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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회사가 끝나면 이 자리에 옵니다.
오면 항상 현우군의 부모님이 계십니다.
과연 그 청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이현우 군의 영정(위) 부천대학에서 수여한 명예졸업장(아래)
일반인 및 선원에 포함된 42명 중 이현우군은 19살이었습니다.
이번 최대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들과 2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1월에 대학을 휴학, 4월 3일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고
입대를 앞둔...
4월 13일 한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유치원 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친구였던 방현수군의 아르바이트 제안.
'인천과 제주를 왕복하는 수학여행에 폭죽을 쏴주는 간단한 일=11만 7천원'
현우군은 승락을 하고 말했습니다.
"엄마, 현수가 사촌형(김기웅씨)과 제주도 놀러간대. 다른 친구 2명도 같이 간다는데 나도 같이 갈께."
배에 올랐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세 월 호'
현우군의 부모님은 단원고 학생이 아니었기에, 더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진도에서 단원고 학부모님들이 "몇반이세요?" 라고 물으면
"제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라고 답하면
선원이라고 생각하고 거부반응을 보였던 일이 제일 서러웠다고 합니다.
4월 29일 오후 3시.
친구인 방현수군이 수습된지 3시간만에 현우군은 찬 물속에서 올라 왔습니다.
3층이 아닌 5층 로비에서 방현수군과 같이 구명조끼 없이 발견 되었으며,
194번째 희생자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청해진 해운이 적혀있는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채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장례식 비용을 청해진 해운에서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아르바이트 생이라서.
장례비는 인천시청에서 지급 보증하는걸로 마무리 되었지만...
이 문제는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현우군의 부모님과 일반인 유가족분들은 분향소를 지키고 계십니다.
내려오는 동안 내리는 비는...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는 글을 씁니다.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것도 있지만...
단 한명이라도 보시고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꽃다운 청년도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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