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탐구생활'은 사이버 시대 인간의 이모저모를 추적하고, 이를 미디어이론과 인문학적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연재물입니다. PC통신 시대부터, 디시, 일베, 여초커뮤니티 등... 누리꾼들의 사상을 폭넓게 분석하고, 대안적 인터넷 문화를 모색합니다 ― 기자 말
스타는 팬들의 사랑을 받아 생명력을 얻는다. 연예 시장은 이 생명력을 연료로 착취해, 탐욕의 궤도 위에서 달리는 열차와 같다. 그런데 그 탐욕은 끝이 없어서, 종착지는 신기루일 뿐이고 열차는 그저 무한히 순환한다. 열차 속에선 냉랭해진 팬들의 인정을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는, 스타들의 구슬픈 몸짓만 남는다.
최근 걸그룹 노출 경쟁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급부상 이후, 급격히 늘어난 걸그룹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벗기' 시작했다. 언론은 환호성을 질렀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곤 '터질 듯한 가슴골' '남심 흔드는 아찔 각선미'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다. 누리꾼들은 이런 콘텐츠를 클릭했고, 걸그룹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그리고 언론의 광고 수익은 늘었다.
떡밥을 키우려면 '마녀사냥'이 최고다. 걸그룹 스텔라는 2014년 싱글 <마리오네트>로 선정성 논란의 독박을 썼다. 댓글창에는 (차마 옮겨 쓰기 힘든) 성희롱 등 여성혐오성 발언들이 이어졌고, 그들이 벗기 전 싱글 발표곡에는 관심도 안 주던 기자들은 부추기듯 누리꾼 반응을 긁어 기사로 옮겼다. 그리고 스텔라가 연이어 발표한 두 싱글은 묻혀버렸다. 비교적 노출도 적고, 차분했는데도 그랬다.
▲ 걸그룹 <스텔라>의 소속사 디엔터테이먼트파스칼 측이 공개한, 스텔라의 싱글 '떨려요'의 재킷 사진.
스텔라는 결국 노출로 돌아왔다. 여섯 번째 싱글 <떨려요> 재킷 사진이 공개되면서, 옆트임 원피스 사이로 노출된 끈팬티가 논란에 휩싸였다. 뮤직비디오에서 핸드백이 서서히 열리고, 다리와 가슴골을 벌리는 장면 등이 논란이 됐다.
"뇌리에 남는 강렬한 뮤직비디오를 완성하려고 했다"
2011년 데뷔 때부터 연달아 죽을 쑨 소속사의 설명이다. 연예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극심한지 잘 보여준다. 한편, 언론도 여전히 마녀사냥을 반복하면서 누리꾼들의 논란만 부추긴다. 그러나 정작 대안을 제시하진 못한다.
성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옷을 야하게 입은 죄'도 있다는 발언이 꼰대스럽게 들리고,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에게 '이게 다 노력이 부족한 죄'라고 툭 던지는 말에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듯 '개인 일탈'을 운운하는 논리는 좀 지겹다. 우리에게는 '벗는 스타'보다 '벗기는 구조'를 보는 시선과 스타와 함께 이 구조에 저항하기 위한 계기를 찾는 감각이 필요하다.
스텔라가 <마리오네트>로 매장당한 이후, 발표 된 싱글 중 <멍청이>란 노래가 있다. 여기에 그녀들의 진심이 있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자신들에 대한 악플을 보고 상처받는 스텔라 멤버들과 이를 멀찌감치 창밖에서 지켜보고 눈물이 그렁거리는 고릴라팬이 등장한다.
스텔라의 신세는 뭘해도 볕들 날이 없다. 노출이 별로 없는 의상을 입으면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으면 악플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그들은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팬을 위해, 항상 연습에만 매진하는 '팬바라기'의 모습이다.
그러던 어느날, 악플에 상처받고 스텔라 멤버들이 지쳐서 잠이든 사이. 삼촌팬처럼 듬직한 고릴라팬이 선물을 들고 몰래 찾아온다. 그리고 노트북 속의 악플들을 깔끔히 해결해준다. 스텔라의 팬이라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이 남긴, <스텔라가 벗게 되기까지>라는 절절한 해명글이 누리꾼들의 큰 공감을 얻는 것처럼.
이제 스텔라와 고릴라팬은 함께 의상을 고르는 등 콘서트 준비를 한다. 그리고 스텔라는 무대에 서서 팬들을 위해 기쁘게 노래를 부른다. 그 의상은 별로 노출이 심하지도 않고, 그저 매력적이기만 하다. 결국 듬직한 삼촌팬들만 있다면, 스텔라가 굳이 벗겨질 일도 없다. 이게 바로 우리가 귀기울여야 하는 답이지 않을까.
▲ <스텔라>의 '떨려요' 뮤직비디오 스틸컷. 이 장면과 뒤이어 나오는 다리를 벌리는 장면 등이,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며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스텔라가 여태까지 찍은 싱글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 메시지는 참 일관적이다. 스텔라는 초기엔 2NE1과 비슷한 콘셉트였다. <로켓걸>과 <UFO>와 같은 싱글들은 '센 척' 하는 느낌의 펑키함이 있었다. 그러나 규모가 큰 경쟁 소속사들에 밀렸고, 세 번째 싱글인 <공부하세요>부터 큐티한 이미지로 승부를 던졌다. 마치 팬들과 썸을 타는 것처럼, 자신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읽어달라'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싱글이 시원하게 망하면서, 스텔라는 섹시 콘셉트를 시도했다. 그리고는 독박을 썼다. 그런데, 사실 지금 여론의 뭇매를 맞은 <마리오네트>나 <떨려요>도 훌륭한 작품성을 지녔다. 마리오네트의 뜻이 '끈에 묶여서 조종 당하는 인형'이라는 점과 자신을 외면한 사랑에 투정부리는 듯한 가사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연예시장의 과열 경쟁과 무관심이 만든 걸그룹들의 현실이다.
<떨려요>도 마찬가지다. 스텔라가 차가운 상자 속에서 갇혀 있고, 오직 카메라들만 그녀들의 몸을 찍어대는 장면. 이건 노출만 부각하는 언론의 저속함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반면 진심으로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사랑(팬)이 있고, 이때 그녀들의 마음은 떨리는 것이다. 그때 마치 핸드백이 서서히 열리듯, 그녀들의 마음도 서서히 열리게 된다. 혀를 내두를 만한 비유와 일관성이다. 이런 해석은 '벗는 사람'이 아닌, '벗기는 구조'를 봐야만 가능하다.
<데일리안>은 최근 스텔라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노출만 보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벗은 스텔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나는 여기에 현상의 배후 구조를 간파하는 예리한 저널리즘이나, 맥락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섬세함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쉽게 이중잣대 프레임을 씌우고, 개인 일탈로 몰아가는 소음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틀렸다. 스텔라는 노력도 충분했고, 지금도 벗겨졌을 지언정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하고 있다. 그녀들은 이미 훌륭한 대중 뮤지션이다.
그녀들을 악순환 구조에서 꺼낼 대안은 존재한다. 가령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대중가요 팬문화를 돌이켜보자. 잠실경기장에서 '드림콘서트'가 열릴 때면, 각종 색깔 풍선들이 객석을 메웠다. H.O.T.는 하얀색, 신화는 오렌지색, god는 하늘색 풍선을 들고, '떼창'을 시전했다. 그리고는 스타와 팬 그리고 팬과 팬 사이의 유대감과 팬문화의 정체성이 생겨났다.
남성 아이돌을 중심으로, 이러한 팬덤 문화는 성숙된 가능성을 보였다. 기획사의 응원도구 독점 상품화에 저항해 자생적인 '팬아트'도 탄생했다. 또 동방신기가 13년 간 소속사와 맺은 전속계약해지를 할 땐, 팬들이 '불공정 노예계약 철폐' 운동을 하는 등. 스타의 입지와 발언권을 높여주기도 했다.
걸그룹은 어떨까? 한때는 듬직한 삼촌팬들이 건재했다. 그런데 소녀시대는 숙녀가 되고, 삼촌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물론, 소녀시대는 이미 성공했고 여전히 많은 팬이 있으니 큰 상관은 없다. 그러나 신생 걸그룹에게 남는 건 그녀들에게 손가락질 하면서도, '강렬함'을 탐닉하는 악플러들뿐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이 부조리한 구조에 함께 저항할 수 있는, '강한' 팬덤이지 않을까. 현재 기준, 남성 아이돌 엑소의 팬카페 회원은 약 13만 명에 이른다. 반면, 스텔라의 팬카페 회원은 약 3500명이다. 지난 20일 <떨려요> 쇼케이스 막바지, 스텔라 멤버 전율이 진심을 담은 듯 말했다.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했어요."
울컥하는 느낌이 든 나는 스텔라 팬카페에 가입했다. 이제 언론은 보도행태를 반성해야 하고, 연예계는 시장구조를 개선해야 하며, 팬들은 이들을 견제해야 한다. 지금 그녀들에겐 털보 고릴라 같은 듬직한 삼촌팬들이 필요하다. 그때 그녀들은 '마리오네트'가 아닌 '팬바라기'가 될 것이다. 스텔라가 계속 자신들의 꿈을 이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