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제발이지 이번 기회에 노브라 유행이 대한민국을 강타했으면 좋겠다.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전도연이라는 여배우를 좋아한다.
정확히 언제부터인가 하면 그녀가 영화 <해피엔드>에 출연하여 카메라 앞에서 천진하게
가슴을 노출하고, 정부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갓난아기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울 때부터다.
그때까지 ‘어쭈구리’류의 에로영화를 제외하고 진지한 한국영화 중에서 그토록 음탕하고
사악한 여자 캐릭터를 본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남편 손에 죽어 마땅한 아주아주 ‘못된 년’ 캐릭터인데,
필름 누아르 영화의 전형적인 팜므파탈 캐릭터와 달리 일상의 보통 여자들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었다.
어쨌든 그 진화된 악녀 캐릭터는 전도연 아니면 누구도 소화하지 못할 역이었다.
더 중요한 건 당시 A급 여배우 중에서 그 배역을 하겠다고 덤빈 사람도 전도연뿐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는 심은하, 고소영, 이영애, 이미연 등 당시 내로라 하는 여배우 모두에게
보내졌다. 하지만 그녀들은 비중으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여배우로서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도전임이 틀림없는 배역이었지만 결국 그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대신 광고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한국 시장에서 여배우가 벗고 설치는 영화에 나와 가슴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면 광고가 떨어진다는 건 하나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이미연이 영화 <중독>에 출연하면서도 뽀샤시한 화면 안에서 시종일관 이병헌 등짝 밑에
깔려 숨도 제대로 못 쉰 건 가슴 노출을 피해 광고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고 나는
짐작하고 있다. 덕분에 <중독>은 지독한 멜로영화라는 선전과는 달리,
무슨 TV 단막극처럼 말랑말랑해 보였다.
그런데 최근 ‘노브라’ 차림으로 구설수에 오른 전도연 소식을 들으며
‘역시 전도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브라’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가슴선이 깊게 파인 시폰 블라우스를 입고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건전한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 방청객과 방송 관계자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는 것이다.
‘너무 야한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지만 나로서는 대환영이다.
언젠가 이말감이라는 여성 칼럼니스트가 섹시한 여자 스타 몇명만 도와준다면
여성운동가들도 하지 못한 ‘노브라 유행’을 만들어, 한국의 많은 여성들을 브래지어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지 않겠냐는 멋진 제안을 했더랬는데,
역시 전도연이 먼저 그 획기적인 트렌드의 포문을 열어줄 모양이다.
배우로서 이렇다 할 작품이 전무후무한데도 브래지어 등 여러 상품의 특급 광고 모델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고소영에 비하면 전도연은 얼마나 멋진 여성인가?
그녀의 노브라 차림은 상품 광고를 통해 이윤을 얻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마치
살신성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시라도 요즘 유행하고 있는 ‘누드브라’ CF에
출연한다고 해도 자력갱생이라는 점에서 축하받아 마땅하다.
제발이지 이번 기회에 노브라 유행이 대한민국을 강타했으면 좋겠다.
브래지어는 답답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나쁘고, 노브라보다 섹스 어필하지도 않다.
보통 여자들이 걱정하듯이 브래지어를 안 한다고 가슴이 처지는 것도 아니다.
중력이나 생로병사와 같은 자연의 대법칙을 브래지어 따위가 막아줄 리 없다.
오히려 가슴 근육들의 브래지어 의존력이 커져서 더 빨리 처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뻥브라’에 의존하던 여자들도 기죽을 것 없다.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의 케이트 허드슨을 봐라. 할리우드에서
거의 유일하게 절벽 가슴을 고수하고 있는 이 배우는 ‘브라’ 없이 티셔츠 한장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가지 제안하자면 제인 캠피온의 새 영화 <인 더 컷> 개봉일을 ‘노브라의 날’로
정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에서 멕 라이언은 사랑하는 남자와 관계할 때조차 제 손으로 팬티를 벗지 못하는
여자로 나왔다가 나중에는 누구보다 섹시하고 강인하게 자력갱생하는 여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극장 문 앞에서 그 옛날 교련 선생님이 그랬듯이 브래지어를 착용했는지 안 했는지
여성 관객들의 등을 검사하고, 이 진풍경을 구경하겠다고 찾아든 남성 관객들한테는
입장료 10만원씩을 받아 여성단체나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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