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다가 옛 일이 생각나서 글 써보려 합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일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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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에 들어간 회사.
나름 외국계 법인으로 시작해, 외국자본이 손을 뗀 곳이었음.
그래서인지 입사할 때 대기업에서 사용하는 인적성 검사도 했음.
(퇴사할 때 사장님 면담하면서 들은 얘기로는, 내가 역대 여직원 중에 점수가 가장 좋았다고 함.)
첫 사무직이라 적응하는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나름 재미있고 보람도 느끼고 하면서 일하고 있었음.
입사할 당시에는 여직원이 5명이었고, 2명이 더 들어왔음.
팀 분위기가 남,녀 나뉘어있었음. 남자는 하늘, 이라는 분위기??? 10년도 전에 일이니...
항상 같이 어울리는 여직원이 독수리오형제처럼, 5명이 있었음. 2명은 각개전투를 했었고...
독수리오형제 중 1명이 불이익을 당하면, MSN(정겨운 메신저) 으로 토닥거려줬음.
여직원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꼴갑잖은 남직원들의 방해공작도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 위로하며, 즐거운 회사생활을 했음.
(어느 한쪽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남자들은 우르르 담배피러 가면서 여직원들이 우르르 커피마시러 가면 눈치주는 곳이었음)
그러던 어느날, 각개전투를 하는 2명의 여직원이 차례로 그만두게 되고
2명의 업무를 나와 독수리2호가 나누게 되었음. 겨우 업무가 손에 익어갈 때쯤 찾아온 업무 분담.
건강상의 이유로 배려받은 것도 있고 해서 받아들이려고 했으나, 독수리2호는 그렇지 않았음.
힘들다, 어렵다를 반복하며 그만둔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했음.
안 그래도 업무 분담이 맘에 들지 않던 차, 내게 업무를 알려주었던 독수리2호가 그만둔다고 하자 정의감에 불탔던 나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음.
평소에도 대졸이 아닌 자는 무시하는 팀장이 괘씸했음. (대졸자만 데리고 여러차례 회식을 했음)
대놓고 학력차별 하던 팀장이었음. 그럴려면 고졸,전문대졸을 뽑지를 말지...
(그 당시, 학력 차별하던 팀장 때문에 산업체 특별전형을 준비 중이었음. 팀장이 전공했던 똑같은 분야로.)
지켜보던 팀장은 면담을 하자고 했음.
나와 독수리2호가 그만둘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2명만 면담하면 될 것을 우르르 몰려다닌다는 이유로 여직원들 모두가 면담 대상자가 되었음.
먼저 독수리2호가 면담을 했고, 이어서 내 차례가 되었음.
난 다 얘기했음. 이런 업무 분담은 부당하다부터 시작해서..
면담하면서도 여전히 고졸인 나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나는 다소 공격적이 되었음.
니가 하는 학력차별은 고용법에 위반되는 것을 아느냐, 팀장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안다고 했음.
난 니가 얼마나 잘났는지 보기 위해 똑같은 걸 전공하려고 한다고 얘기했음.
덜덜 떨면서도 할 말은 다 했음, 마지막으로 그만둔다고까지..
이게 결정적이었음. 나중에 노무사 통해서 알았지만, 구두로 얘기한 퇴사 의향도 인정이 된다는 것.
면담을 하고 열흘 뒤 쯤, 신입사원이 온 거임.
헐...
면담할 때 나의 퇴사 의향이 인정되어 나 몰래 내 후임을 뽑았던 거임.
부랴부랴 노무사에게 문의해보니,
말로 뱉은 퇴사 의향은 인정이 된다. 법정으로 갈 경우 내가 이길 수는 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라고..
결국 내가 뱉은 말이니 받아들이기로 했음.
하지만, 나름 비상한 머리를 가진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음.
말로 뱉은 퇴사 의향이 인정이 된다면, 그 날로부터 15일만 회사에 있으면 되는거였음.
보통 한달 정도를 두지만, 그 당시 찾아본 바로는 15일이었음.
뭔가 승리의 기운이 느껴졌음.
당장 밥벌이가 없어져 걱정, 부모님께 뭐라고 해야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 당장은 시원했음.
당당하게 퇴직서를 작성했음. 날짜는 면담한 날로부터 15일 뒤로..
그러니까 신입사원이 오고 5일 뒤에 나가는 거였음.
그래도 열심히 인수인계를 해줬음. 새로 들어온 직원은 죄가 없으니...
퇴사하는 날, 인사과에서 퇴직면담을 하는데 대부분 퇴사자들의 이유가 팀장이라고 함.
(인사과에서는 퇴사하는 경위를 다 알게 되어서인지 실업급여를 받게 해주었음)
퇴사하는 날, 사장님이랑 퇴직면담하는데 인적성 검사 결과가 좋아 기대가 컸는데 아쉽다고 하심.
그렇게 퇴사를 하고, 면담 얘기를 듣게 됨.
인적성 검사 결과가 좋았던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팀장, 그래서 건강이 안 좋았을 때도 배려를 해줬던 것이고.
하지만 면담하면서 내가 무섭게 느껴졌다고 함. 그래서 제일 먼저 내보냈다고...
아직 시원하지가 않을텐데..
내 후임으로 온 직원은 보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 둠. 캬~
서너번 전화로 업무를 물어봐도, 난 친절하게 설명해줬음. 그 때마다 그 직원은 힘들다고 투정부렸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음.
내 마음을 움직인 그 독수리2호는...
막상 면담에서는 열심히 해보겠다고 얘기했다고 함.
난 뭐니... 내 스스로의 결정이니, 그녀를 탓할 건 없지만, 뭔가 괘씸했음.
이미 나를 선두로 독수리오형제는 하나 둘 회사를 떠난 상황이었음.
독수리2호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음.
(음성지원이 되면 좋을텐데...) "언니는 아직 다니네요.." 라고...
내가 생각해도 좀 오싹했음. 두어달 뒤쯤 독수리2호도 퇴사했다고 함.
그 팀장 덕분인지,
독수리2호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아주 일이 잘 풀렸음.
모두 아무런 차별없이 능력을 인정받는 곳에서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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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꽤 길어졌네요.
그 당시에는 나름 통쾌했는데.. 20대 혈기왕성한 때라 그렇게 했지, 지금은 아마 깨갱할 듯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
화이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