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을 기리며
- ‘노무현재단’ 출범에 부쳐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삶과 죽음 전체를 관통해서 흐르는 정신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또는 사리취의(捨利取義)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찍이 맹자가 말한 바, 올바름(義)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익을 버리고 목숨도 버릴 수도 있는 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올바른 길을 걷고자 했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홀로 그 길을 갔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의를 실현하려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고 느꼈을 때 홀연히 부엉이바위에 올라가 생명을 던졌습니다. 그는 삶보다 더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구차하게 삶을 얻으려 하지 않는, 말 그대로 대장부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로움보다 의로움을 따랐던 대통령
우리는 지금 대통령에서부터 평범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너나없이 이(利)를 말하고 이를 좇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가치를 경시하면서 오로지 물질적 복지, 그것도 GDP 성장률이나 화폐표시소득과 같은 가장 좁은 의미의 물질적 복지를 최고의 가치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시민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약해도 좋고, 평등과 정의를 외면해도 되며, 한반도 평화와 국가안보를 적당히 훼손해도 괜찮고, 생태계 파괴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마디로 말해서, 이(利)를 위해서라면 의(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불의(不義)와 물신숭배의 시대적 탁류를 만난 것입니다. 역사는 이런 탁류에 뒤덮인 나라치고 위험에 빠지지 않은 나라가 없음을 되풀이 증명합니다.
그래서 이로움보다는 의로움을 따랐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이 더욱 귀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국민이 그런 방식으로는 이조차 얻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알고 다시 의를 찾는 시기가 다시 올 것임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식, 지혜, 글, 돈으로 참여하자
바람이 불면 사물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냅니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똑같이 의를 구하는 마음이 있어도 선택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생취의의 정신은 같아도 그 방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이 더 많아지도록 각자의 생활공간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는 것. ‘조직된 시민의 힘’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것. 이 모두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일들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 선 자리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여기에 동참하면서 더욱 넓고 깊게 연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노무현재단’이 더 많은 시민들을 깨우고, 그 힘을 조직할 수 있는 드넓은 광장이 되기를 바라며, 꼭 그렇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 글 잘 쓰는 사람은 글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이 광장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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