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아빠가 많았다.
집 앞 시장의 정육점 사장,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의 구멍가게 주인, 일요일마다 찾아가곤 했던 목욕탕 주인 모두 자기를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골키퍼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아무래도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에 비해 예뻤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이 바람 잘날 없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엄마는 자식들의 생활과 자신의 생활을 철저하게 구분할 줄 아는 그런 여성이었다. 남자들은 안방의 침대에는 쉽게 올라갈 수 있었지만, 우리에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집 앞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와 동생에게 백 원짜리 동전 하나 쥐어주며, 집의 이것저것을 묻는 것이 다였다.
조금 둔한 나에 비해 동생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빨리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엄마에게 진짜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책장에서 낡은 책들을 꺼내 정리하고 있었다. 평소에 아무도 읽지 않는 죄와 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고전 소설 전집들이었다. 엄마는 정리하던 책을 아무렇게나 집어넣은 다음,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아빠는 사랑꾼이었단다.”
나는 당시 너무 어려서 사랑꾼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엄마의 표정에 스쳐 지나가는 쓸쓸함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엄마에게 아빠에 관한 것은 절대 묻지 않았다. 그것을 물어 보는 것이 엄마를 괴롭히는 것 같았고, 마치 죄를 짓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빠라는 단어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은 내가 사람의 애정에 둔하고, 집이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엄마가 아빠로부터 매달 생활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성인이 된 나와 동생에게는 별 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전화가 걸려온 것은 금요일 아침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아들이 맞는지 묻는 경찰의 전화였다.
나는 경찰의 물음에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진 단어였기 때문에,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나에게 부산에 있는 한 동네의 주소를 불러 주었다. 기계적으로 그것을 받아 적은 다음, 전화를 끊었다.
병가를 내고 회사를 나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박사 과정 공부를 위해 미국에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동생은 그런 일이 있었냐는 말 한 마디로 한국으로 오지 않겠다는 표현을 대신했다. 동생 옆에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엄마는 조금 망설이는 느낌이었지만, 역시 한국으로 올 마음은 없어 보였다. 엄마는 미안하지만 잘 부탁한다는 말로 안부를 대신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오갔다. 가장 큰 걱정은 시신에 관한 것이었다. 경찰의 전화가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온통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영화에서 보았던 역겹고 보기 힘든 그런 장면 들 뿐이었다.
부산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주소를 불러주자, 택시기사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훈계했다. 역에서 출발하는 택시를 탔는데, 그렇게 가까운 곳에 가면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팔자 좋은 이야기였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고 잔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기사는 아까 전의 기분 나쁜 표정은 어디 갔는지, 밝게 웃으면서 젊은 사람이 도리를 안다고 했다.
도착한 곳은 수정동이라는 산복도로에 있는 마을이었다. 아버지가 살았다는 낡은 아파트 앞에서 경찰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경찰은 바로 오면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11동 B107호….”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 채 허름하고 페인트가 듬성듬성 칠해진 문을 열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빠가 살던 집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물론 아빠의 시신 역시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아빠와 비슷해 보이는 초로의 남성이 있었다. 경찰이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남성은 아빠의 친구라는 애매한 말로 나의 질문에 답을 했다.
남자는 시신은 이미 장례식장에 안치 했고, 따라오겠느냐고 물었다. 굳이 원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발인이 언제냐고 묻자 일요일 오후라고 했다.
나는 조금 집을 둘러보고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남자는 나에게 열쇠를 주고, 장례식장 주소를 알려주었다.
남자가 집에서 나가자 이유 모를 피로가 몸을 엄습해왔다. 결코 감정적인 피곤함은 아니었다. 아빠라는 존재가 나에게 주는 존재감은 그렇게 피로를 줄만큼 크지 않았다. 잠시 방에 드러누운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열 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책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 엄마가 아무도 보지 않는 책장을 정리하던 것이 떠올랐다. 이제야 그 책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누웠던 몸을 일으키자 내 앉은 키보다 조금 작은 낡은 문갑이 보였다. 문갑 위에는 아빠가 죽기 전까지 사용했던 것 같은 펜과 수첩이 놓여 있었다.
앞으로 몸을 움직여 문갑 위에 놓인 수첩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수첩에 닿았을 뿐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와서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나의 인생에 있어 별 의미 없었던 아빠의 존재를 굳이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망설임, 그리고 반 호기심으로 지금 이 상황을 대하는 죄책감 같은 것이 같이 섞여 있었다.
망설이던 죄책감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수첩을 들어 내용을 살펴보았다. 꽤 오랫동안 사용한 것 같은 수첩에는 파란 펜으로 빼곡하게 글씨가 적혀 있었다.
주로 시가 적혀 있었지만, 때로는 수필로 보이는 글도 적혀 있었다. 각 페이지의 오른쪽 귀퉁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날짜도 있었다.
“사랑꾼이셨구만….”
듬성듬성 내용을 살펴보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수첩을 덮었다. 수첩 앞에는 자수로 그려진 수선화가 장식하고 있었다. 내용은 대부분 구구절절한 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엄마와 나, 동생에 관한 내용은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갑자기 어물쩡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까워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기대를 했다는 사실이 바보같이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빨리 서울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첩을 다시 문갑 위에 올려놓았다. 바닥에 수첩에서 떨어진 것 같은 낡은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흑백으로 된 사진에는 아빠와 이름 모를 남자 한 사람이 찍혀 있었다. 젊은 시절의 사진이라 확실하지 않았지만, 방금 전까지 집에 있었던 남자 같았다.
나는 사진을 수첩에 아무렇게나 끼워 넣고 집을 나왔다. 문을 잠그고 남자가 알려준 병원 주소를 확인했다. 남자에게 열쇠를 주기 위해서였다. 장례식 비용이나 유산 등에 관련된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아무 것도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얼마 정도 쥐어주면 그만이었다.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거기 107호에 뉘시당가?”
옆을 바라보자 허리가 다 굽은 할머니 한 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들입니다.”
어색함을 참고 겨우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래져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김 씨가 이런 아들이 있었구마이? 몇 십 년을 살아도 자슥 있다고 말 한 마디 안 해 부러니께 알지를 못 혔지.”
나는 쓴 웃음이 나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워낙 바람 잘날 없는 분이셔서요. 저희 같은 것들이야 신경 쓸 시간도 없었겠지요.”
“김 씨가? 그런 이야기는 또 처음 듣는구먼.”
할머니는 이번에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 와서 한참을 혼자 살았던 사람인디…. 젊은 사람이 여자도 없고 친구라고는 저기 자주 찾아오는 고향친구 하나 밖에 없어서 나는 아예 처자식이고 뭐고 다 죽어버리고 없는 줄 알았지.”
나는 할머니의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한테 여자가 없었나요?”
나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덜컥 묻고 말았다.
“모르재비. 사내놈이니까 또 어따 숨가놓고 불장난하고 댕겼는지는. 근데 김 씨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그 친구 하나 뿐이었어.”
“친구요?”
“요 아래 파출소 소장 하는 사람인디, 고향 친구라카더만. 그 친구가 병수발이고 장례 준비고 뭐고 전부 다 했어. 자기 가족도 그렇게 챙기기 힘든디, 사이 좋았는데 참 안됐지 그래.”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비틀비틀 지팡이를 짚으며 내 옆을 지나갔다. 아빠가 사랑꾼이라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가듯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다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을 켜고 수선화가 그려진 수첩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엄마가 말했던 대로 아빠는 사랑꾼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보통 사람과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아빠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가 지었던 쓸쓸한 미소의 정체를 나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아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가 느낀 허탈감은 어땠을지 차마 상상하기 힘들었다.
수첩에 적힌 내용을 다 읽은 뒤 나는 다시 집을 나섰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밤이 되어 있었다.
다른 빈소는 모두 곡하는 소리, 손님 들이 마시고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아빠의 빈소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아빠의 친구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오셨습니까.”
내가 도착하자 남자는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말없이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말없이 절을 두 번 하고, 향을 피웠다. 그리고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아빠의 수첩을 건네주었다. 이게 뭐냐고 묻는 남자에게 나는 아빠가 남긴 선물이라고 말했다. 남자가 낡게 바랜 파란 수선화를 천천히 넘겼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남자의 모습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르르 떨리던 어깨는 어느덧 멈출 줄을 몰랐고, 조그맣게 흐르던 눈물은 어느새 소리 없는 대성통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남자가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린 후, 수첩 뒤에 사진이 있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남자는 몇 번이고 자기에게 수첩을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내게 했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아빠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마지막 시간을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자는 내게 그저 고맙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나와 나는 다시 서울역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놓칠 뻔 해 뛰어서 그런지, 오늘 많은 일이 있어서 피곤해서 그런지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수첩에 한 구석에 적혀 있던 내용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잊혀 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많은 사람을 상처받게 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빠는 원래 이 수첩을 누구에게도 보여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아빠의 사랑, 생각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의식을 졸음 속으로 밀어 넣으며,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꿈속에서 수선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