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한겨레신문사가 마련한 복합문화공간 ‘미디어카페 후(Hu)’ 개관 기념 토크콘서트 ‘후아유’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동교동 ‘후’에서 열렸다. 6일간 일곱 팀의 게스트와 함께 총 7회에 걸쳐 열린 후아유의 첫 주자는 그룹 ‘카라’의 멤버 한승연이다. 이 글은 한승연에 관한 글인 동시에, 그날 그 공간에서 한승연이 팬들과 나눈 대화에 대한 느슨한 후기이기도 하다. 혹 콘서트에 참여한 다른 게스트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한 이들은 <씨네21>에 실린 나영석 피디 편 지상중계와 인터넷매거진 <미디어스>에 실린 김이나 작사가 편 중계를 추천한다.
동행한 기자가 귀띔했다. “20대 초중반 관객들이 더 많이 올 줄 알고 새벽부터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왔다는데, 막상 객석을 보니 팬들이 많아 혹시 준비해온 이야기랑 핀트가 어긋나진 않을까 조금 걱정하는 눈치더라고요.” 내가 애초에 전해 들었던 주최 측의 섭외 의도 또한 ‘동시대 평범한 청춘들과 한승연의 만남’이었는데, 막상 와보니 기존 팬들도 제법 많이 자리를 채운 게 다소 팬미팅 분위기 같긴 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한승연은 언제 걱정했느냐는 듯 이야기를 풀어냈다. “요즘엔 저도 제가 혼란스러워요. 스물여덟이란 나이가, 분명 성인인데 완벽한 어른 같진 않고 그렇다고 어려서 실수를 양해받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닌 애매한 나이잖아요.” 능란한 서두에 분위기는 금세 진중한 토크콘서트로 넘어갔다. 하긴, 관객 비율이 뭐 큰 대수였으랴. 어차피 그의 팬들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춘인 건 매한가지인데.
“동네에서는 기질이 보였는데, 막상 데뷔해보니 바닥이 다른 거예요. 내가 하루에 여덟 시간씩 연습하며 노력해야 간신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재능 많은 사람들은 연습 없이도 그냥 하더라고요.” 자존심이 세서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비가 채 안 된 채 데뷔했고, 데뷔하기가 무섭게 문화방송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쇼바이벌>(2007)에 출연해 혹평을 들으며 탈락했다. 1집 활동이 끝나자 그룹은 개점휴업에 들어갔고 메인보컬은 팀을 떠났다. 남은 멤버들은 그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야 했다. 그 시기 멤버 중 유일하게 텔레비전 예능에 출연할 수 있었던 한승연은, 그룹을 알리기 위해 “안 유명한 그룹의 안 유명한 멤버” 포지션을 감수하며 악착같이 뛰었다. “신인 때는 유명하지 않다는 점에 관해 말을 쉽게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웃으면서 인터뷰를 해야 했거든요. 그게 힘들었죠.”
완성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대중을 만나는 것은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다. 오랜 세월 ‘실력 대신 외모로만 승부하는 아이돌은 진짜 가수가 아니’라는 대중의 거센 비판이 낳은 결과였다. 카라는 그러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게 옆나라 일본의 아이돌들과 비슷한 루트를 걸은 것이다. 서툴게 데뷔 무대에 서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사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종류의 아이돌, 말하자면 사회에 첫발을 딛는 과정에서 실수하고 좌절하는 경험도 겪는 평범한 장삼이사들이 감정이입하기 좋은 연예인 말이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웃으며 소화하는 한승연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지 않아 응원하고 싶은 구석이 있었고, 카라가 팀을 재정비해 후속곡 ‘락 유’로 돌아왔을 때 그 공감은 스타덤으로 이어졌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반응이 왔다.
준비가 덜된채 데뷔했다는 한승연
무대 위에서 즐겁기 위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디며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전진해왔다
그렇게 언제나 다음을 준비하며
“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가 자신의 고민과 혼란을 들려주며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섬세한 공감과 응원을 보낸다
한승연은 익히 알려진 고생담을 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것조차 모른 채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이야기했다. “가장 잘되고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거의 매일 컨디션이 안 좋았고, 그 와중에 말도 잘 안 통하는 일본 활동을 소화했죠.” 흔히 바쁠 때가 좋을 때라고 하지만 정작 그 시기엔 뭐가 좋은 건지 음미할 시간이 없다. 한승연에게도 그 시기의 키워드는 대체로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으로 기억된다. “일본에서 리허설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리허설하고, 하룻밤 자고 다시 일본으로 넘어간 것, 얼굴 부었던 것, 추웠던 것, 머리칼이 떡졌던 것… 그런 기억밖에는 남아 있지 않아요.” 한승연은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시간 지나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니, 우리가 정말 반짝반짝했던 때는 그때였던 것 같아요.”
자신도 모르게 지나간 화양연화를 이야기하며 그는 ‘침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한창 바쁜 때가 지나가면 어느 정도 침체기에 접어들죠. 저희도 알아요. 수치를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팬 사이트 회원 수가 얼마나 어떻게 변동이 됐고 이슈에 따라 여론이 어떻고 하는 것들.” 한승연은 망설임 없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알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데, 부족한 게 있으면 똑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다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소속사와 소송을 겪으며 이 무대에 다시는 못 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는 한승연은, 무대 위에서 즐겁고 싶단 생각에 더 열심히 했단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떤 이들은 한승연을 두고 독하다고 말한다. 특공대 병영체험을 가서 그 힘들다는 피티(PT)체조 8번 ‘몸통 비틀기’를 웃는 낯으로 해치우는 모습을 보며, 카라 이후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릴 때부터 번역 업무에 관심이 있었기에 조금씩 준비중”이라며 아예 연예인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그건 독한 게 아니라 그저 언제나 ‘다음’을 준비하는 자세였으리라. 쉽게 낙담하거나 쉽게 들뜨는 대신 앞으로 닥쳐올 상황들을 준비하는 삶의 태도. 노래 실력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에 하소연하는 대신, 그는 타고난 음역을 뛰어넘는 고음을 갈고닦아 ‘판도라’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소화해내는 것으로 조용히 자신을 증명했다. 무대 위에서 즐거우려면 최선을 다해야 했으니까.
여러 일을 겪어서 그런지 사람이 단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무렵 매니저가 귀띔한다. “저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봐요. 여린 사람이라 울기도 많이 우는 편인데, 오늘은 큰마음 먹고 얘기하는 것 같네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통의 20대가 십수 년에 걸쳐서 겪을 일들을 한승연은 또래보다 십 년은 먼저,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겪었다. 취업과 방황, 이 길이 정말 내 길인가 하는 회의, 나도 모르게 지나간 전성기와 슬럼프, 과로로 소진되어 버리는 상황까지. 그가 무거운 이야기들을 꺼내어 들려준 건, 자신이 거쳐온 고민과 혼란을 저마다의 버전으로 경험하게 될 또래들에게 응원을 건네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손을 든 이들은 수능을 100일 남겨둔 고3 학생이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스무 살이었다. 한승연은 일일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최선을 다해 조언과 위로를 건넸다. 같은 고민을 먼저 해봤던 이만이 해줄 수 있는 섬세한 응원이었다.
세상엔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도 있고 놀라움이나 자극으로 다가오는 연예인도 있다. 카라는, 한승연은 성공을 거둔 뒤에도 동경의 대상이나 자극이기보단 늘 감정이입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시행착오가 남의 것 같지 않고 그들의 성장이 마치 나의 일처럼 느껴지는 종류의 연예인. 남일 같지 않다는 대중의 공감을 자양분으로 성장해온 한승연은, 이제 자신이 받았던 공감과 응원을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다시 전해주는 지점까지 자랐다. 분위기가 일방적인 팬미팅이 아니라 진중한 토크콘서트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모두가 준비를 철저히 갖추고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꿈꿨던 분야에 필요한 재능을 지닌 것도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기 어려운 벽을 만나면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데뷔했다고 말한 한승연은, 그런 사람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온몸으로 전진해왔다. 한승연은 대화 중 어느 대목에선가 웃으면서 “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당일 사회를 맡았던 진행자 하지영은 그 말을 받아 다시 이렇게 첨언했으니, 내가 딱히 더 보탤 말은 없을 것이다. “참 잘 살았네요.”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한겨레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