고 있었기에 신분을 따지지 않는 현명한 아이네스 여왕의 선택으로 재상으로 활약하게 된다.
여러가지 작위 클레임을 손쉽게 얻어온 그의 활약은 대단했고,
특히 아키텐 공작위를 얻는데 성공함으로써 아이네스 여왕이 아키텐 왕국을 접수하는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된다.
비록 신분 차이와 나이 차이는 컸지만 여왕은 그를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하고 대우했으며
그에게 작위를 내려 귀족으로 만들어 주었고, 토르스테인 또한 그녀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친다.
흑사병으로 인하여 사망.
아톤 데 아사그라. 통칭 아톤 공작
아톤 공작은 아사그라 3세의 동생이라 아이네스 여왕의 삼촌이었다. 당시 섭정, 집사였던 그는 왕위 계승권 1위였기에
언제든 여왕을 죽이려고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딱히 왕위에 욕심은 없었고
계략 때문에 파벌에 강제적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본심이 아니었으며, 잉그리드에게 섭정 자리도 불만없이 양보했다.
그는 오히려 여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들을 없애는데 앞장서서 큰 활약을 했고 조카를 지켜주었다.
그는 당시 아사그라 가문의 가장 강한 장군이었으며, 공성전에 특화되어 많은 성을 함락시킨 영웅이기도 했다.
조카를 위해 계속해서 싸우고 무예를 연마하던 그는 여왕의 비원이던 툴루즈를 점령하여 전쟁에 승리한 직후
안타깝게도 흑사병으로 사망한다.
로지어 데 콤본. 통칭 주교 로지어.
25살의 젊은 주교였던 로지어는 딱히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무력이 있었고 용감했기에
아이네스 여왕의 잉글랜드 특공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그는 예상 외의 영웅적인 돌격으로 인하여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고,
여왕의 눈에 든 그는 니스 백작 베르톨도와 함께 템플 나이트 그랜드마스터 오비조의 휘하에서 기병 지휘관을 맡게 된다.
그렇게 여왕을 대신해 싸우던 도중, 여왕이 출산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로지어의 운명도 크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아사그라 가문 6세대>
시몬 데 아사그라. 통칭 시몬 왕
어머니 아이네스 여왕의 사망 직후,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새 아버지 램버트가 섭정+교육을 맡기로 했으나, 그는 자식들을 버리고 먼스터로 떠나버려 어린 시몬과 여동생들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1316년 당시 시실리 왕국 섭정에서 쫓겨난 랄프 레지나를 초빙. 랄프는 왕국의 대장군, 지휘관, 집사, 후견인으로 동시에 임명된다.
몇개월 뒤 시몬 왕의 친척인 공작 아사그라 4세, 아톤 2세, 니스 백작 베르톨가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군의 수는 압도적이었기에, 스위스 용병대를 고용해서 각개격파를 노렸고
아톤 2세의 돌격을 랄프의 방어적 전술로 카운터, 로지어의 영웅적인 카운터 돌격전술로 적을 갈아버려서 전쟁에서 승리한다.
1318년. 아사그라 3세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나, 약혼녀 로라 여왕이 약혼을 파기. 시몬에게 구원군을 보내지 않는다.
한참 전쟁 중이던 1319년 레온 왕국 후계자인 엘비라 공주와 약혼하여 이베리안 웨딩을 성사.
1320년 랄프와 로지어의 활약으로 반란군을 모두 격파하여 감옥에 넣는다.
그러나 몇개월 뒤, 서레이 여백작 아벨린이 아즈텍 제국의 에섹스 공작 이퀘후아카트진에게 납치되어 심장이 뽑히고
복수전에 나선 시몬 왕은 전쟁 승리 직전, 1323년 라데니드 왕조가 발렌시아에 성전을 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즈텍과 휴전한다.
다행히 잉글랜드 워릭 공작과 장인어른 럿버트 왕이 방어전에 참여. 칼라트라바 기사단도 참여한다.
전쟁은 랄프와 로지어의 돌격으로 승리 중, 1324년 여동생 엘레나가 시몬을 암살 하려다 들키고 도망치는 일이 발생한다..
1326년 다시 한번 에섹스에 성전 선포 -> 랄프가 에섹스 공작 이퀘후아카트진을 생포하는 대활약을 벌이며 전쟁에서 승리한다.
1329년 플랑드르 발도파 이단들에게 성전 -> 1332년에 승리
1332년 7월 외할머니 잉그리드 사망 -> 노르웨이 영토를 한꺼번에 획득한다.
1332 8월 아이유브 왕조와 전쟁 -> 1335년 무승부로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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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6년 아들 시몬 2세가 태어남]
[1337년 프랑스 지역에 대규모 클레임 전쟁 선포 -> 1340년 전쟁에서 승리. 수도를 파리로 옮기고 프랑스 왕국 부활]
[1342년 아즈텍 잔당을 정리, 아키텐 제국을 생성 -> 황제의 자리에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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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신성 로마 제국과 大 종교 전쟁 발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시몬은 자신과 여동생들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된다.
천재였던 그는 영리하게 랄프를 초빙하여 자신의 아버지이자 보호자로 삼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신의 한수가 된다.
랄프와 로지어와 함께 수 많은 전쟁에 참여한 그는 언제나 승리 하지는 못했지만,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서유럽의 패왕으로 군림하였고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사를마뉴 대제에 못지 않는 위대한 황제가 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훗날 많은 역사서와 소설, 사극 등에 등장하게 된다.
그는 전쟁터에서는 패왕이었지만, 사실은 천재답게 책을 좋아해서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로서의 면모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랄프 레지나. 통칭 아키텐의 대장군, 섭정, 집사, 지휘관, 왕의 교육자로 전해진다.
랄프는 원래 아사그라 가문의 적이었지만, 어린 소년의 열정 끝에 결국 항복하여 시몬 왕의 보호자가 된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전혀 약해지지 않고 끝없이 단련하며 전쟁에서 공을 세운 끝에, 세계 최강의 남자로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다.
그는 중보병과 창병을 지휘하는데 최고의 전문가였으며 언제나 가장 앞서서 적들과 싸웠다.
그는 시몬 왕의 단단한 벽이었고, 전쟁터에서도 그 역할을 충실히 실행했다.
시몬이나 로지어가 활약한 것은 그가 벽이 되어 적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방어 외에도 공격에도 능하여 많은 네임드 장군들을 죽이거나 생포 했으며
시몬 왕과는 아버지이자 친구, 스승이자, 전쟁터에서의 선배로 대우 받았다고 전해진다.
로지어 데 콤본. 통칭 아키텐의 창이자 왕국 기사단장.
그 누구도 로지어라는 평범한 성직자가 이렇게까지 강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물론 아이네스 여왕 시절에도 활약했지만, 본격적으로 그가 전설적인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시몬 왕의 치세부터였다.
아이네스 여왕이 남긴 기사단의 총 지휘관이 된 그는 오직 기병만을 다루는데 평생을 바쳤다.
중보병, 궁병, 경보병, 창병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으며 70%의 중기병과 30%의 경기병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이 오직 그의 군대였다.
랄프가 중보병과 창병을, 시몬 왕이 경보병과 궁병으로 적을 묶는 사이 측면에서 기마병을 돌격시켜 적들을 도륙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는 시몬 왕이 위급한 순간이 되면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엄청난 돌격으로 전황을 뒤집어 엎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돌격하는 그의 용감한 모습에, 기사단 또한 훌륭히 역할을 수행하여 아라곤의 창으로 불리게 된다.
그는 언제나 묵묵히 왕을 위해 싸웠고 랄프 대장군과 함께 시몬 왕의 양팔이 되어 평생토록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게 된다.
에스테파니아 데 아사그라. 통칭 에스테파니아 공주.
시몬의 세 여동생 중에서 둘째였던 에스테파니아는 유일하게 여장군으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예전 귀슬라 대장군같이 말이다.
시몬은 단지 그녀가 여동생이라 그런 것이 아닌, 능력만으로 그녀를 랄프 대신 왕국의 대장군으로 임명했고
에스테파니아는 그녀의 오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이유브 와의 전쟁 도중, 전술적인 실수로 인하여 랄프와 베르톨도가 퇴각하여 전쟁이 완전히 끝장난 와중에
유일하게 남은 에스테파니아의 부대는 적들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처절한 백병전을 벌였고
죽을때까지 싸운 그녀가 시간을 번 덕분에, 시몬 왕과 로지어의 부대가 합류할 수 있었고
그녀의 활약이 결과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녀가 이슬람으로부터 카톨릭을 구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계속해서 시몬 왕의 대장군이 되어 오빠를 따라 전쟁터를 누볐다고 전해진다.
베르톨도 디 모나코. 통칭 니스 백작 베르톨도.
랄프나 로지어 등의 이름에 가려져서 그렇지, 베르톨도 또한 매우 유능한 장군이었다.
아이네스 여왕이 가장 신임했던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로지어와 오비조와 함께 아즈텍 독립 전쟁에서 대활약을 했다.
그는 기회를 포착 하는데에 매우 유능했기에, 적의 약점과 측면을 후벼파는 전술을 즐겨썼다.
그러나 그는 니스와 인접한 영지인 프로방스를 너무나 원했고, 나아가서 프로방스 공작이 되길 바랬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톨도는 프로방스의 공작이자 백작이던 시몬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신임을 잃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반역자가 되었지만 운이 좋게 감옥에 갇히지는 않은 그는 파벌에 가입하는 등, 계속해서 왕에게 반항하다가
시몬 왕이 외할머니의 노르웨이 공작령을 베르톨도에게 넘겨주자, 정신을 차리고 왕에게 충성을 하게 된다.
그는 중간 중간 전술적 패배를 하기도 했지만 매우 유능한 장군이었기에 시몬 왕의 군대의 한 축을 이루어 계속해서 활약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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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그라 가문 영토의 변화 >
아사그라 친구들, 나도 그동안 너희 덕분에 정말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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