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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으로 인하여 유대인에게 빚까지 진 장인어른이 저를 돕기위해 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저는 그의 전쟁을 돕지 않고 무시했었는데, 너무나 미안하군요...
아니, 이 것은!
잉글랜드의 '워릭' 공작 니콜라스도 저를 돕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지원군이군요.
라데니드 가문은 알모하드 가문의 봉신 가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아사그라 가문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는데,
자신의 군주를 공격하여 왕위를 빼앗은 모양새가 우리 가문과 똑같군요 ;;
현재 저의 친척 '댓' 공작이 방어하고 있는 발렌시아 백작령은 1831명의 방어병력 뿐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포위군을 기습했지만 기습에 실패하여, 사기와 병력에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성이 함락되고 맙니다.
[ 카톨릭은 아직 죽지 않은 것 같군. ]
칼라트라바 기사단에서 저를 돕기위해 나섰습니다!
칼라트라바 그랜드마스터 '보고르추' 는 몽골 제국 황제의 동생이지만 현재는 몽골을 떠나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이제는 멸망한 왕국 카스티야인이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지원군으로 인하여 병력은 백중지세입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저는, 이제 공격의 시기가 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 궁병 전진 배치! 일제 발사! ]
로지어와 랄프는 '방어적 전술'로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나,
저는 '일제 발사 전술' 을 시도하여 궁병대를 위시한 공격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제가 적에게 고전하는 사이,
로지어와 랄프가 돌격 전술을 터트리며 적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적의 사망자도 1천명이 넘게 나왔지만, 그것보다 적의 좌군과 우군의 사기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 인정하자. 나는 아직 부족하다. 그러니 계속해서 배워나가면 된다. ]
불리한 전투 속에서도 저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어 레벨업을 합니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평지, 농원, 대평원에서는 병종에 관계없이 전투력 버프가 20% 상승하는 '평지 전문가'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다른 지형은 몰라도, 평지에서 만큼은 중앙군 지휘자 + 평지 전문가로 인하여 무적이 될 것입니다!
아군: 18937 - 1610 = 17328
적군: 18892 - 6800 = 12092
적의 동맹은 보이지 않으니, 저의 동맹군은 포함한다면 승부는 명확해졌습니다.
결국 이 전쟁은 우리가 이겼습니다.
도망치는 적을 끝까지 추적하여 박살을 내었습니다!
전쟁 점수는 49%.
이제 승리는 시간문제입니다!
[ 엘레나, 어째서 나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거냐! ]
엘레나에게 음모를 그만두라고 시도하려 했으나, 그녀는 무시합니다.
그녀는 끝까지 저와 대적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잠시만 감옥에서 반성하길 바란다. 그녀를 체포해라. ]
그녀의 죄는 명백하므로, 아무런 패널티 없이 체포할 수 있으며 봉신들도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78%의 성공률로 그녀를 체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라데니드의 군대를 계속해서 격파하여 전쟁 점수가 97%가 되자 결국 술탄 '압바드 라데니드' 는 종전 협상을 해옵니다.
파리, 메인에 이어 샤르트르(chartres) 지방의 클레임도 획득!
[ 너무 슬픈 사고입니다... 피해자의 가족은 제가 책임지고 맡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
그러나 마상 시합의 문제점은, 너무 격렬하게 싸우는 모양인지 가끔 사망하는 사람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불쌍하게 과부가 되어버려 갈곳 없는 여성 '틀라조조미즈키'와 그녀의 자식 5명을 모두 거두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현 아즈텍 황제의 여동생이지만, 아즈텍을 떠나 카톨릭으로 개종했고 우리 왕국에 와있었습니다.
지난번 에섹스 침공은 다 이긴 전쟁에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슬람의 공격 때문이었죠.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승리하여 에섹스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미 아즈텍은 독립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댓과 제가 동시에 공격한다면 아즈텍은 결코 막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승리가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 신께서 원하신다! ]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은 오랫동안 보편적인 진실로 여겨졌다.
그 반대되는 '지동설'이 천동설을 몰아내는데에는 정말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자연철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7세기 지동설에 대한 주장을 하기 이전에도
이미 몇명의 학자들은 지동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개념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이 바로 아사그라 왕조의 시몬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시몬왕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으며 즉위 초기부터 천문학에 빠져들었다.
그는 전쟁 중에서도 언제나 들판에 나와 별을 관찰했는데 한때 교황에게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지적되기도 했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독학으로 천문학을 파고든 결과, 세상은 둥글며,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이론을 공표했다.
1325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학문의 주축을 이루던 학자들과 성직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단지 그가 신성모독 행위를 했다는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의 이론에 너무나 구멍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시몬왕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증거를 결국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구가 만약 정말로 움직인다면 왜 사람들은 그 움직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느냐에 대한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논리적 허점들로 인하여 시몬왕의 논문은 결국 인정받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결국 그 증거들은 수백년이 지나 요하네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아이작 뉴턴의 새로운 운동 법칙을 통해
지구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을 설명할 수 있게 되서야 발견된다.
그러나 증거를 찾지 못했을지언정, 시몬 왕의 주장은 결과적으로는 옳았고
당시에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현명한 왕' 이라고 칭송받았다고 전해진다.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천문학을 파고들어 지동설을 스스로 발견한 것.
그 자체가 그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기초적인 망원경조차 없던 그 시절에 말이다.
그가 만약 관측 장비가 발달하게 된 훗날에 태어났다면 위대한 천문학자나 물리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가 왕이나 장군이 아닌 학자로서는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났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출처: 중세 시대의 물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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