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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어쩌다 보니 두달간의 유럽 여행이 끝났다. 그토록 갈망했던 여행이 끝나는 순간,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여행의 끝자락에 서서야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유럽여행을 택했는가.'
혹은 여행중 만난 어느이의 질문 처럼,
'왜 하루 대여섯시간이나 되는 귀중한 시간을 자전거로 길바닥에 쏟는가.'
누구에게나 처럶 유럽은 나에게 동경의 땅이었다. 대학생 배낭 여행의 메카이자 자유를 상징했다. 사실 가장 크게 작용한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독일어를 배우면서 였다. 제2 외국어였던 독일어는 일주일에 6시간이나 됬다. 영어가 일주일에 5시간 이었으니 독일어의 빈도는 어마어마 했다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답이 music 이었던 영어 주관식 시험문제를, 대부분의 학생이 musik(독일어)라고 적었을까.
매일 같이 독일에 관련된 비디오를 보며 나는 유럽 문화와 자연에 자연스러워졌다. 당시엔 자전거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있지만 '저런곳에서 자전거를 꼭 한번 타보고 싶다.'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독일, 그리고 유럽은 동경의 땅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때의 일도 막연히 생각난다. 반장이었던 그때, 담임선생님이 유럽여행 후 베네치아엽서를 선물로 주셨다. 베네치아가 어느나라 어느땅인지도 모르는 그때. 그저 '와 정말 아름답다. 가보고싶다. 갈 수 있을까?' 정도의 생각을 했었다. 따뜻한 선생님의 엽서. 그안에 곱게 적힌 손글씨는 아직도 내게 선명하다. 이 작은 추억은 내게 베네치아를 유럽에서 가장 다뜻한 도시로 만들기도 했다. 그곳에서 느낀 포근함과 행복감은 어린날의 아련한 추억에서 온 것일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여행관이 존재한다. 여행에 대한 자세 말이다. 내게 있어 여행은 양보단 질이었다. 꾸역 꾸역 관광 하며 여행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느꼈을까? '돈이 아까워' 혹은 '여기 까지 왔는데 보고가야지..'하며 시험 전날 벼락치기처럼 여행한 사람들의 유럽이 나의 유럽보다 넓었을까?. 하나를 보더라도 행복하게 보고 싶었고, 깊이 있게 느끼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한 나의 유럽은 충분히 행복 했고, 누구의 여행보다 의미 있었다.
자전거로 하루 대여섯 시간이나 되는 귀중한 시간을 길바닥에 쏟느냔 질문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과가 그에겐 '길바닥에 쏟는 시간'이었다. 그의 무례함에 화가 났다. 불쌍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살면서 결코 내가 보았던 유럽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하루 전체였다. 눈을 비비는 순간부터 낯선 곳에서 이불을 덮을 때 까지. 자전거를 타고 도시와 도시를 이어가는 시간 역시 ‘여행’이다. 기차로 여행을 하는 이들에겐,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이 추억이된다. 나에겐 기차가 자전거 였고, 조금더 섬세하고 자세하게 여행을 즐겼다. 자전거 위에서의 날들은, 단연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그에게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단순히 버리는 시간이었나 보다.
느린 듯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자전거. 이를 통해 진정한 유럽 안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아까웠다. 이런 멋진 풍경과 상쾌한 기분을 나 혼자 만 느끼고 있다는게 너무나 아쉬웠다. 단언컨대 유럽의 진짜 모습은 기차만으론 절대 느낄 수 없다.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 돌방상황, 문제들. 이것들은 여행의 고비도 되지만 기폭제의 역활도 한다. 자전거와 만나는 언덕처럼, 마주치면 막막하지만 넘으면 가속이 붙는. 그러면서 차근차근 쌓이는 근육처럼 다음 고비를 이전 고비보다 수월하게 넘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 발전인가보다. 자전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내 인생과 닮은 '자전거'. 가진거라곤 젊음 밖에 없는 청년이 부딪힌 세상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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